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09
◈ 309화
으리으리하게 솟은 빌딩이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오래 굶주려 죽어 버린 해골처럼 앙상한 철골만 드러난 도시.
한때는 세계의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던 ‘뉴욕의 맨해튼’은 마치 다 타고 남은 잿더미와 같았다.
연희연은 탄식하며 말했다.
“살다 살아 맨해튼에 다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맨해튼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믿기진 않지만, 이곳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처럼 많은 복구가 완성되었던 대도시였다.
마일리의 기업이나 유니온이 합심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뉴욕은 차츰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더랬다.
“운이 나빴죠.”
하지만 맨해튼의 풍경은 드림 사이드 1이 처음으로 오픈했을 때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나마 멀쩡했던 빌딩이 무너지고, 지반은 뒤틀려 지하철로가 육지로 삐죽 솟았다.
한 차례 멸망했던 도시를 굳이 초토화시키려고 핵폭탄이라도 떨어트린 것 같았다.
아마 틀린 비유도 아니겠지.
“하필 ‘재앙의 탑’이 이곳, 뉴욕 맨해튼에 생겨나고 말았으니까요.”
강서준은 한숨과 함께 무너진 맨해튼을 다시 한번 눈여겨보았다.
듣기로는 아직 도시 곳곳엔 고립된 플레이어나 시민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사는 당장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롭다고도 했다.
재앙의 탑이 발발하고 파생된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던전 브레이크는 멈추지 않을 거란 거야.’
재앙의 탑은 그 이름답게 온갖 ‘재앙’을 몰고 다닌다.
내부에는 ‘재앙’을 부르는 각종 몬스터를 육성 중이며, 던전 외부로는 온갖 재앙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굳이 ‘지구의 재건’이란 미션이 없더라도, 당장이라도 공략을 완수해야 하는 던전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게 링링이 애써 강서준을 기다리지 않고 파티원을 조직해서 떠난 이유 중 하나겠지.
‘재앙의 탑은 놔둘수록 그 재앙을 크게 부풀리니까.’
나중엔 재앙의 탑까지 가는 길만으로도 충분히 고역이 된다.
만약 수십 가지의 재앙을 뚫어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다면? 플레이어들은 도착도 전에 지치고 말 것이다.
재앙의 탑은 초기에 발견해서 근본부터 뽑아 버리는 게 최선이다.
‘암 덩어리 같은 거지.’
강서준은 일행을 이끌고 포탈 인근을 벗어나, 맨해튼의 중심으로 더더욱 진입했다.
점차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풍경.
연희연은 바닥에 널브러진 누군가의 시체를 살피며 작게 몸을 떨었다.
“근데 여기 어디에 재앙의 탑이 있을까요?”
“위치상으로는 타임스 스퀘어 자리가 그대로 던전으로 변했다고 했습니다.”
“흐음…….”
연희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가장 중요한 ‘탑’은 보이질 않잖아요. S급 던전이라면 멀리서도 보일 줄 알았는데.”
연희연의 말마따나 S급 던전 정도라면 수백 미터 밖에서도 그 형태가 보여야 한다.
후쿠오카의 A급 던전 ‘저주받은 도시’도 그 포탈의 형태가 먼 거리에서 관측된 것처럼.
‘재앙의 탑’은 응당 맨해튼에 도착하자마자 두 눈에 보였어야 정상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설마 던전인 주제에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무너졌을 리는 없고.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보기 싫어도 조만간 바로 찾게 될 테니까.”
그리고 피로 물든 아스팔트와 무너진 건물 더미를 건너, 타임스 스퀘어가 있었을 공간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연희연은 그제야 강서준이 한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래서…….”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길이 ‘끊어져’ 버린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커다란 형태로 구멍이 나 버린 타임스 스퀘어의 정경,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싱크홀이다.
“재앙의 탑은 이 아래에 있어요.”
깎아지를 듯 뻥 뚫린 싱크홀 아래로는 까마득한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괜히 으스스한 BGM이 들리는 듯했고, 온도도 한층 더 낮아진 느낌이다.
