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82
◈ 282화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스템 메시지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히든 포인트 상점?”
첫 페이지부터 S급으로 나열된 아이템 목록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히 ‘히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마왕의 활, 대천사의 창, ……용살자의 검? 이걸 전부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히든 포인트 상점답게 아이템별로 필요한 포인트의 양은 기겁할 수준이었다.
장비 하나에 최소 1만 포인트를 필요로 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이게 첫 페이지란 말이지.”
강서준은 차분하게 뒷장을 넘겼다. 천정부지로 솟는 포인트 양과 얻을 수 있는 진귀한 물건들은 곳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스킬까지 S급으로 된 녀석들을 구매할 수 있는 줄 알았더라면, 지상수에게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포인트를 사 올걸 후회가 된다.
“……뭘 사야 잘 샀다 소문이 날까.”
미간을 좁히며 강서준은 페이지를 쭉쭉 뒤로 넘겼다. 갈수록 필요 포인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젠 개당 5만 포인트를 소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 페이지였다.
“……케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지막 페이지엔 ‘케이’란 이름이 양각되어 있었다.
제목만 봐선 도통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확인해 볼까.”
그리고 강서준은 그 내역에 황당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진짜 된다고?”
***
최하나는 연신 마탄을 발사하며 갖고 있는 모든 마력을 쏘아 냈다.
영혼까지 불태워 신체를 강화한 덕에, 일단 눈앞의 해츨링보다 속도 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녀석은 ‘화룡’의 속성을 가졌다는 점이고, 기본적으로 화룡은 공격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족속이라는 것이다.
타아아아앙!
부지불식간에 발사된 마탄은 마그리트의 분신, ‘화룡 젠’이라 불리는 놈이 일으킨 불꽃에 삼켜졌다.
젠은 고열의 불꽃으로 주변을 휘감아 어떤 공격이든 녹여 버린다.
공간이동탄도 사용해 봤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강자에겐 도통 소용이 없었다.
불시의 일격을 가하려 해도 놈은 주변으로 마력을 흩뿌려 두어, 재빨리 모조리 녹이거나 피해 냈다.
화르르륵!
최하나는 좁쌀처럼 가공된 불꽃이 그녀를 향해 연달아 발사되는 걸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놈, 성장하고 있어.’
하는 말은 ‘ㄱㅡㅇㅓㅇㅓ…….’나, ‘ㅈㅜㄱㄱㅣㅅㅣㄹㅎㅇㅓ.’ 같은 말밖에 없는 주제에, 전투 센스는 또 발군이었다.
종전의 좁쌀 같은 불꽃을 연달아 발사하는 경우도 최하나의 기술을 따라 한 것이다.
투타타타탕!
결국 둘은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대치만을 길게 늘어뜨렸다.
이건 확실히 좋지 못했다.
최하나는 영혼까지 불태워 가며 그 힘을 극대화시킨 상태. 이는 장시간 싸움에서 무리가 갈 정도로 체력 소모가 큰 기술이었다.
반면 상대는 갈수록 신체 능력도 올라가고, 기술의 세련된 효율이나 그 힘도 막강해져 간다.
최하나는 좁쌀 불꽃 사이로 은근슬쩍 휘둘러져 다가오는 바람 칼날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시간이 없어요. 서준 씨.’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의주 방향을 곁눈질로 살펴볼 즈음이었을까.
쿠구구구궁!
강서준의 손아귀로부터 엄청난 빛이 폭사했고, 그 빛은 어두웠던 용의 머리를 순식간에 밝혔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엄청난 힘의 흡입이 생겨나더니 이내 폭풍 같은 기세로 마력이 방출됐다.
“최하나!”
리트리하가 방패를 땅에 박으며 몸을 숨겼고, 공간이동으로 최하나를 붙든 링링이 리트리하의 옆에 안착했다.
곧 마력이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주변의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앱솔루트 실드!”
링링의 지팡이로부터 파생된 마력과 반마력이 엉키고 섥혀 촘촘한 마법을 구성해 냈다.
