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26
◈ 226화
“그래서 어떤 행성이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일행은 일단 구조 신호가 나타난 행성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설령 그 신호가 오작동된 거짓 신호라 해도, 확인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그램을 올려다보던 반 마코스가 리오 리카온 대신 답했다.
“목성입니다.”
목성(木星).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도 가장 큰 행성으로, 그 크기만 대략 지구의 약 11배에 이른다고 알려진 곳.
이른바 ‘태양계의 왕자’였다.
하지만 목성은 기체로 이뤄진 가스형 행성이 아니었던가.
사람이 그곳에 생존할 수나 있을까.
‘아마 이곳도 다르겠지.’
0115 채널의 기준으로 상상하면 안 될 일이었다.
화성에서 우주복 하나 없이 버젓이 숨을 쉬듯이, 목성도 전혀 다른 생태계일 확률이 높았다.
과연 그곳은 어떤 행성일까?
강서준은 호기심을 품고 화성 게이트 터미널의 정면에 드리운 포탈을 응시했다.
멀리 목성으로 잇는 길.
리오 리카온의 피를 먹이니 터미널 게이트의 엔진이 가동되고, 진동은 더욱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 마코스도 포탈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희도 자세히 알진 못합니다. 그곳은 오랫동안 금지(禁地)로 구분된 땅이니까요. 하지만 아마도 그곳은…… 보면 어떤 곳인지 바로 아실 겁니다.”
목적지는 ‘목성’.
[‘워프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공간의 틈에 갇히지 않게 모쪼록 주의하십시오.]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것도 아예 다른 차원에서.
그들은 ‘우주 항해’를 시작했다.
***
워프(Warp).
리카온 제국에서 행성 간 이동에 쓰이는 공간 이동 기술.
원리는 김훈의 공간 이동과 같았다.
한순간에 몸이 붕 뜨고, 어느덧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누구보다 이 기술의 이해도가 높은 김훈이 마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같은 면에 있던 것들이 마주하게 되잖아요. 공간 이동은 바로 거기에 구멍을 뚫고 이동하는 걸 말해요.”
이는 포탈의 원리이기도 했다.
워프 게이트나, 포탈이나, 차원 게이트나…… 결국 닿을 수 없어야 정상인 면을 만나게 하여 구멍을 뚫는 행위인 것이다.
김훈은 눈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시스템 메시지에 나온 ‘공간의 틈’은 바로 그곳에 있어요. 종이를 접었을 때…… 서로 부딪치는 뒷면이죠.”
종이가 서로 맞부딪쳤을 때에야 생성되는 ‘뒷면’.
이른바 ‘워프’의 부작용에 가까운 ‘공간의 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김훈은 공간 이동을 할 때엔 늘 그 틈을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그곳은 무한의 공간과도 같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공간 이동’의 스킬 설명란에도 ‘공간의 틈’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물론 공간의 틈을 조심하라는 ‘시스템 메시지’는 그조차 이번이 처음 받는 눈치였다.
‘아마 규모의 차이겠지.’
김훈의 공간 이동의 크기는 보통 ‘본인’이나 ‘붙잡은 소수’에 한한다.
아무래도 그만큼 생겨나는 공간의 틈은 좁았고, 실패해서 그곳에 빠질 염려도 거의 없다고 한다.
한데 화성 게이트 터미널은 그 규모부터 함선 크기이지 않은가.
그만한 규모의 워프는, 그만한 공간의 틈을 만들기 마련이다.
자칫 잘못하면 시스템의 문구대로 공간의 틈에 끼어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국의 기술력은 전부 안전이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반 마코스였다.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함장실 내부에 두둥실 떠오른 한 아이템을 응시했다.
포탈 코어.
부산에서 리카온 제국인들이 차원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이계의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저게 그 안전을 보장하는 거겠지.’
그리고 이는 지구의 포탈 코어 또한 같은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만한 규모의 공간 이동조차 안전하게 해내는 리카온 제국의 기술.
‘쓸 만하겠어.’
개발만 해낸다면 아마 지구의 이동 수단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편 광활한 우주일 뿐이던 전경은 슬슬 녹림이 우거진 어느 행성을 앞두고 있었다.
