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04
◈ 304화
밀트의 사유지.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시스템 기능을 봉인해 버리는 터무니없는 함정.
이 기술을 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단 함정에 빠지질 않으면 돼.’
아예 함정에 걸리질 않는다면 그게 제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소용없는 짓이다.
그리고 강서준은 분신을 활용하여, 상대의 눈을 속이고 함정을 회피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없다면?’
강서준은 그에 대한 공략법도 생각해 뒀다. 사실 이건 생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라면…… 그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된다.’
강서준은 전투 내내 밀트의 행동 패턴을 꾸준히 분석했다.
어떤 방식으로 사유지를 만들어 내는 걸까? 그저 스킬을 쓰듯 의식적으로 해내는 건가.
무한정 사용 가능한 기술일까?
‘그럴 리가 없지.’
시스템 조작은 관리자라고 해도 생각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그만한 리스크가 주어지고, 또한 그 리스크를 쉽게 처리할 만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녀석이 수차례 사유지를 만드는 걸 보니 얼추 파악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오른쪽 눈.’
그 눈동자가 찰나의 빛을 낼 때마다 사유지가 생성되고 있었다.
‘저게 콘솔 같은 역할을 하는구나.’
그때부터 강서준은 아예 틈을 노렸다. 녀석이 가까이 접근하길 기다렸고…… 창졸간에 힘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준비도 마쳤다.
파지지지직!
그게 바로 ‘뇌신’으로 녀석의 오른쪽 눈을 무력화시키고, 결국 파괴해 버린 현재의 결과였다.
“끄아아아아악!”
뇌신이 쏟아 내는 막대한 뇌력에 밀트로부터 살이 익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났다.
강서준은 이도 저도 못한 채 부르르 몸을 떨 뿐인 밀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콘솔’ 역할을 하던 ‘오른쪽 눈’이 파괴됐으니, 이젠 바이러스를 제멋대로 활용하진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밀트의 상태를 살폈다.
아마 이젠 녀석을 죽이는 걸 벌레를 잡듯 언제든 해낼 수 있는 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놈의 방대한 영혼을 일거에 처리할 수 없다면, 섣불리 시도조차 해선 안 되는 일.
‘……영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
몇 가지 방법은 있었다.
도깨비의 왕인 그였으니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이게 정녕 전승인의 영혼에게도 통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고리도 소화시킬 수 없는 음식은 함부로 손대질 않는다.
“끄으윽…….”
한편 괴로워하던 밀트는 용케 뇌력을 견디며, 서슬 퍼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어째 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게 심상치 않았다.
뇌신의 여파는 아닌 듯했다.
“네놈 뜻대로 될 것 같으냐!”
콰아아아앙!
창졸간에 녀석의 몸이 번쩍이더니 펑!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폭발해 버렸다.
강서준은 벙 찐 얼굴로 핏덩이가 되어 버린 밀트를 보았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녀석의 영혼이 순식간에 솟구치고 있었다.
‘설마…… 전승을 하려는 건가!’
강서준은 얼굴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 내며 도깨비 왕의 감투부터 발동했다.
전승인의 영혼을 처리하는 방법.
영혼을 아예 감투에 가둬 버리면 된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녀석의 사체 조각 사이를 부유하는 영혼을 빠르게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혼의 양이 너무 방대했다.
도깨비감투로 회수하는 양보다 흩어져 도망치는 양이 훨씬 많은 것이다.
츠츠츠츠츳!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 영혼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막아야 해. 놈이 새로운 몸으로 전승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피드백이 빠른 놈이다.
어쩌면 다음번엔 ‘콘솔’에 대한 약점도 보완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막는다면 지금, 막아야 한다.
-어딜!
다행히 영체로 변할 수 있는 ‘백귀’는 영혼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켈이 먼저 밀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아아악! 비켜라!
하지만 밀트는 몸을 물처럼 형태를 바꾸어 켈의 포위망을 유유자적 빠져나갔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더니만.
영체인 상태로 자유 의지를 갖고 뭉치거나 흩어지는 게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강서준이 ‘이기어검술’로 ‘도깨비 왕의 수선 도구’를 던져도 잡아낼 수 없었다.
