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76
◈ 276화
쿠우우우우웅!
폭음은 먼 곳에서부터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의식적으로 그쪽을 바라봤고,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며 마을로 들이닥치는 건 엄청난 규모의 토사물!
흙으로 이루어진 무지막지한 해일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 산사태다!”
“으아아아아!”
마을의 외곽을 부수면서 다가온 산사태는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이 선 자리까지 밀려왔다.
건물은 무너지고 몇몇은 벌써 휩쓸려 비명에 사라지고 있었다.
마을은 대번에 아비규환에 빠져들었다.
“로켓! 켈!”
강서준이 앞서 달려 나가며 백귀들에게 명을 내렸다.
땅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로켓이 벽을 세워 산사태의 속도를 늦췄고, 켈은 정령 마법으로 공기의 벽을 세워 토사물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조차 잠깐이었다.
쿠콰카카카칵!
밀려오는 산사태의 규모는 마을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져 있었고, 류안으로 살펴보니 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었다.
‘이건…… 마법이로군.’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산사태.
즉 누군가가 마을을 습격하기 위해 일부러 마법으로 자연재해를 모방해 낸 것이다.
“모두 뒤로 물러나!”
그나마 링링이 앞으로 나서 전력으로 마력을 개방하자, 상황은 나아질 수 있었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쏘아진 마력이 벽을 만들었고, 그대로 산사태는 허공에 멈추어 섰다.
리트리하도 방패를 전면으로 내세워 거대한 무형의 돔을 완성하니, 조금씩 소란도 진정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일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기에, 플레이어들은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배로 도망가! 마을에 있다간 몰살이야!”
“각 지부별로 움직여요! 유니온은 플레이어를 선도합니다!”
“이쪽입니다! 침착하게 빨리 움직이십시오!”
그래도 숱한 전쟁을 치러 본 일당백의 플레이어들이었다.
혼란은 오래가질 못했고, 일사불란하게 해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복잡했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침착함이 그들에게 있었다.
-크으으 장관이로군!
하지만 해안의 한쪽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가 있었다.
덩치가 2미터는 넘는 거구가 엄청난 마력을 끌어올리며 도망치는 플레이어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놈은 일시에 바닷물을 끌어올려 플레이어들을 겨냥하며 말했다.
-네놈들이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크콰카카칵!
배로 향하던 플레이어들은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뒤쪽은 밀려오는 산사태를 겨우 붙잡아 둔 형편이요, 앞쪽은 새로 해일이 몰아닥치는 상황이다.
심지어 두 재난에 끼어 샌드위치 꼴이 될 법한 이들은 대개 저렙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으아아아! 살려 줘!”
-그래! 울어라! 울어! 크큭!
인간의 비명을 곱씹으며 실컷 여운을 즐기는 사내. 강서준은 녀석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바닷물을 저 정도로 다루는 마법사이자, 현 상황에서 저런 만행을 저지를 놈은 하나였으니까.
‘수룡의 해츨링인가.’
짧게 혀를 찬 강서준은 이내 그쪽에 대한 신경을 접기로 했다.
수룡의 해츨링을 향해 당당히 그 힘을 드러낸 한 인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백호.’
물을 다루는 데에 있어선 고작 해츨링 따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위의 힘을 다루는 자.
그라면 해츨링 하나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파랑아. 진백호를 좀 도와줄래?”
“……맨입으로?”
“언제 한 번 하루 종일 핸드폰 만지게 해 줄게.”
파랑이는 흔쾌히 수락하며 해안가 방향으로 날아갔다.
만약을 대비해서 오가닉도 붙여 뒀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강서준은 이젠 완전히 해안 쪽으로의 시선을 접고 산사태 방향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다시 무너질 것만 같은 산사태는 어째 그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산사태 너머로 거대한 마력이 세 개 정도 뭉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산사태를 일으켰을 주범.
‘해츨링들.’
모르긴 몰라도 8일 차가 시작된 것과 동시에 해츨링들이 이곳을 침략해 온 게 분명했다.
‘근데 이상하군.’
