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4
◈ 24화
직각으로 된 기다란 기체는 차가운 기계음을 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는 쾌적한 실내도 보였다.
폐역이나 다름없는 유령역 플랫폼으로 들어선 네모난 기체는 차갑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푸쉬이이익.
푸른 시트.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들.
[D급 던전 ‘달리는 유령열차’를 마주했습니다.]따뜻한 히터가 켜진 듯 후끈한 바람이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강서준은 그게 너무 터무니없어서 두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전철이 아직도…….”
서울이 이 꼴이 된 이후로는 전철의 운행은 당연히 끊겼다. 해서 반주역의 사람들도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피난 계획을 짠 게 아니었던가.
‘그전에 여긴 10호선이잖아.’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전철의 외관을 더욱 철저하게 들여다봤다.
멸망 이후 세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전철이 운행하고 있을 리 없는 걸 둘째로 치더라도, 짓다 만 10호선으로 전철이 다닐 이유는 없었다.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 보자.
강서준은 지그시 바라보다 문득 고롱이가 주머니에서 미친 듯이 떨어 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롱이가 이만한 반응을 보이는 데엔 한결같은 이유가 있었다.
[‘고롱이’가 눈앞의 ‘진수성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고롱이’에게 영양을 주길 아끼지 마십시오.]……그랬군.
강서준은 익숙한 외관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던전이야.’
전철을 무대로 한 던전인 것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없었던 걸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동 던전이겠지.’
던전이 주 콘텐츠인 드림 사이드는 정말로 각양각색의 던전이 곳곳에 도사리는 세계였다.
그중에 이동 던전.
드림 사이드에서 이동 던전은 대개 마차나 배의 형태를 가졌다. 종종 비행선 모양도 있었는데 그건 판타지 세계관이어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현대 세계관인 이곳은 전철을 무대로 ‘이동 던전’이 발생한 것이다. 어쩌면 ‘비행기’나 ‘버스’ 등에서도 던전화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의 이동 던전은 여러모로 까다로울 것만 같았다.
“강서준 씨.”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유령역으로 내려갔던 하얀 연기의 행적을 놓칠 뻔했다. 청소기에 빨려가듯 영혼들은 전철로 쏘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눈앞의 전철이 던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오대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떡하죠?”
가만히 전철을 바라보던 강서준은 오대수를 돌아보며 도리어 물었다.
“형사님은 어떻게 하실 거죠?”
“네?”
“보다시피 이곳은 던전입니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반주역의 생존자를 찾을 기회를 날려 버릴 수도 있어요.”
강서준은 이미 일수꾼에게 영혼을 빼앗긴 아이들을 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주역의 리더였던 오대수에게 그것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반주역 사람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여기서 갈 길이 틀어져도 강서준이 그를 잡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오대수가 답했다.
“코볼트…… 아니, 신우현은 이곳에 다른 사람은 온 적이 없다고 했었죠.”
“…….”
“생존자들이 살아 있다면 영등포역을 무시하고 다음 역으로 도망갔을 리는 없어요. 이 근방엔 전투 흔적도 없으니 아직 그리드도 도착하지 않았고요.”
그게 현실이었다.
오대수는 계속해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냉정한 얘기 같지만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쫓는 것보다는 당장 눈앞의 아이들을 구하는 게 더 실리적입니다.”
강서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그의 생각을 동조해 줬다. 혹시나 반대쪽 터널로 생존자들이 도망갔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는 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없는 문제는 위로라도 하지 않는 게 좋으니까.
지금 강서준이 할 말은 하나였다.
“그럼 갑시다.”
무거운 침묵을 어깨에 걸고, 그들은 전철로 들어갔다.
***
[승차권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무임승차가 확인되었습니다.] [플레이어 ‘공지원’은 ‘역무원’의 표적이 되었습니다.]D급 던전 ‘달리는 유령열차’는 고작 레벨 52의 공지원이 버틸 만한 수준의 던전이 아니었다.
설령 던전 브레이크로 빠져나온 스켈레톤을 혼자서 모조리 소탕한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던전의 초입.
꼬리칸부터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난 죽을 거야.’
후우우웅!
다소 터무니없지만 빗나간 공격마저 HP를 떨어트렸다. 축구공만 한 ‘새끼 도깨비’는 몸통박치기밖에 할 줄 모르는 아주 단순한 몬스터였지만.
그는 그조차 상대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준 차이가 느껴졌다.
하물며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활성화된 퀘스트는 시간제한까지 걸려 있는 것이다.
그건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10분 안에 어떻게 잡으라고!’
어쩌면 새끼 도깨비를 잡는 일.
그리고 ‘승차권’을 구하는 ‘10분 제한의 퀘스트’는 이곳의 입문 퀘스트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난이도는 대폭 낮은 수준일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고작 입구니까. 초장부터 클리어가 난해한 난이도일 리가 없었다.
‘으아아! 진짜 미치겠네!’
하지만 공지원은 새끼 도깨비를 마주한 이 순간은 마치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둔 것과 같았다.
수십 마리의 저승사자에게 둘러싸인 기분이다.
그 추측은 정확할 것이다.
D급의 일반 몬스터 중 아무리 약한 개체라고 해도 E급 던전의 중간 보스급은 될 테니까.
중간 보스는커녕 E급의 일반 몬스터조차 쉽게 잡기 힘든 공지원에게 이곳은 사지나 다름없었다.
그가 너무 약했다.
콰아아앙!
빠르게 접근한 새끼 도깨비를 피해서 공지원은 몸을 날렸다. 뒤편으로 벽을 박은 새끼 도깨비가 이쪽을 보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새끼 도깨비는 또 달려들었다.