꼬리가 엮이자마자 놈은 그 꼬리부터 잘라 냈다.
츠츠츠츠츳!
밀트는 곧 나무의 천장을 통과하더니 그 위로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파랑아! 브레스!”
신호에 맞추어 용으로 현신한 파랑이가 천장을 향해 워터 브레스를 쏘아 냈다.
엄청난 절삭력을 가진 브레스가 곧 영혼이 나아간 뒤를 쫓아, 멀리 하늘 높이 솟구쳤다.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도깨비불’을 발동합니다.]전승인의 영혼을 처리하는 또 다른 방법.
다소 과격하겠지만 ‘도깨비불’로 모조리 불태우는 것.
놈이 여태 쌓아 온 오랜 역사나 다양한 지식들이 아까웠지만, 적을 방치하는 것보단 쓰러트리는 게 백만 배는 낫다.
[스킬, ‘뇌신(L)’을 발동 중입니다.]강서준은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혜성처럼 날아 밀트의 영혼을 뒤쫓았다.
양쪽의 움켜쥔 단검엔 도깨비불이 가득 불타올라, 솟구치는 밀트의 영혼을 난도질할 수 있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도깨비 검무’를 발동합니다!]화르르르륵!
한데 이조차 밀트를 붙잡기엔 역부족이다.
녀석은 이번엔 몸을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솟구쳤으니까.
츠츠츠츳!
‘미친…… 공간이동까지 해?’
일부 영혼이 남아 아래를 향해 마법을 써 댔고, 뭉쳐서 시야를 방해하기도 했다.
도깨비불로 모조리 불태우며 나아가더라도 놈의 방대한 영혼은 터진 둑처럼 계속해서 쏟아졌다.
뇌신의 힘을 더하더라도 수천 년을 쌓아 온 데이터를 일시에 제거한다는 건 무리였을까.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이를 악문 강서준은 도깨비불의 화력을 더욱 강하게 불태웠다.
마기를 먹이로 던져 주자 불난 데 기름 부은 듯 불꽃은 화마가 되어 밀트의 영혼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녀석이 조각으로 나눠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도깨비불은 범위째로 불태우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놈이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거겠지.
[스킬, ‘위기 감지(A)’를 발동합니다.]“……유리나 씨!”
나무의 꼭대기에 가려진 공간. 유리나가 기절한 채로 나무에 얽매여 있었다.
밀트의 영혼은 오직 그곳을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이젠 놈의 영혼이 유리나에게 닿느냐, 그 전에 강서준의 공격이 놈을 소멸시키느냐의 싸움.
뇌신을 극성으로 발동한 강서준도 그 뒤를 쫓아 유리나의 지근거리까지 다다랐다.
영혼이 전승되기까지 약 3CM.
2CM, 1CM, 0.5CM…….
……츠츠츳!
결국 강서준은 찰나의 차이로 녀석의 영혼이 유리나에게 닿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쿠우우우웅!
유리나의 몸이 격동하며 전신의 핏줄이 올곧게 섰다.
바로 고운 눈이 반개했고, 입이 활짝 열리며 깊은 숨이 빨려 들어갔다.
놈의 전승이 성공하고 만 걸까.
“……아아!”
강서준은 한숨을 삼키며 유리나의 몸을 영안으로 살폈다.
밀트의 영혼이 억지로 유리나의 영혼을 밀어내고 있었다.
‘진짜 바퀴벌레 같은 놈.’
나무의 중앙에서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뇌신과 도깨비불의 조합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을 불태웠던가.
그럼에도 녀석의 영혼은 아직 어마어마한 크기를 갖고 있었다.
원체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영혼인 것이다.
“……케이 님!”
뒤늦게 위쪽으로 올라온 일행은 강서준을 맞이했다. 안센은 다급하게 유리나를 살피며 물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그의 불안한 질문에 대답을 한 건 강서준이 아니었다.
“잘되었느니라.”
어느덧 평온한 얼굴을 한 유리나, 아니 밀트가 이쪽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신체를 완전히 장악한 걸까.
“호오…… 몸이 가벼워. 이게 주요 인물이 가진 권능이란 건가!”
