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70
◈ 270화
진백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을까.’
강서준의 헬 난이도 테스트 영상.
바다를 가르는 터무니없는 행동부터 하늘을 누비며 각종 장애물을 넘나들던 모습.
끝내 ‘해왕’이란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장면까지 지워지지 않는 잔상처럼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진백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에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재능’이 있다고.
이 재능만큼은 천외천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설령 케이조차도…….
‘무한동력(無限動力).’
진백호는 외부의 마력을 자신의 힘처럼 사용할 수 있는 특이체질이었다.
그 덕인지 ‘불의 정령왕’과 ‘물의 정령왕’이 그의 몸에 귀속되었고, 이는 사실상 무한한 원료를 가진 채로 최강의 무기를 손에 쥔 셈이었다.
그의 스승인 켈조차 말했다.
「“넌 세상을 좌우할 힘이 있어.”」
거듭된 훈련으로 자신의 힘에 더욱 적응한 진백호는 요즘 들어 그 말을 한껏 체감했다.
그의 힘은 무한하다.
말 그대로 외부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기술이기 때문에, 그에게 마력의 한계란 있을 수 없다.
‘그래. 나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진백호는 속으로 다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강서준의 테스트는 끝났지만, 그의 테스트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잠시 부재했던 스승이 그에게 달라붙어서 주야장천 훈련시켰던 한 달의 시간.
그의 부족한 정신력을 견고하게 갈고닦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도…… 나도 강서준 님처럼!’
하지만 소심한 성격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을까.
크콰카카카카칵!
출발선에 서자마자 눈앞으로 밀려오는 해일에, 진백호의 얼굴이 대번에 새하얗게 질렸다.
순식간에 의심도 자라났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손이 덜덜 떨리고 안 그래도 뛰던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머리가 새빨간 홍시처럼 익고 있었다.
‘나 따위가?’
“아…… 아아!”
긴장이 금세 몸을 억죄어 왔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진백호는 해일이 그를 덮치기 직전까지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
돌연 그의 머리 위로 차가운 물이 확 쏟아진 건 그때였다.
진백호는 멍한 시선으로 한쪽을 바라봤다. 아쿠아가 앙칼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 귀속시킨 주제에 물을 무서워해선 어쩌자는 거야?
진백호는 그를 덮치려던 해일이 허공에 멈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쿠아가 힘겹게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더는 도와줄 수도 없어. 얼른!
그제야 진백호는 자신이 어디에 섰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머리를 가득 채우던 수많은 잡념도 미련 없이 털어 낼 수 있었다.
켈이 말하지 않았던가.
‘할 수 있냐, 없냐’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정령사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생각은 오직 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나도 강해지고 싶어.’
악몽 같은 천안의 나날에서 그를 구해 냈던 ‘그 사람’처럼.
포탈 던전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거뜬히 견뎌 낸 수많은 ‘플레이어’처럼.
악마가 도래하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무자비한 침공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던 ‘영웅’처럼.
진백호의 꿈은 옛적부터 하나였다.
‘다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의지를 되새기고 정면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러자 진백호의 시선에 닿은 해일은 순식간에 양쪽으로 갈라졌다.
새삼스럽지만 아쿠아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둥둥 떠올랐다.
-그래. 네가 물을 무서워해서 어쩌자는 거야.
진백호는 ‘물의 정령왕’을 다루는 자였다.
그리고 물의 정령왕은 물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존재.
바다는 그의 무대였고, 힘이었으며, 두려워할 대상조차 될 수 없다.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은 진백호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요동치던 바다가 거짓말같이 잠잠해지고 있었다.
그는 표면 장력을 일으켜 바다 위를 천천히 걸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날 방해하지 마.’
서서히 형태를 바꿔 가며 벽을 세우려던 바다가 다시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줄기는 그에게 닿기도 전에 소멸했다.
