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37
◈ 237화
강서준은 전신을 휘감은 전류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안간 눈을 떴을 때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눈을 몇 번 깜빡여 보니 ‘차원 게이트 터미널’의 서버실 풍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송명은 한창 분주하게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고, CCTV의 영상 속에서의 최하나는 김훈과 함께 전투를 잇고 있었다.
강서준은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놈은 뭐였지?’
이루리의 무의식엔 무지막지한 기운을 쏟아 내며 등장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었다.
여기서 확실한 건 그놈은 분명 ‘투명화’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강서준과 이루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무의식에서 드림 키퍼의 권능을 무시한다고?’
이는 단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무의식에 속한 존재가 드림 키퍼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즉 녀석은 이루리의 무의식이 아닌 거야.’
그리고 그녀의 무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지인이 누군지는 빤했다.
‘아마도 시스템.’
이루리의 기억을 봉인하고 있는 시스템은 그녀의 무의식에 개입할 여지가 충분했다.
애초에 그녀가 어쩌다 현재에 이르렀던가.
전부 시스템을 해킹한 대가였다.
‘게다가 마지막 메시지가…….’
솔직히 인정하긴 싫지만 로그 기록에 버젓이 그 증거가 나와 있었다.
[시스템이 당신을 예의주시합니다.]높은 확률로 너저분한 머리 꼴에 안경을 쓴 백의의 남자가 ‘시스템’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설마 시스템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혹은 관리자일지도 몰라.’
두 번째 용의자.
이루리를 아이템으로 만든 관리자는 도깨비의 비사에서 봤듯,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존재였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내 강서준은 생각을 부정했다.
무의식에서 본 백의의 남자와 도깨비의 비사에서 확인한 관리자의 얼굴은 확연히 달랐으니까.
그보다 그에게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여 스킬을 취소시킨 당사자가 ‘시스템’이 아닌, ‘관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살기를 흘리던 놈이 친절하게 꿈에서 튕겨 내는 정도로 끝낼 리가 없어.’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당시를 회상했다. 적어도 이루리의 무의식엔 둘 이상의 존재가 개입한 정황이었다.
‘백의의 남자가 시스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날 튕겨 낸 존재가 관리자.’
상황은 명확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관리자가 날 구한 건가?’
자고로 시스템은 버그로 분류되는 존재를 서슴지 않고 지울 수 있다. 그리고 게임에서 치트를 쓰는 존재는 누구보다 버그라 불리기 쉬운 법.
‘플레이어가 해킹 공식을 알아내려는 것부터 문제 될 소지는 많았어.’
아마 강서준이 그 이상으로 무의식에 남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거기서 그를 튕겨 낸 건 그를 공격한 게 아니라, 되레 그를 구해 낸 것이다.
강서준은 이루리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왜 날 구했을까.’
시스템이 지우려던 이루리를 아이템으로 만든 저의도, 또한 강서준을 시스템으로부터 구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대체 이름 모를 그 관리자는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거지?
‘……도깨비 장비를 더 모으면 진실에 닿을 수 있으려나.’
모르긴 몰라도 관리자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메시지인,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질 않았다’는 말은 반대로 ‘감당할 준비만 된다면 그녀의 기억을 열람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도깨비 장비를 모은 과정으로 보아, 그 자격은 각인한 도깨비 장비가 관련되어 있다.
‘도깨비 장비를 모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한편 이루리는 그 난리가 벌어진 뒤에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표정이었다.
과연 이 작은 아이 안엔 얼마나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그렇게 강서준과 시선을 마주친 이루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근데 적합자. 대체 무슨 계획이야?
‘뭘?’
-적합자의 목적은 ‘해킹’으로 게이트의 동력을 빼돌리는 게 아니잖아.
강서준은 말없이 이루리와 송명을 돌아봤다. 그리고 CCTV 영상마저 살펴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강서준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기왕 저지를 거라면 화끈하게 해야지.’
로그 기록에 걸린 시스템이 예의주시한다는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렸지만 강서준은 애써 밀어내기로 했다.
