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41
◈ 241화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고리의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은 아무도 못 말리니까.’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목성을 뛰쳐나와 우주까지 건너올 줄이야.
강서준은 허공을 찢고 나타난 쥬톤을 가만히 응시했다. 사실 그가 ‘킬 스위치’를 사용하고자 확신한 이유 중 하나가 이놈이다.
‘만에 하나라도 쥬톤이 내 뒤를 쫓아 지구까지 넘어오면 정말 큰일이니까.’
그래고리는 먹을 것에 한하여 그 집착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이렇듯 우주를 건너뛸 정도로 집요하기 그지없다.
계약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영혼이 묶인 상태라면…… 녀석이 어떻게든 쫓아올 빌미가 있었다.
해서 녀석의 접근을 완전히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통로가 사라지면 제아무리 마왕이라 해도 쫓을 수 없을 테니까.’
즉 마왕의 등장은 불가피한 필연이고,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난 우연이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종잡을 수 없다니까.”
정말 쥬톤의 등장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혔다.
‘이건 기회야.’
쥬톤과의 계약은 ‘감정을 취할 수 있는 인물’을 공급해 주는 것.
아무래도 녀석이 여기까지 쫓아온 이유는 대체제로 마련해 준 인스턴트식이 성에 차질 않기 때문이다.
불량품을 환불하거나 교환을 요청하는 건 소비자의 권리니까.
‘근데 마침 여기에 좋은 게 있지.’
강서준은 바로 입을 열었다.
“물론 계약을 이행해야지.”
-그냥 도망간 줄 알고 조금 서운할 뻔했어.
“우리 사이에 설마.”
-그래서 내 먹이는 어디에 있지?
강서준은 한쪽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쪽을 바라보는 카피캣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쪽을 바라본 쥬톤은 미간을 구겼다.
-저건 먹이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저건 형태를 갖춘 스킬에 불과하다. 강서준이 가리키는 건 그보다 뒤에 있다.
쥬톤도 금세 알아차렸다.
-흐음…….
쥬톤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데칼의 카피 공간 너머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인간이 가득하군.
금세 눈동자가 탐욕으로 물들었다. 입가로 벌써 침이 줄줄 흐르고, 광기에 젖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그래고리, 그것도 ‘폭식의 마왕’의 입장에서 이곳은 말 그대로 뷔페나 다름없다.
‘리카온 제국의 강자가 가득하니까.’
허공에서 데칼이 당황한 듯 중얼거린 건 그때였다.
-대체 내 공간에 뭘 들인 거지?
마왕을 못 알아보는 건가?
데칼은 다행스럽게도 쥬톤을 향해 결코 기죽지 않는 패기를 보여 줬다.
-네놈이 뭘 꾸민들…… 다 소용 없는 짓이다! 순순히 내 양분이 되어라!
쥬톤은 허공에서 앵앵대는 데칼의 목소리에 신기해하는 한편,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에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었다.
그가 강서준에게 시선을 맞추더니 말했다.
-확실히 계약대로군.
“내가 뭐랬어. 나 거짓말하는 사람 아니라니까?”
쥬톤은 바로 달려드는 카피캣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공격의 의사 따위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릿한 움직임.
하지만 결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파리라도 잡는 듯한 가벼운 움직임에 카피캣들이 속수무책으로 소멸당하고 있었다.
문득 기묘한 기분이 든다.
‘저게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잖아.’
복사본이라 해도 외관은 강서준과 같다. 또한 마왕은 영원히 강서준의 편일 수 없다.
카피캣의 몰골이, 괜히 그의 미래처럼 안쓰럽게 느껴졌다.
절로 경각심이 들었다.
‘맛을 보고 난 뒤에 녀석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아.’
당장 강서준의 영혼까지 삼킬 수 없다는 점과, 그와의 계약이 유효하기 때문에 쥬톤은 호의를 품고 있다.
그러나 계약 뒤엔 어떨까.
뭐든 볼일을 보기 전과 후는 다른 법. 강서준의 머리는 냉각수로 적신 듯 빠르게 식었다.
‘……남은 시간이.’