왼쪽으로 뛰고, 위로 뛰고, 구르고…… 갖은 수를 쓰면서 여태 버텼지만 점차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무려 10분 동안 이어지는 연속적인 새끼 도깨비의 저돌적인 몸통박치기.
공지원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완전히 갖고 놀고 있어…….’
새끼 도깨비들이 일시에 공격하는 경우는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부러 돌아가면서 한 명씩 때리는 것이다.
철저한 장난감 취급.
공지원은 본인의 처치가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끼 도깨비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면 진즉에 죽었겠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건 그들의 방심 덕이었다.
“커허억……!”
하지만 그조차 이젠 끝이었다.
우연히 스친 새끼 도깨비의 일격에 공지원은 빈사 상태로 누워야 했다. 새끼 도깨비의 앙증맞은 손이 사신의 낫처럼 보였다.
더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때였다.
공지원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마저 사망 선고를 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새끼 도깨비는 아쉽다는 듯 손을 털고 자리를 떠났다. 이미 빈사 상태로 쓰러진 공지원은 도망칠 기회가 왔음에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곧, 새끼 도깨비는 비교조차 안 될 거구의 도깨비가 나타났다. 근육으로 만든 패딩을 입은 것 같았다.
공지원은 흐릿한 시야로 놈을 올려다봤다.
“……뿔?”
머리에 달린 한 개의 뿔.
놈은 공지원의 발목을 잡더니 질질 끌어 다음 칸으로 끌고 갔다.
내내 통증이 일어서 고통스러웠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몇 번 의식이 점멸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통증이 끊어지고 모든 게 멈춰 섰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요란스러운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운 시점이었다.
철그럭…… 철그럭!
쇳소리와 함께 흐릿한 시야로 살풍경한 것들이 보였다.
키이이이잇!!
수십…… 혹은 수백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침을 흘리며 묶여 있는 공간.
공지원은 그 한복판에 있었다.
알 수 없는 울음을 내는 누군가가 좀비처럼 비틀거리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를 마주한 공지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키이잇…….
초점이 없는 눈.
키는 초등학생 정도 될 법한 녀석의 입가에 핏물이 섞인 침이 가득했다. 울음소리는 괴물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반주역의 생존자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대체 여긴 뭐야?”
***
유령열차의 꼬리 칸.
창고와 같은 공간에서 새끼 도깨비들은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잔뜩 뛰어다닌 새끼 도깨비는 다음 칸으로 향하는 문을 보면서 짜증 섞인 울음을 토했다.
몸통박치기로 괜히 창고에 쌓인 쓰레기를 들이박았다. 쓰레기가 사방으로 흩날려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우우우……!”
새끼 도깨비들이 화난 이유는 간단했다. 눈앞에서 겨우 잡은 먹잇감을 일깨비에게 뺏긴 게 화근이었다.
머리에 뿔이 있으면 다일까?
일깨비는 역무원이랍시고 겨우 양념해 둔 인간을 잡아갔다. 그건 너무 부당한 처사였다.
그런 식으로 사냥감을 다 빼앗아 가면 새끼 도깨비는 언제 크고, 또 언제 일깨비가 되겠어.
“우우우우우!!”
하지만 새끼 도깨비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일깨비는 새끼 도깨비를 포함한 영깨비 중에서도 엘리트에 해당하는 개체만이 간택받아 성장할 수 있는 개체.
감히 새끼 도깨비가 반기를 들 수 없는 상대였다.
“우우! 우우우!!”
다만 분을 삭일 수 없는 건 별개의 문제.
새끼 도깨비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다음번엔 가지고 놀지 않으리라.
승차권이고 뭐고…….
바로 사냥해서 경험치로 만들자.
그래.
간만에 들어온 인간한테 흥분해서 잔뜩 갖고 논 그들의 잘못이었다.
일깨비를 욕할 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진정한 도깨비의 귀감이 아닌가.
“우우! 우우우!!”
그리고 기회는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새끼 도깨비들은 또 한 번 열린 던전의 문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인간을 갖고 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종전의 각오가 사라지고 있었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인간!
야들야들한 피부를 벗기면 드러나는 새빨간 혈관은 별미였다.
폭죽처럼 터지는 핏방울이 얼굴을 적시는 순간은 누구도 참을 수 없는 대단한 쾌락을 선사했다.
벌써부터 눈에 선한 상황에 입에 침까지 고였다.
하지만 새끼 도깨비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엔 빼앗기지 않으리라.
갖고 놀더라도 긴 시간은 갖고 놀지 않을 것이다. 일깨비에게 뺏긴 건 하나로 족하니까.
그리고 외부에서 난입한 인간들이 금세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새끼 도깨비는 동시에 함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무려 네 명.
재밌는 놀잇감이 네 개나 왔다.
새끼 도깨비는 인간에게 적응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먼저 때린 사람이 임자. 그들은 동시에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우우……?”
그런데 정면에서 뭔가가 터졌다.
달려들던 새끼 도깨비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관성에 의해서 달리는 속도를 멈출 수 없었다.
그전에 새끼 도깨비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여태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우우!!”
이윽고 도달한 곳에서 주먹 하나가 날아왔다. 달려들던 새끼 도깨비는 있는 힘껏 몸통박치기를 날렸지만 튕겨 나가는 건 그의 몸이었다.
튕겨 나간 새끼 도깨비는 벽에 박혔다 바닥으로 떨어진 뒤 부르르 몸을 떨다 축 늘어졌다.
“우우!!”
새끼 도깨비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성난 새끼 도깨비들의 노도와 같은 돌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파상적인 몸통박치기 뒤로는 커다란 충격이 그들을 감쌌다.
타앙!
굉음과 함께 새끼 도깨비 한 마리가 고꾸라졌다. 비슷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우우…… 우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새끼 도깨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