***
최하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복도 너머를 응시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군인들이 곳곳에 은폐하고 있었다.
[장비 ‘마탄의 라이플’의 전용 스킬, ‘공간 이동탄’을 발동합니다.]하지만 고작 벽이나 엄폐물 따위로 최하나의 저격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그녀의 저격은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적중하니까.
“저격수부터 처리해야 해!”
“젠장…… 도대체 어떻게 맞추는 거야?”
이어서 송명의 콘솔 조작은 적들을 혼란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다.
갑자기 방화벽이 내려와 부대가 둘로 나뉘곤 했으니까.
김훈이 적들의 허공에 나타난 건 그때였다.
“뭐, 뭐야?”
당황하면서도 김훈의 공격을 막는 군인이었지만 부지불식간에 발사된 최하나의 저격까지 막아 내긴 무리였다.
또한 김훈은 휘두르던 단검을 상대편의 심장으로 공간 이동시키는 기예까지 펼쳐보였다.
“커헉……!”
그리 넓지 않은 복도에서 공간 이동을 철저하게 활용하는 두 사람은 가히 무적이었다.
처음엔 숫자만 믿고 기세등등하게 밀고 들어오던 군인들도 이젠 섣불리 얼굴을 내밀 수조차 없었다.
‘좋아. 이대로만 버티자.’
최하나는 마탄을 예열시키며 복도를 겨냥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개미 한 마리조차 감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벌써 10분은 이어진 대치 상태!
이대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몰라도 강서준이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버텨야만 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때 적진에서 막대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최하나 씨……!”
김훈이 공간 이동으로 최하나에게 날아왔고, 두 사람은 빛처럼 빠르게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곧 다시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눈앞에 훤히 만들어진 거대한 공터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뭔…….”
“지구인이로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최하나는 총구를 앞으로 겨눴다. 복도의 벽을 모조리 부수고 근방을 넓은 공터로 만들어 버린 주범이 유유자적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하나는 미간을 좁혀 상대를 확인했다.
“……데칼.”
“호오. 넌 천외천 클라크로구나.”
리카온 제국의 최강이라 일컫는 존재. 또한 잠시지만 지구에서도 랭킹 1위를 차지했던 남자.
최하나는 저도 모르게 총구가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석도 데칼을 이기지 못했다.’
헬 난이도 튜토리얼을 돌파하여 누구보다 규격 외의 강함을 지닌 걸로 판명된 존재가 바로 나도석이다.
아마 리트리하를 제외하고 강서준과 합을 겨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플레이어.
그런 존재를 이겼다는 것만으로도 데칼의 강함은 충분히 증명됐다.
‘실제로 보니 더하네.’
최하나는 번 블러드를 극성으로 발동시키며 떨리는 몸을 억지로 제어했다. 그 행동에 데칼이 휘파람을 불었다.
“꽤 강하네?”
동시에 눈앞으로 거대한 압력이 밀려왔다. 최하나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이었다.
“근데 기대보다는 못해.”
쿠우우우우우우웅!
마탄의 라이플을 방패 삼아 데칼의 주먹을 막았지만, 그녀는 멀리 뒤로 튕겨 나가야만 했다.
젠장…… 미사일에 부딪친 것만 같다.
최하나는 겨우 몸을 겨누고 정면을 바라봤다. 김훈이 겁도 없이 데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잔챙이는 볼일 없다.”
공간 이동으로 순식간에 배후를 잡았지만 데칼은 파리 잡듯 대충 손을 휘둘러 김훈을 패대기쳐 버렸다.
규격을 압도적으로 넘어선 강함!
소싯적의 케이를 보는 듯한 날 선 느낌에 최하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라는 위기 감각이 그녀의 전신을 짓눌렀다.
자칫 잘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
최하나는 이를 악물고 마탄의 라이플을 조작했다. 데칼 같은 강자에겐 공간 이동탄은 대미지만 뒤떨어지는 잔기술에 불과했다.
