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38
◈ 238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김훈은 깨질 것만 같은 아찔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머리를 만진 손을 보니 끈적하게 피가 묻어 있었다.
‘……뭐야. 난 분명?’
정신이 드니 그는 ‘포션 치료’를 감행할 수도 있었다. 빠르게 전신으로 퍼진 포션은 깨질 것만 같던 통증도 조금씩 지워 냈다.
“여긴…… 어디지?”
김훈은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올려다봤다. 광활한 우주. 그 아래에서 여러 비행체들이 서로 포격을 해 대며 전투를 잇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쏘아진 광선이 우주선 하나를 타격했다. 배리어로 이를 막아 낸 함선은 웅장한 엔진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김훈은 저게 무언지 알고 있었다.
“화성 게이트 터미널?”
그들은 수많은 우주선에게 쫓기고 있었다.
송명이 말하길, 오래 버티진 못한다고 했지만…… 저 정도면 1분을 버틴다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다.
“……흐음.”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정신이 또렷하게 드니, 그는 본인이 선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있었다.
터무니없지만 그는 관제 타워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돌산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는 게 이리됐나…….’
공간 이동 술사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면 본능적으로 안전한 위치로 공간 이동을 하곤 한다.
버릇과도 같은 건데, 그만큼 이번에 김훈이 당한 일격이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는 방증이었다.
‘……데칼.’
김훈의 시선이 엄청난 폭음을 일으키는 관제 타워로 향했다.
대관절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기에.
꽤 떨어진 위치에서도 마력이 폭발하는 게 두 눈에 보일 정도였다. 김훈은 저도 모르게 등줄기를 적신 식은땀을 깨달았다.
‘저곳에 최하나 씨가 있어.’
“도와야…….”
바로 공간 이동으로 관제 타워로 돌아가려던 김훈은 본능적으로 스킬 발동을 머뭇거렸다.
머릿속에서 한 가지 장면이 재생됐기 때문이다.
‘내가 간들 도움이 될까?’
단 일격에 쓰러진 그였다.
데칼은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강했고, 그를 상대로 전투를 펼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날 지키려다 최하나 씨가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
하지만 꽉 깨문 입술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 줬다.
안다.
모든 건 변명이다.
‘난 그냥 겁먹은 거야.’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막연한 공포!
두려움이 그의 목을 숨이 막히도록 조르고 있었다.
“……시발. 머저리 같은 새끼.”
애써 욕을 내뱉으며 스스로를 다그쳐 봤지만 이미 턱 끝까지 밀려온 공포는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그때 멀리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가까운 건물의 일부가 옆으로 기울었다. 온갖 구조물이 지상으로 낙하하는 게 훤히 보였다.
그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도망치며 붕괴되는 건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망연자실한 눈으로 붕괴현장을 바라보던 김훈의 시야엔, 과거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1년 전…… 그날.
드림 사이드 1이 오픈했고, 엄마가 입원했던 병원이 무너지던 그 순간이.
그의 뇌리에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난…….’
그가 어쩌다 공간 이동을 갖게 됐을까. 단순히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이런 희귀한 스킬을 얻게 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김훈이 튜토리얼에서 가장 원하는 능력을 꼽으라면…… 그는 단언컨대 ‘공간 이동’을 말할 수 있었으니까.
무너지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차마 구할 수 없었던 ‘엄마’를.
그는 너무나도 구하고 싶었으니까.
“움직여, 움직여, 움직이라고……!”
김훈은 본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콱콱 두드려 팼다. 허벅지도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리다 못해 단검으로 찌르기까지 했다.
상처가 누적되고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오니, 공포로 잠식되던 정신이 그나마 돌아오고 있었다.
“죽더라도 가야 해.”
이건 약속이었다.
차마 구하지 못했던 과거를 딛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자신과의 약속.
김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공간 이동.”