그에겐 ‘무한동력’이 있고, 정신력만 버텨 준다면 이깟 바다 정도야 지배할 수 있다.
주르륵…….
물론 아무런 대가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코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여태 분주하게 이 테스트를 넘으려던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탄식할 정도로 그는 간단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곧 그의 앞으로 ‘해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넌…….
그의 기억대로라면 ‘해왕’은 강서준에 의해 소멸한 몬스터였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여긴 시스템의 공간이다.
몬스터가 리젠된들 이상하지 않다.
그보다 진백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력을 더욱 날카롭게 가공했다.
해왕도 그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다스리는 존재였으니,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였다.
‘나도 강서준 님처럼!’
그의 목적지는 멀리 찬란하게 빛나는 별 같은 존재였다. 당장 눈앞에 있는 장애물 따위는 거기까지 닿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을 넘는 데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왕은 진백호를 보며 턱을 잠시 쓸더니 말했다.
-무한동력이로군. 좋다. 통과다.
“……네?”
진백호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해왕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의 앞으로 포탈이 고요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
강서준은 초조한 심정으로 영상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같은 생각인지 켈도 두 손 꼭 모아 기도하듯 몰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된 것이다.
‘한 달을 수련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으니…….’
하지만 기권이 있는 이벤트에서 크게 위험할 일은 없었다.
꽤 강해진 진백호는 그 정도는 해낼 아이였으니까.
게다가 일부러 그에게 공략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 먼저 시험까지 치르질 않았던가.
여기까지 해 줬는데도 못한다면, 진백호는 정말 가망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진백호는 순조롭게 테스트를 공략해 나갔다.
“크으으 역시! 누가 가르쳤는지 정말 잘하네!”
유난히 좋아하는 켈을 바라보며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이후로 ‘해왕’을 만나고 포탈까지 걸어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여긴 좀 의외였다.
‘주요 인물의 특혜라고 봐야 하나.’
솔직히 해왕이 저리 쉽게 진백호를 통과시킨 이유는 알지 못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오직 주요 인물이라는 진백호의 출신뿐.
‘아니면 테스트 통과 조건이 아예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어.’
강서준도 해왕을 어찌하여 넘게 됐는지 이해하질 못하는 마당에, 진백호의 통과 이유를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알아낼 방법이 없는 문제에 고민해 봐야 답은 없고, 무엇보다 진백호가 통과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행운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야.’
츠츠츠츳!
한편 테스트 장소엔 파랑이가 새로 출전하고 있었다.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스펙은 이미 S급이지만 제어하는 수준이 아직 그보다 한참 못 미치는 아이였다.
어떻게 보면 진백호랑 비슷한 상태였는데…….
‘어련히 잘 해내겠지.’
걱정은 되진 않았다.
얜 어지간해선 안 죽으니까.
실제로 그녀는 순조롭게 공략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물을 다루는 수룡답게 바다에선 그녀도 꽤 천하무적이었다.
결국 해왕에게 닿았고.
-통과다.
“오!”
너무나도 쉽게 합격 통보를 받았다.
“파파왕! 나도 해냈어!”
해맑게 웃으며 포탈을 건넌 파랑이를 보면서,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대체 통과 조건이 뭐야?’
정말 알다가도 모를 테스트였다.
해왕의 개인 취향인가?
강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진백호가 겨우 숨을 돌리며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진백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사방을 확인한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포탈 너머의 이곳은 안개만 뿌옇게 번져,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항해 중이라는 것만 알았다.
“‘안개에 뒤덮인 해역’이라더군요. 저도 이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드림 사이드 1에서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유형이다.
강서준은 흔들리는 뱃머리를 보며 말했다.
“어디든 긴장을 놓진 말아요.”
“네.”
그리고 여유는 잠시였다.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나무배는, 금세 울렁이는 큰 파도를 만나 위아래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진백호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바다가 제 말을 안 들어요!”
해왕의 제어마저 빼앗던 진백호의 힘!
