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78
◈ 278화
김훈은 불과 하루 전, 우연히 강서준과 진백호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가.’
익히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주제였고, 요즘 들어 그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날 시작했던 최하나나 링링과의 차이는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해서 그가 발길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기엔 아주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때 강서준이 뭐라고 했더라.
「“울타리 안에선 최고가 될 수 없어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무모한 모험도 필요한 겁니다.”」
김훈은 새삼스럽게도 자신의 일주일을 되돌려 봤다. 과연 그는 이번 이벤트에서 어떻게 행동해 왔던가.
‘나도 진백호와 똑같아. 무조건 잡을 수 있는 몬스터만을 사냥했어.’
그리고 이는 지난 1년의 플레이어 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는 방침이었다.
던전에서도 안전이 우선이었다.
사냥에서도 안전이 제일이었다.
그의 능력이 공간이동인 만큼, 늘 안전을 확보하고 싸우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더랬다.
김훈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야.’
그는 그렇게 현 지구의 상위 랭커가 되었다. 어쩌면 천외천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몬스터 파크에서도 일주일간 무려 레벨을 50 가까이 올렸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도 이룩해 냈다.
현재 순위도 대략 20위 안에 들고 있으니,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이 정도도 대단하다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 부족한 거야.’
김훈은 사실 자신이 최하나나 링링보다 부족한 게 뭔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전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게 그가 아니었던가.
“이대로는 뒤처지고 말 거야.”
결국 괴물같이 성장하고 있는 천외천의 뒤를 따라가려면, 그도 다리가 찢어지도록 뛸 줄 알아야 한다.
“나도 모험을 해야 해.”
단순히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쉽게 나오는 결론이다.
레벨 10짜리를 사냥하는 게, 레벨 5짜리를 잡는 것보다 경험치 효율이 높은 법이니까.
위기를 겪을수록 플레이어는 더 단단해지고, 위험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그 수준이 일취월장한다.
‘데스 리스크 데스 리턴.’
그러니 김훈이 당장 할 일은 대단히 단순하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냐?
여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던 지룡의 해츨링이 돌연 김훈의 정면으로 나타났다. 주먹엔 두꺼운 돌덩이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스킬, ‘공간이동(S)’을 발동합니다.]빛처럼 점멸한 김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종전에 서 있던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라면 공격 자체를 피해서 멀찍이 도망쳤을 텐데…… 이번엔 아예 딱 공격을 회피할 정도만 이동한 것이다.
“나만 뒤처질 수야 없다고.”
-자꾸 혼자 뭐라고……!
눈을 번뜩인 김훈이 빠르게 해츨링의 어깨를 태그했다. 동시에 발동한 공간이동은 해츨링도 포함하여 그들의 위치를 아예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첨버어엉!
-얄팍한……!
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해안. 바닷물 속으로 공간이동을 해 버린 것이다.
김훈은 해츨링이 발버둥 치기도 전에 더 빨리 공간이동을 시도했다.
이번엔 산소가 희박할 정도로 높디높은 하늘로. 숨쉴 틈도 없이 연속적으로 공간이동을 감행했다.
‘더, 더, 더 빨리.’
-크아아아악!
정신없을 정도로 휘몰아친 공간이동 속에서 지룡의 해츨링 녀석은 괴로운 비명만 질러 댔다.
일부러 공간이동을 하면서 자세를 상하좌우, 빙글빙글 돌면서 하고 있었기에 녀석이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상층권을 뚫고 우주로 나아갈 기세였다. 김훈은 섬이 마치 점처럼 작아졌을 때야 그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정신 나간 짓은 나도 처음이야.”
-이, 인간 놈이…… 그만두질 못하겠…… 우욱!
제아무리 공간이동이 특기인 그라고 해도 이런 연속된 공간이동으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간이동 자체로도 엄청난 피로가 부여되고, 연신 돌면서 공간이동을 해 댔으니 정신력 소모도 엄청났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애써 잡은 지룡의 몸을 놓지 않았다.