밀트는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강서준도 이를 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마 밀트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것’이었나 보다.
‘주요 인물로의 전승.’
유리나의 몸을 장악한 밀트로부터 점차 강대한 기운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다.
‘점점 강해지는군.’
사실 영혼의 크기가 더 작은 강서준이, 밀트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신체적 특성’에 있었다.
이미 400레벨을 훌쩍 넘긴 강서준은, A급 던전에 머물던 밀트가 감히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파랑이의 마력을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리였다.
‘하지만 주요 인물은 다르지.’
주요 인물은 고작 레벨에 국한받는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유리나는 무한대로 마력을 신체에 담아 둘 수 있는 특이체질.
‘수천 년을 살아온 밀트의 영혼이 최강의 몸을 손에 얻은 꼴이야.’
실제로 던전도 밀트의 성장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이미 ‘던전의 보스’로 얽매여 있기 때문이었다.
[NPC ‘밀트’의 수준에 따라 던전의 수준이 조정됩니다.] [현재 A급 던전 ‘저주받은 도시’의 최대 레벨은 ‘400’입니다.]영혼의 3분의 1은 불타 버렸고, 유리나의 신체가 많이 손상된 상태였음에도 이 정도다.
단번에 S급에 걸맞은 판정이라니.
하지만 이내 강서준은 표정을 풀고 긴장을 덜어 낼 수 있었다.
분명 밀트의 힘이 더더욱 강맹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었지만…….
오히려 강서준은 안심했다.
“저런 걸 착용하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 주셨어야죠.”
“네?”
강서준은 유리나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여태 고생한 게 허무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루마노프의 가호’가 발동됐어요.”
츠츠츠츳!
제멋대로 큰 힘을 빨아들이던 밀트가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서서히 아래로 추락한 건 그때였다.
놈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고, 애써 자기 몸을 때려 가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장비 ‘대천사의 목걸이’가 전용 스킬, ‘루마노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유리나의 목걸이로부터 엄청난 마력이 솟구치더니, 이내 몸을 잠식하던 밀트의 영혼을 그대로 밀어낸 것이다.
“으어어…… 이, 이게 뭐야!”
아마 많은 우연이 겹쳤을 것이다.
강서준에 의해 ‘콘솔’이 파괴된 것부터, 뇌신까지 활용하여 영혼의 일부가 불타 버린 일.
그리하여 정신력이 예전만 못하단 점…….
던전 내부로 천년목을 키우느라 정신력을 한껏 사용한 뒤라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그중 가장 황당한 ‘우연’은 바로 안센이 유리나에게 선물한 목걸이가 ‘대천사의 목걸이’라는 거겠지.
‘천외천 안센이 드림 사이드 1에서 최후의 최후에 만들어 낸 역작.’
수십 마리의 드래곤 하트를 푹 고아 미스릴에 녹였다. 또한 만년빙설로 굳혀 겨우 형태를 잡은 아이템.
말하자면 섭종 기념으로 모든 ‘희귀 재료’를 쏟아부어 만들어 낸 전무후무한 섭종 보상.
‘하루에 단 한 번. 사용자의 마력에 비례하여 그 어떤 공격이든 튕겨 내는 장비.’
안센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저거 작동해요?”
“네. 유리나 씨니까요.”
“어떻게 저게 작동을 해요?”
아마 안센은 몰랐을 것이다.
그저 섭종 보상으로…… 아직 레벨 제한에 아무도 쓸 수 없는 아이템으로만 알았겠지.
유리나에게 준 것도 그나마 작은 효능이라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적처럼 줬을 것이다.
‘루마노프의 가호는 레벨 제한만 700인 아이템이니까.’
하나 공교롭게도 주요 인물에겐 섭종 보상의 제한은 통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무한대의 마력’을 보유할 수 있는 그녀가 어찌 레벨 제한 따위를 받겠는가.
하물며 밀트로 인해 던전의 마력 자체를 빨아들이느라, 거대한 마력을 신체에 보유하게 된 상태라면…….
“당신이 해낸 겁니다. 안센.”
강서준은 ‘유리나’의 마력에 반응하여,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밀트를 밀어내는 루마노프의 가호를 말없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