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97
◈ 297화
예전 같았으면 보초병이나 기사들이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으리으리한 크기의 저택.
커다란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침입자의 발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기만 했다.
“유령 저택이 따로 없네요.”
건축 양식이 서양의 중세 시대풍이기 때문일까.
오래된 공포 영화에서 간간이 볼 수 있던 서양 귀신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유난히 공기도 차갑게 느껴졌다.
“정말 유리나가 여기에 있을까요?”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던 안센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훨씬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잘게 몸을 떨었다.
강서준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답했다.
“네. 분명히 여기에 있어요.”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저택을 중심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마력의 흐름에 주목할 수 있었다.
폭풍 같은 마력은 드래곤의 들숨과 날숨처럼 강렬하게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황당할 뿐이다.
‘이만한 규모의 마력을 여태 못 알아봤다니.’
바칼라돈에 들어온 이후로 무엇이든 흔적을 찾기 위해 ‘류안’과 ‘영안’을 상시 발동 중인 그였다.
아무런 인적도 느껴지질 않아 일부러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
심지어 켈에게 시켜 바람 정령으로 바칼라돈 전역을 수색해 보라고 하질 않았던가?
이런 게 있었다면 발견됐어도 진즉에 발견되었어야만 한다.
‘두 가지 경우를 산정할 수 있어.’
하나는 상대가 S급의 류안으로도 간파할 수 없는 ‘결계’ 스킬을 보유한 경우다.
말하자면 L급 수준의 스킬을 갖고 있더라면 류안으로도 그 흐름을 간파할 수 없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라. 기껏해야 스킬에 불과하니까.’
강서준은 두 번째 경우를 떠올렸다.
사실 이쪽이 더 최악이다.
‘백도어 속에 있는 경우.’
아예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서 숨기는 거라면?
류안은 당연히 발견할 수 없다.
일전에 ‘재앙의 유성’에서도 백도어를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가.
던전의 구석을 하나씩 전부 탐색해야만 겨우 찾을까 말까 한 곳이다.
‘뭐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겠지.’
백도어란 무릇 관리자의 권한이다. 전생인이라 해도 가질 수 있는 힘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조심해야겠어.’
이후로 적막한 저택을 가로질러 더욱 안으로 진입했다.
마력은 갈수록 짙고 농밀해졌고, 절로 경각심이 자라났다.
솔직히 야왕이 가진 것보다도 훨씬 묵직한 마력이 꽈리를 틀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긴…….”
그리고 그 정도로 선명한 마력의 흐름이라면, 방향을 역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저택의 밖에서 이 흐름을 찾지 못하여 아쉬웠을 뿐이지, 안쪽에서라면 충분히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곧 건물 뒤편으로 쭉 걸어 새카만 나무로 조성된 커다란 정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엔 뿌옇게 보여 안쪽의 풍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마력이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서준은 바로 알았다.
‘이곳이 시체정원이로군.’
유리나가 말했던 대로 나무들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스킬, ‘영안(S)’을 발동합니다.]‘진짜 춤을 추는 건 아니야.’
강서준은 나무의 가지에 걸린 영혼을 볼 수 있었다.
나무가 춤을 추듯 움직이는 건, 사실 나무가 그 영혼을 먹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 보이는 현상에 불과했다.
“……들어가죠.”
그렇게 안센과 시선을 교차한 강서준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할 즈음이었다.
“저…… 할 말이 있습니다.”
켈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케이. 당신도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데 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체정원에서부터 무언가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태동했다.
빠르게 검을 움켜쥔 강서준이 정면으로 나섰고, 안센은 켈의 보호 아래에서 몸을 웅크렸다.
휘이이이이잉!
순식간에 다가온 거친 마력이 그들이 선 자리를 스쳤고, 강서준은 땅속에서도 마력이 솟구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해!”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당신은 ‘밀트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범했습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당신에게 제약이 가해집니다.]강서준의 눈앞에 메시지가 드리웠다.
[당신의 능력을 봉인합니다.]……뭐?
의문을 떠올릴 새도 없이 전신을 휘어잡는 미증유의 힘이 있었다.
마치 불가항력이라는 듯 빠르게 달라붙은 무언가는 그의 몸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걸었다.
[플레이어 ‘강서준’의 스텟이 봉인되었습니다.] [플레이어 ‘강서준’의 스킬이 봉인되었습니다.] [플레이어 ‘강서준’의…….]황당한 메시지의 연속!
여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바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테마 던전이라 해도 이건……!’
종종 테마 던전에서 그 배역에 어울리는 역할을 위하여 시스템이 능력에 제약을 걸기도 한다.
강서준도 ‘대장장이 씬’이 되어 봤고, 이번엔 ‘노예 146,111번’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제약엔 조건이 있다.
오직 ‘시나리오’ 안에서만 한정된다는 규칙이다.
‘지금처럼 시나리오가 엉망인 곳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는 ‘차원 서고의 주인’이 되면서 그 어떤 순간이 닥치더라도 능력을 쓸 수 있질 않았던가?
즉 작금의 상황은 그에겐 너무나도 생소하고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긴…….”
어느덧 그는 시체정원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새하얀 벽과 새하얀 천장으로 둘러싸인 아주 기묘한 공간.
바닥까지 하얗게 물들어 정신 병원에 갇힌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케이 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안센도 같이 이동되어 있었다.
강서준이 그를 향해 물었다.
“괜찮아요?”
“네, 뭐…… 다친 곳은.”
하지만 곧 안센은 자신의 몸을 매만져 보더니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케, 케이 님! 제 능력이……!”