방패를 중심으로 생성된 작은 원형 돔, 그 위로 덧씌워진 마법은 폭풍을 막아 내는 훌륭한 방파제였다.
“……성공한 걸까요?”
거센 마력 폭풍은 마그리트조차 버티기 버거웠는지, 전투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방패와 앱솔루트 실드에 의지하며 겨우 마력 폭풍을 버티던 일행은 초조한 심정으로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는 폭풍의 중심에서 오롯이 여의주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링링이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낙관하긴 일러. 일이 잘 풀렸으면 저러고 있겠어?”
다행히 폭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가라앉았다. 여의주의 빛이 조금씩 희미해질 즈음엔 마력의 잔재만이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한편 최하나는 마력 폭풍을 대비하여 발을 바닥에 박아 두고 몸을 웅크리던 마그리트를 주시했다.
-여긴…….
분신도 언제 융합했는지, 하나가 되어 다시 눈을 뜬 마그리트의 눈동자엔 더는 흔들림이 없었다.
“……!”
시선을 마주친 최하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치 심연으로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눈동자가 그녀의 온몸을 족쇄로 묶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최하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는 마그리트를 보고도 총구를 겨눌 수 없었다.
[심연의 드래곤 ‘마그리트(S)’를 마주했습니다.] [스킬, ‘심연(S)’에 빠집니다.]실로 아득한 기분이었다.
발밑에서부터 어둠이 몸을 적셔 왔고, 목 언저리까지 금세 물에 잠긴 듯 숨이 막혔다.
정신은 혼미해졌고, 그 순간 이 세상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라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젠장…… 움직여. 움직이라고!’
의지를 다잡아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세 사람은 입으로 스며든 어둠과 코로 치미는 심연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심연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그리 심연에 빠져 허우적댈 때.
“근성이 부족하군.”
최하나는 기적처럼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아마 오직 그것에 붙들고 의지를 해야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뭐 하냐?”
익숙한 목소리.
눈앞에 드리운 거대한 덩치는 한순간에 심연을 억지로 밀어냈다.
그리고 두 눈을 가리던 심연이 사라지자, 최하나를 비롯한 두 사람도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링링이 지팡이를 붙들며 입을 열었다.
“……나도석?”
나도석은 세 사람의 전면에 서면서 마그리트의 심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들 운동 부족이야.”
그러더니 마그리트를 향해 돌진을 감행했다. 그의 뒤편으로 거대한 해왕의 잔상이 뒤따랐다.
그는 순수한 무력으로 마그리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최하나 님! 괜찮으세요?”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다급한 얼굴로 그녀를 부축하는 진백호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곁으로 파랑이나 켈, 여타 다른 플레이어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마일리가 다급하게 힐을 걸어 주며 말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링링은 지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몰라. 그보다 너흰 어떻게 여기에 온 거야? 퍼즐은 어쩌고.”
“퍼즐이요?”
반문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던 링링은 잠시 주변 경관을 살펴본 뒤에 한숨을 내뱉었다.
“케이가 성공하긴 한 모양이네. 던전이 완전히 해제된 걸 보면…….”
제아무리 여의주에서 쏟아진 마력 폭풍이 거세다고 하더라도, 던전 자체에 위력을 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긴 시스템에 의해 보호되는 곳.
설령 던전이 무너지더라도 자체 복구 기능으로 던전 자체가 해체되는 일은 거의 없다.
즉 퍼즐 던전을 통과하질 않고도 이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때는 오직 이 퍼즐 던전이 완전히 공략됐을 때일 것이다.
링링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그나저나 마그리트 녀석…… 완전히 각성해 버렸잖아.”
“……최악이에요.”
김훈까지 가세하여 치료에 전념하니, 최하나도 그나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심연에 중독됐던 탓인지 아직 몸이 먹먹하고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심연의 드래곤이에요.”
최하나의 말에 마그리트를 응시하던 마일리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심연의 드래곤? 용의 무덤 지하에 있던 그 음침한 놈?”
