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50
◈ 250화
여기서 컴퍼니의 등장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켈은 컴퍼니의 간부였으니까.’
오히려 켈이 관련된 일에 컴퍼니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강서준은 불꽃을 이리저리 흔들며 몬스터의 시선을 잡아 끄는 가면인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사실 문제는 여기부터다.
‘과연 컴퍼니를 아군으로 봐야 할까?’
관리자 샛별의 퀘스트는 켈을 처단하는 것도, 사로잡으라는 것도, 그의 음모를 막으라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켈을 ‘구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녀석이 소속된 컴퍼니는 적보다는 아군으로 보고, 놈들을 돕는 게 맞다.
영 내키질 않는 일이었지만 관리자가 그리 말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골치 아프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녀석들을 아군이라고 치자.
궁금한 건 당장 놈들이 A급 던전에서 지금 뭘 하고 있냐는 것이다.
‘몰이사냥을 하려고 몬스터들을 현혹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미간을 좁혀 놈들의 동태를 살피던 링링이 작게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움직인다.”
어두운 밤의 던전.
나지막이 피리 소리가 울리더니 대략 100마리에 달하는 몬스터가 일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간간이 흘려 대는 사나운 울음이 없었더라면, 순한 양 떼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요한 걸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만한 규모의 몬스터를 쉽게 다루는 컴퍼니의 저력이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아마 아이템의 성능이겠지만…….’
몬스터들의 혼을 싹 빼앗아 멍하게 만드는 게 ‘현혹의 목걸이’의 성능이고, 몬스터를 이끄는 건 ‘매혹의 피리’의 효능이다.
‘현혹의 불꽃’과 ‘매혹의 음파’.
본래 몬스터를 사냥할 때에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별 볼 일 없는 스킬들.
아이템의 등급만 높았지 정작 후반부에선 어떤 몬스터에게도 통하지 않아 그다지 각광받는 아이템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스킬의 대상이 ‘불완전한 공허의 몬스터’라는 점이다.
‘원래 이곳의 몬스터는 정신방벽이 꽤 낮은 편이니까.’
정신방벽의 보호엔 마력의 역할도 적지 않게 필요하다.
즉 아직 ‘반마력’과 ‘마력’의 중간에 걸친 ‘불완전한 공허의 몬스터’는 그 보호 체계가 반 정도는 날아간 상태란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쓸모도 없는 아이템조차 이들에겐 너무나도 효용성이 좋았다.
만약 여기까지 계산해서 사용한 거라면, 컴퍼니의 정보력은 생각보다 훨씬 방대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기야 던전꽃을 그리 활용하는 걸 보면 이 정도면 당연한 건가.’
한국에 컴퍼니 지부가 발본색원(拔本塞源)되어 그 씨도 남질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링링은 몬스터 대군단의 이동을 눈여겨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케이. 저들 중에 켈은 없어?”
하얀 가면을 쓰고 몸을 덮는 로브까지 장착한 컴퍼니의 직원들이었다. 어지간해선 정체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 대상이 ‘켈’이고, 저 중에 알아볼 수 있는지 묻는다면…… 단언컨대 강서준은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켈의 영혼은 두 개여야 하니까.’
켈은 ‘바람의 정령왕’을 다루는 이 시대의 최고의 정령사다.
그리고 그의 몸엔 ‘바람의 정령왕’인 ‘실피드’가 귀속되어 있다.
즉 한 몸에 영혼이 두 개가 정착되어 있다면, 그를 ‘켈’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영안(S)’을 발동합니다.]푸른 불꽃으로 시선을 가늠하자 속속 직원들의 영혼이 보였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어야 했다.
어떻게 이리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수가 있을까.
‘전부 악령이라고?’
영혼의 개수는 모두 하나였으니 ‘켈’은 없었다. 다만 괜히 고민만 늘어난 것 같다.
‘정말 이들을 아군으로 볼 수 있을까?’
또한 현시점에서 골머리를 앓게 만든 원인인 ‘관리자 샛별’에 대한 생각도 꾸준히 떠올랐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줬으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지 않았는가.
빌어먹을 관리자 놈.
“…….”
그렇게 1시간을 이동했을까.
