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60
◈ 260화
로니는 잠시 눈을 껌뻑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도통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갑작스레 벌어진 몬스터 웨이브!
고립된 와중에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무기를 향해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그였다.
그땐 꼼짝없이 죽음을 상상했다.
상대가 진짜 용이 아닐지라도 레벨이 낮은 로니가 뭘 어찌할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으니까.
그의 목적은 오직 시간을 끄는 것이고, 그가 아는 켈이라면 능히 사람들을 구출해 낼 터였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이게 뭐냐고 대체.’
로니의 앞엔 어느덧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터무니없지만 그 사내의 앞으로 거구의 이무기가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는 게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핏기가 사라진 마른오징어처럼 혈색이 완전히 소멸한 이무기는 더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하기 어려웠다.
크롸라라락!
또 다른 이무기가 분개하며 달려들었지만 놈의 최후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어도 이길 거라고는 단언컨대 생각조차 해 보질 못할 괴물.
그런 놈을 단신으로 쓰러트린 남자는 지친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다, 당신은…….”
로니가 당황을 토해 낼 즈음.
이번엔 하늘에 검은 구멍이 무수하게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쪽을 확인한 로니는 숨이 턱 막히는 줄 알았다.
‘……마족!’
구멍을 통해서 나타난 괴물들이 죄다 검붉은 마기를 흩뿌려 댔다. 박쥐나 악마 같은 날개를 달고 있기도 했다.
설상가상이라고…… 별안간 다수의 마족이 파리의 상공에 나타난 것이다.
경각심에 온몸이 떨렸다.
“도, 도망쳐야 합니다!”
제아무리 눈앞의 남자가 대단하다고 해도 저 많은 마족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랭킹 2위인 ‘리트리하’도 진 제국에서 고작 마족 하나를 상대로 고생하고 있다질 않은가.
하나의 마족은 하나의 도시를 무너트릴 정도로 상위의 몬스터.
현실적으로 상대가 안 된다.
“로니, 괜찮아.”
“……네?”
공포에 젖은 눈으로 시선을 돌린 로니는 차분하게 상황을 관망하는 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연 자취를 감췄던 켈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딘가 묘한 분위기가 풍겨 났다.
꽤 같이 지냈던 경력이 긴 로니는 켈의 변화에 민감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썩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아는 켈은, 결코 상대를 우습게 보고 방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어떤 상황이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최적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
그게 로니가 아는 켈의 최대 장점이었다.
‘근데 이 여유로움은 뭐냐고.’
무슨 자신감일까?
로니는 금방이라도 심장을 옥죄어 올 것만 같은 마기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문제는 놈들의 무기가 ‘마기’라는 것도 있었다.
‘마력 제한 구역’에서의 마족은 아무런 디버프가 발생하질 않는 존재니까.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환경이었다.
“진짜 괜찮아, 로니. 상황을 똑바로 봐.”
켈이 로니의 어깨를 감싸자 산들바람처럼 시원한 마력이 그의 주변을 환기했다.
그제야 로니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 ‘켈’에 의해, 디버프 효과가 반감됩니다.] [상태 이상 ‘공포’가 사라집니다.] [상태 이상 ‘혼란’이 진정됩니다.] [상태 이상 ‘흥분’이 가라앉습니다.]압도적인 레벨 차이로 인하여 생성된 무수한 디버프 효과!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였던 것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질 못한 건 그였단 얘기다.
켈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저 사람이 누군지 물었지?”
켈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니, 그제야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사내의 뒷모습이 있었다.
그 뒷모습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이 익었다.
아니, 실제로 본 적이 있었다.
옷차림은 약간 달라졌지만, 저런 분위기를 뿜어내는 사람은 그가 알기론 단 한 명이었다.
그의 옆으로 한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고,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니 검은 구멍 옆으로 푸른 구멍도 생겨나고 있었다.
“케이야.”
속으로 들었던 대답을 귀로 확인하며, 로니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폭음 속에서 유유히 선 그를 바라봤다.
***
강서준은 둘러싼 마족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링링과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을 뼈저리게 떠올리고 있었다.