최하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총열을 정비했다. 회복을 마친 리트리하도 옆에 서며 시선을 교차했다.
링링도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나서자, 진백호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직 움직이시면……!”
“너도 따라와. 저놈은 반드시 여기서 죽여야 해.”
“네?”
쿠구구구구궁!
엄청난 폭음과 함께 마그리트를 상대하는 나도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심신합일이 극에 달했는지 심연을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율이 일었다.
그나마 나도석이 있어 다행이다.
“전력을 다해야 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심연의 드래곤이 심연을 완성하면 정말 모든 게 끝이니까.”
링링의 날 선 말투에 다들 영문을 몰라 하는 눈치였지만, 접전을 벌이는 나도석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어쩔 수 없이 긴장의 끈을 조여야 했다.
또한 드림 사이드 1에서부터 천외천이던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용족의 이단아…… 카이셸.’
S급 던전 ‘용의 무덤’의 또 다른 보스 몬스터. 말하자면 흑룡 카무쉬와 대척점에 선 존재.
같은 용인 주제에 용을 학살하던, 그래서 던전 ‘용의 무덤’을 완성했던 그 당사자가 바로 심연의 드래곤 카이셸이었다.
‘문제는 인간의 편도 아니란 거야. 놈은 용조차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일 뿐이지.’
물론 눈앞의 마그리트는 당시의 그 카이셸과는 다른 개체였다.
갓 탄생한 새로운 용.
어쩌면 심연의 드래곤으로 성장하는 루트를 발견한, 돌연변이 해츨링의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마그리트는 여태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마력을 한꺼번에 발출하기 시작했다.
점차 녀석의 덩치가 커지고 뒤쪽으로 길게 꼬리가 생성됐다.
마치 거대한 도마뱀과도 같은 형상으로 변하더니,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심연으로 물들였다.
최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입니다! 숨 고르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쓰러트려야 해요!”
크콰카카카칵!
마일리의 축복을 받아 참전한 리트리하의 대검이 놈의 몸통을 크게 베어 냈다.
“공허의 창!”
링링의 마법이 발현되면서 묵색의 창이 마그리트를 향해 연신 떨어졌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나도석이 주먹을 휘두르고, 저격으로 마탄을 지속적으로 적중시켰다.
하지만 놈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심연의 드래곤 ‘마그리트(S)’가 스킬, ‘현신(S)’을 발동합니다.]이윽고 거대한 형상을 갖춘 마그리트는 이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증스러운 인간들이 많이도 모여 있구나.
날개를 활짝 펴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마그리트의 입가엔 대단위로 끌어올린 심연이 가득했다.
닿는 것들은 모조리 파멸시킨다는 심연의 브레스의 전조 현상이었다.
“모두 이쪽으로 모여!”
리트리하가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링링이 앱솔루트 실드를 덧입혔다. 마일리의 신성력이 주변을 가득 뒤덮었고 지상수의 갖가지 아이템이 도배하듯 하늘을 날았다.
그럼에도 심연의 브레스는 위협적으로 뭉쳤고, S급 몬스터가 보여 주는 거대한 위용에 다들 절망을 삼켜야만 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동시에 심장을 옥죄어 오는 심연이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몸이 다시 움직이질 않았다.
공간이동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정신도 모조리 심연에 삼켜지고 있었다.
오직 심신합일의 극에 다다른 나도석만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어 심상을 단단히 세울 뿐이다.
“근성으로 버텨! 내가 어떻게든!”
그때였다.
투콰아아앙!
엄청난 소음과 함께 장막을 밀어내는 금빛 섬광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최하나는 어둠을 가르는 섬광을 눈여겨보며 저도 모르게 말을 흘리고야 말았다.
“……강서준 씨?”
마치 혜성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유성은. 강서준의 움직임에 따라 하얀 꼬리를 만들고 있었다.
[플레이어 ‘강서준’이 스킬, ‘뇌신(L)’을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