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47
◈ 247화
정체를 알 수 없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집.
오래된 목제 구조물을 바라보며 켈은 낮게 기침을 뱉어 냈다.
기침이 통증을 동반했기 때문일까.
정신이 바짝 들고 머리 회전이 빠르게 이어졌다.
일단 상황에 대한 이해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기억나는 건, 차원 서고에서 ‘케이’로부터 도망치다 에베레스트 어딘가에 추락했단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진백호의 몸에 심어 뒀던 꼼수가 들켜, 켈은 죽기 직전까지 넘어갔었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여긴 0116 채널?’
거기서 죽어 전생했다면, 어딘가 썩은 내가 나는 이 목제 건물은 아마 다음 세계의 모습이라 봐야 한다.
결국 0115 채널은 공략 실패했다는 거겠지.
‘……그럴 리가 없나.’
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저 통증을 밀어냈다.
드림 사이드 1의 기억이 똑똑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아직 전생하지 않은 것이다.
전생의 제1 조건은, 딱 이전 세계의 기억만을 가진다는 거니까.
‘드림 사이드 1이었던 판타지 아일랜드…… 호크 알론, 멜빈 황제, 그리고 케이. 지구…… 드림 사이드 2.’
각종 정보가 머릿속에서 우후죽순 나열됐다. 이 정도나 되는 기억은 컴퍼니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한다 하더라도 복구할 수 없다.
즉 이 모든 건 그가 직접 경험했고 기억하는 일들.
‘결론은, 여긴 0115 채널이란 거야.’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켈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뒤이어 몸 상태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심각한 외상은 찾을 수 없었다.
근데 몸이 묘하게 나른한 게 이상했다.
‘……마력이 거의 없군.’
그의 몸엔 실낱같은 마력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이는 그에게 귀속된 ‘바람의 정령왕’의 기운이었다. 실질적으로 몸엔 단 1할의 마력만이 남은 것이다.
켈은 미간을 구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이곳이 어딘지는 얼추 알아낼 수 있었다.
“어느 곳에도 마력이 느껴지질 않아. 그렇다면 여긴…… 흐음.”
주변의 목제 건물이 이토록 낡고 스러져 가는 이유는, 아마 자연에 담긴 ‘마력’이 모조리 소모됐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켈이 한쪽에 놓인 그릇을 손으로 만져 보자, 마치 모래처럼 폭삭 주저앉았다.
어쩌면 이 건물 자체가 소멸 직전에 이른 걸지도 모르겠다.
창문 너머를 둘러본 켈은 더욱 확실하게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해낼 수 있었다.
‘바람 속에…… 마력을 빼앗는 성질이 섞여 있어.’
그나마 켈이 살아 있는 건 이 건물 내부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 정도나 되는 독성 바람 속이라면 그의 신체는 머지않아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말 테니까.
켈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 설마 공허의 던전인가?”
공허(空虛).
말하자면 아무것도 존재하질 않는 던전. 마력을 갉아먹는 거친 바람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허의 던전이 발생한 곳이라면 아마도 B급 던전이던 프랑스의 ‘마력의 무덤’이 가장 유력했다.
‘마력 제한 구역’을 가진 던전은 으레 ‘공허의 던전’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켈은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공허의 던전은 비약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S급 던전이 벌써 나올 리가…….”
그가 내리 1년에서 2년은 잠들어 있었다면 모를까. 정규 업데이트도 시작되기 전에 쓰러졌던 그가, 다시 눈을 뜬 곳이 S급 던전인 ‘공허의 던전’일 수는 없는 법이다.
즉 여긴 ‘공허의 던전’이 아니다.
그에 준하는, 혹은 그 이전의 던전.
“A급 던전.”
그렇다면 현시점은 아마 정규 업데이트가 진행된 이후라고 볼 수 있었다.
그쯤이면 기존의 B급 던전 중 몇 개는 A급으로 성장해도 될 법하니까.
“그렇다면 여긴 역시 프랑스의 그 마력의 무덤에서 파생된 던전인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에베레스트에서 기억을 잃은 그가 어떻게 ‘프랑스’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어쩌다 던전……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런 집에 숨어 있게 된 걸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미간을 찌푸린 켈은 일단 로그 기록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사실 눈을 떴을 때 이것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흐으으음……?”
근데 이상하게 로그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누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듯 깔끔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잠깐…… 일부러 지웠다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던 나무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앳된 얼굴의 소년, 소녀들이다.
“어? 형이다!”
“오빠가 일어났어요!”
“괜찮아? 응? 어디 아픈 데는?”
빠르게 그를 중심으로 달려든 소년, 소녀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평소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던 켈은, 그에게 들러붙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굉장히 황당한 감상을 깨닫고 말았다.
“클로에, 엘리제, 할리, 롤…… 뭐야. 내가 얘네들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뿐만이 아니다.
켈은 아이들의 뒤편으로 따라 걸어 들어온 한 수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경건한 분위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수녀는 켈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에밀리.”
“어디 다친 곳은 괜찮으세요?”
대관절 난생처음 보는 수녀의 이름마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종전부터 느껴지는 이 간질거리고 따스한 감각은 뭐란 말인가.
머리가 대번에 복잡해지고 상황에 대한 이해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문제는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거’ 같다.
‘역시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군.’
소문으로만 들어 본 얘기가 있다.
숱한 전생을 겪는 ‘전생인’들은 종종 그 영혼에 타격을 입을 경우, 데이터가 손상될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손상을 메우기 위해 종종 봉인됐던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말이다.
컴퍼니에선 이를 두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다중 인격.’
