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19
◈ 319화
쇄애애액!
창졸간에 날아온 공격을 피해 몸을 비튼 최하나는, 오장육보가 뒤틀리는 감각에 미간을 팍 찡그렸다.
또한 모골이 송연해졌다.
‘큰일 날 뻔했어.’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하지 않았더라면 심장이 꿰뚫릴 만한 공격.
아무래도 공격을 당하기 직전까지 알아차리질 못한 걸 보면, 확실히 그녀의 체력이 많이 떨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젠장…… 너무 많아.’
최하나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거칠게 숨을 뱉어 냈다.
저격수는 호흡이 특히 중요하다. 숨 관리를 잘못하면 총구가 흔들린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벌써 4시간째 쫓기는 중이다.
‘버틸 수 있을까……?’
당연한 의문이 그녀를 흔들었지만 애써 버티어 서서 약해지려는 마음을 무시했다.
버티질 못한다면 죽을 뿐이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나 다름없으니, 이딴 고민을 할 바에는 더더욱 기운을 차려야 한다.
‘내가 여기서 죽으려고 여태 그 고생을 한 게 아니야.’
비록 동료를 잃고, 힘을 잃어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아. 절대로.’
주문처럼 생각을 반복하고 애써 근육을 당겼다.
게다가 강서준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버티면 돼. 그러면, 그러면…….’
하지만 가까이 리트리하가 들소처럼 달려들며 매서운 검격을 휘두르고 있었다.
“최하나 씨! 위험합니다!”
최하나는 힘껏 바닥을 박차고 공중을 선회했다. 당장 리트리하의 돌격은 그걸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공격하는 이만 수십 명이었고, 허공에도 그녀를 따라붙는 공격만 수십 개였다.
아직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다.
투타타탕!
빙글 돌면서 쏘아 낸 마탄으로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온갖 화살과 마법을 반쯤은 격추시킬 수 있었다.
‘아직…… 버틸 수 있어.’
이를 악물고 다시 바닥에 착지한 그녀는 빠르게 나무 사이를 누비고 나아갔다.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
58층.
컴퍼니를 비롯하여 1차 원정대 전원이 일주일을 체류하고 있는 곳.
말하자면 전면전을 각오해야 하는 가장 위험한 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8층’에 진입했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제약이 생겨납니다.] [‘이동’을 제한합니다.] [‘회복’을 제한합니다.] [해당 효과는 ‘58층’을 벗어날 때까지 유지됩니다.]강서준은 이후로도 올라오는 57층의 보상 메시지들은 대충 훑고 치워 버렸다.
달빛마저 어두운 숲 너머로 연신 폭음이 들리고 층 전체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이동하죠.”
일행을 데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폭음을 이정표 삼아 움직이니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홀로그램이 하늘에 나타나 그들의 위치를 알려 줬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조바심이 앞서고 그 뒤를 빠르게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전투의 중심에 다다랐다.
싸움이 어찌나 거칠었는지 주변의 나무나 수풀이 모조리 파괴된 현장.
강서준은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신 안 차리냐? 왜 너까지 그 모양이야?”
“누가 이러고 싶어서 이래?”
“근성이 부족한 거야. 왜 대가리는 멀쩡한데 몸을 조종하질 못하는 거야? 바보야?”
터프하게 내지르는 음성과 날카롭게 쏘아지는 음성.
강서준은 바로 알았다.
‘나도석이랑 링링이잖아?’
링링이 말했다.
“말하는 꼬락서니는…… 대가리가 뭐니? 대가리가.”
“지금 그딴 게 중요하냐?”
쿠콰카카카캉!
현장에 도착한 강서준은 연신 폭풍에 둘러싸여 애써 버티어 선 나도석을 확인했다.
그 앞으로 링링이 혀를 차며 지팡이를 휘두르고, 그럴 때마다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나도석을 덮치고 있었다.
‘……링링도 당했었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녀는 이젠 적들의 앞잡이가 되어 무서운 마법을 휘두르고 있었다.
솔직히 적이 되어 버린 링링은 실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막강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구 유일의 대마법사였던 그녀는, 재앙의 탑을 돌파하면서 누구보다 강해지지 않았는가.
어지간한 용조차 그녀에게 깜냥이 안 될 정도로 현재의 링링은 무시무시했다.
쿠우우웅!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상대가 ‘나도석’이란 것이다.
그는 다가온 불꽃마저 그대로 주먹으로 맞받아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몸을 휘감은 각종 디버프 마법부터, 중력장이 짓눌러 대는 끔찍한 순간까지.
기합 몇 번이면 털어 냈다.
“으랴으랴으랴으랴!”
전신이 넝마가 될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심신합일이 극에 다다른 나도석은 등 뒤로 어느덧 스스로의 형상마저 띄우고 있었다.
“이까짓 거……!”
그중 강서준이 가장 놀란 건, 현재 나도석 또한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상태란 것이다.
‘바이러스를, 의지로 이겨 냈어.’
링링조차 당하고야 말았던 바이러스를…… 그는 의지만으로 버텨 내고 있었다.
참으로 나도석다운 결과였다.
링링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기세야. 얼른 날 기절시켜.”
“뭐?”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자!”
링링은 살기 가득한 마법을 쏘아 내면서, 말로는 나도석을 열심히 응원했다.
그게 참 뭐랄까.
‘우스꽝스러운 연극 같아.’
이것만 보더라도 ‘패러사이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인지 알 법했다.