방대한 크기는 0115 채널의 목성과 닮았지만, 그 구조나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도착했습니다.”
반 마코스는 홀로그램에 스캔한 목성을 띄웠다. 한쪽 면에 푸른 표시가 번쩍이고 있었다.
“이곳이 구조 신호가 생성된 장소입니다. 지금은 끊겼지만……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신호는 발신되었습니다.”
리오 리카온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저들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모릅니다. 모종의 일로 기계가 고장이 난 건지…… 정말 오작동이었던 건지.”
그는 잠이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결국 직접 내려가 확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일행은 바로 탐사선을 운용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미적거릴 이유는 없었다. 일단 신호의 발신지부터 확인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나저나 목성에서는 보이는 모든 걸 조심해야 할 겁니다.”
“……네?”
“아까 말했듯, 보면 아실 겁니다. 일개 인간은 생존 자체가 불허한 곳…… 그래서 금지가 된 땅. 우린 그곳에서 가능한 없는 듯이 움직여야 할 겁니다.”
반 마코스의 말마따나 탐사선을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도, 리오 리카온의 안색은 갈수록 굳어 갔다.
군인인 킨 멜리조차 겁을 잔뜩 집어먹은 눈치였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서서히 우주에서 목성의 궤도로. 대기권을 돌파해 땅으로 안착한 강서준은 바로 반 마코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래서.’
탐사선의 문이 열리고 보인 풍경에 일행은 기함을 토해 냈다. 최하나나 김훈도 헛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제아무리 목성의 스케일이 크다 하더라도 이런 느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거인들의 나라에 떨어진 기분이군.’
바로 보이는 건 거대한 나뭇잎이다.
그보다 높이 솟은 나무는 만리장성이 위로 솟은 듯 웅장했고, 잡초 같은 것들이 모두 빌딩만 하단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인간이 살 수는 없는 땅이군요. 우린 이곳에서 마치…….”
“……벌레 같을 겁니다.”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건 강서준과 최하나였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반 마코스는 그런 두 사람의 말을 부정하고 나섰다.
“아뇨. 우린 벌레만도 못할 겁니다.”
“네?”
“그보다 빨리 움직이죠. 벌써 놈들이 몰려옵니다.”
그때 거센 바람이 불면서 뭔가 기이한 소음이 울렸다. 킨 멜리가 총을 뽑아 들며 긴장했고, 강서준도 재앙의 유성검을 꽉 쥐며 다가오는 흐름을 주목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펄럭이는 날개와 거대한 몸통!
그 몸을 장식한 건 붉은색 바탕의 검은 점이었다.
강서준은 바로 알아봤다.
‘……무당벌레?’
문제는 그 크기가 벌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생김새가 곤충만 아니었다면 ‘곰’이라고 착각할 만하지 않을까.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무당벌레를 가만히 응시했다.
느껴지는 힘이 대단했다.
[몬스터 ‘칠성무당벌레(A)’를 마주했습니다.] [몬스터 ‘칠성무당벌레(A)’가 포효합니다.]무려 A급 몬스터.
크오오오옥!
“과연, 이런 놈들이 즐비한 곳이면 확실히 우린 벌레만도 못하겠군요.”
“……옵니다!”
무당벌레는 빠르게 강하하더니 그 육중한 몸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그것만으로도 크레이터가 생성됐고, 날카로운 기세로 놈이 육탄돌진을 감행해 왔다.
물론 최하나는 진즉에 예열시킨 핏빛의 마탄을 무당벌레의 몸통에 꽂아 넣고 있었다.
콰직!
다행히 방어력은 약한 듯했다.
돌진하던 놈은 최하나의 마탄에 몸통이 구멍이 난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고, 돌연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난 건 그때였다.
강서준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독입니다!”
빠르게 산개한 덕에 무당벌레가 쏘아 낸 토사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뭔가 또 옵니다.”
이곳의 소음이나 이변이 목성의 몬스터를 자극한 걸까.
수많은 흐름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강서준은 멀리 거대한 나뭇잎 사이로 날개를 퍼덕이며 무리 지어 비행하는 벌레들을 확인했다.
