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69
◈ 269화
해왕(海王).
말 그대로 ‘바다의 왕’이라 불리는 S급 몬스터이자, 용조차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
공교롭게도 강서준은 이 녀석을 상대로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소문은 익히 들어 봤지만…….’
해왕의 거주지는 드림 사이드에서도 동쪽 끝인 블랙 그라운드 너머에 있는 ‘세상의 끝’이다.
거긴 찾아가는 것부터 일일뿐더러 구태여 가더라도 큰 보상을 얻기도 곤란한 지역.
아마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그곳도 탐사해 봤을지도 모르지만, 드림 사이드는 그전에 섭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겉보기엔 그다지 강해 보이진 않아. 흐음…….”
각 생명체에겐 마력의 총량이 존재한다.
그리고 레벨이 오를수록 마력의 총량이 늘어나 그 덩치가 커지는 게 당연한 특징.
특히 몬스터는 그 특징이 도드라져 보통 400레벨을 넘기기까진 강하면 강할수록 그 크기가 커지곤 했다.
‘하지만 S급부터는 달라.’
S급 몬스터는 알고 보면 각자 마력의 총량은 대단히 차이 나질 않을 것이다.
그쯤부터는 크기도 커지기보단 오히려 작아진 녀석도 슬슬 나타날 시기니까.
‘S급에서 실력을 가르는 기준은 마력의 정제된 정도.’
한마디로 똑같은 100의 마력을 갖고 있더라도, 질적인 차이로 인해 그 수준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해서 개미처럼 작은 주제에 S급 명함을 달고 있으면 오히려 그 녀석을 경계해야 한다.
마력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개체의 크기를 줄일 만큼 마력도 그만큼 정제시켰다는 증거니까.
‘변신의 권능을 가진 그래고리도 이건 숨기지 못해.’
리카온 제국, 목성의 마왕 ‘쥬톤’도 인간처럼 작아질 수는 있겠지만, 실상 외관만 그리 변했지 마력은 주체하질 못하고 잔뜩 흘려 대질 않았던가.
강서준은 침음을 삼켰다.
‘그러니 눈앞의 이놈은…….’
종전에 강서준에게 가했던 일격과 해왕의 정보를 조합해서 겨우 결론을 내렸다.
즉 놈은 겉보기엔 약해 보일 정도로 한 점의 마력조차 흘리지 않는 극도의 정제 상태란 것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괴물이군.’
모르긴 몰라도 저놈 하나가 수백 개의 물기둥과 몰아치는 해일보다 더 높은 벽이 될 것이다.
진짜 괜히 헬 난이도가 아니다.
“후우…….”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념을 하나씩 지워 냈다. 눈앞의 벽이 제아무리 높고 고강한들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할 일은 같았다.
‘돌파한다.’
잠시 내려 뒀던 내부의 전원을 모조리 올렸다. 동시에 가진 모든 마력을 개방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킬, ‘맹수의 울음(S+)’을 발동합니다.] [스킬, ‘광속(S+)’을 발동합니다.]마력이 진동하며 사방으로 맹수가 울부짖었다. 멀리서 하품을 쩍 해 대던 해왕도 이쪽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호오…… 멜빈 그 애송이의 검술인가.”
일순 강서준의 지근거리로 도달한 해왕은 턱에 손을 괴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바다를 가를 때 알아봤지만 역시 조예가 깊어.”
강서준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녀석을 경계했지만, 해왕은 별다른 공격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가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넌 멜빈과 무슨 사이지?”
강서준은 가만히 눈살을 찌푸리며 해왕을 직시했다.
‘멜빈’을 언급할 때부터 눈치챈 일이지만, 이놈도 역시 전생인 케이스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안 그래도 골칫덩이가 더더욱 큰 문제로 커진 느낌이다.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보는 해왕은 마치 그리운 연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애틋한 얼굴을 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러더니 놈은 순식간에 뒤로 멀어져, 종전에 섰던 허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시험은 시험이야. 네놈이 멜빈과 어떤 긴밀한 관계에 있더라도 넌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야.”