그러니까 그는 큰 충격으로 인해 손상된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 이전엔 있었지만 결국 없어진 ‘과거의 인격’이 부활했다는 것이다.
‘내 전생의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어쩌면 한동안 켈은 그 인격에 의해 움직인 건 아닐까.
난생처음 보는 아이들이 그를 향해 알은척을 하는 것도 그렇고, 이 낯선 장면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골치 아파졌군.’
그리고 실로 난감했다.
왜냐면 이는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생인은 이전 세계의 기억만을 가진다. 이게 룰이야.’
이 룰은 절대적이다.
시스템에 의해 규정됐고, 기억은 봉인됐으며, 컴퍼니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하더라도 과거 기억을 되찾을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어렴풋이 그 행적만을 알아낼 뿐.
근데 손상으로 인해 이렇듯 ‘다중 인격’이 되어 버린다면……?
이 상황을 시스템은 무어라 판단할까.
‘……버그.’
즉 켈의 인격이 두 개 이상이란 게 시스템에게 발각당한다면, 그는 여지없이 소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인간의 기억처럼 세밀하고 은밀한 공간까지 시스템이 일일이 알아볼 수는 없다.
기억의 봉인 또한 그가 죽으면서 시스템과 맞닿는 순간에야 일어나는 일.
컴퍼니의 누군가가 직접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시스템에 신고를 하질 않고서야 발각당할 수 없다.
“하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완료되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그 한숨의 의미를 수녀 에밀리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이리 다치시고…….”
“아, 아닙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정말 면목이 없어요.”
한편 아이들은 새카만 먼지들이 가득한 외투를 벗고 한쪽에서 그 먼지들을 털어 내고 있었다.
외투에서 후두두 떨어지는 알갱이들이 있었는데, 이건 적당히 쓸어서 바깥으로 던져 버리는 걸로 처리했다.
그 익숙한 과정을 보며 켈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다른 인격의 켈’은 꽤 멍청한 모양이다.
‘마력이 어쩐지 하나도 안 느껴지더라니…… 쓸데없는 데에 마력을 전부 낭비한 거였군.’
켈의 시선은 아이들이 한쪽에 걸어 둔 외투로 향했다.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어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반(反)마력 폭풍’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모두 켈의 바람 마법이 은은하게 둘러져 있어,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것들을 차단해 주었다.
아마 이 집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호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멍청한 녀석.’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A급 던전에서, 고작 이런 꼬맹이들을 구하려고 본인의 마력을 다 써?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켈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 있었다.
“옷은 잘 털어서 놔야지. 망가지면 고치기 힘들어.”
“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이놈의 다중 인격이란 놈은, 본 인격인 그가 있을 때에도 이렇듯 불쑥불쑥 튀어나온단 말인가?
‘아니…… 방금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야. 인격이 튀어나왔다기보다는 거의 습관이지.’
그렇게 미간을 찌푸린 켈을 향해 에밀리가 다가와 말했다.
“배고프죠?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클로에가 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식탁엔 밀빵, 소시지, 캔…… 각종 음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켈이 만들어 주신 보호 장구 덕분에 구할 수 있었어요. 늘 고마워요. 자, 너희들도.”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괜히 멋쩍게 웃은 켈은 가까이에 있는 밀빵을 내려다봤다. 바깥의 마력 폭풍의 잔해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걸 먹는 건 ‘독’을 삼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슴지 않고 입에 넣었다.
그 모든 과정은 익숙했다.
‘……젠장. 최악이야.’
켈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여전히 휘몰아치는 폭풍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그는 던전의 어디쯤에서 잔류하고 있는 걸까.
‘가진 마력은 0에 가까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희생적인 인격도 있어…… 으으으.’
최악에, 최악이 겹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여긴 마력을 다시 회복할 수도 없는 ‘마력 제한 구역’이 아닌가?
살면서 몇 번 느껴 본 적이 없는 위기 감각이란 게 그를 날카롭게 찔러 왔다.
“켈?”
“아, 아닙니다. 별일 아닙니다.”
에밀리의 물음에 켈은 대충 무마하며 텁텁한 밀빵을 한입 크게 삼켰다. 씹을 때마다 까끌까끌해 느낌이 영 별로인 맛이었다.
아무렴 그럴 것이다.
[‘반마력’ 알갱이를 삼켰습니다. 마력을 강탈당합니다.] [‘반마력’ 알갱이를 삼켰습니다. 마력을 강탈당합니다.] [‘반마력’ 알갱이를 삼켰습니다. 마력을 강탈당합니다.].
.
.
말했듯 이건 독이니까.
켈은 빵을 먹을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HP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반마력 알갱이’는 인체에 상당히 유해한 물질이었다.
이걸 먹는다는 건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라 할 수 있었다.
“맛있니?”
“네!”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끝까지 웃으면서 독을 입에 넣었다.
켈도, 에밀리도,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식사를 끝까지 할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고파 굶주려 죽는 것보다는 이게 더 오래 살 방법이었으니까.
그는 밀빵을 씹으며 생각했다.
‘조만간 난 죽겠군.’
버그로 판명당해 시스템이 그를 삭제하거나, 반마력을 너무 많이 집어삼켜 내부에서부터 망가지거나.
그도 아니면 이 건물 자체를 유지하는 마법이 소멸하여, 그대로 반마력 폭풍에 휩쓸리거나.
어떻게든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얼마나 더 늦게 죽느냐다.
“잘 먹었습니다.”
옆에서 들려온 아이들의 말과 함께 켈은 독과 같은 밀빵을 완전히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