이루리에게 의사를 건네자, 바로 돌아온 건 약 13분가량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준비해. 바로 갈 테니까.’
-응. 근데 꽤 불안한 감정이 느껴지는데. 무슨 일 있어?
‘별일 아냐.’
쥬톤은 이어서 손을 몇 번 더 휘저어 데칼의 카피 공간 자체를 찢어 버렸다.
역시 레벨이 깡패긴 깡패다.
강서준을 위기로 몰았고, 이쪽 세계를 제패하는 데에 가장 유효한 역할을 한 능력도.
수백 명의 마력이 뭉친 힘조차…….
결국 고렙의 몬스터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게 RPG 게임의 현실이겠지.
“크윽…… 이게 대체 무슨?”
스킬이 강제로 해제됨에 따라 피를 토하는 데칼이 정면에 나타났다.
동시에 강서준은 초상비를 극성으로 발동시켰다.
[스킬, ‘광속(S)’을 발동합니다.] [신체의 속도가 빛을 따라잡습니다. ‘광속’의 영향으로 ‘이형환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마치 분신을 남기듯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난 강서준은, 약속했던 3번 게이트로 내달렸다.
뒤쪽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쥬톤의 기운이 더욱 커져 감에 따라, 강서준은 더욱 힘껏 다리 근육을 당겼다.
머지않아 3번 게이트 근처에서 서성이던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서준 님!”
김훈이 먼저 반겼고, 꽤 상처가 호전된 최하나도 이쪽을 보며 힘없이 웃었다.
꽤 조마조마한 얼굴을 하던 이루리가 그를 향해 물었다.
“데칼은?”
“그딴 놈은 이제 문제가 아니야.”
“응?”
“그보다 빨리 돌아가자.”
한편 옆에서 서성이던 송명이 강서준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들었어요. 아예 통로를 지워 버린다고 하셨죠?”
“네.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뇨.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그 말은 의외였다. 제아무리 전쟁을 싫어하는 그들이라 해도, 세계가 단절되는 꼴은 원치 않을 줄 알았는데.
“우리도 리카온 제국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아아…….”
“게다가 진짜 끝은 아니잖아요.”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송명의 말을 긍정했다. 그의 말마따나 통로가 지워진다고 0116 채널과 영원히 단절되는 건 아니다.
‘게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관리자가 있는 한.’
언젠가 다시 0115 채널과 통로는 개설된다. 관리자라면 지워진 통로를 다시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부디 몸조심하세요.”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
이번 0116 채널의 개입이 플레이어에게 곤란했던 이유는, 아직 그들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근데 다음은 어떨까.
‘플레이어는 성장한다.’
정식으로 운영되는 채널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만큼, 그만한 성장의 기회가 부여된다.
B급 다음엔 A급 던전이 있다.
플레이어는 던전을 공략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며 가파르게 레벨을 올릴 것이다.
‘다시 통로가 개설될 때는 0116 채널을 뛰어넘었을 거야.’
그때는 마왕이고 뭐고 두려울 것도 없다. 강서준은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 리오 리카온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네, 그럼…….”
강서준의 일행과 함께 3번 게이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송명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아, 잊을 뻔했는데요.”
“네?”
“아마 데칼에게 있어 리오 리카온은 아킬레스건이 될 겁니다.”
데칼이 가장 무서운 건 ‘상대의 스킬’을 복사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카피 공간’도 상대의 스킬을 복사한다는 점에서 공포였다.
카피 공간은 관리자가 개입해서 그런지, 패시브 스킬마저 복사했었으니까.
‘누구든 카피 공간에 빠진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할 거야.’
하지만 그 무적의 카피 공간에서도 결코 복사할 수 없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아이템’에 내장된 스킬이다.
“데칼은 리오 리카온을 절대 따라 할 수 없어요.”
0115 채널에서 아이템이 되어 버린 ‘리오 리카온’은 데칼이 복사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쿠우우웅!
강서준은 한쪽에서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생성된 엄청난 마력 파동을 확인했다.
그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조차 놈이 살아야 가능한 얘기겠지만요.”
