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93
◈ 293화
흙인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바, 방금 뭐라고 하신 거죠?
약간의 침묵 뒤로 유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녀는 듣고도 전혀 못 믿겠다는 말투였다.
-이, 이 아이가…… 아니, 그러니까 이분이 네, 그, 요, 요, 용이시라고요?
“과하게 의식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 봐야 정신 연령은 아직 초딩이니까요.”
-하, 하지만…….
“괜찮아요.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태생은 용이라 해도 조기 교육을 열심히 시킨 결과가 있었다.
적어도 어디 가서 이유 없이 사고 치고 다닐 정도로 무뢰한으로 키우진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용에 관련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었다.
요즘 파랑이가 즐겨 보던 너튜브의 영상 목록만 봐도, 그녀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알고리즘이 거의 파-레인져였지?’
요즘 한창 빠진 장르가 ‘히어로물’이고, 그녀가 히어로를 동경하는 한 인간을 허투루 죽일 일은 없다.
게다가 파랑이의 성장 과정엔 용보다 인간과 함께한 기억이 훨씬 많았다.
그녀의 몸은 용이지만, 영혼은 인간의 생김새를 훨씬 닮았을 것이다.
강서준은 상념을 접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붙잡혀 오는 동안엔 눈이 가려져 있었고, 눈을 떴을 때는 큰 정원이었어요.
“정원이라고요?”
-전 여길 ‘시체정원’이라 불러요.
어딘가 소름이 끼치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유리나가 곧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만큼 잘 어울리는 이름도 없었다.
“인간을 산 채로 묻어서 식물의 양분으로 만든다고요?”
그렇게 묻힌 인간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시시때때로 곳곳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들려올 뿐.
죽어서 유령이 되어 하는 소리인지, 아직 땅에 묻혀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건지.
땅을 파헤칠 힘이 없는 유리나의 입장에선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전 여기서 식물에게 마력을 주는 일을 해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어요?”
-시체정원은 단순해요. 그저 마력을 머금은 식물이 인간을 잡아먹고, 그것으로 열매를 만들어요.
“……열매라고요?”
유리나는 그 열매를 푸른 빛깔이 감도는 자두 같은 생김새라고 표현했다.
-잎사귀는 뱀처럼 스멀스멀 움직이기도 해요. 가까이에서 보면 소름이 끼친다니까요.
그의 기억엔 그런 열매는 드림 사이드부터 지구를 통틀어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 때 차원 서고에 물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수리 중인 차원 서고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쨌든 수상한 건 확실하군.’
강서준은 한숨을 삼키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봤다.
솔직히 이번 던전엔 미스터리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0만 명이 넘게 살아남은 A급 던전, 퀘스트 내용이 없는 시나리오…… 그리고 시체정원이라.’
그 부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묘한 의도가 느껴졌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누군가가 분명 이 모든 일의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마 그 정체를 파악하려면 ‘시체정원’이란 곳으로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츠츠츳!
한쪽에서 신호가 들려오며 멀리 길을 떠났던 오가닉의 의사가 전달되어 왔다.
-왕이시여. 정찰을 마쳤습니다.
강서준은 의식을 집중해서 말을 건넸다.
‘상황은 어때?’
-아직 적들은 광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올랑 그리브 녀석의 오만이 이렇게 도움도 되는군.’
강서준은 옆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온순한 얼굴을 한 올랑 그리브의 영혼을 노려봤다.
영혼 부대에 귀속된 녀석은 미주알고주알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탈탈 뱉어 냈다.
그리고 놈은 오늘에 한하여 특별한 이벤트를 즐길 예정이니, 이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음도 신경 쓰지 말라고 다른 구역에 당부해 둔 것이다.
‘일단 기다려. 아직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강서준은 다시 흙인형을 보고, 건너편 유리나를 향해 말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곧 찾아갈게요.”