“여러모로 귀찮아질 뻔했네.”
솔직히 마족이 떼거리로 몰려나온다 해도 형편없이 질 것 같진 않았다.
그가 미르바나를 상대하기 버거웠던 건, 그곳이 던전 안이었기 때문이니까.
아직 밤 버프도 없고, 던전 버프도 받질 못한 마족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마력을 쓰질 못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녀석들을 상대하면 그만한 시간이 소모된다는 거다.
‘리루르크가 노린 것도 그거야.’
마족은 오직 시간 끌기용이다.
녀석의 진짜 목적은 어디까지나 ‘용’을 소환하는 것이며, 성공한다면 마족이 멸망한들 상관없는 일이었다.
용은 단 한 마리라 해도 마족 수십 마리보다 가치가 있었다.
“여긴 맡기고 가. 네 할 일을 해.”
든든한 링링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강서준이 빠르게 땅을 박차려 했다.
그때 견성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이를 드러냈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하지만 강서준은 녀석의 공격에 반응조차 하질 않았다.
츠츳!
그의 옆으로 강렬한 흐름이 일렁였고, 허공에서 생겨난 거대한 방패가 견성의 몸을 튕겨 냈으니까.
-너, 너는……!
“싸우다 말고 도망치는 건 무슨 똥매너야?”
거대한 방패를 쥐고 등에는 수 개의 날개를 활짝 펼친 리트리하!
그는 잠시 강서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한마디 말을 섞질 않아도 그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네 상대는 나다.”
-이이익……!
분노를 토해 내는 견성이었지만 더는 강서준을 쫓기란 무리였다. 리트리하가 본격적으로 대검마저 꺼내어 공세로 접어들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마족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인간 따위가!
-건방진 인간들이여! 죽어라!
“링링 님을 도와! 마족을 처단하라!”
“우리도 참전하겠습니다!”
관리자 리루르크가 마족들이 통하는 임시 포탈을 개설했듯, 공허의 마법사인 링링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포탈을 연 것이다.
“링링 님!”
그 대가로 모든 마력과 반마력을 소진한 링링이 일어날 기운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옆으로 포탈을 넘은 김훈이 달라붙어 치료를 감행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마력 제한 구역에선 포션 사용이 제한된다.
“됐어. 그보다 저쪽…….”
링링이 가리킨 방향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에서 몸을 떨고 있는 피난민들이 있었다.
“저들부터 구해.”
“……알겠습니다. 금방 돌아오죠.”
한편 서울로 연결된 포탈이 유난히 활짝 열려 더 많은 플레이어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중 단연 빛나는 한 사람.
“대뜸 하늘에 헬프라 적어 놓고 포탈을 열면 뭘 어쩌란 거예요?”
[플레이어 ‘마일리 그레이스’가 스킬, ‘성스러운 기도’를 발동합니다.]그녀를 중심으로 마기가 일제히 물러나며, 점차 황금빛 기운이 구간을 채워 나갔다.
“강서준 씨!”
에펠탑으로 달려가던 강서준은 그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번 블러드를 발동한 최하나가 빠르게 그의 곁으로 따라붙은 것이다.
그녀는 강서준의 옆으로 날 듯이 따라가던 켈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도 보냈다.
다만 전처럼 섣불리 총구를 겨누진 않아 다행이었다.
켈은 너스레를 떨었다.
“눈에서 광선 나오겠어요.”
“원하면 네 눈엔 피가 나오게 해 줄게.”
“……사양합니다.”
말다툼은 오래가질 않았다.
에펠탑의 인근으로 다가서니, 그곳을 지키던 한 놈이 당당하게도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벨벱……?”
-간만이구나. 케이.
그 힘만 해도 미르바나보다 한 끗발 위에 선 존재로, 마왕의 분신이라 불리는 마족.
그 수준으로 치자면 A급 던전의 중간 보스급이라 해도 될 것이다.
“벨벱이 소환됐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관리자가 숨겨 둔 거겠죠.”
