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55
◈ 255화
만반의 태세를 갖춘 강서준은 차분하게 기분을 가라앉히고 의식을 집중시켰다.
눈을 감았는데도 기이하게 시야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알리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거 생각보다 쉽진 않네.’
켈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단계.
마냥 알리에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었으니, 일 처리를 더욱 수월하게 하려면 알리의 시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백귀와 도깨비 왕의 영혼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생각조차 공유할 수 있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두 개의 감각이 동시에 느껴져.’
눈을 감고 있다는 감각과 알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는 감각.
타인의 눈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건 여러모로 생소한 기분을 들게 했다.
‘문제는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알리의 감각이 희미해진다는 거야.’
강서준은 호흡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이처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듯 눈을 꾹 감은 건, 가능한 한 몸의 감각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링링이 물은 건 그때였다.
“준비됐어?”
알리와 강서준의 동조율은 더욱 높아졌다. 대답은 강서준이 아닌, 알리의 입에서 나왔다.
“응. 이제 할 수 있어.”
이 또한 알리가 신체의 제어권을 오직 강서준에게 할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리의 몸 한쪽에서 강서준의 의식을 받아들여, 두려워하는 한편 그저 환호하며 기뻐하는 녀석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럼 시작할게. 뒤를 부탁해.”
“고생하라고.”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고 자세를 잡은 링링을 일별했다. 알리는 검붉은 마기를 일으키며 켈에게 다가섰다.
[백귀 ‘몽마의 주인 알리’가 스킬, ‘자각몽(S)’을 발동합니다.]꿈속으로 들어가는 스킬.
‘인 투 더 드림’과 비슷하면서, 오직 몽마만의 권능이 발현되고 있었다.
***
츠츠츠츳!
잠시 스파크가 튀면서 강서준은 알리의 몸이 전격에 휘감겼다는 걸 알았다.
꿈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인 투 더 드림’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 내부 사정이 썩 좋질 못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각몽’을 꾸고 △◈니다.] [주의! ‘드림 ■퍼’를 조심하★시오.]마치 진입해선 안 될 공간으로 들어온 듯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뭉개지는 것도 그 일환일 터.
여긴 ‘시스템의 제재’가 가해지는 공간이다.
어쩌면 지금 이곳은 S급 던전보다도 훨씬 위험하면서, 본질 자체가 변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단 하나의 메시지는 아직 선명하게 그대로였다.
[시스템에 의해 ‘부적격 판단’이 진행 중입니다.]강서준은 알리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확실히 정상적인 꿈은 아니네.”
그가 올려다본 하늘에는 쏟아질 것처럼 도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도시엔 평화롭게 걸어 다니는 시민들도 보였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오랜만에 경적을 울렸다. 대관절 푸른 하늘에 매달린 도시의 광경은 꿈이 아니고서야 실현되지 않을 모양새였다.
-왕이시여…….
바쁘지만 평화롭던 현대 사회를 올려다보던 강서준은 알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내리니 그의 앞으로는 잿더미가 가득 쌓여 있었다.
“꿈속이 정말 엉망진창이네. 다중 인격이라 그런가?”
하늘에 걸린 게 도시의 정경이라면, 땅에 있는 건 잿더미가 되어 버린 어느 촌락의 풍경이다.
근처로 산자락이 있고, 나무의 형태나 타다 만 건물의 양식을 보아하니 중세 시대 같았다.
‘여긴 드림 사이드 1의 세계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강서준은 다시 하늘의 도시로 시선을 던졌다. 땅의 풍경이 아무래도 ‘드림 사이드 1’의 모습이라면, 아마 하늘에 매달린 도시가 ‘지구’인지도 모르겠다.
“흐음…….”
잿더미로 뒤덮인 땅과 쏟아질 것만 같이 거꾸로 매달린 광활한 도시.
그 속에서 꿈의 원주인인 켈을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의외로 상황은 쉽게 풀려 나갔다.