그 순간 공기가 무거워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대단위의 마력에 숨이 턱 막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하질 못하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젠장…… 더럽게 강하네.’
강서준의 현재 수준은 간신히 A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정도였다.
지난 한 달간 숱한 수련과 레벨 업을 통해서 꽤 자신감도 생겼더랬다.
세계의 진척도가 아무리 빨라진다 한들, 강서준도 그에 알맞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이벤트에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자만했나.’
방심하지 마라. 이 게임은 드림 사이드다.
하늘 밖의 하늘에 섰다면 이젠 우주를 상대해야 하는 게임!
누누이 말하지만 드림 사이드는 망겜이라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더럽게 어렵기로 유명하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어느덧 강서준의 전신에 도깨비 갑주가 걸쳐졌다. 검신엔 도깨비불이 활활 타오르고, ‘블러드 석션’마저 발동하여 제각기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진동한 마력과 공명하여 그의 전력이 고스란히 재앙의 유성검으로 닿았다.
‘영역 선포.’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영역 선포’를 발동합니다.] [칭호, ‘도깨비의 왕’을 확인했습니다.] [‘핏빛 도깨비의 달’이 선언됩니다.]해왕과 강서준을 중심으로 원형의 돔이 생성되더니, 곧 기둥이 곳곳에 생겨났다.
하늘엔 붉은 달이 떠오르고 ‘헬 난이도의 정동진 해안가’는 오직 강서준의 필드로 변모했다.
[이곳은 ‘핏빛 도깨비의 달’이 떠오른 영역입니다.] [영역 내의 존재에게서 피를 강탈합니다.] [해당 효과는 5분간 지속됩니다.] [영역 선포자 : 강서준]하지만 이 모든 힘을 발휘했음에도 해왕에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체감한다.
녀석은 여전히 느긋한 태도였고, 그를 업신여기는 눈빛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거야.’
솔직히 녀석의 현재 레벨은 추측할 수 없었다. 400은 그냥 넘길 터였고. 어쩌면 그 후반에 머물지도 모른다.
‘카무쉬 녀석 같군.’
물론 S급 보스 몬스터였던 ‘흑룡 카무쉬’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체감상 그 강함은 카무쉬처럼 막연할 뿐이었다.
해왕은 전력을 발휘한 강서준에게 그저 손가락만 까딱이며 말했다.
“자, 와라……!”
그 오만한 태도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신경 쓰진 않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강서준의 두 눈이 금빛으로 물들며 허공의 모든 정보를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 꾹 참으며, 오직 검의 끝으로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핏빛 도깨비의 달은 원거리에 있는 해왕의 피를 끊임없이 강탈해 댔다.
그 또한 강서준의 힘이 되었다.
‘어마어마하군.’
정제된 마력이 물밀 듯이 들어오자 오히려 제어하는 게 더 곤란할 지경이다.
반면 피를 빨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왕은 그다지 대응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신기하단 얼굴로 강서준을 바라볼 뿐이다.
강서준은 눈을 번뜩였다.
‘이 정도면 되었다.’
진동시킨 마력에, 이매망량 모드에, 영역까지 선포하여 녀석의 피를 흡수했다.
이보다 더욱 강한 버프 상태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들끓는 마력이 전신을 폭발시킬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힘을 방출하지 않으면 그가 먼저 죽을 것이다.
[스킬, ‘초재생(S+)’을 발동합니다.] [스킬, ‘초재생(S+)’을 발동합니다.]연신 부서지고 회복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공격에 앞서 강서준은 어렴풋이 과거의 한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분명…… 하늘을 베었다.’
리카온 제국으로 게이트를 넘던 데칼을 향해 날린 공격.
사실 그 일격은 터무니없다.
0115 채널에서 날린 공격이, 0116 채널에 있는 데칼에게 닿은 셈이니까.
‘태산 가르기’나 ‘필사의 참격’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는 어딘가 설명이 부족했다.
