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31
◈ 231화
그로부터 얼마나 공격을 가했을까.
바닥에 널브러진 까마귀가 더는 까악거리질 못하고 물웅덩이에 부리를 처박았을 즈음.
강서준은 겨우 검을 거둘 수 있었다.
[몬스터 ‘마수 그래고리 : 까마귀(A)’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강서준은 간당간당할 정도로 소모된 마력을 확인하며 거친 숨을 뱉어 냈다.
제아무리 커다랄 뿐인 까마귀일지라도 역시 그 속은 레벨 300대의 몬스터인 마수 그래고리였다.
이곳에 와서 적잖이 레벨을 올려 두질 않았다면 이놈을 잡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같은 A급 던전의 몬스터라 해도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니까.
그것도 지렁이나 무당벌레처럼 진짜 커다란 곤충이 아닌, 까마귀를 삼켜 그로 변신한 마수였다.
‘이런 놈들을 거느린 게 마왕이란 거지.’
까마귀를 상대해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직 그는 A급 던전을 공략할 역량은 없다는 것을.
일전에 ‘알페온의 지하수로’를 공략할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은 미천할 뿐이었다.
‘못해도 앞으로 40에서 50레벨은 더 올려야 해. 그래야 A급 보스랑 겨우 맞붙어 볼 만할 거야.’
차원 서고에서 한 달간 고생하며 쌓은 경험치와 악마들을 때려잡아 축적한 경험치.
그리고 목성에서의 레벨 업을 해도 아직 그 수준이 레벨 352 정도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었다.
현 레벨보다 훨씬 수준 높은 던전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젠 무작정 레벨 업을 쉽게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으니까.
본래 RPG 게임이란 후반부로 갈수록 1레벨이 굉장히 올리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뭐…… 됐어.’
그래도 강서준은 빠르게 스며든 경험치에 만족하며 녀석의 사체를 내려다봤다.
그에게 보상이 하나 더 남았다.
“일어나라.”
그의 반지에서 푸른 불꽃이 불타오르며 까마귀의 전신에 닿았다. 그 속에 내장된 영혼은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바짝 들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의 부름’을 발동합니다.l] [불러오려는 영혼의 등급이 플레이어의 수준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몬스터 ‘마수 그래고리 : 까마귀’가 ‘도깨비 왕’의 부름에 응답합니다.]예상대로 그래고리의 영혼도 강서준의 명에 따라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강서준의 현 레벨이 낮다고 해도 그 영혼 등급까지 낮은 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은 이전 세계의 랭킹 1위였던 ‘케이’를 담고 있다.
S등급 던전의 영혼도 그 앞에선 고개를 숙일 것이다.
“서, 성공입니까?”
비질땀을 흘리며 다가온 리오 리카온이 초조한 얼굴을 했다. 강서준은 까마귀의 부리를 내리는 걸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보다시피.”
“그럼…….”
“네. 이제부터 진짜입니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까마귀의 찢어진 날갯죽지를 살폈다. 온몸이 넝마가 된 상태라 영혼 내구도도 상당히 소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서준이 수선 도구로 휘저으니 금세 까마귀의 날개에 새살이 돋아났다.
더욱 온전해진 까마귀가 강서준을 향해 충성의 눈빛을 보내왔다.
녀석은 이제 마왕의 명령은 듣지 않을 것이다.
강서준은 옹이구멍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전부 이쪽으로 불러들여, 까마귀의 위에 탑승시키며 말했다.
“계획대로 가 봅시다.”
***
까마귀는 나무 위를 활공하여 빠르게 이동했다.
하늘에서 보는 목성은 나무로 이루어진 바다라고 할 정도로 광활하게만 느껴졌다.
지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멀리 하늘에 수십 개의 위성들이 이곳이 지구와 다르다는 것만을 보여 줬다.
확실히 외계는 외계였다.
‘정확힌 다른 차원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전혀 다른 풍경은 또 다른 감상을 던져 줬다.