마족들의 침공에서 ‘마족의 알’로 본신의 능력을 부화시키려던 이유는, 오직 지구가 그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정규 업데이트 이전의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정규 업데이트 이후라면, 벨벱 같은 최상위 개체도 본 힘을 되찾는 조건이 낮아져 있을 터였다.
사실 용이 소환되는 터무니없는 현장에서, 마왕보다 살짝 못난 몬스터의 등장은 어색하진 않았다.
“여긴 저한테 맡겨 주세요.”
최하나가 마탄을 장전하며 심기일전의 눈으로 벨벱을 쳐다봤지만, 강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를 믿질 못하는 게 아니다.
최하나라면 벨벱을 상대로도 격전을 벌일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시해도 돼요. 괜찮아요.”
강서준은 이쪽으로 빠르게 도달한 강대한 기운을 확인했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한 남자의 위로 거대한 킹콩의 형상이 있었다.
재밌는 건 킹콩이 갑옷을 걸쳐 입고 있다는 것이다.
“으랴아아아아!”
묵직한 주먹질에 마기가 부딪치니 충격파로 인근의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또한 충격의 여파로 바닥에 떨어진 나도석의 주변엔 싱크홀이 생겨난 것처럼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좀 치는데?”
피식 미소를 지은 나도석은 전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벨벱에게 접어들었다.
마치 전투기가 마하의 속도로 접어든 것처럼 소닉 붐이 일었다. 그의 주먹에 맞닿은 벨벱은 실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콰아아아앙!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1년 동안 의식을 잃었던 건 아니죠?”
“네?”
“아뇨. 나도석마저 못 본 사이에 슈퍼맨이 되어 있길래요.”
이러니 컴퍼니가 미련을 접고 폐업을 결정한 거겠지, 작게 중얼거린 그는 강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작 강서준은 막강한 파워를 보여 주는 나도석에겐 관심조차 두질 않았다.
“저 사람이 리루르크야?”
강서준의 시선이 닿은 곳은 에펠탑의 인근이었다.
마력과 반마력이 교차해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한 장소.
검은빛과 푸른빛이 수시로 솟구치는 마법진 위로 한 남자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미간을 좁혀 확인한 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자는 ‘그리샤’입니다.”
“처리반장이라는?”
“네. 근데 왜 쟤가 여기에…….”
켈은 켈투의 기억 속에서 용의 소환 의식에 대해서 빠르게 찾아봤다.
그중 소환은 결국 ‘매개’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설마…… 저놈을?”
불안함에 마법진의 인근에 다가선 켈은 더욱 황당한 메시지를 마주해야만 했다.
용의 소환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고, 당연히 아직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랬다.
[관리자 ‘리루르크’에 의해, ‘시간 가속’이 진행 중입니다.] [외부 공간에 비해 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리루르크가 본인의 권능을 바탕으로 ‘시간’을 조작한 것이다.
즉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존의 판단은 모조리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다.
“젠장…….”
한편 매개가 된 그리샤는 가까이에 접근한 강서준을 향해 고개를 바짝 들었다.
윤기가 흐르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어느덧 푸른색의 물결을 머금고 있었다.
눈을 뜨니 바다처럼 짙고 푸른 눈동자가 그를 반겼다.
“블루 드래곤……?”
이른바 수룡.
아직 눈에 초점이 없는 걸로 보아 의식은 없는 듯했지만, 용의 특징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놈이 강서준을 보며 포효하자 그에 걸맞은 마력과 반마력도 휘몰아쳤다.
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녀석을 붙잡고 있어 주세요.”
“응?”
“아직 완전히 소환된 게 아니라면 되돌릴 방법이 있어요.”
강서준은 말없이 켈과 그리샤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샤는 가속된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감히 상대할 수조차 없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대한 이해는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당장 켈의 말을 따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묘안이 없었다.
어쨌든 그는 관리자 샛별이 말한 지구를 구할 유일한 카드였다.
“오래 붙잡고 있진 못해.”
그렇게 강서준이 휘몰아치는 폭풍을 무시하며 마법진으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가속됩니다.] [시간이 가속됩니다.] [시간이 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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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이 지났습니다. 차원 서고의 제한이 해제됩니다.] [장비, ‘만물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