즉 거기엔 무언가가 숨어 있다.
‘천(天)’의 묘리.
고정된 물체를 가르는 힘을 ‘태산 가르기’라 하고, 유동적인 물체를 가르는 힘을 ‘바다 가르기’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천’의 묘리인 ‘하늘 가르기’는 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
‘하늘을 가른다는 건 형태가 없는 물질을 베는 것과 같아.’
그리고 데칼에게 닿았던 공격은 형태가 없던 물질을 넘어야만 가능한 일격이다.
여기서 강서준은 핵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형태가 없는 물질…….
한 달간의 수련 끝에 그는 결론에 다다라 있었다.
‘공간.’
혹은 차원.
하늘을 가르는 첫 번째 묘리는 바로 ‘공간을 가르는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구!
준비 과정부터 요란한 강서준의 일격은 창졸간에 휘둘러졌다.
빠르게 해왕에게 접근한 그의 검이 혜성처럼 긴 꼬리를 그리며 녀석의 몸을 베어 내고 있었다.
[스킬, ‘공절(S+)’을 발동합니다.]동시에 그는 모든 힘이 소모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에 데칼에게 본능적으로 발현해 낸 ‘공절’은 게이트를 통해 얕아진 공간을 베어 냈을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멀쩡한 공간을 베어 낸다는 건, 그 자체로 현상을 비트는 행위였다.
어지간한 체력 소모로는 해낼 수 없는 기술!
아마 멜빈 황제는 이 기술을 만들고도 쉽게 사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건 단발기니까.’
이른바 ‘필살기’였고, 전력을 다한 최선의 일격이다.
“……!”
한편 강서준은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분명 공간 자체를 베어 내는 힘으로 ‘해왕’을 벴다는 느낌은 선명했다. 그 타격감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의 필살기는 먹혔다고 봐야 한다.
근데 정작 공격을 당한 당사자인 해왕은 별 대미지조차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굉장하군.”
놈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과연…… S급 몬스터는 다르단 걸까.
이놈을 상대하려면 전성기의 케이가 가진 모든 힘을 되찾기 전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게 안 통한다면…….’
강서준의 영혼이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점차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수단은 남았고 싸울 의지는 충분했다.
하지만.
“합격이다.”
뭐?
반문할 틈도 없이 해왕의 몸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강서준을 보며 말했다.
“내 몸에 진짜 대미지를 입힌 존재는 네가 처음이다. 굉장해. 고작 그 레벨에…… 그래. 너의 활약을 기대하지.”
그 말을 끝으로 해왕은 사라졌고.
“……뭐야, 이게.”
황당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강서준의 시야엔 덩그러니 포탈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
츠츠츠츳!
빛이 소멸하고 한쪽에 켜졌던 모니터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가만히 이를 바라보던 한 남자가 울컥 피를 토해 내며,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그는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 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과연 새로운 도깨비의 왕인가.”
그의 시선엔 다른 각도에서 촬영되는 한 영상이 있었다. 아마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을 한 해안가의 모습.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서히 포탈을 넘는 강서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케이, 너라면 정말 닿을 수도 있겠어.”
그는 종전에 강서준이 날렸던 일격을 회상했다.
처음엔 어떻게 된 연유인지 ‘멜빈의 기술’을 따라 하기에 놀랐고, 그다음은 거기서 발현된 황당한 성능에 감탄했다.
“공간을 베어 내는 힘이라…….”
공간 자체를 베어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멜빈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미지의 기술’이었으니까.
애초에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한 방 먹었어.”
그는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분신’이 방심해서 당한 일이지만, 그 일격이 본체에도 영향을 줬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려나.”
그의 눈앞엔 수많은 모니터가 펼쳐져 있었다. 지구 전역에서 시행 중인 동쪽 해변의 이벤트 영상!
그는 그 순간에도 수십 개의 영역에서 분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서준을 다시 한번 눈여겨본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잘해 보거라. ‘몬스터 파크’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