모든 것이 커다랗게 자라난 이곳에서 인간은 고작 개미만도 못한 존재이지 않은가.
그게 참 무력하면서,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런 인간이 이 행성을 제외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을 점령했다는 거잖아. 웃기는 일이야.’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거대한 건지…… 개미처럼 작은 생물에 불과한 건지.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렸다. 불안함에 손톱마저 물어뜯는 리오 리카온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
“위기는 곧 기회라잖아요.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강서준의 말에도 리오 리카온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강서준도 딱히 그에게 더 말을 해 주진 않았다.
솔직히 그도 본인이 한 말이 속 편한 말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싸울 생각은 없다 해도…… 난 지금 적의 본거지로 쳐들어가는 입장이니까.’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어둠이 낮게 깔린 절벽을 발견했다. 그 아래에서 대단한 마력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다.
투박하지만 그 끔찍한 기운에 어깨가 콱 짓눌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무시무시하군. 고작 이게 한 놈이 쏘아 낸 마력이라 이거지?’
가히 마왕이라 불릴 법했다.
하기야 녀석은 레벨만 약 400에 달하는 ‘보스 몬스터’였다. 헤츨링 마그리트와도 동급이다.
까아아악…….
까마귀는 고도를 낮춰 절벽 아래로 향했다. 무저갱처럼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니 머지않아 절벽 아래의 한 동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단박에 알았다.
“저곳이 마왕성이군요.”
크기는 목성의 기준으로 보자면 대단히 큰 동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땐, 수백 층의 타워를 쌓더라도 천장에 닿을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직 생존자가 이 안엔 없어요.”
영안으로 동굴 내부를 들여다본 결과, 이 안엔 생령(生靈)이라 할 건 없었다.
물론 장거리에, 마왕 녀석의 짙은 마력으로 뒤덮인 탓에 정확성이 떨어진 상황이고 이미 잡아먹혔다면 별수 없겠지만.
강서준은 사람들이 아직 이곳에 잡혀 오질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왕은 아직 인간을 찾고 있으니까.’
이 근방에 도달한 시점부터 고롱이나 까마귀에게 자꾸만 마왕의 명이 들려온 게 증거였다.
굳이 해석하자면.
-인간을 데려오라.
이런 간단한 메시지가 계속 쏘아지고 있었다. 아마 강서준에게 귀속된 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그들은 마왕에게 바쳐졌을 것이다.
“물론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먹을 것엔 늘 진심인 종족이니까요.”
확신한다.
분명 인간은 오늘내일 사이에 이곳에 잡혀 오고 말 것이다.
마왕의 인내심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
녀석이 직접 밖으로 나오든, 생존자가 그래고리에게 잡혀 오든…….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난다.
해서 날이 밝자마자 까마귀를 사냥하여 여기까지 왔다.
“어? 저기!”
예상대로 주변의 흐름이 어지러워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행이 적당한 위치에 몸을 숨겼을 때였을까.
동굴이 내려다보이는 돌부리 위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마왕성을 향해 쇄도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왔군요.”
고개를 들어 어둠 너머를 확인하니, 수많은 곤충이나 동물 따위가 동굴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강서준을 비롯한 일행은 침음을 삼키며 수십의 그래고리가 자아내는 풍경을 바라봤다.
“……장관이군.”
“저게 다 마수라고요?”
“허어…….”
킨 멜리나 반 마코스, 다른 생존자들도 모두 비슷한 감정으로 몸을 떨었다.
단 한 마리의 까마귀를 상대하는 데에도 전력을 다해야 했던 그들이었다.
리오 리카온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제 어쩌죠?”
“일단 사태를 지켜보죠. 아직 때가 아니에요.”
여긴 적진의 한복판이다.
마수의 아가리 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를 구하기도 전에 그들이 죽는다.
기회를 잘 봐야 한다.
“저기……!”
마침 최하나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촘촘한 그물망에 사로잡혀 동굴로 인계되는 일련의 사람들을 발견한 것이다.
화성의 생존자들!
리오 리카온도 그물망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정말 송명이에요. 살아 있어요!”