***
[당신은 시나리오 영역, ‘광산’을 최초로 해방시켰습니다.]강서준이 영혼 부대를 활용하여 광산의 거주 구역부터, 노역장의 모든 간수까지 처치하자 돌연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였다.
[칭호, ‘광산의 해방자’를 습득합니다.] [노예들에 한하여, 오오라를 발휘합니다.]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는 칭호였다.
근데 막상 이를 착용하니, 그를 바라보는 노예들의 시선부터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
약간 몽롱한 빛깔로 그를 바라보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이거 본 적이 있는데…….’
서울에서 지금도 열렬히 포교 중일 종교 집단 ‘혼백’의 광신도들이 대개 저런 눈빛이었다.
“케이 님…….”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장착한 칭호를 해제해 버렸다. 잠시 멍하게 그를 바라보던 안센이 금세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
“……유리나가 있는 곳은 던전의 중심인 ‘중앙도시 바칼라돈’일 겁니다. 그때 간수들의 말을 엿들어서 알고 있어요.”
중앙도시 바칼라돈.
광산이나 농장, 공장, 작업장 등의 노예들은 쉽게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이쪽 세계관 귀족들의 땅.
안센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문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곳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겁니다.”
“……시민권이 필요하겠죠.”
노예들이 바칼라돈으로 넘어가려면 일반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해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시민권을 구매하거나, 적당한 업적을 세워 시민권을 얻는 거죠.”
“적당한 업적이라…….”
안센은 날카로운 눈으로 한쪽에 묶어 둔 한 무리의 노예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배신입니다. 놈들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면 시민권을 얻을 자격이 생겨납니다.”
그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한껏 째려보더니 이내 강서준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바칼라돈을 유토피아라고 불러요.”
“…….”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선 우리들도 같은 시민으로 대우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노예들이 같은 동료를 배신해서라도 상노예가 되려는 이유는 있었다.
어차피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봤자, 시민권을 구할 만큼 많이 벌지도 못하는 게 현실.
노예들의 선택지는 배신이냐, 아니면 같이 몰락하느냐밖에 남질 않는 것이다.
‘악랄한 수법이로군.’
강서준은 구역의 규칙을 들으며 그 숨은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시민권이란 것과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은 노예들의 반역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부터 선택지를 두 개만 제공한다면, 다들 그것부터 들여다보기 마련이니까.
매서운 채찍과 썩은 당근을 활용한 전략.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이 모든 전략을 가능하게 만든 이 던전의 특이 구조를 생각했다.
‘던전의 주요 시설이 모두 바칼라돈에 집중된 게 가장 큰 문제겠지.’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던전에서도 노예들의 영역엔 하나같이 고렙의 몬스터가 생겨나지 않는다.
사실 몬스터란 존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노예 구역은 오직 일만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즉 고렙의 몬스터, 사냥터, 각종 재화…… 그 모든 게 중앙도시 바칼라돈에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다.
‘성장을 제한한 거야.’
플레이어는 자고로 몬스터를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스텟과 스킬 숙련도를 쌓아 그 수준을 높인다.
그게 드림 사이드 2의 플레이어가 가진 강점이자, 가장 큰 축복이라 할 법했다.
‘근데 아예 몬스터를 사냥할 수조차 없이 처음부터 배제된 상태라면……?’
제아무리 훌륭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성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강서준처럼 튜토리얼 단계에서 헬 난이도를 골라 오랫동안 그 안에서 숙련치를 쌓은 거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이곳의 플레이어들에겐 역전의 기회조차 주어진 적이 없는 것이다.
솔직히 이곳 광산에서 ‘카게’란 플레이어 집단이 만들어진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아마 유리나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거겠지.’
듣기론 그녀는 마력을 무한대로 저장하는 특이체질이었다.
‘그릇이 큰 만큼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양도 많았을 거야. 곁에 있기만 해도 다량의 마력에 노출되는 셈이지.’
즉 가까이 서 있기만 해도 체내에 쌓이는 마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스텟은 레벨과 무관해.’