자각몽을 꾸는 사람은 적어도 그 꿈의 일부를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츠츳!
‘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그를 찾고자 의식하니 주변의 풍경이 무너지고 점차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드리웠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는 건,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여긴…….’
5평 남짓할 공간.
옹기종기 모여서 밀빵을 집어 먹는 아이들과, 우유 같은 걸 따라 주는 수녀가 있었다.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때나 허름한 옷차림, 온몸에 잘게 드러난 상처가 눈에 띄었다.
강서준은 그중 한 아이를 주목했다.
‘이 아이가 켈이로군.’
영혼이 연결되어 보는 상황이기 때문일까. 알리의 눈으로 봐도 영안이 적용되어 보였고, 꼬마의 몸속에 웅크리고 있는 정령왕도 찾을 수 있었다.
켈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
켈의 시선은 창밖으로 향했고, 그곳엔 소낙비가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비는 아니었다.
공허의 저편에서 휘몰아치던 ‘반마력 폭풍’과도 같은 힘. 세상을 갉아먹을 것만 같은 무식한 힘이 오두막의 밖을 완전히 흔들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신부님이 돌아오실 거야.”」
「“진짜? 에밀리 누나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
「“생각하는 게 아니야. 믿는 거지.”」
강서준은 어린 외관의 켈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진짜 어린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생을 하는 존재였고, 그 속에는 수십 년은 족히 살았을 인간이 들어 있다.
즉 당장 어리광 부리는 말투도 모두 연기라는 것이다.
「“켈. 걱정 마. 신은 우리에게 견디지 못할 시련을 내리진 않으시니까.”」
의연한 에밀리의 말에 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어린 켈의 사연은 계속됐다.
오두막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아가는 아이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웃음꽃이 쉽게 지질 않는 화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반마력 폭풍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소낙비가 쏟아지는 환경에 갇혀 있는 그들이었다.
오두막에서의 식량은 한정됐고, 그들은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배고파…… 누나.”」
칭얼대는 아이에게 에밀리는 본인 몫의 빵을 조금 떼어 줬다. 얼굴이 전보다 훨씬 야위고, 눈가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신부님은…… 조금 늦는 것일 뿐이야.”」
하지만 에밀리는 그로부터 얼마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아이들을 위하다 제 목숨을 가볍게 여긴 대가를 받고야 만 것이다.
「“누나…… 누나! 일어나!”」
「“으아아아앙!”」
영문도 모른 채 울면서 수녀의 어깨를 흔드는 아이들과, 그 속에서 참담한 눈을 한 켈.
「“미련한 사람…… 그러게 왜.”」
어린 켈의 한숨엔 많은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참지 못한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누나 미안해. 내가…… 내가 조금 더 힘이 있었으면. 더 어른이 되었으면…… 그랬다면.”」
정리되지 못한 감정으로 쏟아지는 말들은 흐지부지 에밀리의 시체를 뒤덮었다. 켈은 이후로도 한참을 소리 없이 끅끅 눈물을 흘려 댔다.
그리고 돌연 다른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정말 감성적인 녀석이라니까.”
들릴 리가 없는 음성. 강서준은 경악하며 옆을 돌아봤다.
“켈투, 이놈아. 쪽 팔리게 이딴 과거를 갖고 있냐.”
“뭐래. 이건 네 과거이기도 하거든?”
터무니없지만 오두막의 한쪽에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림 키퍼 ‘켈’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드림 키퍼 ‘켈’이 당신을 바라봅니다.]옥신각신하던 두 사람 중 오른쪽에 선 켈이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무의식에 무단 침범한 당신은…… 역시 케이라고 봐야겠죠?”
강서준이 대답하지 않아도 녀석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켈은 오두막의 허름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귀하디 귀하신 케이 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무슨 볼일이실까요.”
그의 손아귀에서 바람이 일렁였다.
