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68
◈ 268화
전신으로 고르게 펴진 마력이 진동하고 팽팽하게 당긴 근육이 타이밍을 기다렸다.
태산을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자세.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리니 수많은 파도의 흐름조차 단번에 읽어 낼 수 있었다.
‘아직 아니야.’
몰아치는 해일은 일견 거세게 밀려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그 흐름은 상당히 들쑥날쑥했다.
파도의 최상단, 중심, 그 아래…… 혹은 물살이 서로 겹쳐 힘이 더해지거나 부딪쳐 떨어지는 부분.
재앙의 유성검을 역수로 쥔 강서준은 그중에서도 특히 흐름이 얕아지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크콰카카칵!
어느덧 해일이 코앞에 다다르자 주변은 거대한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대재앙 앞에 선 한 인간!
미동도 없는 그 모습에 뒤쪽에서 진백호의 비명이 먼저 터져 나왔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찾았다.’
하지만 곧 강서준이 한쪽을 겨누고 단검을 세로로 그어 올리자, 터무니없게도 파도는 종이가 잘려 나가듯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스킬, ‘파도타기(S+)’를 발동합니다.]멜빈 알론이 남긴 L급 검술에서도 ‘해(海)’의 묘리를 담은 첫 번째 기술.
파도의 흐름을 읽어 언제 어디서든 검술의 위력을 고스란히 발동하는 힘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강서준이 휘두른 검로(劍路)엔 마력으로 이루어진 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수시로 밀려오는 파도도 그 벽에 막혀 베었던 공간을 차지하지 못했다.
[스킬, ‘부동의 바다(S+)’를 발동합니다.]부동(不動)의 바다!
강서준이 베어 낸 검로로 닦아 둔 마력은 거친 해일마저 강제로 억류하여 잠잠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다를 가르기 위한’ 두 번째 묘리였다.
‘바다는 늘 유동적이니까.’
파도가 치질 않으며 전혀 흐르질 않아 고인 곳을 바다라 하진 않을 것이다.
자고로 바다란 늘 흐르고 흘러 움직임이 끊임이 없는 곳.
즉 베어 봤자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릴 뿐인 반쪽짜리 검술로 바다를 벨 순 없다.
‘그러니 고정시켜 둬야 해.’
결국 해일의 최상단까지 생성된 마력의 벽은 파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서준의 앞으로 마치 모세 앞에 선 홍해처럼 바다가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한 달의 수련이 헛되지 않았어.’
가만히 갈라진 바다 사이를 응시하던 그가 빠르게 내달린 건 그때부터였다.
그의 공격이 어찌나 강했는지 목표로 했던 포탈까지 일직선으로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쉽게는 안 내준다 이거지?”
곧 바다가 거세게 몰아치며 그가 쳐 둔 마력의 벽을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친 물살이 벽에 균열을 일으켰고,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첫술에 배부를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바다를 가르는 기술이 실제 바다에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테스트했을 뿐이다.
강서준은 어차피 버티지도 못할 마력의 벽을 완전히 해제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물살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
[장비, ‘용아병의 날개’를 발동합니다.] [10분의 자유비행을 시작합니다.]빠르게 허공으로 날아오른 강서준은 수평선 너머로 자리한 포탈을 다시 확인했다.
쿠구구구!
또한 바다는 여태껏 당한 게 분했는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변형을 일으켰다.
사방에서 물기둥이 솟구치고 여태 수많은 플레이어를 실격으로 몰아넣은, 바다의 벽이 눈앞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크콰카카칵!
하지만 강서준은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다가오는 물줄기 사이를 절묘하게 가로지를 뿐이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소닉붐이 터진 지 오래였고, 그의 움직임은 길게 늘어져 혜성의 꼬리처럼 보였다.
쿠우우! 쿠우우웅! 쿠우우우웅!
실제로 물줄기는 강서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허공만 스쳤다.
제아무리 바다가 그 앞을 가로막으려 해도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는 강서준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용아병의 날개엔 10분의 제한 시간이 있지만, 이런 효용성은 확실히 사기적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인데…….’