호흡을 정돈하며 나지막이 입을 열자, 그의 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지로 공포를 이겨 내고 기어코 스킬을 발동해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 [당신은 강력한 의지로 인하여 ‘절대자의 살기’를 이겨 냈습니다.] [놀라운 업적입니다!] [칭호,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 약자’를 습득했습니다.]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킬, ‘공간 이동(A)’의 등급이 ‘공간 이동(S)’가 되었습니다.]부지불식간에 발생한 공간 이동의 등급 상승!
김훈은 비약적으로 성장한 능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반쯤은 붕괴된 관제 타워 내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최하나 씨!”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강서준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루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송명도 조마조마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쉽게도 종전에 밖에서 터진 큰 폭발로 인하여, 관제 타워의 콘솔은 완전히 먹통이 된 상태.
바깥의 영상도 더는 볼 수 없었고 조작하는 것조차 이젠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가능한 건 오직 ‘차원 게이트’에 개입하는 것 정도였다.
“시간이 없어요……!”
다행히 무의식에서 해당 해킹 공식을 완전히 숙지한 이루리는 차원 게이트의 제어권을 모두 차지한 상태였다.
원한다면 잠시라도 차원 게이트의 문을 닫아 둘 수도 있었다.
그게 송명이나 리오 리카온이 가장 원했덜 결말.
타닥, 타다다닥!
하지만 이루리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키보드를 두드렸다. 강서준은 옆에서 두 손을 맞잡고 거의 기도하듯 빌고 있는 송명을 살핀 뒤 이루리에게 말을 건넸다.
대화는 속으로 이어졌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가 돌아간 이후에 발동해야 해. 그때까지 관리자한테 들켜서도 안 되고.’
-걱정 마. 나 이루리야!
자신만만한 이루리의 대답을 들으며 강서준은 일단 송명에게 전염됐던 조바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녀가 어련히 잘 해낼까.
‘게다가 이건 아이크가 개입한 물건이야. 제아무리 시스템이 주시하고 있다 해도 괜찮을 거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루리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안 해?’
-아니. 그냥…… 새삼스럽지만 우리 적합자는 미친놈이다 싶어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루리는 당이 떨어졌다면서 아까 받아 갔던 초코바를 입에 한 움큼 씹어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킬 스위치를 활용한다는 계획 말이야. 설마 그걸 여기서 쓸 줄이야…….
강서준은 송명 몰래 컴퓨터의 한쪽에 꽂힌 USB를 확인했다.
드림 사이드 1을 떠날 적에 아이크에게 받아 뒀던 ‘일회성 킬 스위치’가 저장된 물건이었다.
‘쓰라고 준 건데. 알차게 써야지?’
아주 간단한 계획이었다.
차원 게이트를 잠시 멈추는 걸로 끝내지 않고, 아예 그 자체를 지우는 방법.
시스템에 의해 무엇이든 지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이것이라면, 분명 0115 채널로 넘어가는 길목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강서준은 리카온 제국으로 넘어올 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잠깐 막아 봤자 의미는 없으니까.’
‘채널의 주도권’이란 생각보다 중요하다.
드림 사이드 1에서 멜빈 황제가 강서준을 죽이려 했던 것도 사실 채널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켈이 호크 알론에게 독을 심었던 것도 다가오는 미래에 채널의 주도권을 강서준이 가져갈 게 뻔해서 그랬다.
또한 리카온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놈들도 그저 0115 채널의 주도권을 뺏어 오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참에 아예 싹을 잘라야지.’
강서준은 멜빈 황제와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드림 사이드는 0115 채널. 그러니까 지구에서 공략될 것이다.
문득 이루리가 물었다.
-데칼은 어쩔 거야?
강서준은 포탈 던전에서 그를 상대로 싸웠던 데칼의 얼굴을 나지막이 떠올렸다.
외팔이 됐다고 해도 그 강함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있어? 우린 이곳만 빠져나가면 돼.’
0115 채널로 돌아간 뒤, 킬 스위치만 제대로 작동하면…… 적들은 닭 쫓던 개가 될 수밖에 없다.
