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94
◈ 294화
이번 작전의 핵심은 동이 트기 전에 던전의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광산은 이미 마무리했으니, 동서남북 곳곳에 흩어진 공장, 농장, 작업장 등의 노역장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이대로 중앙도시 바칼라돈으로 진격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구태여 바칼라돈으로의 진입을 미루고, 노역장을 해방시키려는 데엔 이유가 있다.
‘몬스터의 지적 수준이 너무 높아. 자칫 잘못하면 인질극이 벌어질 수도 있어.’
현재 숫자만 대략 15만 명에 육박하는 생존자들은 몬스터에게 붙잡혀 있는 꼴이다.
그들은 간수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살고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다.
‘발목을 잡을 거야.’
과연 바칼라돈에서 ‘사건’이 벌어질 경우…… 몬스터들은 15만 명에 다다르는 노예들을 가만히 놔둘까?
‘분풀이로 죽이거나 그 목숨을 빌미로 협박해도 이상하지 않아.’
웨어울프는 리자드맨처럼 집단생활에 능한 종족이고, 인간을 노예로 부릴 정도로 간악하다.
무엇보다 그 뒤에는 전생인이 있다.
시민권을 운운하며 썩은 당근을 내미는 전략부터, 성장을 제한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에 약한 인간을 상대로…… 놈들은 반드시 인질극을 벌일 것이다.
‘결국 이대로 가면 노역장의 사람들은 죽은 목숨이야. 그딴 인질극에 어울려 줄 수야 없지.’
그러니 순서를 바꿔야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15만 명에 육박하는 생존자들이 학살당하는 꼴을 방치할 수는 없다.
강서준은 그 답답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안센이 조심스레 말했다.
“필연적으로 노역장을 치면 놈들도 알아차릴 겁니다. 아마 바칼라돈의 방어도 두터워지겠죠.”
“……괜찮아요. 감수해야죠.”
일은 더 복잡해지겠지만 이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다.
게다가 놈들이 아무리 단단히 뭉쳐도 A급 몬스터이질 않은가.
‘지금의 난 혼자서도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
단신의 무력만으로도 용과 교전을 벌일 수 있으며, 그의 백귀들은 어지간한 A급 엘리트 몬스터의 뺨을 후려친다.
실상 영혼 부대를 운용하는 강서준은 대형 길드 수준의 무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링링이 괜히 그 혼자 던전으로 보낸 게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인질극이라는 귀찮은 상황이 그에게 더 큰 페널티로 작용한다.
‘변수는 ‘전생인’ 그놈인데…….’
강서준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도 겪어 봤다. 이 정도 변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센은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정말 하룻밤 사이에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요? 거의 15만 명입니다. 솔직히 저는…….”
무얼 걱정하는지 알 법했다.
세상일이란 무릇 의지만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강서준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힘을 주어 말했다.
“대규모 전투에서 희생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여러분이 그 희생을 줄일 수는 있겠죠.”
“……돕다니요?”
“별거 아닙니다. 각 구역의 노예들에게 몇 마디 말만 전하면 됩니다.”
전시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거나,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가능한 한 사람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얌전하게 말을 따르도록 브레이크를 걸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는 든든하게 배를 채운 광산의 노예, 그러니까 카게의 단원이 제격이다.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같은 처지인 여러분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하물며 카게 여러분의 말이라면…….”
느닷없이 누군가가 나타나 “여러분을 해방시키러 왔습니다! 저를 따르세요!”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라며 바로 따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웨어울프의 함정인 줄 착각할 사람도 있고, 상노예의 비열한 계책이라 여길 수도 있다.
반신반의하더라도 그 말을 전부 믿어 주지도 않겠지.
사람의 마음은 확신이 없는 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적어도 카게처럼 노예들 사이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들 정도는 있어 줘야 신빙성이 생긴다.
“도와주시겠어요?”
잠시 말이 없던 사람들은 눈치를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냥 말만 전하는 거라면요.”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여전히 동공이 떨리는 그들을 향해 더더욱 확고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오늘은 광복절이 될 테니까.”
작전의 시작이었다.
***
투콰아아아앙!
큰 소음이 일며 평화롭던 노역장 근처로 불꽃이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갑자기 시작된 대규모 몬스터들의 습격!
-네, 네놈들은 누구냐!
-습격이다! 몬스터가 쳐들어왔어!
-뭐? 여기에 뭔 몬스터가 있다고…… 으아아악!
야간 당직을 서며 하품이나 쩍쩍 뱉던 웨어울프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하며 연신 타종을 울려 댔다.
-도깨비에, 리자드맨? 저건 또 뭐야! 악마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끄아아아악!
막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한 던전에 이렇게 다채로운 몬스터가 한 팀이 되어 나타날 수 있겠는가!
상상도 못 해 본 일이다.
기껏 노예들이나 괴롭히며 평화에 찌들었던 그들은, 별수 없이 제대로 싸움조차 못 해 보고 일방적으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지금입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고, 강서준은 카게와 함께 미리 뚫어 둔 목책을 넘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노예들의 감옥.
“다들 동요하고 있을 겁니다. 우린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할 거예요.”
습격 시기를 한밤중으로 정한 데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적어도 노예들이 한곳에 뭉쳐 자고 있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곳만 어찌 잘 통제한다면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혼란이 가중되는 꼴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 바깥의 소란으로 인해 웨어울프들의 신경은 안쪽까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강서준은 가까이 보이는 감옥을 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제가 먼저 진입할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서준은 초상비를 발동하며, 날 듯이 감옥으로 스며들었다.
바깥의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 노예들이 각자 철창을 붙들고 공포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강서준은 노예들을 향해 시끄럽다고 윽박을 질러 대던 한 마리의 웨어울프의 뒤로 접근했다.