속으로 관리자 샛별에 대한 뒷담을 더 떠올리기도 전에, 돌연 컴퍼니의 상공이 일그러졌다.
익숙한 생김새의 몬스터가 검붉은 기운을 쏟아 내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서준은 대번에 알아봤다.
‘……마족이로군.’
전신에서 그 자신감을 표출하듯 줄줄 흐르는 마기부터, 활짝 펼쳐진 날개는 도합 세 쌍이었다.
멀리서 봐도 꽤 근육질인 그의 몸은 어디서 다친 건지는 몰라도 흉악한 흉터가 가득했다.
놈은 컴퍼니 쪽과 친분이라도 있는지 시시덕대며 대화를 잇고 있었다.
그나저나 마족이라고?
컴퍼니가 언제부터 마족이랑 내통하고 있던 거지?
여태 마족이 나타났던 도시에 컴퍼니가 같이 등장한 경우는 없었기에,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족은 리카온 제국군 내지 0116 채널의 관리자인 ‘리루르크’와 결탁한 줄만 알았는데.
‘잠깐. 그럼 이 녀석들…… 켈과 반대편에 있는 건가?’
샛별은 리루르크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켈을 구하라는 메시지를 건넸다.
한데 리루르크와 결탁한 걸로 알려진 마족이 당장 컴퍼니와 한편이라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놈들 적이군.’
컴퍼니 내에도 부서는 여러 개였고, 지부가 다르다면 그 목적도 달라지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강서준은 한결 명쾌해진 답안에 앓던 이를 뽑은 것처럼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미간을 구기며 이쪽으로 쏘아지는 무형의 살기를 맞받아쳐야만 했다.
-꼬리를 달고 왔군.
갑자기 허공을 가르고 예의 마족이 강서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놈이 도끼를 크게 휘둘러 바닥에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호오? 이걸 피하다니.
감탄하며 중얼거리는 놈의 얼굴엔 눈만 여섯 개가 보였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눈동자는 전부 붉은색이었다.
꽤 번들거려서 그곳에 강서준의 얼굴이 반사되고 있었다.
놈이 말했다.
-잠깐…… 너 설마 케이냐?
역시 알아본다.
알리도 그렇고, 이놈도 켈과 마찬가지로 전생자인 모양이다.
아니, 몬스터이니 전생 몬스터라고 해야 하나?
공교롭게도 강서준도 이놈을 알고 있었다.
“광전사 미르바나.”
이른바 ‘협곡의 광전사’.
지난 올림픽에서 데칼을 상대로 싸웠다가 농락당하고 패배해 버렸던 플레이어 ‘아리아’의 직계약 마족.
마왕의 직속 부하라서 그 수준이 여타 다른 마족과는 천지 차이라 할 정도로 고강한 개체였다.
‘어쩐지 파리의 상공엔 알이 없더라니.’
혹시나 리카온 제국인들이 악마를 퇴치하고 마족의 알까지 점령했을 거라는 생각은 그저 행복 회로를 과하게 돌린 결과였나 보다.
놈은 이렇듯 부화했고, 버젓이 리루르크가 내세운 비장의 카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이놈까지 달라붙어 하는 일이 뭔지 더 궁금해지네.’
과연 컴퍼니와 마족이 합작으로 ‘공허의 저편’에서 하고 있는 게 대체 뭘까.
미간을 좁히며 생각을 잇는 사이, 미르바나가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제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찾아오다니. 정말 어리석구나.
콰아아아아앙!
검붉은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불타는 것처럼 타오르고, 녀석의 도끼엔 막강한 마기가 담겼다.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피하다 결국 재앙의 유성검으로 놈의 도끼를 맞부딪쳐야만 했다.
[스킬, ‘마기 집중(F)’을 발동합니다.]맞부딪친 마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놈이 헛헛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놀랍군. 마기를 다루다니?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놈은 더욱 빠르고 강하게 공격을 이어 나갔다.
묵직한 도끼질은 오른쪽으로 베어지더니, 금세 아래를 내리찍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그의 허리를 베어 오고 있었다.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초재생을 발동할 수 없는 지금은 작은 상처라도 회복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아예 다치질 않는 게 좋다.
