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27
◈ 227화
속담엔 이런 말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이라도 함부로 무시하면 가만있지 않는다는 뜻인데…….
강서준은 눈앞의 지렁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이 동네에는 그딴 속담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쿠웅! 쿠우우우우웅!
눈앞에서 살기를 흘려 대는 지렁이는 거진 최종병기나 다름없었으니까.
막말로 로켓의 수준이 조금이라도 떨어졌더라면, 혹은 강서준의 레벨이 부족했더라면…….
밟히는 건 지렁이가 아니라 그들이 될 것이다. 아마 숨도 못 쉬고 땅에 파묻혀 거름이 되고 말았겠지.
크오오오오옥!
난생처음 들어 보는 지렁이의 울음에 강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몬스터 ‘지렁이(A)’가 스킬, ‘포효’를 발동합니다.] [상대의 크기가 작을수록 대미지가 차등 적용됩니다.]고작 울음을 토했을 뿐인데도 귀청이 떨어져 갈 것만 같았다. 동굴 내부라서 그런지 소리가 끊임없이 반사되며 증폭되는 효과도 있었다.
하물며 상대의 크기에 따라 대미지를 차등 적용하는 특징.
지렁이의 몸에 비해 보잘것없는 그들은 더욱 큰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얼른 끝내야겠네.”
강서준은 더욱 마력을 가공하여 검에 담았다. 진동을 일으켜 점차 그 소음은 맹수가 울부짖듯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맹수의 울음.’
강서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킬, ‘파이어볼(B)’을 발동합니다.]허공에 떠오른 B급 수준의 파이어볼. 농염한 불꽃이 고온으로 불타오르자, 동굴 내부는 찜질방이라도 된 듯 금세 기상이 변화했다.
지렁이가 위협을 느낀 듯 재차 포효했다.
크오오옥! 크오옥!
하지만 강서준은 로켓을 뒤로 물리며 진동하는 재앙의 유성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사방이 꽉 막힌 동굴.
그리고 그곳에 안성맞춤으로 기어 다닐 뿐인 지렁이는 이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B)’을 발동합니다.] [!] [스킬, ‘맹수의 울음(S)’의 효과로 ‘파이어 익스플로전(B)’의 효과가 크게 증가합니다.]그저 파이어볼을 움켜쥔 채로 터뜨리는 공격이 아니었다.
진동시킨 마력이 파이어볼을 더욱 강력하게 폭발시켜 적을 유린하는 기술.
예상대로 더욱 강렬하게 퍼져 나가는 불꽃을 보며 강서준은 만족한 듯 웃을 수 있었다.
크오오옥! 크옥! 크오오옥!
결과는 쉽게 드러났다.
강화된 파이어 익스플로전에 적중당한 지렁이는 그저 괴로움에 몸부림을 쳐야 했다.
놈이 꿈틀댈 때마다 동굴은 무너질 듯 흔들렸지만, 그보다 놈의 HP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창졸간에 내던진 재앙의 유성검이 놈의 피를 빨아먹으니, 더더욱 놈의 체력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잠깐 뒤로 물러나 폭발로부터 일행을 보호하던 로켓이 전면으로 다시 나선 건 또 그때였다.
지렁이는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질렀다.
한 마리를 사냥했을 뿐인데 무려 레벨이 3이나 올랐다.
현 레벨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개체를 사냥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 마코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킨 멜리도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허어…… 어찌 저리 쉽게.”
“강하군. 정신이 나갈 정도로 강해.”
특히 킨 멜리는 군인이었기에 더더욱 강함의 척도를 잘 알았다. 그는 리오 리카온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대체 누굴 데려오신 겁니까.”
정작 리오 리카온도 대단히 놀란 눈으로 답을 해 주질 못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젠 완전히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지렁이 사체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반응이 썩 재밌긴 했지만, 그보다 강서준을 흥미롭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이곳에선 사라지지 않는구나.”
눈앞에 일렁이는 건 무려 ‘지렁이의 영혼’이다.
