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39
◈ 239화
휘두른 주먹에 공기가 터지고, 데칼의 면상에 꽂히는 감각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되는 대로 힘껏 들어간 일격.
약간 짓이겨진 데칼의 면상을 노려보며 분통이 풀리기는커녕 되레 치솟는 건 어째서일까.
과연…… 최하나는 그 상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격을 당해야 했을까.
-적합자……!
아득하게 들려오는 음성에 강서준은 일단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까부터 이루리가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진정해! 싸울 필요는 없다며?
‘계획은 늘 바뀌기 마련이야.’
-일단 침착하자. 응? 적합자아!
‘난 아주 침착해.’
강서준은 바로 다리의 근육을 당기며 데칼의 전면에 접근했다. 종전의 일격이 얕았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번엔 더더욱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도깨비 갑주가 온몸을 뒤덮었고 그의 손엔 핏빛으로 일렁이는 재앙의 유성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래! 이래야 케이지!”
얻어맞고도 좋아서 연호하는 데칼을 향해 강서준의 검은 여지없이 휘둘러졌다.
이번엔 데칼도 맞고만 있진 않았다. 일시에 부딪친 검격이 거대한 충격을 일으켰다.
폼으로 랭킹 1위를 달았던 건 아니란 거겠지.
매서운 도깨비 검무를 모조리 받아치는 데칼을 향해 강서준은 더더욱 속력을 높이기로 했다.
콰아아앙!
주변으로 충격파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누군가가 그 충격파에 짓이겨지고, 그나마 버티어 섰던 관제 타워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각 세계관 최강자의 전투는 그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그리고 강서준은 속으로 자꾸만 말을 거는 이루리를 향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난 진짜 침착해.’
진심이었다.
비록 최하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었지만, 이성을 잃은 건 단언컨대 아니었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이렇게 스킬이 친히 나서 그의 뜨거운 분노를 식혀 주질 않은가. 이러고도 이성을 잃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차갑게.’
천무지체는 전투에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차가운 분노는 전투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준다.
-적합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진실의 성물인 이루리도 강서준의 생각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데칼의 검격을 강하게 맞부딪치며 이루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태는 어때?’
현재 이루리는 최하나의 곁에 붙어서 김훈의 치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답은 금방 돌아왔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듯해.
그럴 것이다. 트롤의 심장을 가졌으며 최근엔 ‘초재생’ 등급을 S급까지 상승시킨 그녀였다.
설령 몸이 반 토막이 난다 해도 그녀는 죽지 않는다.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더는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반드시 그녀를 회복시키라고 전해 줘. 포션이 부족하면 뭐든 줄 테니까.’
-알았어. 근데 적합자.
이루리는 걱정스러운 낌새로 말을 전달해 왔다.
-우리한테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잊지 마. 30분…… 아니 이제 28분 정도야.
데칼이 높이 뛰어오르며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찍은 건 그때였다. 검에 담겨진 묵직한 마력이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이를 맞부딪치며 답했다.
‘충분해.’
[스킬, ‘태산 가르기(S)’를 발동합니다.]떨어지는 검격에 태산을 가를 가공할 일격이 다가섰다. 하지만 녀석도 ‘태산 가르기’를 발동시켜 강서준의 공격을 상쇄했다.
녀석이 이죽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실망인데…….”
녀석은 재차 공격을 이어 나갔다.
“한 달 전과 달라진 게 없잖아?”
콰아아아앙!
강서준은 놈의 공격을 맞받아치거나 피하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공세에 접어든 데칼의 위력은 솔직히 대단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당한다.’
매서운 검격에 도깨비 갑주가 수시로 터져 나갔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외팔이라 왼손으로 검을 쥐었기에 당연히 우측이 곧 그의 허점이 되었다.
강서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야말로 별 볼 일 없는데.”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 [가르고 싶은 대상에 대한 집념이 강합니다. 집중의 영향으로 ‘필사의 참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빠르게 휘두른 ‘필사의 참격’이 데칼의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데칼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돌연 강서준의 뒤에 나타났다.
공간 이동이었다.
‘김훈의 스킬을 복사한 건가?’
데칼은 미간을 구기며 영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내 오른팔을 자른 기술인가?”