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의 눈엔 싱크홀 아래에서 파생되는 막대한 흐름이 보이고 있었다.
‘많기도 하네.’
말했듯 재앙의 탑은 지속적인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하는 특수한 형태의 던전이다.
그리고 재앙의 탑이 생성된 지 며칠 지난 현시점이라면…… 그만한 숫자의 몬스터가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이 싱크홀 자체를 A급 던전으로 봐도 될걸요?”
“……A급.”
“뭐, 걱정 마세요. 연희연 씨를 괜히 데려온 게 아니니까.”
연희연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끝으로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려 주변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연희연’이 스킬, ‘새벽의 고요(B)’를 발동합니다.]츠츠츳!
순식간에 일행의 몸을 뒤덮은 빛은 따스한 주황빛이었다.
본래 ‘새벽의 고요’는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전부인 명상용 스킬.
힐러들이 어떤 순간에 닥치더라도 가능한 한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돕는 버프 스킬이었다.
‘하지만 재앙의 탑에서만큼은 이 스킬이 최고의 치트키가 된다.’
이제야 A급 던전에 겨우 발을 디딜 법한 연희연을 이곳에 왜 데려왔겠는가.
‘성녀’의 자질을 가져서?
‘힐러’로의 수준이 탁월해서?
아니다. 들어 보니 그녀는 ‘새벽의 고요’를 B급 수준으로 익혔다고 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최대 5분이 한계예요.”
“충분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은 켈을 소환해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
바로 마법으로 허공에 떠오른 그들은, 싱크홀로 수직 낙하를 개시했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몸에 뒤엉킨 주황빛이 번져, 싱크홀 벽면을 쭉 볼 수 있었다.
“……으으, 징그러워요.”
질색하는 연희연의 말에 강서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기다란 다리의 거대 지네들…… 말하자면 ‘재앙의 곤충’들이 온갖 재앙을 품고 달려들 태세였으니까.
그저 ‘새벽의 고요’가 가진 청명한 기운이 놈들을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밀어낼 뿐이다.
‘천연 기피제가 따로 없다니까.’
켈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슬슬 속도를 낼게요. 생각보다 깊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금세 자이로드롭이라도 탄 듯 엄청난 낙하감이 느껴졌다.
연희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안센도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유리나는…… 말할 것도 없다.
거의 졸도 직전인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었지만, 켈은 오히려 속도를 가속했다.
싱크홀의 바닥을 향해 더더욱 빠르게.
문득 아래를 내려다본 연희연이 질색하며 비명을 질렀다.
“따, 땅이에요! 땅이 있어요.”
“네. 보여요.”
“아니, 땅이라니까요?!”
하지만 그 비명에도 켈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강서준도 연희연이 말한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땅’처럼 보이는 것을 보았다.
[장비 ‘진실의 성물 이루리’의 전용 스킬, ‘진실 혹은 거짓’을 발동합니다.]두 눈에 가려진 환상은 지워지고, 곧 그들의 몸은 차가운 수면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제어하지 않은 속도는 그대로 땅, 아니 물속 깊숙이 그들을 밀어냈고.
가까이로 다가오려던 ‘재앙의 어패류’들이 ‘새벽의 고요’에 의해 멀어졌다.
[S급 던전, ‘재앙의 탑’에 입장했습니다.] [칭호, ‘역경으로 뛰어드는 자’를 습득했습니다.]***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았습니다.]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았습니다.]몇 번이나 반복해도 똑같은 메시지만 나타나는 스마트폰.
김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역시 저 장막은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군요. 서울과 통신하려면 1층으로 돌아가야 할 판인데요?”
“……흐음.”
“그냥 저라도 1층에 다녀올까요?”
김훈이 굳은 용기를 갖고 한 말이었지만, 링링은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해. 이곳이 일반적인 상태였더라도 쉽지 않은 일을, 비정상적인 현재에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미리 알지 못하면 떼죽음을 당할 수 있어요.”