레벨이 낮아도 스텟이 높을 수는 있었다.
그 성장의 한계는 있겠지만, 아무렴 별수 없이 노역만을 반복하는 다른 노예들보다 성장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이곳엔 카게란 단체가 만들어질 정도로 플레이어의 수준이 약간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유리나의 근처에서만 한정된 일이야. 다른 곳은 반전의 기회조차 없었겠지.’
강서준은 짧게 한숨을 뱉어 냈다.
‘일개 몬스터가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어. 이 던전이 처음부터 A급 던전은 아니었을 테니까.’
이 던전의 구조는 사람들이 처음 난입됐을 때부터 유지되어 온 것들이다.
즉 F급 던전일 때부터 꽤 지능이 높은 놈이 개입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절로 경각심이 떠올랐다.
강서준이 알고 있는 한, 이런 짓을 할 존재는 이 세계에서 단 한 부류뿐이다.
‘전생인.’
마그리트나 크록 같은 전생을 한 존재라면? 오픈 초기부터 던전을 제 입맛대로 조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진짜 큰 문제는…….’
강서준은 퀘스트 창을 불러왔다. 여전히 안에는 아무런 정보가 기재되질 않아, 이곳의 던전의 미스터리만을 더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켈에게 듣기론, ‘퀘스트 업그레이더’라는 아이템처럼 퀘스트의 난이도를 조작하는 물건은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지난날 ‘전직 퀘스트’에서 잠시 고생하질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난이도를 조작하는 걸 넘어, 아예 그 정보 자체를 지우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사실 이건 ‘버그’에 가까웠다.
이런 일을 시스템의 눈을 피해 해낼 만한 아이템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
“저…… 케이 님?”
생각에 빠져든 강서준은 어느덧 그의 앞으로 도열한 노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혼 부대와 카게 덕분에 해방된 광산의 노예들!
그들은 오랜만에 배부른 식사를 한 덕인지 기운이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센이 바로 물었다.
“중앙도시로 가실 겁니까?”
바칼라돈엔 아마 유리나와 파랑이가 있을 것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보스 몬스터도 만날 수 있다.
이 던전을 공략하려면 바칼라돈에 진입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노예들도 전부 응당 그렇게 진행될 거로만 여기는 눈치였다.
다소 전투가 예상되지만 강서준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돌파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들를 곳이 있어요.”
“……들를 곳이라뇨?”
안센의 의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강서준은 멀리 의사를 보내 영역 곳곳에 흩어진 백귀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준비됐어?’
가장 먼저 답을 한 건, 서쪽 끝으로 날아가 그의 명만을 기다리던 알리였다.
-왕이시여! 죽이라면 죽이고 빼앗으라면 빼앗겠습니다! 저 알리가 충성을 증명하겠습니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흉악한 소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강서준은 알리를 일별하고 다음으로 들어오는 의식에 집중했다.
켈이었다.
-이쪽도 준비됐어요. 신호만 주면 바로 움직일게요.
마찬가지로 오가닉도 강한 의지를 보내왔다.
-언제든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강서준은 백귀들의 의지를 읽고, 그들에게 속한 예하 영혼 부대를 쭉 훑어봤다.
아마 수백의 군사가 될 것이다.
그들 모두가 움직이고 나면, 이젠 싸움은 고작 전투가 아니라 전쟁 규모라 해야겠지.
그리고 강서준은 자신의 감투에서 흉흉한 눈빛을 토해 내는 대략 300마리의 몬스터를 상기했다.
이젠 움직여야 할 때다.
‘전쟁을 시작한다.’
멀리 곳곳으로 흩어진 백귀들의 환호성이 울렸고, 영혼 부대가 희열을 느끼며 함성을 내지르는 게 들리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노예들이 찔끔 놀랄 즈음.
강서준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바칼라돈으로 들어가는 건 내일입니다.”
“네?”
“오늘 밤 안에 우린 이곳의 모든 노역장을 해방시킬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