***
카피 공간을 깨부순 쥬톤은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가히 그를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할 법한 게 아니었다.
쥬톤은 씨익 웃으며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계약대로의 물건이군.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쥬톤이 고개를 갸웃하며 강서준을 찾아봤지만, 이미 그의 인기척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뭐, 상관없나.
중요한 건 이쪽이다.
이곳엔 계약자가 약속했던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의 품질은 막 확인한 찰나였다.
이제 남은 건 미식을 즐길 뿐.
-어디 그럼…….
그때 눈앞으로 새로운 인간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떨면서도 용케 무기를 꼬나쥐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데, 데칼 님을 지켜라!”
“무, 무, 물러서지…… 마!”
두려움을 견디고, 공포를 이겨 내며 덜덜 떠는 손으로 이쪽을 무기로 겨눈 인간들.
다른 날이었으면 이조차 반가운 일이다. 박수갈채라도 보내며 즐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거슬린다.
그보다 맛있는 먹이가 눈앞에 있는데, 자꾸만 벌레가 꼬이고 있었다.
쥬톤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그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인간들은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내 식사를 방해하지 마라.
그때 하늘을 뒤덮듯 수많은 함선이 쥬톤에게 다가왔다. 어마어마한 에너지 광선이 그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슬슬 짜증 나려 하는군.
쥬톤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형체가 커지더니 그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되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터무니없지만 그 크기는 관제 타워보다 높았고, 하늘을 날던 함선을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였다.
“괴, 괴물……!”
누군가 그렇게 외쳤고 쥬톤은 신경질적으로 포효했다. 그 포효에 휘말린 함선들이 일시에 폭발을 일으킨 건 덤이다.
-날 귀찮게 하지 마라.
단 일격에 하늘을 말끔하게 비운 쥬톤은 다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곧 데칼의 앞에 선 그는 여전히 흥미롭다는 듯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
데칼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네놈…… 케이랑 무슨 사이지?”
-케이? 계약자를 말하는 건가?
“계약…… 그래. 역시 계약이었단 말이지.”
데칼은 호흡을 가다듬더니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강렬한 눈으로 쥬톤을 향해 말했다.
“나도 계약을 하겠다.”
-흐음?
“내 이름은 데칼 리카온. 리카온 제국의 총사령관이자, 미래의 황제가 될 자! 원하는 게 무엇이든 케이가 줬던 것의 두 배로.”
한껏 패기롭게 중얼거리던 데칼이었지만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순간에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오오오!
쥬톤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맛에 입꼬리를 올려 대며 탄식을 이어 나갔다.
-정말 진미로군!
계약자가 마련해 줬던 것들도 충분히 맛있었지만, 역시 날것 그대로의 음식을 따라갈 순 없다.
그중 데칼이 마지막으로 가졌던 가장 강렬한 감정을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었다.
케이에 대한 적대감.
터무니없지만 데칼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케이를 이기기 위한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계약을 시도한 행위 또한 케이가 했으니, 본인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쥬톤은 짧게 혀를 찼다.
-어리석은 인간이군. 본인의 수준을 몰라도 너무 몰라.
데칼의 생을 모조리 탐식한 쥬톤은 입안을 감도는 잔향을 느끼며 숨을 느리게 뱉었다.
-하지만 그토록 어리석기에 공포를 잊을 수 있었던 건가.
한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까?
더욱 풍부한 표정을 짓게 된 쥬톤은 슬슬 희미해지는 계약자의 흔적을 바라봤다.
새삼스럽지만 데칼의 기억엔 계약자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다.
-역시 겉모습은 가짜였군.
계약자는 겉보기엔 너무나도 여리고 연약한 미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영혼을 마주해 봤기에 더더욱 확신했다.
-한 세계를 찬탈한 괴물. 마왕과 용조차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절대자라…….
케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런 괴물에게 감히 덤볐던 데칼이 진심으로 안타까웠고, 또한 계약자에게 함부로 했던 과거가 불현듯 떠올랐다.
-혹시 말실수라도 하진 않았…….
하지만 그때 계약자와의 연결은 덜컥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