“그럼 다시 한번 가 보자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의 해츨링을 데리고 김훈은 재차 공간이동을 감행했다.
올라왔던 것의 역순!
-크아아아아아아!
정신없이 반복된 공간이동으로 빠르게 수직 하강한 그는 지룡의 해츨링을 재차 물에 머리를 처박아 넣었다.
놈이 바동거리며 김훈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김훈은 다시 한번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펑! 퍼펑! 펑! 펑! 펑!
수십 개의 허공을 뛰어넘어 그들은 또 한번 성층권을 돌파했다.
“……이런…다고 네가 죽진…않겠지.”
-크아아앗! 반드시 널 씹어 먹을 테다!
해츨링의 신체는 각성하질 못했다고 해도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숱한 공간이동으로 단련된 김훈의 신체만큼이나, 이놈도 단련되었기에 이 정도 공간이동만으로는 직격타를 날릴 수 없다.
김훈은 눈을 번뜩이며 생각했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김훈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향했다. 점처럼 작아진 섬까지 이어질 하나의 공간이동의 길.
그가 한 차례 왕복한 그 길이 이젠 꽤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력의 잔향, 혹은 공간이동의 잔재.
김훈은 그 흔적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목숨을 거는 건 역시 내 취향은 아니지만…….’
멀리 섬에서 싸우고 있을 플레이어들을 상기했다.
그중 몇몇은 각자 목숨을 걸고 최강의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기에 강했고, 그런 매일을 반복하기에 ‘천외천’이 된다.
“해야 한다면 할 뿐이지.”
왕복된 공간이동으로 괴로워하는 해츨링을 재차 온몸으로 붙들고, 김훈은 바로 아래를 향해 공간이동을 개시했다.
이번엔 단 한 번의 도약이 될 것이다.
‘반복되어 쌓아 올린 공간의 잔재는 일종의 벽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쌓아 올린 벽을 동시에 넘을 때는 신체에 그만한 충격이 가해지기 마련.
이는 링링의 초장거리 포탈의 부작용과 같다.
[무수한 ‘공간의 틈’을 뛰어넘습니다.] [충격이 가중됩니다!]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고, 머리가 작아지고 손과 발은 커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공간의 틈을 단번에 넘은 충격은 그의 신체를 훼손시키고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갔다.
물론 김훈은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의 몸으로 한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특수 포션 치료(S)’를 발동합니다.] [아이템, ‘소생의 포션’을 사용합니다.]유사시를 대비해서 구해 놓은 아이템이, 지금 그의 전신으로 퍼지면서 죽어 가던 심장을 되살려 냈다.
부서지고 회복하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쿠우우우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김훈은 드디어 목적지로 설정했던 처음의 그 땅에 도달했다는 걸 알았다.
그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지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아…… 죽는 줄 알았네.”
아직 요란스러운 그곳에서 켈과 나도석이 다른 해츨링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기왕이면 돕고 싶었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본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기괴한 형체를 확인했다.
[지룡의 해츨링 ‘곤도파고스(A)’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목숨을 건 도박…… 아니 모험의 결과였다.
김훈은 웃을 때마다 폐가 아팠지만 그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은데.”
오늘따라 더더욱 천외천이 존경스러워지는 그였다.
***
빠르게 마을을 벗어난 강서준은 금세 화산의 접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뒤편에서 묵직한 소음이 울리며 전투의 소음이 이쪽으로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최하나가 약간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물었다.
“정말 김훈 씨…… 혼자 괜찮을까요?”
오래 붙어 다녔기에 최하나는 김훈의 역량을 아주 잘 알았다.
솔직히 강서준도 어려울 거라 판단하여 김훈보다는 리트리하를 남겨 놓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걱정을 밀어내고, 그를 남겨 둔 이유가 있었다.