상당히 순조롭게 폭포를 거슬러 오르듯 바다의 벽 중반부 지점까지 도달했다.
이곳은 링링마저 실패했던 지점.
근데 슬슬 그를 공격하던 수많은 물줄기가 서서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탈락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늘려도 모자랄 판에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좋은 징조가 아니야.’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을까.
강서준은 그의 정면에 생성된 소용돌이와 그곳에서 서서히 떠오른 한 인영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괜히 헬 난이도가 아니었군.’
여태 바다에서 휘몰아쳤던 커다란 해일도 아마 이놈에 비한다면 애들 장난이 될 것이다.
어쩐지 바다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인다 싶었다.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해왕(海王)이라니.’
바다에서 나고 자라 그 권능과 특성이 용에 버금간다는 존재.
실제로 수룡조차 그의 권역에 들어가길 꺼려 한다고 알려진, 드림 사이드 1의 절대 금역 ‘바다의 무덤’의 주인.
레벨만 400을 넘길 S급 몬스터.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강서준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난이도 실화냐고…….”
하지만 강서준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질 않았다.
녀석이 어떤 존재든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진짜는 아니겠지. 그리고 싸울 필요도 없어. 내 목적은 여길 통과…….’
그때였다.
“내가 그리 우스운가?”
분명 방금 전만 하더라도 멀찍이 떨어져 있던 녀석이 강서준의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
용아병의 날개를 활용하여 방향을 바꿔 충돌을 면했지만, 그다음 공격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는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미친!’
바다에 닿기 전에 겨우 허공에 멈춰 선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녀석의 위치를 추적했다.
다행히 놈은 한 대를 가격한 이후로 다시 그를 향해 추가타를 날리진 않았다.
‘……그나마 목숨을 노리진 않네.’
녀석이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강서준은 벌써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위기 감지도 뜨질 않는 걸 보면 녀석은 강서준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게 적잖이 안심이 됐지만…….
‘해결책이 되진 않아.’
게다가 한 번의 충돌로 깨달았다.
‘저런 괴물을 무시하고 지나간다는 발상부터 말도 안 되는 거였어.’
놈은 추정 레벨만 400을 넘기는 가히 역대급 괴물이라 할 만한 존재였다.
얼마 전 파리에서 부활할 뻔했던 용의 완성체라면, 과연 이놈과 대적할 수 있을까.
가히 드림 사이드의 헬 난이도에 어울리는 상대였지만…… 이건 정말 공략하라고 내놓은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빌어먹을 관리자.
빌어먹을 샛별!
‘후우…… 정신 차리자.’
강서준은 애써 불안함을 밀어내고 잡념도 모조리 털어 냈다. 좀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다.
‘공략법을 찾아내야 해.’
아마 이대로 기권을 외치고 자리로 돌아가 다음 전략을 준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해왕’이 존재한다면 그에 알맞은 공략법, 아이템 등을 가져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그게 현명한 방법이고,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면 선택했을 답안이었다.
하지만 강서준은 호흡을 정돈하며 집중력을 더더욱 높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곱 개의 기회라는 말 자체가 함정이야.’
아무리 이벤트라고 해도 기회를 그리 퍼 주는 건 몇 번을 생각해도 이상했다.
과연 샛별이 그 정도로 플레이어의 편의를 봐주는 인물이던가?
강서준은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부정할 수 있었다.
‘샛별은 단순히 재밌을 거라는 이유로 마족의 등장조차 용인했다.’
관리자란 인간을 지키는 ‘신’이 아니다. 잠시 공공의 적을 만나 협력하는 사이처럼 됐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샛별은 ‘가해자’ 진영에 선 존재다.
‘가능하면 한 번에 성공시키는 게 좋아.’
모르긴 몰라도 일곱 개의 기회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플레이어는 무언가를 잃는 걸지도 모른다.
죽을 만큼 어려운 난이도를 공략해야 죽이게 좋은 아이템을 쥐여 주는 게 드림 사이드의 국룰이 아니던가!