“왜…… 반가워?”
데칼의 두 눈엔 분노가 담겼고, 입가엔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몹시!”
쿠우우우웅!
강서준은 순식간에 짓쳐 든 참격을 피해 몸을 던졌다. 터무니없지만 녀석은 종전에 강서준이 사용했던 ‘필사의 참격’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역시 스킬을 복사하고 있어. 그것도 S급 스킬조차 아주 간단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PVP에서 중요한 건 상대에 대한 정보.
하지만 이처럼 복사를 통해 그 능력을 늘려 가는 자라면 필요한 정보의 양이 상당할 것이다.
하물며 그는 이미 한 세계를 정복한 ‘전신’이라 불리는 존재.
‘행성 전쟁이 있었다고 했지.’
이곳에서 숱한 전투를 치르며, 그는 이미 수많은 스킬을 손에 얻은 뒤일 것이다.
어쩌면 강서준은 한 세계의 수많은 강자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말 괴물이군.’
쓰게 웃으며 데칼에 대한 일화를 떠올렸다. 리오 리카온은 데칼을 두고 ‘스승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청출어람이고, 스승을 벨 때 쾌락을 느낀다지?’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데칼은 이미 강서준을 향해 ‘스승’이란 단어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땐 그게 뭔 개소리인지 황당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야말로 선전포고였다.
‘복사 능력이라…….’
강서준은 류안을 번뜩이며 데칼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 와중에도 강서준의 머리는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과연 그 능력에 한계가 없을까?’
거두절미하고 양옆으로 소환한 백귀가 아성을 내지르며 데칼에게 달려들었다.
라이칸은 히드라의 마검을 쥐었고 오가닉도 로켓의 등에 올라탄 채로 창을 꽉 쥐어 데칼에게 다다랐다.
“호오?”
데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입꼬리를 올려 대며 백귀의 공격을 차례로 받아치기 시작했다.
우선 라이칸이 휘두른 히드라의 마검이 각종 마법을 발현하고 시야를 가렸다.
스아아앗!
뒤이어 오가닉이 창을 찔러 데칼의 목을 노렸고, 아래쪽으로 로켓이 파고들어 날카로운 송곳니를 놈의 허리에 박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투콰아아앙!
데칼은 용케 왼팔 하나로 세 백귀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 냈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혔다.
‘분명 제약이 있을 거야.’
리오 리카온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데칼은 규격을 벗어난 존재였다.
여태 싸워 온 모든 사람들의 스킬을 복사해서 사용할 수 있다니!
그 말도 안 되는 전투 방식은 드림 사이드 1의 케이조차 할 수 없는 기예였다.
해서 더욱 확신한다.
‘그건 밸런스 붕괴잖아.’
아무리 정규 채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곳엔 시스템의 힘이 닿기 마련이다.
0116 채널의 관리자가 그 증거였다.
또한 0115 채널의 공략이 실패한다면, 결국 이곳은 정규 채널로 편성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데칼은 존재 자체가 치트였다.
‘데칼이 아무리 강해도 저 정도나 되는 사기적인 스킬을 보유할 만한 레벨이 아니야. 수준에 비해 시기가 너무 빨라.’
즉 스킬의 등급이 낮을 거란 뜻이다.
‘개수에 제한이 있을까?’
한 달 전에 사용했던 ‘태산 가르기’를 아직 쓸 수 있는 걸 보면 복사한 뒤의 시간제한이 따라붙는 건 아니었다.
‘아마 복사할 수 있는 스킬의 개수에 제한이 있을 거야.’
해서 강서준은 백귀를 활용하여 녀석을 극한으로 밀어 넣었고, 일부러 다양한 스킬을 놈에게 사용해봤다.
하지만 곧이어 데칼이 사용하는 여러 스킬들을 보면서 강서준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개수에 제약이랄 건 없겠어.’
설령 제약이 있다 해도 당장 녀석이 오가닉의 스킬이나 로켓의 스킬을 따라 한 것만 나열해도 벌써 10개를 넘어섰다.
그 정도 양이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분명 조건이 있을 텐데…….’
강서준은 두 눈을 금빛으로 빛내며 창졸간에 녀석의 뒤로 접근했다.
아쉽게도 기습은 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얕은수를 쓰는군.”