-시끄러! 잠이나 쳐 자! 네까짓 것들이 감히 내……!
스거억!
단 일격.
빛이 번쩍이더니 웨어울프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가까이에 있던 한 노예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강서준이 철창 안으로 손을 넣어 그 사람의 입을 턱 막았다.
“쉬잇…….”
놀란 토끼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서준은 그제야 노예의 입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소리보다 냄새에 더 민감한 종족이다.
-……피 냄새로군!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흡혈해 버리는 건데.”
간수 몇 놈이 더 나타나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밤 버프까지 받아 한층 흉포한 기세마저 뿌리는 놈들.
-감히 인간 놈이!
-키아아앗! 어떻게 감옥을 빠져나왔는지는 몰라도 죽……!
물론 놈들의 최후도 바닥에 널브러진 웨어울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간수들을 도달한 강서준은 짧게 호흡을 내뱉고, 바깥으로 신호를 보냈다.
곧 카게가 감옥으로 들어오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여기 왜 이리 조용하죠?”
“글쎄요.”
말없이 철창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둘러봤지만 하나같이 시선을 회피하며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관심조차 가지질 않는 게 이곳의 불문율이라도 된 것처럼.
“일단 대화를 나눠 보죠. 바깥의 전투가 본격화되면 이곳도 전장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서준은 철창으로 다가가는 카게의 일원을 일별하고, 이번엔 다른 곳으로 의식을 집중시켰다.
[스킬, ‘분신(S)’을 발동 중입니다.]곳곳으로 흩어진 그의 분신은 일제히 그 의중을 읽어 들였다.
서쪽의 농장 근처로 잠입한 분신이 아닌 본체, ‘강서준’은 그 뒤를 따라오던 안센에게 말했다.
“동쪽 감옥은 벌써 접촉했다는군요. 예상대로 올랑 그리브가 관리하는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빠르긴 빠르네요.”
한데 그 말을 들은 안센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강서준을 멀뚱멀뚱 보고 있을 뿐이다.
몇 번이나 입술을 들썩인 안센이 겨우 용기를 내어 물었다.
“케이 님은 대체 직업이 뭐예요?”
“네?”
“수백의 몬스터를 다루고, 검술도 뛰어나며, 아까 보니 마법도 쓰시고…… 당신의 정교한 분신은 또.”
안센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이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말은 하진 않았지만 다들 내심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안센 님은 알고 계시지 않나요?”
“네?”
“예전에 말해 줬었던 것 같은데.”
안센은 대장장이였고, 강서준에게 수많은 무기를 제작해 준 전용 마이스터였다.
검부터 활, 창, 도끼…… 다양한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강서준의 특징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건 1이잖아요. 게다가 그 직업을 가지려면…….”
잠시 강서준을 바라보던 안센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여기서도 헬 난이도를 공략했어요?”
도서관 사서로 전직하기 위한 최초 조건은 오직 튜토리얼에서 ‘헬 난이도’를 골라 공략하는 것.
예전에 안센에게 말해 준 기억이 난다.
“게임에서도 못 깨는 걸 어떻게 현실에서……?”
“전 깼는데요.”
“아니, 아무리 당신이라도.”
안센은 말하던 와중에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강서준이 대뜸 수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각종 농작물이 열린 곳에서 꽤 커다란 형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녀석은 코를 벌렁거리며 미간을 구겼다. 붉은 눈빛이 흉흉하게 빛나자 가까이에 있던 노예 몇이 속절없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왜 몬스터 무리보다 이쪽에서 강자의 냄새가 나는 거지?
그 말을 기점으로 그 큰 덩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대로 뛰어올라 강서준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너냐?
쿠우우우우웅!
하지만 강서준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별안간 감투에서 꺼낸 까마귀가 그의 머리 위를 덮어, 충격을 막아 줬기 때문이다.
리카온 제국의 목성에서 주워 온 거대 까마귀.
A급 몬스터인 그래고리답게 무리 없이 카게의 단원들까지 모조리 지켜 낼 수 있었다.
“완전 개코네 이거.”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바닥을 박찼다. 놈이 눈을 빛내며 그에게 주먹질을 날려 대기에 똑같이 주먹을 휘둘러 줬다.
콰아아아아앙!
튕겨 나간 녀석이 바닥을 뒹굴더니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맷집 하나는 올랑 그리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녀석이다.
스텟이 방어력에 꽤 높이 투자된 듯했다.
강서준은 놈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리고 탄식했다.
‘……야왕(野王)?’
이놈이 이곳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그 수준만 이곳 보스급이라 할 법했다.
아니, 확실하다. 그가 알기론 ‘저주받은 도시’의 보스 몬스터는 웨어울프의 정점인 ‘야왕’이다.
-강하구나. 인간!
녀석은 주변이 공기를 빨아들이더니 점차 그 덩치를 크게 부풀렸다.
하늘에 뜬 보름달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늑대 인간이 되더니, 꽤 초월적인 시선으로 강서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맛있는 식사가 되겠어.
놈이 흉포한 울음을 흘리자 그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많은 노예가 벌벌 떨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카게 단원들도 그 울음에 멀쩡할 수 없었다.
올랑 그리브가 흘리던 ‘하울링’과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무시무시한 늑대의 울음이다.
[엘리트 몬스터 ‘야왕(A)’이 스킬, ‘죽음의 하울링(S)’을 발동합니다.]주목할 점은 메시지에 나타난 게,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엘리트 몬스터’란 점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야왕이 엘리트 몬스터가 됐지?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끄럽게 울어 대는 야왕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일단 좀 닥쳐 봐. 생각 좀 하게.”
[스킬, ‘공절(S)’을 발동합니다.]빠르게 휘두른 재앙의 유성검은 야왕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