-쥐새끼처럼……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미르바나는 등에서 도끼를 하나 더 꺼내더니, 이젠 아예 쌍도끼로 강서준을 공격했다.
무거운 도끼를 하나 더 꺼냈으면서도, 그 속도는 도끼 하나를 휘두를 때보다 훨씬 빨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협곡의 광전사…… 장기전은 좋지 않아.’
놈은 싸울수록 강해지는 말 그대로 ‘광전사’였으니까.
아마 지금도 전력은 아닐 것이다.
쿠우우우웅!
이윽고 부딪친 마기는 강서준을 뒤로 크게 밀어내기까지 했다.
더욱 강해진 놈의 마기는 강서준이 보유한 마기로는 대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기의 총량이 달라.’
놈은 전생까지 해 가며 성장한 진짜 ‘마족’이었고, 강서준은 비교적 최근에 마기를 쌓아 왔다.
당연히 그 양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시간대가 어떤가.
‘던전 버프에 밤 버프까지…… 최악이야.’
강서준은 연신 뒤로 물러났다.
그게 썩 마음에 들었는지 미르바나는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케이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구나! 크하하하!
그 와중에 컴퍼니 녀석들은 빠르게 채비를 마치고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강서준을 발견하자마자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듯했다.
“어딜!”
창졸간에 그쪽으로 마기를 활용한 참격을 날려 봤지만, 여지없이 그 앞을 가로막은 미르바나에 의해 공격은 애꿎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크큭! 천하의 케이도 별것 아니군.
놈이 폭소를 터뜨리니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크게 울렸다.
이놈…… 전투가 길어지니 목소리에도 마기를 담고 있다.
소모가 그만큼 커지겠지만 그딴 것은 신경도 쓰질 않는 눈치였다.
새삼스럽게 놈의 마기가 부족할 일도 없겠지. 완전한 부화를 이뤄 냈다면…… 놈은 본체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을 테니까.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너희들 대체 여기서 뭘 하려는 거냐?”
-크크큭! 천하의 케이도 별거 없어!
“몬스터를 데려가서 어디에 쓰려는 거야?”
-크하하하하! 나약한 케이여! 크하하하!
“…….”
강서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달려드는 미르바나의 눈을 들여다봤다.
광기에 젖은 두 눈동자엔 오직 강서준을 죽이겠다는 일념만이 들어 있었다.
“대화가 통할 상태가 아니군.”
-크하하하하하하!
협곡의 광전사는 싸울수록 강해지는 대신, 그만큼 정신은 피폐해지고 미치기 마련이다.
아마 이젠 이성적인 공격은 없을 것이다. 거의 육탄 돌격에 가까운 무지성 공격이겠지.
놈은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즉 그런 거다.
“이제 진짜 싸울 수 있겠네.”
-크하하하…… 하하?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에 ‘도깨비불’을 휘감아 그대로 미르바나의 도끼를 튕겨 냈다.
놈의 웃음이 잠깐 끊겼고, 강서준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놈의 간격으로 파고들었다.
도깨비불이 연신 불타오르며 강서준이 지나간 자리마다 불길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었다.
‘마기는 도깨비불의 원료.’
말하자면 도깨비는 마족의 상성에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크하하하하하하!
문제는 장기전으로 흐른 탓에 광전사의 마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다는 거다.
이 정도나 되는 마기라면 도깨비불로도 쉽게 불태우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마기의 총량에서 밀리는 싸움이다.
하지만.
“미쳐서 안 들리겠지만 미르바나. 너 겁먹고 도망치진 마라.”
-크하하하하하!
“그래. 그렇게 웃고 있으라고.”
강서준은 쌍도끼를 들고 해일처럼 마기를 휘몰아치는 미르바나를 보며 나지막이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재앙의 유성검을 앞으로 겨누며 입을 열었다.
“인벤토리.”
단순한 힘 싸움에서 밀린다면 대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기교보다도 확실한 대체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힘 싸움에 더할 힘을 보충하는 것.
[장비, ‘마왕 제레브의 반지’에서 음산한 마기가 흘러나옵니다.]강서준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농밀하며 진득한…… 그리고 힘의 총량에서 최상단에 자리한.
아주 ‘고성능 배터리’를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