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62
◈ 262화
켈의 변화는 상당히 극적이었다.
‘저건…….’
어느덧 어깨에 날개가 돋아났고, 입가엔 부리가 생겨났다.
그의 주변으로 실 같은 게 한 올 한 올 흩날렸고, 바람이 빨려 들어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도깨비 갑주를 걸친 것처럼 반투명한 형상이 켈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강서준은 그게 무언지 바로 알았다.
‘실피드.’
터무니없지만 정령왕 실피드의 형상이 켈에게 덧씌워져 있었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그냥 실피드가 아니야.’
당장 눈앞에 있는 켈에게서 존재해서 안 될 거대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전에 기계성의 회상에서 봤었던 ‘아쿠아’는 비교조차 안 될 파괴력이었다.
B급도, A급도 아닌…… S급.
말하자면 훗날 완전한 각성을 마쳐 용에 버금간다는 정령인 ‘태고의 정령왕’이 현신한 꼴이었다.
‘……켈에게 저런 스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츠츠츠츳!
어찌나 그 힘이 강력했는지 가만히 서 있는데도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다.
공간이 살짝 일그러진 것도 착각이 아니었다. 켈이 지금 사용하는 스킬은 말 그대로 정령을 그의 몸으로 빙의시키는 것.
[플레이어 ‘켈’이 스킬, ‘정령화(L)’를 발동합니다.]강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말이 안 돼.’
천외천 11위인 바람의 정령술사인 켈이 ‘정령화’를 사용하는 게 이상하단 말이 아니다.
그가 스텟을 올 민첩으로 찍었던 이유가, 사실 정령과 하나가 되기 위함이었으니까.
마력을 다른 방식으로 보충하더라도 그 스킬 하나만을 위해서 기꺼이 고생을 선택한 거니까.
‘문제는 태고의 정령왕이야.’
말했듯 태고의 정령왕의 수준은 용에 버금가는 S급 몬스터라 볼 수 있었다.
과연 그런 존재를 제 몸에 빙의시키는 일이, 현시점에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강서준은 그 또한 밸런스 붕괴를 초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바로 메시지를 띄웠다.
[!] [버그가 발생했습니다.] [시스템이 버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그리고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켈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켈, 너…… 설마.”
버그를 유발할 정도로 신체의 수준이나 스킬의 등급을 초월시키는 물건.
강서준은 그걸 본 적이 있다.
‘던전꽃.’
거두절미하고 류안을 발동한 강서준은, 켈의 몸속에 자리한 ‘던전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약물을 삼킨 건가.’
‘변이 바이러스’와 ‘던전꽃’으로 조작한 컴퍼니 특유의 약물.
자고로 그게 주입된 몬스터는 버그라 판명당할 정도로 힘이 폭주하기 마련이었다.
강서준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면 네 목숨이……!”
켈은 폭풍 같은 호흡을 길게 내뱉더니 강서준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리될 일입니다.”
“뭐?”
“켈투와 합쳐진 순간, 이 결말은 결정됐어요.”
켈의 시선이 잠시 파리를 훑었다.
사방에서 폭풍이 일어나며 곳곳에 숨었던 사람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일련의 소동에서도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켈이 마법으로 구해 내고 있었다.
“켈투가 그러더군요. 다 타 버린 잿더미만 남은 삶보다는,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때가 훨씬 나았다고.”
그가 손짓하자 바람에 실린 사람들은 두둥실 날아가 일대를 경계 중이던 루브르 박물관 상공에 다다랐다.
파리 곳곳에 흩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손짓 한 번으로 대피시키는 능력.
가히 신이 따로 없다.
아마 틀린 비유도 아닐 것이다.
정령화는 무려 L급 스킬이었고, 그로 인해 깃든 태고의 정령왕은 그들의 세계에선 신적인 존재였다.
현재 켈의 레벨에서 못해도 100은 더 올려야 겨우 비슷한 힘을 낼까 말까 한 것이다.
켈은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제게 불씨를 주었습니다. 다시 불타오를 기회가 생겼죠. 그럼 응당…… 다시 불태워야 하지 않겠.”
켈은 말을 하던 와중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여태 회오리에 억류되었던 그리샤가 속박을 벗어나 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켈은 다급하게 외쳤다.
“여유가 없군요. 뒤를 부탁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켈은 스스로가 폭풍이 되어 그리샤에게 달려들었다.
물줄기가 회오리에 휘감겨, 허공엔 수룡이 바람을 뜯어먹는 형상이 나타났다.
회오리 속에선 무수한 바람 칼날이 날카롭게 그리샤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아직 용의 영혼과 완전히 융합하질 못해 ‘성장 중인 괴물’과, 억지로 정령왕을 빙의시킨 ‘완성형 괴물’의 싸움.
결과는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끄아아아아악!”
그리샤의 온몸엔 어느덧 바람 송곳이 뚫고 지나갔다. 잘려 나간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머리도 잘려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면 놈은 살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신체는 용의 특성을 거의 각성한 상태인 것이다.
‘불사의 몬스터.’
용은 용의 무기로만 죽일 수 있다.
그 특징이 고스란히 발현된 그리샤의 몸은 빠르게 재구성되어 부활하고 있었다.
그때, 켈이 그 자리에 당도했다.
“용을 죽이는 방법은 용의 무기를 활용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재구성되는 몸에 켈의 마력이 깃들었다. 실피드와 하나가 된 켈은 마치 바람과 같아, 그리샤의 신체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샤가 발악하며 켈을 밀어냈지만, 몇 번이고 달라붙어 융합 과정에 관여했다.