그가 기억하기론 현재 섬에 진입한 해츨링의 숫자는 대략 일곱 마리였다. 해안의 한 마리까지 더한다면 당장 마을에 있는 해츨링은 총 네 마리.
‘나머지 세 마리는 어디 갔지?’
놈들이 협공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 하긴 했지만, 구태여 협공을 하는 와중에 세 마리만 동떨어질 이유도 없었다.
곰곰이 고민하던 강서준의 옆으로 링링이 다가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케이. 이거 함정이야.”
“뭐?”
“우리들 발을 묶어 두려는 꼼수라고.”
강서준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과연 인간들의 발을 묶어 두고, 세 마리의 해츨링은 어디로 향했을까.
답은 빤했다.
“용의 시험을 보러 간 거로군.”
8일 차의 핵심은 PVP가 아니었다. 상위 12위 안에 든 자는 용의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
즉 네 마리의 해츨링은 마을을 침략하고, 나머지 세 마리가 용의 시험을 보러 떠난 것이다.
“또 쫌생이 같은 짓을…….”
가히 정정당당이란 개나 줘 버린 해츨링다운 계략에 강서준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여긴 저희가 막겠습니다! 상위권 여러분들은 부디 이벤트 공략을 부탁드립니다!”
비슷한 결론을 내린 유니온은 바쁘게 링링이나 리트리하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마력을 여러 사람의 마력으로 주춧돌을 세우고, 산사태에 대한 새로운 버팀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츨링들이 준비한 수는 산사태가 전부가 아니었다.
크오오오오옥!
산사태 너머로 수많은 몬스터가 괴성을 질러 대며 하나둘 마을을 향해 뛰어내린 건 그때.
몇몇은 산사태에 같이 휩쓸려 왔는지 흙더미 속에서 바로 달려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몬스터의 괴성과 인간의 함성이 겹치고 있었다.
-키아아아앗!
“으아아아앗!”
하지만 강서준은 난장판이 된 마을을 잠시 둘러보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검을 수납했다.
마을의 상황은 시시각각 위기로 내몰리고 있었지만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갑시다.”
[1시간 이내에 시험장에 입장하십시오.] [시험장은 ‘화산둥지’입니다.]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제한 시간을 알려 왔고, 멀리 화산의 위로 거대한 포탈이 일렁이고 있었다.
***
마그리트는 멀리 흙더미에 뒤덮이는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의 옆에서 풍룡의 해츨링인 ‘엘라빈’이 탄성을 뱉었고, 화룡의 해츨링인 ‘젠’은 흡족한 듯 웃고 있었다.
-오만한 인간들. 감히 용의 섬에 발을 디디더니 꼴좋구나.
-마음 같아선 나도 힘 좀 쓰고 싶은데 말이야.
하지만 그들에겐 그보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는 건 나중에 해도 될 일.
-그나저나 마그리트.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작 인간들을 이 정도로 경계할 필요가 있어?
-글쎄.
마그리트가 말을 흐리자, 젠은 짓궂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쫀 거 아니야?
-뭐?
-너 인간에게 죽었었잖아.
마그리트의 눈엔 대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땐 방심을 했었…….
-방심. 뭐?
-아니다. 됐다.
마그리트는 말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이 젠에겐 어찌 비춰졌는지 녀석은 더욱 미소를 짙게 그리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겁먹은 게 맞네. 다른 용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흐음…….
마그리트는 자신만만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젠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 시선엔 인간 따위가 감히 자신을 어찌할 수 없으리란 오만한 확신이 가득했다.
응당 용이라면 가질 법한 자신감.
마그리트는 그 심정을 일부 공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전생을 하고 지구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건, 이들은 너무나도 나약하다는 사실이다.
‘만지면 부서지는 너무나도 나약한 종족.’
드림 사이드 1의 세계는 시작부터 꽤 강한 인간들이 더러 있던 곳이었다. 해서 완전한 성장을 이룩하기 전엔 해츨링들은 그나마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게 기억난다.
아예 그들끼리 뭉쳐 ‘해츨링의 요람’을 만든 이유가 뭐겠는가.