무한동력으로 바다 자체를 지배하던 그의 권능이 속수무책으로 통하질 않고 있었다.
‘마력이 폭주하고 있어.’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으며 일단 오가닉에게 진백호를 붙잡으라고 명을 내렸다.
파도가 점차 거세게 휘몰아치며 배 위로도 넘실거려 각종 물건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일단 버텨요!”
강서준도 기둥을 붙들고 위아래로 요동치는 뱃머리를 바라봤다.
멀리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사이클론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용케 배는 그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는 와중이었다.
쿠구구구구궁!
하늘에선 벼락이 수십 갈래로 나뉘어 바다를 내리쳤다.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배가 잠시 허공을 날기도 했다.
어느 순간 배가 뒤집히고, 원상 복구되며,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커헉……!”
강서준은 오가닉의 손아귀에 붙잡혀 겨우 숨을 헐떡이는 진백호를 바라봤다.
방금 배가 뒤집혔을 때 자칫 진백호가 떠내려갈 뻔했다.
‘진짜 개 같은 이유로 섭종당할 뻔했네.’
강서준은 폭풍우 너머를 바라보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마력은 점차 잔잔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견뎌요!”
“……네!”
잔뜩 물먹어서 새파랗게 질린 진백호는 순간 정면을 응시하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안개 속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빠르게 스치듯 날아간 것이다. 단순히 공포에 헛것을 본 건 아니었다.
‘저건…….’
강서준도 똑같이 그걸 발견했고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서 고롱이와 함께 기둥에 꼬리를 만 채로 꾸준히 버틴 파랑이를 바라봤다.
‘……우연일까?’
이 모든 일의 시작.
리루르크로 인해 파생된 ‘용’의 탄생…… 그리하여 망가진 밸런스가 지구를 위협하기에 벌어진 이벤트.
지구의 명운이 걸렸다는 샛별의 말도 강서준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갔다.
어느 순간 그의 머리맡으로 햇살이 드리웠다.
“……허억!”
잠시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그들은 어느덧 고요하게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었다.
종전의 폭풍이 가짜였던 것처럼.
고개를 돌려 후미를 바라보니 짙은 안개와 검은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내리치는 게 보였다.
강서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풍의 눈…… 같은 건가?”
어쨌든 그들은 잔잔한 해역으로 돌입했고, 여태 아무것도 안 보이던 시야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있었다.
“섬이네요.”
섬의 중앙엔 커다란 화산이 있고, 그 아래로 대단위로 녹림이 우거진 형태였다.
해안가 근처는 암벽으로 둘러싸였으며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철썩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곧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곧 메인 이벤트인 ‘몬스터 파크’가 시작됩니다. 참가자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배는 천천히 섬을 향해 나아갔다.
해안가엔 이미 도착한 배 여러 채가 있었다.
강서준은 그들이 ‘이지 난이도’와 ‘노말 난이도’를 통과한 플레이어란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미간을 좁혀 그쪽을 바라보던 강서준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플레이어들이 해안가에서 더는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무언가와 대치하고 있었다.
‘몬스터?’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종류도 되게 다양하군. 어떻게 된 일이지?’
신기한 건, 전혀 다른 종족이 뭉쳐 있는 주제에 서로 대립조차 하질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플레이어들을 앞두고 공격성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으음?’
문득 강서준은 소름 끼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옆에서 진백호가 신음을 흘리며 그의 소맷자락을 쥐었다.
“가, 강서준 님…….”
외부의 마력을 활용하는 ‘무한동력’의 소유자이기에, ‘류안’을 가진 강서준만큼이나 마력에 예민한 그였다.
진백호는 안개 너머에서 새로 등장한 배를 바라보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강서준도 그쪽을 응시하고 금세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돌연 모습을 드러낸 뱃머리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그리트.”
[화룡의 해츨링 ‘마그리트(A)’가 당신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