얼핏 봐도 ‘날파리 떼’였다.
“우선 피해야겠어요. 이대로면 전멸입니다!”
의견을 일치시킨 일행은 빠르게 탐사선을 뒤로하고, 거대 곤충의 습격을 피해 내달렸다.
뒤편에서 날파리의 습격을 받은 탐사선이 폭발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여차하면 목성의 궤도에서 항행 중인 터미널에서 또 다른 탐사선을 호출하면 될 일이니까.
당장 그들이 해야 할 건, 벌레들의 공격을 피해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사, 사마귀입니다!”
정면에서 양쪽 팔을 단두대처럼 칼날처럼 휘두르는 사마귀가 마치 오우거처럼 포효하며 다가왔다.
앞서 달려 나간 킨 멜리가 사마귀의 몸통을 저격했고, 강서준이 재앙의 유성검을 던져 사마귀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뒤이어 김훈이 공간 이동으로 사마귀의 머리맡에 도달하여 검을 찔렀고, 최하나의 사격은 사마귀의 두 개의 눈을 꿰뚫었다.
물론 녀석은 죽지 않았다.
고작 곤충이라 해도 레벨만 300을 넘기는 A급 몬스터였다.
‘여긴 A급 던전이라 봐야겠어.’
빠른 연계 공격으로 사마귀를 무력화시킨 일행은, 목숨까지 빼앗진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일행은 잡초들로 이루어진 ‘풀 빌딩 숲’으로 진입했다.
그나마 우후죽순 솟은 풀들이 수많은 날벌레의 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굴입니다!”
“……날벌레부터 따돌리죠!”
앞서 달려 나가 ‘파이어볼’을 내던진 강서준은 생각보다 동굴이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날벌레 떼는 이 동굴 속까지 따라오진 않는 듯했다.
잠시 호흡을 정돈한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긴장을 놓진 말아요.”
“네?”
“여기도 그냥 동굴은 아닙니다.”
땀에 젖은 얼굴로 숨을 몰아쉬던 리오 리카온은 금세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풀숲 속에 숨겨진 동굴.
강서준은 그 동굴의 주인이 누군지, 그리고 이곳이 사실은 그저 ‘통로’에 불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지렁이.”
크기는 용처럼 거대한 녀석이 서서히 이쪽을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동굴은 놈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도망쳐야 해요!”
반 마코스가 다급하게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고, 킨 멜리도 총을 장전하며 날벌레와 싸울 준비를 했다.
이에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굴 내부에 시선을 던졌다.
“수십 마리의 날벌레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어요.”
고작 날벌레라 해도 레벨은 300을 넘기는 괴물들.
한두 마리면 모를까.
수십 마리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강서준은 서서히 동굴을 꽉 채우며 다가오는 거대한 지렁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설령 이쪽의 몬스터가 조금 더 강하더라도 한 놈을 상대하는 게 낫다는 거죠.”
바닥이 흔들리고…… 눈앞의 지렁이는 덤프트럭처럼 밀려왔다. 그들을 몰살시킬 기세였다.
……덤프트럭은 무슨.
산사태가 의지를 갖고 이쪽으로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잡은 강서준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러니 여기부터 점령합니다.”
“아니, 저런 괴물을 상대로 무슨……!”
당황하는 반 마코스의 말이었지만, 강서준은 차분하게 백귀를 소환할 뿐이었다.
[칭호 스킬, ‘백귀(S)’를 발동합니다.] [백귀, ‘로켓’을 소환합니다.]포효하며 모습을 드러낸 한 마리의 도마뱀은, 눈앞을 가리는 거대한 지렁이만큼이나 그 크기를 부풀렸다.
로켓은 겁도 없이 몸통 박치기를 감행했다.
쿠우우웅!
커다란 떨림이 있었지만 로켓은 기어코 뒤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렁이를 밀어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허억…… 저, 저게 뭐야?”
깜짝 놀란 반 마코스의 반응을 뒤로하고, 강서준은 짓이겨진 지렁이의 머리를 향해 재앙의 유성검을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