모든 각성을 끝내기 전엔 숨어 지내기 위함이었다.
‘그에 비해 지구는 전사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세계.’
마그리트도 이 섬에 진입하는 그 순간까지 ‘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인은 나약하다. 경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젠. 네 말이 맞아.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이전 세계에 비해 약해. 확실히 그들과는 달라.’
다를 것이다.
지구의 인간들은 분명 약해 빠졌지만 성장 속도가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으니까.
마그리트는 오히려 지구의 인간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심해선 안 돼.’
마그리트는 이벤트가 시작할 당시에 케이와 맞붙었던 순간을 상기했다.
PVP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일단 부딪친 이유는, 좀 더 녀석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하등한 종족이지만, 그의 용아병을 부순 유일무이한 존재였으니까.
이전 세계에서 그의 목숨을 빼앗은 증오스러운 인간이기도 했다.
과연 그의 현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지구로 넘어와 수많은 사람을 겪어 본 그였기에, 약간은 겁을 줄 생각으로 저지른 기습이었다.
그리고 마그리트는 바로 깨달았다.
‘케이는 여전히 케이였어.’
심연으로 빨아들일 것만 같은 금빛의 눈동자.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태도.
보란 듯이 용의 이빨로 가공한 단검을 내민 여유까지.
물론 당시의 수준은 그와 비등하거나 그보다 낮은 수준이라, 어느 정도 얕잡아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세 따라잡았지.’
지난 나날 고생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그때마다 격렬하게 이기고 싶던 몬스터 파크의 순위가 떠올랐다.
그는 끝까지 케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상대는 케이야.
마그리트가 성난 분노를 차갑게 가라앉히며 말하자, 엘라빈과 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쫄 거 없어.
-왕의 시험만 끝낸다면 그깟 케이쯤이야……!
마그리트는 슬슬 보이는 화산지대를 올려다봤다.
본래 화산지대는 헬 난이도의 몬스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해야 마땅했지만, 8일 차부터는 이곳에 단 하나의 몬스터만이 등장한다.
쿠구구구구구!
Lv. ???
화산지대에 나타나는 드래곤 로드의 용아병으로부터 ‘입장권’을 회수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사실상 ‘용의 시험’에서 펼쳐지는 첫 번째 시험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린 일단 입장권부터 모으자고.
하지만 용아병을 공격하기도 전에, 젠은 울컥 피를 토하며 뒤를 돌아봐야만 했다.
-커헉…… 이, 이게 무슨……?
젠의 심장을 꿰뚫고 마그리트의 손이 튀어나와 있었다.
멀리 용아병이 이쪽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고, 마그리트는 차분하게 젠의 심장을 빼내어 자기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이대로는 안 돼.
-너…… 지금 무슨!
뒤이어 엘라빈에게 접근한 마그리트가 날카로운 손톱을 빠르게 휘둘렀다. 당황한 엘라빈이 간신히 수비해 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이곳은 화산.
화룡의 해츨링인 마그리트에겐 한층 버프가 생겨나는 공간이다.
-젠!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야! 젠!
엘라빈이 더욱 당황하는 건 심장이 꿰뚫린 젠이 더는 움직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엘라빈의 전신을 찢어발기더니 이내 녀석의 심장을 파헤쳐, 그대로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엘라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곧 엘라빈의 눈동자에서 색깔이 사라지고 점차 몸은 바닥으로 허물어져 갔다.
마그리트는 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괴물을 쓰러트리려면 나도 괴물이 되어야 하거든.
마그리트는 이번 생에서 방심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가 생각하기엔 이 방법이 케이를 이길 유일한 희망이었다.
[황당한 업적을 발견했습니다.] [칭호, ‘동족 살해자’를 습득했습니다.] [모든 해츨링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용이 당신을 혐오합니다.] [일부 ‘흑룡’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는 하나였다.
[스킬, ‘폭식’을 발동합니다.] [화룡의 해츨링 ‘젠’이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풍룡의 해츨링 ‘엘라빈’이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169,357pt를 습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