한 방을 맞히더라도 최대한의 일격을 담아야 한다.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군.”
최하나는 목전에서 들리는 소리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순식간에 접근한 데칼은 바로 쏘아진 총알의 반경에 있었지만 터무니없게도 맨손으로 마탄을 잡아 냈다.
“근데 시시하군.”
“……과연 그럴까?”
콰아아아아앙!
데칼의 면전에서 폭발한 마탄은 뒤이어 주변으로 수많은 연기를 흩뿌려 댔다.
녀석의 공격으로 훤히 넓어졌던 공터가 연기로 가득 차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물론 최하나에겐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
‘거리를 벌려야 해.’
최하나는 어디까지나 저격수 포지션에 있는 플레이어였다.
근접전의 대가인 ‘데칼’ 같은 강자를 상대로 정면으로 싸우는 것 자체가 불리했다.
좁았던 복도가 훤히 드러나 은폐엄폐조차 어려워졌다면…… 전장을 새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데칼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버티면 돼. 어떻게든…….’
강서준의 계획이 성공하면 모두 끝날 싸움이다. 구태여 그를 상대로 여기서 힘을 뺄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데칼의 상대는 그녀가 아니잖은가.
“또 잔재주를…….”
연기에 휩싸였던 데칼은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더니 짧은 탄성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그와 동반한 거대한 풍압!
연기가 일시에 날아가고 그 충격에 멀리 벽마저 부서졌다. 최하나는 단번에 그녀의 묘수를 날려 버린 데칼을 보며 중얼거렸다.
“……터미널이 무너져도 상관없어?”
데칼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돼.”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그야 약자들의 사정이지.”
어떻게든 말을 길게 끌고 갈 목적이었지만, 데칼은 그 의도조차 파악해 낸 모양이었다.
놈이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우리 스승은 어디 있지?”
“……스승?”
“케이 말이야. 너 혼자 오진 않았을 텐데?”
데칼의 시선은 그의 공격도 멀쩡하게 버틴 서버실로 향했다. 내벽을 튼튼하게 지었다더니만 실제로 전혀 손상조차 없었다.
하기야 관리자가 개입한 공간이다. 쉽게 망가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데칼은 눈에 광기를 담으며 말했다.
“벌써 한 달이나 기다렸어. 더는 못 참는다고.”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막대한 마력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최하나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걸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안일했군.’
강자의 앞에서 여유는 사치다.
겨우 시간을 벌면 될 거라고?
그조차 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 새삼스럽지만 데칼이 여태껏 그녀를 봐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그가 진심이었다면 최하나는 죽었어도 진즉에 죽었다.
“이렇게 빨리 약속을 깨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응?”
“아무래도 무리해야겠네.”
최하나의 전신으로 붉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온몸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직 적을 꿰뚫기 위해서 스스로를 파괴할지언정 극한의 공격력을 쥐어짜 내는 기술.
[장비 ‘마탄의 리볼버’의 전용 스킬, ‘영역 선포’를 발동합니다.] [칭호, ‘마탄의 사수’를 확인했습니다.] [‘무한의 사격장’이 선언됩니다.]차원 서고에서 레벨을 300을 넘기면서 기어코 완성해 낸 ‘마탄의 리볼버’가 가진 진정한 힘이다.
모든 봉인이 해제된 마탄의 리볼버가 서서히 푸른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게 내 전력…….’
최하나의 시선이 오롯이 데칼에게 향했다. 마탄의 리볼버에서 타오른 불꽃은 최하나의 전신으로 옮겨붙어 그녀의 시야도 푸르게 물들었다.
“호오…… 꽤!”
이는 ‘피’를 불태워 힘을 강화하는 그 이상의 능력.
영혼 그 자체를 불태우는 스킬.
[장비 ‘마탄의 리볼버’의 전용 스킬, ‘번 소울(Burn soul)’을 발동합니다.]최하나가 전심전력으로 뽑아낸 정수였다. 데칼은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꽤 따듯하군.”
타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