강서준이 노리는 건 그것이다.
-조금 싱겁네. 난 또 재대결이라도 벌이는 줄?
‘내가 나도석처럼 싸움에 미친 건 아니잖아.’
-거짓말. 사실을 싸워 보고 싶으면서.
‘호승심이야 뭐…….’
진실의 성물인 이루리에게 그의 솔직한 감정까지 속일 순 없다. 강서준은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한 강자는 보기 드무니까. 싸워서 얻는 게 꽤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데칼은 이 세계의 최강자!
만약 지구에서 맞붙었던 것들이 녀석의 일부에 한한다면, 어쩌면 강서준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이득보다 실이 더 크다.
‘우리 목표는 0115 채널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우는 거야. 그리고 안전하게 지구로 돌아가는 거지.’
한편 강서준은 이루리의 손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뭐야. 더 안 해?’
-다 했어.
이루리는 씨익 웃으면서 손을 털고 일어났다. 드디어 작전대로 해킹이 끝나고 폭탄의 설치마저 완료된 것이다.
-타임오버는 30분. 그 전에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면 우린 영원히 이 세계에 남아야 할 거야.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풀었다. 적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빠르게 내빼기만 하면 될 일이라면…… 30분은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3번 게이트를 활성화했어. 그곳으로 가야 해.
‘오케이. 그럼 나가 볼까.’
강서준은 지친 듯 기지개를 켜는 이루리를 일별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게이트를 관리하는 시스템에 여러 방화벽도 만들었다고 하니, 설령 관리자가 개입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루리가 한 일이다.
‘어련히 잘했겠지.’
곧 메인 서버실을 나서는 문이 바라봤다. 아쉽게도 벽이 너무 두꺼웠는지 이 너머로 마력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그 폭발은 뭐였지?’
콘솔을 망가트리고 CCTV조차 볼 수 없도록 이 근방을 무너뜨린 폭발의 정체는 아직 알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허공의 CCTV가 보이질 않는 데엔 그만한 마력이 근방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즉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일단 두 사람과 합류하자.’
밖에 뭐가 있든 그가 할 일은 간단했다.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을 꽉 쥐고 패널을 조작하는 이루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가자.”
푸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갈라진 문.
그의 얼굴을 향해 농밀한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친 건 그때였다.
[스킬, ‘절대자의 살기’를 마주했습니다.]하지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어 얼굴을 때려 대던 마력을 강제로 흐트러뜨렸다.
[스킬, ‘절대자의 살기’를 파훼했습니다.]이어서 코끝에 저미는 건 지독한 피 냄새였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풍겨 나는 혈향에 미간이 구겨졌다.
“정신 차려요…… 최하나 씨!”
완전히 바깥으로 나온 강서준은 바닥에 빨갛게 물든 무언가를 붙들고 간절히 외치는 김훈을 발견했다.
대관절 그 옆에서 누군가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오오…… 드디어 납셨군.”
“…….”
“너무 늦었잖아. 조금만 더 빨리 나오지!”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은 김훈의 품에 안긴 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피칠갑을 한 채로 얼굴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모습.
분명 ‘최하나’였다.
“…….”
강서준은 말없이 누워 있는 최하나를 바라봤다. 세상이 멈춰 버린 것처럼 소음이 멀어지고 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데칼이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자, 자! 이제 놀이는 그만하고!”
그로부터 막대한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어마어마한 마력은 마치 태산을 보는 듯하여 막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옆에서 송명이 꺽꺽대며 괴로워했다.
그때에도 강서준의 시선은 오직 최하나에게 닿아 있었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그의 내면 상태를 알려 주듯 로그 기록이 빠르게 갱신됐다. 수차례 스킬이 발동하고 나서야 강서준의 시선이 데칼에게 닿았다.
감히.
녀석이 입을 열고 있었다.
“본 게임을 시작해 볼.”
“닥쳐.”
“……!”
부지불식간에 데칼의 얼굴에 주먹이 꽂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