김훈은 중층부에 올라 힘겹게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 봤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곧 넘어올 2차 원정대는 숨도 못 쉬고 몰살당할 것이다.
알고서도 막기 힘든 공격을…… 모르고 당한다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요. 이대로는 대학살이 벌어질…….”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멀리서 총성이 울리고 전투의 시작을 알려 왔다.
김훈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자세를 잡았다. 앞서 달려 나간 나도석이 지축을 흔들었다.
최하나의 무전이 들려왔다.
-전방에 거인입니다.
공간이동으로 최하나의 근방에 도달한 김훈은, 곧 모습을 드러낸 직경 30미터의 근육질 거인을 마주했다.
레벨만 460에 근접하는 괴물.
고대의 타이탄.
-정면 승부는 어려워요. 나도석 씨가 잠시 길을 막는 사이 전열을 뒤로 물리죠.
믿기 힘들지만 이놈은 ‘상층’에 거주하는 몬스터다.
47층에 불과한 중층에 있어선 안 되는 개체.
“으랏차아아아!”
그때 나도석이 힘차게 땅을 박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재앙의 오우거를 짓밟았다.
이를 디딤돌 삼아 높이 뛰어오른 그는 그대로 ‘해왕’의 심상을 머리 위로 띄웠다.
-나도석 씨! 도망쳐야 해요!
“도망은 무슨……!”
그는 팔 근육을 거대하게 부풀려 그대로 거인의 머리를 세게 가격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거대한 충격음과는 다르게 거인은 약간 얼굴을 찌푸려 노려볼 뿐이었다.
-으으어어어…….
거인의 손은 날파리를 잡듯 허공에 떠 있던 나도석을 후려쳐 버렸다. 바닥으로 추락한 나도석은 큰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나도석 씨!
다행히 먼지구름이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를 뚫고 나도석이 하늘로 솟구쳤다.
“근성 있네, 이 새끼?”
하지만 그때였다.
콰지지지직!
별안간 나도석에게 ‘벼락’이 떨어졌고, 묵직한 중력이 그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김훈은 질색한 얼굴로 링링을 돌아보았다.
어느덧 공간이동으로 근처에 다다른 그녀의 지팡이에선 엄청난 양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훈! 저놈 데리고 빠져!”
“……네, 네!”
퍼뜩 정신을 차린 김훈은 공간이동으로 나도석의 옆으로 이동하고, 바로 그의 몸을 터치해 멀찍이 다른 공간으로 움직였다.
나도석이 머리에 핏발이 선 채로 성난 눈을 떴지만, 김훈의 공간이동이 더 빨랐다.
나도석은 김훈의 이어폰을 빼앗더니 외쳤다.
“미쳤어? 내 뒤를 쳐?”
-고마운 줄 알아. 너 방금 당할 뻔했어.
“뭐? 이게 말이면…….”
-정신 차리고 주변을 봐.
김훈은 금세 링링의 저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고대의 타이탄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었지만, 사실 그들이 걱정할 건 따로 있었다.
상층에 거주하던 ‘고대의 타이탄’을 중층으로 끌고 내려온 터무니없는 집단.
이 모든 이변의 원인.
김훈은 이미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최하나도 무전으로 정보를 알려 왔다.
-서쪽!
그녀의 말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공간지각 능력으로 당연히 사방위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김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공간이동을 감행했다.
나도석을 데리고 겨우 근방의 허공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아래로 묵직한 기운을 흘리는 한 남자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리트리하 님…….”
그리고 곁으로는 마일리가 하늘을 향해 막대한 신성력을 쏘아 내고 있었다.
“충격에 대비해!”
쿠구구구궁!
별안간 링링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수차례 빗발치기 시작했다.
김훈과 나도석을 중심으로 펼쳐진 번개의 장막은, 마일리의 저주가 가득 담긴 신성력을 튕겨 내기엔 충분했다.
동시에 김훈은 또 한 번 공간이동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앞섰다.
과연…… 부득이하게 적이 되어 버린 ‘두 명의 천외천’을 어떻게 따돌려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