바깥에선 워낙 정신이 없어 몬스터를 사냥해도 확인할 겨를이 전혀 없었는데.
이렇듯 죽어 버린 사체를 눈앞에 두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혼이 보인다면 할 게 있다.
도깨비만이 할 수 있는 일.
강서준은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도깨비 왕의 반지’로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일어나라.”
드드드드…….
죽었던 지렁이의 사체가 꿈틀대며 다시 진동했다. 하지만 그 안엔 모든 살기가 사라지고 오직 왕을 향한 충성심이 가득했다.
한 번에 영혼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시킨 것이다.
강서준은 새로 태어난 지렁이에게 이름을 정해 줬다.
“길을 열어라. 굴삭기야.”
크오오옥…….
지렁이는 낮게 포효하며 강서준의 앞으로 땅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
그 뒤로는 더욱 편한 일정이었다.
땅굴을 열심히 파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영혼 ‘굴삭기’ 덕분에 목적지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반 마코스는 레이더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목적지인 좌표까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곧 신호가 발신된 위치에 도달할 겁니다.”
푸슈우욱!
그 말을 들으며 강서준은 개미의 머리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시 전황을 살펴봤다.
최하나나 김훈도 한 차례 전투를 마친 뒤라, 헐떡이는 숨을 고르게 정돈하고 있었다.
“곧 목적지라니…… 아쉽네요.”
최하나의 말에 혀를 내두르는 리오 리카온 일행. 하지만 김훈이나 강서준은 그녀의 말을 공감했다.
막말로 목적지가 조금이라도 더 멀었다면…… 지금처럼 환상적인 사냥을 더 오래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여기 경험치가 장난이 아니야.’
목성은 A급 던전으로 분류돼도 이상하지 않는 수준이다.
그리고 강서준을 비롯한 일행은 이제 막 A급 던전을 입문해도 될 정도의 플레이어.
‘김훈 씨는 약간 모자라지만…….’
차원 서고를 통해 그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최하나나 강서준에게, A급 던전의 사냥은 효율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지구에도 A급 던전은 몇 없을 거야. 과연 이런 폭업의 기회가 또 올까?’
설령 있다 해도 문제였다.
종종 던전으로 진입한 것만으로 ‘보스’를 처치하기 전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있으니까.
만약 그런 곳에 갇혀 버린다면……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고립형 던전은 또 난이도가 높기 마련이니까.’
해서 쉽게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게 A급 던전이었다.
“일단 생존자 구출을 우선하죠.”
강서준은 아쉬움을 밀어내고 반 마코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레이더를 살피던 그는 곧 머리 위를 가리켰다.
“여기예요. 아마 이곳이 발신지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은 지렁이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땅굴을 뚫기를 명했다.
지렁이는 그 명을 따라 수직상승을 개시하고 있었다.
“저…… 강서준 님?”
반 마코스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그의 앞으로 레이더를 보여 줬다. 좌표로 설정된 위치로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잠시 확인하실 게 있습니다.”
“네?”
“만나질 않길 바랐지만 결국 ‘녀석’이 나타난 것 같아요. 이 레이더는 한 놈에게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거든요.”
잠시 주저하던 반 마코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했다.
“사실 목성이 금지가 된 이유는 이곳의 생태계가 거대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 자체로도 위험하겠지만, 실상 목성을 위협하는 존재는 따로 있거든요.”
한편 지렁이는 수직 통로를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 위쪽에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무언가가 쿵 떨어져 동굴 바닥에 부딪쳤다.
저도 모르게 올려다본 수직 통로 위의 하늘엔 새카맣게 구름이 깔렸고, 그곳에서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크기.
‘뭔 빗방울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빗방울은 한 방울이라 해도 해일에 휩쓸린 듯 크게 고생할 게 빤했다.
당장은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한 시점인지 떨어지는 빗방울은 많지 않았다. 이조차 쏟아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재앙을 마주한 거나 다름없다.