채애애앵!
녀석이 백귀의 공격을 무시하며 아예 강서준만을 향해 크게 도약했다.
여태까지의 모든 공격이 장난이었던 것처럼 놈의 검엔 어마어마한 마력이 휘감겨 있었다.
아마 부딪치면 제아무리 도깨비 갑주를 걸친 그라고 해도 전부 막아 낼 수 없을 위력이었다.
‘잠깐…….’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데칼의 전신을 살펴봤다.
‘왜 도깨비 갑주는 따라 하질 않지?’
데칼은 청출어람이랍시고 상대의 스킬을 빼앗아 사용하는 변태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
태산 가르기부터 필사의 참격은 빼앗았으면서…… 어째서 ‘도깨비 갑주’를 뺏진 않는 걸까.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집중해서 상황을 분석해 보니, 생각이 가속하는 느낌이 들었다. 데칼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만약…… 빼앗지 못한 거라면?’
도깨비 갑주는 강서준이 체득한 스킬이 아니다. 그저 ‘도깨비 왕의 감투’에 내장된 스킬 ‘이매망량’에서 발현된 힘.
그러고 보면 종전에 백귀들과 싸울 때도 오가닉의 창술은 따라 하면서, 라이칸의 마법은 따라 하질 않았다.
단순히 효율을 따져서 복사하질 않는 줄만 알았는데.
‘라이칸의 마법도 히드라의 마검에서 비롯됐지.’
데칼의 검이 강서준의 목전에 이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강서준도 본능적으로 재앙의 유성검을 그쪽에 대면서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때에도 그의 가속된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집중의 여파로 한순간을 여러 개로 쪼개서 사용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녀석의 복사는 한정적이었어.’
언뜻 보기엔 만능의 능력으로 보일 정도로 S급 스킬마저 복사하는 데칼의 능력.
한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녀석이 모든 스킬을 복사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초상비나 초재생, 류안…… 이런 건 따라 하지 못해.’
만약 ‘필사의 참격’도 ‘집중’을 응용해서 쓴 기술이 아니라 그저 형태만을 따라서 휘둘렀다면?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놈을 노려봤다.
‘액티브 스킬이 한계일지도.’
복사의 개수엔 제한은 없지만 그 종류엔 제한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킬은 대개 눈에 보이는 액티브 스킬이나 아이템이 아닌 스킬에 한정되었겠지.
‘그것만으로도 사기적인 스킬이겠지만…….’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집중’을 끊었다. 동시에 세상이 빨라지면서 데칼의 검과 맞부딪쳐 커다란 충격이 터졌다.
이를 악물고 이를 튕겨 낸 강서준은 데칼에게 접근하려던 백귀들을 알아서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데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속셈이지?”
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백귀들은 빠르게 최하나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로켓의 위로 조금은 회복된 최하나가 탑승했고, 그 뒤로 김훈이 앉도록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루리를 살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조심해’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그녀를 일별하고 다시 데칼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널 공략하는 방법을 알겠거든.”
“뭐?”
“청출어람이라며? 네가 여태 해 온 만행이.”
“만행이라니!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신성한 의식이거늘.”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그간 네가 진짜 스승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해?”
“뭐?”
“아니야. 넌 여태 단 한 명의 스승도 뛰어넘지 못했을 거야.”
이에 데칼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웃기는군. 스승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기술을 빼앗겨 목숨을 구걸하다 죽어 갔어. 청출어람! 말 그대로 스승을 이겼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청출어람’이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때 쓰는 말이니까.
하지만 녀석의 논리엔 맹점이 있다.
“어떻게 그게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거냐?”
“……무얼 말하고 싶은 거지?”
“고작 이겼기 때문에? 아니야. 진정한 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의 기술을 더 나은 기술로 발전시켰을 때야 쓸 말이야.”
단순히 스킬을 복사해서 따라 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건 스승을 뛰어넘은 게 아니다.
그저 단순한 현상 유지.
해서 녀석은 그 편리한 스킬 때문에 영원히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는 저주에 걸려 있다.
“넌 깊이가 없어.”
강서준의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서서히 전신으로 퍼졌다. 곧 검에도 마력이 진동하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니 넌 날 이길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