리오 리카온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보니 사람들을 다독이며 비장한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얼굴은 역시 꽤 낯이 익었다.
진 제국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더니만……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꽤 소란스러웠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요! 이건 예상했던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참모…… 적이 너무 많아!”
“걱정 마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워프 게이지’가 회복돼요. 다시 이동할 수 있어요!”
“으으…… 알겠네!”
워프 게이지?
강서준은 미간을 좁혀 송명이 짊어진 가방을 주목했다. 그로부터 꽤 옹골찬 마력이 느껴졌다.
‘저거로군. 천벌을 피한 신형 게이트.’
또한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 보자면 머지않아 워프 게이지란 게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다시 워프를 할 수 있는 거겠지.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아야겠지만.’
끼아아악!
생존자들을 포획한 그물망은 정확하게 동굴의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동굴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폭발하듯 터진 건 그때였다.
‘……오금이 저리는군.’
그 마력의 흐름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의지로 다리를 곧추세우질 않았다면 꺾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까마귀의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생존자들은 픽픽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격이 다른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는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대단한 것이다.
“허억…… 허억.”
겨우 숨을 몰아쉬는 생존자들을 일별한 강서준은 다시 동굴 앞에 도열한 그래고리에게 시선을 던졌다.
녀석들은 왕을 맞이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낮게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몇몇은 인간의 형태를 한 걸 보면 벌써 몇몇의 인간은 먹어 치운 듯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일단 강서준은 동굴 안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마왕의 형태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다.
모름지기 상대를 완전히 파악해 내면 공략 불가능한 상대도 이겨 낼 수 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구오오오……!
낮게 깔린 마수들의 울음이 게임 속 BGM을 대신했고, 절벽 아래의 어두운 분위기와 한기가 무대연출 효과를 보여 주고 있었다.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트윈테일 타이거로군.’
레벨 300대의 몬스터 중 하나.
맹수인 호랑이 계열로 상당히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불타오르는 꼬리와 얼어붙은 꼬리는 두 개의 속성 마법을 다룬다는 ‘트윈테일 타이거’만의 특징.
즉 눈앞의 마왕은 적어도 두 개의 마법을 부린다는 거다.
‘새끼인 것 같지만…… 그래도 크군.’
또한 마왕 쥬비온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녀석의 능력은 아주 다방면으로 다양할 것이다.
일단 왕이니만큼 소화한 대상에 대해서 조건 없는 무한정 변신이 가능했다.
한 번 변신하고 나면 다른 개체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 모습을 유지해야 했던 일반적인 그래고리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그래서 녀석이 어떤 걸 먹어 왔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과연 이놈은…… 또 뭘 먹었으려나.’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녀석의 얼굴을 훔쳐봤다. 물론 들여다본들 녀석의 소화 목록을 파악해 낼 마법은 그에게 없었다.
크릉…….
마왕은 콧김을 낮게 뱉어 내며 그물망 안의 사람을 발톱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새끼 트윈테일 타이거라 해도 목성의 규모로 보자면 대단히 커다란 개체.
놈의 콧김은 개미와도 같은 인간에겐 폭풍 같았다.
그리고 녀석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쥐새끼들이 있군.
그러더니 껑충 뛰어올라 순식간에 강서준이 숨어 있던 돌부리의 앞에 도달했다.
녀석이 코앞에 도달하니 그 큼지막한 얼굴이 더 크게 보였고, 더더욱 가까워진 마력에 의해 온몸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호오…… 이걸 버티어?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추정 레벨 400.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
애초에 이런 놈을 상대로 몸을 숨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숨바꼭질을 할 때 어린아이가 얼굴만 숨긴다고 그 몸이 가려지는 게 아니듯, 강서준을 비롯한 일행은 그보다 레벨이 월등히 높은 마왕의 눈을 속일 수 없으니까.
아마 이놈은 처음부터 강서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즉 이건 예정된 일이고…… 전부 예상한 문제야.’
강서준은 침을 질질 흘리는 호랑이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