‘김훈만큼 성실한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몬스터 파크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성장 폭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김훈이라면 이번 이벤트에서 어떤 성장을 했을지 기대할 만했다.
‘물론 김훈도 진백호처럼 반드시 이기는 상대만을 고른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조차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오히려 강서준은 그런 김훈의 모습을 장점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진백호는 최강의 무기를 지니고 겁을 먹은 거지만, 김훈은 그게 아니니까.’
그는 신중한 플레이어였고, 그런 그가 나섰다면 단연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허세를 부리는 타입은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보다 우리가 문제입니다.”
류안으로 둘러보질 않아도 헬 난이도 영역엔 기묘한 마력이 들끓고 있었다.
이걸 어떤 기운이라 해야 할까.
꽤나 섬뜩하고 사이한 느낌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링링이 뒤따라 영역에 진입하더니 중얼거렸다.
“왜 마력과 반마력이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는 거지?”
미간을 좁히며 조심스레 화산에 진입한 이들은 머지않아 바닥에 널브러진 두 시체도 발견했다.
왼쪽 가슴 아래가 구멍이 난 채로 죽은 두 사람.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았다.
“해츨링이잖아?”
“왜 여기에 죽어 있는 거야?”
마력과 반마력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흐트러진 이유였다. 놈들의 심장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모종의 마력이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리트리하가 코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불길하군요.”
강서준의 시선은 멀리 화산둥지로 향했다. 요란한 마력은 그곳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 [‘로드의 용아병’이 등장했습니다.]바닥이 흔들리면서 왜소한 체구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엔 대단히 강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 내부로 옹골찬 마력이 가득한 몬스터.
곧 시스템 메시지도 나타났다.
[‘로드의 용아병’으로부터 ‘입장권’을 회수하십시오.]로드의 용아병은 강서준 쪽을 바라보다 대뜸 몸을 돌려, 빠르게 화산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다리도 짧은 놈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점이 되어 버렸다.
[스킬, ‘초상비(A+)’를 발동합니다.]일행은 일단 빠르게 흩어져 곳곳에 토끼처럼 모습을 드러낸 로드의 용아병부터 쫓기로 했다.
초상비에 이어 광속까지 발동하니, 큰 무리 없이 용아병을 붙잡을 수 있었다.
-키아아악!
저격으로 놈을 꿰뚫은 최하나와, 마법으로 아예 포박한 링링. 공간이동으로 용아병을 사로잡은 리트리하까지.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실력은 최상위에 있는 그들은 전부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는 몬스터였다. 바로 튈 줄도 알았으니 금세 잡을 수도 있었다.
“로드의 용아병이 여기서 왜 나와? 설마 여기 ‘드래곤 로드’의 유물이 있는 곳이야?”
“용의 시험이라는 데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귀찮아질 수도 있겠군요.”
그들의 시선이 화산둥지에 이어진 포탈로 향했다.
불길한 마력 줄기가 그곳으로 흘렀고, 새삼스럽지만 아직 살아 있을 한 마리의 해츨링이 그곳으로 향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일단 긴장해야겠어요. 느낌이 심상치 않아요.”
입술을 잘근 깨문 강서준은 눈앞에 드리운 메시지에 한숨을 삼켰다.
[스킬, ‘위기 감지(A)’를 발동합니다.]무수한 경고 메시지가 그의 경종을 울렸고, 화산둥지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에 다가서니 더더욱 저 포탈 너머가 끔찍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처럼 포지션대로 움직입시다.”
일행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자리로 움직였다.
리트리하가 전면에 나서 방패를 앞세우고, 최하나가 중앙에 서서 총구를 겨눴다. 후방의 링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꽉 쥐었다.
이는 게임에서 그들이 자주 하던 포지션.
그리고 강서준은 측면에 선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유사시엔 공격부터 방어나 마법까지 가능한 그만의 자리였다.
“들어갑니다.”
[‘용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입장권을 확인합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