“잔뜩 퍼 주는 게임이 아니니까.”
물론 샛별의 말마따나 이번 이벤트가 단순히 플레이어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질 못하더라도 페널티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저 강서준의 억측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기권은 안 돼.’
강서준은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많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정동진에 나와 있는 모든 사람들…… 아니,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여기서 강서준마저 ‘기권’을 선택한다면?
서로 말을 하진 않겠지만 다분히 실망할 게 뻔했다. 아무래도 그에 대한 환상이 지워지고 말 테니까.
‘내가 꺾이면 세계가 꺾인다.’
다소 오만한 말이었지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어느덧 ‘케이’란 그런 존재였고, ‘랭킹 1위’는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버티라던가.’
사람들은 막연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케이라면 해낼 거라는 굳은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게 없어진다면…… 수많은 사람은 희망을 잃고 사기마저 떨어지고 만다.
그 후는 보나 마나 빤하다.
‘뭐…… 진심은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강서준은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해왕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용아병의 날개를 운용할 시간은 앞으로 대략 2분.
뭘 하든 2분 안에 해내야 한다.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상대가 어떤 존재든, S급이든, 혹은 그보다 대단한 괴물이든…… 강서준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불가해한 난이도인 ‘헬 난이도’라 하더라도 그는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공략법은 반드시 있어.’
가만히 서 있는 게 지루한 듯 하품까지 쩍 해 대는 해왕을 노려보며, 강서준은 자세를 잡았다.
***
그 시각.
부서진 리조트를 뒤로하고 드넓게 펼쳐진 하와이의 카이마나 비치.
하와이에서 생존한 소수의 플레이어가 한 곳에 뭉쳐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키이이잇!
그도 그럴 게, 해안을 장악한 무리는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탱커 플레이어인 하운드는 제 몸만 한 커다란 방패를 꽉 쥐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이벤트라는 얘기를 듣고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이 자리에 섰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관리자의 말을 거역해선 좋을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상상해 보지 못했다.
‘함정인가?’
설마 관리자가 플레이어의 씨를 말리려고 이런 괴랄한 짓을 꾸몄을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하운드는 일단 결론을 보류했다.
수많은 몬스터가 카이마나 비치로 몰려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녀석들을 공격성을 보이질 않았다.
“그나저나 하와이에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었다니…….”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최근에 겨우 외지에서 건너온 플레이어 덕택에 지구의 상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해서 하와이엔 생각보다 던전의 개수도 적었고, 몬스터도 많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
“이거 어쩌면 여태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한편 하운드는 허공에 떠오른 영상을 주목할 수 있었다. 그곳엔 한 인영이 무려 ‘헬 난이도’의 테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지냈던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하는 그는, 전혀 생소한 자라는 걸 깨달았다.
듣기론 해안에 몰린 수많은 몬스터의 주인이 바로 그라고 했다.
“누구 아는 사람 없어?”
“글쎄. 나도 처음 보는데?”
“대체 누구지? 어떻게 이리 많은 몬스터들을 부리는 걸까.”
“……S급 테이밍 스킬이라도 가졌나.”
설령 그렇다 해도 물경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를 일시에 다룬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드림 사이드 1에서 이름을 좀 날렸던 천외천들이라면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적어도 그가 알기엔 천외천 중 몬스터를 다루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지켜보자. 솔직히 헬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는데 잘됐네.”
그리고 테스트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운드를 비롯한 하와이의 플레이어들은 눈앞에 나타난 일련의 장면에 헛웃음을 지었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야.”
‘하늘 밖의 하늘’이라 불리는 ‘천외천’이라면 가능한 플레이였을까. 하운드는 쓰게 웃으며 영상의 마지막을 바라봤다.
[1일 차 ‘헬 난이도 – 몬스터 파크’의 자격 테스트가 종료됩니다.] [통과자는 ‘1명’입니다.] [위치 : 하와이 카이마나 비치]백발의 머리를 흩날리는 남자는 유유자적 포탈을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