정령왕이 그 의지에 반응하여 폐쇄된 오두막 내부로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꿈속이라 그런지 마력의 제한은 딱히 받질 않는 눈치였다.
강서준은 순순히 답해 줬다.
“다 알면서 뭘 물어?”
“네, 뭐. 그렇죠.”
거짓말같이 휘몰아치던 폭풍이 사그라들고, 켈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절 죽일 겁니까?”
“응.”
“솔직하게도 말씀하시네요.”
시스템의 부적격 판단은 바뀌지 않은 현실이었다.
당장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두 개로 나누어진 인격을 하나로 만들 필요가 있다.
켈도 그 사실을 알았고, 강서준이 알리의 몸을 빌려 꿈속까지 파견 나온 목적도 알 것이다.
그러니 순순히 나타난 거겠지.
켈은 강서준을 올려다봤다.
“근데 조금만 미뤄 주셨으면 합니다.”
“뭐?”
“제 생각…… 아니, 우리 생각을 듣고 결론을 내려 주세요.”
그는 거두절미하고 옆에 서 있던 사내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울보가 바로 ‘켈투의 과거’입니다. 보다시피 이건 놈의 기억이고 흑역사도 이놈 것이죠.”
“……야. 따지고 보면 내가 너보다 훨씬 이전 생을 살았는데, 네가 켈투여야 하는 거 아니냐? 전생한 주제에 왜 네가 근본인 것처럼 말하는데?”
“닥쳐. 지금 내 몸이 네 몸이냐?”
그러더니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이 아는 ‘켈’입니다.”
켈과 켈투.
강서준은 두 사람을 나란히 바라봤다. 두 사람의 확연한 차이는 인격에서부터 느껴졌다.
‘켈투 쪽이 감정을 숨기는 게 더 미숙하군.’
모르긴 몰라도 켈투는 얼굴에서 표정이 다소 드러나는 편이었다.
현재의 켈보다 감정을 숨기는 노하우가 부족한 이유는, 그보다 훨씬 이전 생을 살아서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도 몰랐다.
켈은 켈투를 노려보다 다시 강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왜 날 안 죽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살릴 거라면 이득이 되는 쪽을 살려야 하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제 이점을 발표하겠습니다.”
켈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풍경이 빠르게 변했다. 어느덧 그들은 밤하늘에 공허하게 떠 있었다.
켈은 새카만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저나 켈투는 어쩌다 컴퍼니에 입사했는지도 모릅니다. 첫 기억은 무의식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테니까요.”
강서준은 눈앞의 어둠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건 켈이 기억하지 못하는 ‘봉인된 기억’의 일부였다.
“하나는 선명해요.”
공허한 어둠 속에서 덩그러니 만들어진 행성이 보였다. 녹음이 우거진 푸른 행성은 지구 같으면서 또한 지구가 아니었다.
“컴퍼니의 목적은 오직 하나예요.”
“응?”
“컴퍼니의 전생자들은 대개 멸망한 세계의 주민들이죠. 우린 ‘실패한 공략자’들이고, 다시 기회를 잡으려는 ‘새로운 도전자’입니다.”
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케이. 아니, 강서준. 만약…… 이 세계를 재건할 방법이 있다면 어떡하겠어요?”
강서준은 말없이 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가 하는 말, 그 모든 것에 거짓이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실의 성물을 가진 그에겐 애초에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세계를 재건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일 겁니다. 드림 사이드에 의해 부서진 이 세계를 온전히 복구시켜야 한다는 거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켈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네. 실제로 과거에도 몇 차례 완성된 적이 있다고 했어요.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내용이니 확실하겠죠?”
켈이 원리를 좀 더 설명해 주자면, 시스템엔 세이브 데이터가 있고, 거기엔 드림 사이드가 도래하지 않은 지구가 저장되어 있단 얘기였다.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은 세계.
“전 이 세계를 재건할 방법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