그 와중에 본인의 몸이 찢어지고 터져 나가더라도 상관하질 않았다.
강서준은 그제야 그 노림수를 깨달았다.
“동귀어진할 셈이냐?”
용은 용의 무기가 아니면 죽일 수 없는 존재. 그건 녀석의 종족값에 정해진 특성이자, 불변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현재 켈의 상태는 어떤가.
‘버그로 판명당한 상태야.’
그리고 버그는 곧 시스템에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머지않아 켈은 시스템에 의해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테니 같이 죽으려는 거냐고.”
켈은 현명했다.
이런 식으로 동귀어진을 노린다면, 제아무리 용의 영혼이 융합되더라도…… 켈의 몸과 동화된 녀석은 시스템에 의해 제거된다.
리루르크의 계략이 무엇이든 버그를 지우려는 시스템의 의지마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강서준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그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납득하기 싫었다.
“……이따위로 빚을 퉁 치려고?”
켈은 그다지 살릴 가치가 없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뒤통수를 쳤고, 언제 다시 그의 뒤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을 맺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전생인 새끼. 툭하면 목숨을 버리려 하지? 아주 잘났어. 죽으면 전생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이번엔 다르다.
버그로 판명당해 삭제되는 건, 죽는 게 아니라 소멸이라 불러야 한다.
켈은 전생조차 포기하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있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의 희생으로 지구는 살아남을 것이다.
“……웃기고 있네. 희생하면 만사 오케이냐?”
강서준은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도서관 시스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아직 처리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용을 막을 다른 방법은?”
[검색 중입니다. ……차원 서고 2층의 34번째 책장 ‘용의 기원’을 추천합니다.]강서준은 눈앞에 드리운 문자열을 쭉 둘러봤다. ‘집중’을 사용하여 신간을 쪼개니, 허용된 부분까지 읽는 데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용은 공허에서 태어난 존재. 마력과 반마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의지가 생성되어 만들어진 괴물. 그 본체는 사실 영혼 그 자체에 있었으니.”
강서준은 그제야 용이 어찌 불사에 이르렀는지 알았다. 사실 녀석에게 신체란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었다.
‘용의 무기가 통한 것도 결국 용의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 때문인 거야.’
용의 신체가 아무리 허물이라 해도, 그만한 영혼을 오랫동안 보관한 그릇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 기운이 깃들었고, 그 무기는 결국 녀석들의 영혼을 찌르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영혼이 연결되지만 않으면 용은 아니란 거잖아.”
아마 허우대만 멀쩡한 반쪽짜리가 될 터였다.
즉 지금도 완전한 불사는 아니고, 불사에 가까운 회복력만을 가졌다는 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공략법’은 존재한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감투 속에 보관한 모든 영혼을 갑주로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리샤와 켈이 각축전을 벌이는 현장으로 달려들었다.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도깨비 갑주가 부서지고, 온몸에 상처가 생성됐으며, 그의 몸도 금세 허물어질 듯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일단…….”
[스킬, ‘태산 가르기(S+)’를 발동합니다.]그리샤가 힘겹게 켈을 밀어낸 틈을 노리고 바로 공격을 가했다.
갑작스레 다가온 ‘그랑의 어금니 단검’은 두 사람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 내기엔 충분했다.
“이, 이 무슨……!”
그로 인해 튕겨 나온 켈은 거의 넝마가 된 꼴로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일을 방해했냐는 원망 어린 시선이 그에게 따라왔다.
강서준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네가 그러니까 이전 세계에서 늘 실패해 온 거야.”
“네?”
“자신을 희생해서 무언가를 지켜?”
영웅적인 마인드는 인정한다.
희생은 숭고하고,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건 어지간한 이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강서준은 이를 혐오한다.
“자신을 잃어서는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강서준의 두 눈은 금빛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류안에 이은 영안.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그리샤에게 닿아 있었다.
한데 그의 손에 쥐어진 건 ‘그랑의 어금니 단검’도, ‘재앙의 유성검’도 아니었다.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한 바늘.
강서준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림 사이드의 공략법은 희생이 아니야.”
강서준의 노림수를 눈치챘을까. 그리샤의 전신에서 새롭게 해일이 일렁였다.
이쪽으로 쏘아지는 무수한 물줄기는 켈에게 당했던 게, 분한 만큼 엄청난 규모로 다가왔다.
하지만 강서준은 흔들림이 없었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네가 여기서 소멸하면, 재앙의 탑 상층부로 누가 안내할 거야?”
켈처럼 고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전생인을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강서준이 켈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정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다를 갈라야 해.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마력이 진동하고 ‘맹수의 울음’이 완성됐다. 그 진동은 전신으로 확장되어 ‘광속’이 되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해일을 보며 강서준은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바다를 가를 수 있다.
‘간단하다. 바다의 흐름을 이해하면 돼.’
류안은 흐름을 볼 수 있고, 이쪽으로 밀려오는 해일의 흐름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한 해일이 밀려오더라도 두려울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스킬, ‘태산 가르기(S+)’를 발동합니다.] [!] [스킬, ‘해(海)’의 첫 번째 묘리 ‘파도타기’를 이해했습니다.]강서준의 손에서 던져진 비늘이 태산을 가를 것처럼 날아가, 이내 파도를 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터무니없지만 바늘은 물살 위에서도 전혀 그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흐름을 이어 나갔다.
“내 공략법은 이거야.”
영혼을 수선하는 도구인 ‘도깨비 왕의 수선 도구’가 순식간에 그리샤와 용의 영혼 사이에 개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