근데 반 마코스는 큼지막한 빗방울을 보고도 당황하질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레이더로 향했다.
“……오고 있어요.”
“네?”
“녀석이 오고 있다고요!”
그의 말마따나 붉은 점은 점차 일행이 선 자리로 다가왔다.
천장에서 큰 소음이 들린 건 그때.
까아아아아아악!
모르긴 몰라도 귀가 찢어질 듯한 통증이 일었다. 지렁이의 울음 따위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또한 그 수준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마, 마수입니다!”
크오오오옥!
강서준은 땅을 뚫고 올라가 저 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지렁이’의 포효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상대에게 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무서워하고 있어.’
지렁이의 영혼이 공포에 덜덜 떨었다. 마치 그 운명을 스스로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까아아아익!
다시 정체 모를 울음이 터지며 순식간에 ‘지렁이의 영혼’이 소멸했다.
단 한순간에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의문을 이을 틈도 없이 강서준은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볼 수 있었다.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외쳤다.
“빠져나가야 해요! 비가 더 쏟아지면 우린 끝입니다!”
바깥에 나간다면 쏟아지는 빗방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겠지만, 이곳에 있어 봤자 기다리는 건 해일처럼 밀려오는 빗방울에 수몰되는 일이다.
반 마코스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위에는 녀석도 있어요.”
“……그 마수란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안 가면 죽을 뿐입니다.”
또한 만약 위쪽에 생존자가 있다면…… 그놈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하질 않은가.
그들은 결국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녀석이 뭐든 직접 보고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나가죠.”
일행은 김훈을 기점으로 모여들어 전부 손을 꽉 잡았다. 숫자가 여섯이라, 김훈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괜찮을 것이다.
그도 레벨 업은 했으니까.
“갑니다!”
서서히 몸이 붕 떠오르고 눈을 깜빡였을 때는 이미 지상에 도달해 있었다.
강서준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녀석은…….”
시야에 걸리는 건 없었고, 그보다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문제였다.
무심하게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마법 같았다.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저쪽 나무에 구멍이 있어요!”
나무 중간에 생긴 옹이구멍.
바람이 불면 빗방울이 들이칠 것 같긴 해도 어지간한 땅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일단 비부터 피하죠!”
하지만 끊임없이 레이더를 내려다보면 반 마코스가 신음을 흘렸다.
“옵니다!”
동시에 강서준도 ‘류안’을 발동시켜 빗방울을 비롯한 주변의 흐름을 모조리 읽어 들였다.
뭔가 커다란 기운이 이쪽으로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까마귀?”
상공에서 거대한 까마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수’라기에 대단한 괴물도 상상했는데…… 약간 김이 빠지는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무시할 건 아니지.’
까마귀는 지렁이보다 수십 배는 컸다. 괜히 굴삭기가 단숨에 소멸한 건 아니었다.
저 부리에 씹히면 숨도 못 쉬고 죽는다. 지렁이보다 작은 강서준은 까마귀만으로도 천적이 될 수 있다.
“……뛰어요!”
어쨌든 할 일은 하나였다.
옹이구멍의 크기라면 빗방울이나 까마귀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까마귀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건데…….
“시간을 벌어 볼게요.”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용아병의 날개’를 가동시켰다.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 그는 ‘류안’과 ‘집중’까지 발동시켜 빗방울을 회피하며 놈에게 다가가는 기예를 선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가 명확하게 대비됐다.
‘더럽게 크네.’
그렇게 어느 정도 까마귀에게 접근했을 시점이었다. 그는 문득 ‘고롱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롱이’가 ‘알 수 없는 끌림’에 고개를 갸웃합니다.]고롱이의 시선은 정확하게 까마귀에게 닿아 있었다. 단순히 먹을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까마귀도 잠시 허공에 멈춰 서며 고롱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깨닫고 말았다.
‘마수라고 했지?’
그리고 고롱이가 알 수 없는 끌림에 고개를 갸웃하는 경우는 아마 단 하나일 것이다.
‘이놈……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