제아무리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라고 해도 오래 쌓은 스텟이 하루아침에 소멸하면 그만한 탈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강서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마치 지구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게에 살짝 숨이 막히고 있었다.
‘능력이 사라졌어.’
그것도 스텟이 모조리 증발한 것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시야 오른쪽 상단도 확인해 보려 했다. 근데 더더욱 당황스러운 상황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로그 기록도 사라졌군.’
또한 혹시나 해서 떠올려 본 ‘상태창’이나 ‘인벤토리’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시스템 자체가 봉인된 건가?’
황당하지만 그런 결론이 나온다. 옆에서 한숨을 쉬던 켈이 말했다.
“소용없을 겁니다. 여긴 완전히 독립된 공간입니다. 우리 봉인됐어요.”
“이곳이 어딘지 알아?”
“모르지만 누구의 짓인지는 잘 알죠.”
강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켈은 재차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이건 밀트의 짓입니다.”
“……밀트라면 저택의 주인?”
“네. 확실하지 않아 말하지 않았는데 이젠 믿을 수밖에 없겠어요.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오직 ‘밀트’…… 그자밖에 없어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강서준의 질문에 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심히 고민하는 듯 입을 쭉 내밀던 그가 겨우 입을 연 건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밀트는 데이터베이스의 전(前) 기록자입니다. 컴퍼니 내에서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죠.”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우린 ‘기록자’를 다른 말로는 ‘전승인(傳承人)’이라고 부릅니다.”
“전승인……?”
“단어 그대로의 뜻이에요. 그들은 죽어서 ‘전생(傳生)’을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본인의 영혼을 업로드하고 다음 채널에서 다운로드받아 ‘전승(傳承)’을 하니까요.”
고작 모음 하나의 차이였지만 그 의미 자체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있었다.
강서준은 전승인이 전생인과 어떤 점이 다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전생인 페널티가 없는 자.’
죽질 않았으니 잃어버린 과거도 없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기록자’라는 ‘전승인’은 드림 사이드의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제약은 있어요. 기록자는 데이터베이스를 벗어날 수 없거든요.”
“……그럼 밀트는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말했듯 ‘전 기록자’입니다. 잘못을 저질러 자격을 박탈당했고 아예 소멸됐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만약 그가…… 소멸하지 않고 버젓이 데이터베이스를 벗어나 살아 있다면 어떨까요.”
강서준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결론은 이미 켈의 말속에 담겨 있다.
“……이 세계의 모든 걸 기억하는 괴물이 되어 있겠군.”
켈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하얗기만 한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을 쭉 둘러봤다.
“네, 그리고 녀석의 진짜 문제는 그 권능에 있을 겁니다.”
“권능이라…….”
“기록자는 일부지만 시스템을 조작해요. 이깟 하얀 방 정도는 손쉽게 만들 능력이 있죠.”
다소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시스템을 조작하는 게 아니고서야, 일개 플레이어의 스킬로는 이만한 영향을 줄 수 없으니까.
또한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느꼈던 수많은 의문도 한 번에 해소되고 있었다.
‘시나리오 퀘스트가 으로 표기된 거나, 이곳의 마력을 밖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
모두 시스템을 조작한 결과라면 간단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의문을 야기한다.
“그렇게 멋대로 시스템을 조작해도 괜찮아?”
일전에 관리자조차 시스템을 함부로 조작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세계엔 밸런스가 존재하고, 멋대로 개입하면 시스템이 나서 응징하기 마련이니까.
관리자 ‘리루르크’조차 용을 소환하기 위하여 컴퍼니나 마족 등을 끌어들이질 않았던가.
“일개 NPC가 그래도 돼? 아무리 전승인이라 해도…….”
“그야 모르죠.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니……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도요.”
***
“고작 맵을 구현하는 데에만 1만 명의 영혼이 소모될 줄은 몰랐는데…….”
그 중앙에 선 밀트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소모된 영혼을 아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바칼라돈에서 확보한 주민들의 생명이 한 번에 반은 소모된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부족했으면 아예 시도조차 못 했겠는걸.”
기왕이면 놈들이 착각할 정도로 미로도 구현하고 싶었고, 아예 다른 배경을 만들고도 싶었다.
한데 한 놈의 수준이 워낙 대단해서 기껏 만든다는 게 ‘하얀 방’뿐이었다.
그 능력을 봉인하는 것만으로도 1만 명이 소모되었으니…… 말 다 했다.
“그조차 완전하지 않으니.”
아쉬운 마음에 함정에 갇혀 버린 놈들을 둘러보던 밀트는 짧게 혀를 찼다.
직경 5M의 방.
이게 녀석을 가둘 수 있는 유일한 감옥이었다.
“그나저나 케이라…….”
이전 세계도 전부 겪어 온 그는 역시 ‘케이’란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역대 누구도 감히 시도해 보질 않던 헬 난이도를 골라,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될 직업을 가진 유일무이한 플레이어!
될성부른 떡잎부터 달랐던 그의 과거를 상기하며 밀트는 쓰게 웃었다.
“……역시 네가 도깨비가 되었나.”
운명일까, 혹은 저주일까?
지긋지긋한 도깨비와의 악연을 상기한 밀트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비록 ‘케이’나, ‘도깨비의 왕’이라는 변수가 나타났지만 이젠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감옥에 가둬 버렸으니까.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천년목에 모아 둔 던전의 주민들을 살폈다.
그저 뿌리에 얽매여 살았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르는 아주 가여운 영혼들!
오랜 고목처럼 자신의 늙은 몸을 내려다본 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 몸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