나도석은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한 소리를 또 하지 말라고!”
쿠우우우웅!
그의 주먹이 기어코 링링의 복부에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자비 따위는 개나 줘 버린 그 일격에 링링은 검은 피를 토해 내며 멀찍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
“흐읍…… 살살 좀 치면 안 돼?”
“뭐?”
“사람이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그럼에도 링링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마법을 조형해 냈다.
두 사람의 전투는 산을 깎아 버릴 기세로 이어졌다.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싸움.
하지만 강서준은 쿨하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지.’
나도석이라면 제아무리 상대가 링링이더라도 오래 버틸 거란 확신이 있었다.
아니, 적어도 지진 않겠지.
‘나도석이니까.’
그보다 강서준이 신경 써야 할 쪽은 따로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폭발.
세 개의 흐름이 거칠게 맞부딪치는 현장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최하나 씨와 리트리하, 마일리.’
거두절미하고 그곳으로 이동한 강서준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 힘겹게 전투를 펼치는 최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쿠콰아아아아앙!
그녀는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푸른 불꽃을 쏘아 내고,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얼마 못 버티겠는데.’
당장 우세한 것처럼 보여도 최하나의 마탄은 점차 그 기세가 줄어들고 있었다.
제아무리 영혼을 불태우는 기술이라 해도 그 한계는 있는 법.
무엇보다 이곳은 이동이나 회복이 제한되는 특수한 층이었다.
그녀는 아킬레스건을 짓밟힌 채로 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이내 리트리하의 방패에 두드려 맞은 최하나가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죄송하단 말을 입에 달고서 휘두르는 살기 가득한 공격들.
이쪽도 정상적이지 않기로는 만만치 않아 왠지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때, 리트리하가 외쳤다.
“피해요! 최하나 씨!”
쿠우우우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리트리하는 그의 전용 무기인 대검을 꽉 쥐고 있었다.
공간을 접듯이 달려듯 그의 대검은 제멋대로 최하나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아, 안 돼애애……!”
리트리하의 비명이 울리고.
채애애앵!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충격파가 생겨났다. 리트리하는 멀리 튕겨 나가더니 이쪽을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최하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은 강서준의 등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서준 씨?”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었죠?”
그가 손을 내밀자, 저도 모르게 붙잡은 최하나가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충격파로 일어났던 먼지가 걷어지고, 이쪽을 보던 리트리하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거지! 이거지!”
“……리트리하.”
“드디어 오셨군요! 강서준 님!”
그리고 반갑게 환호하는 얼굴로 그는 다시 대검을 휘두르며 접근해 왔다.
이번엔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마일리도 전면으로 나섰다.
그녀 또한 반갑다는 얼굴로 일단 손을 내밀어 저주부터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플레이어 ‘마일리 그레이스’가 ‘새벽의 저주(S)’를 발동합니다.]다만 이 스킬은 창졸간에 날아온 다른 빛줄기로 상쇄시킬 수 있었다.
[플레이어 ‘연희연’이 ‘새벽의 고요(S)’를 발동합니다.]리카온 제국인부터 강서준의 일행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근방을 뒤덮던 컴퍼니원을 상대로 전투도 벌어졌다.
쥬톤이 돌연 거대한 샤벨 타이거로 변신했고, 안센은 직접 만득 폭탄으로 일대를 불태웠다.
백귀들도 가만히 있질 않고 곳곳으로 흩어져 전쟁을 이어 나갔다.
영혼 부대가 산악을 장악하자 오히려 컴퍼니원들이 곳곳에 고립되기도 했다.
강서준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움직일 수 있죠?”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인 최하나는 잔뜩 지친 얼굴이었지만, 강서준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기에.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앞으로 내달렸다. 리트리하가 대검을 찍는 사이 최하나는 측면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쿠아아아앙!
내리찍은 정면으로 강서준이 충돌했고, 최하나의 마탄은 그 무릎을 관통했다.
‘부족해.’
하지만 예상대로 관통 이후에도 리트리하의 움직임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신체의 조종간을 빼앗긴 그였다. 몸이 망가지더라도 억지로 움직이면 될 일.
하물며 날개를 뽑아 날아다닐 수 있는 그에겐 무릎 하나쯤은 어드밴티지도 못 된다.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방법은 하나야.’
리트리하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움직이게 되어 있다면…… 남은 건 ‘절단’뿐이다.
적어도 대검을 쥔 손목을 자르고, 방패를 쥘 손목을 잘라 낸다면 어떨까.
‘나중에 마일리에게 붙여 달라고 하면 돼.’
순식간에 무책임한 결론에 도달했고.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코앞에 접근한 리트리하와 시선이 마주쳤다.
리트리하는 올곧은 눈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뭐든 당신의 생각대로 하세요.”
“……그래요. 죽진 않을 겁니다.”
그리 말한 강서준은 눈을 번뜩이며 재앙의 유성검과 그랑의 어금니 단검을 꽉 쥐었다.
자르는 동시에 화룡의 불꽃으로 피부 조직을 태워 버린다면 깔끔하게 출혈도 막을 수 있다.
“……갑니다!”
“네!”
말로는 미안한 내용이 가득하면서 서로를 향해 살벌한 공격이 이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휘이이이익!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달려들던 리트리하의 몸이 두둥실 위로 솟구쳤다.
전장의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희연과 안센을 상대로 싸우던 마일리도 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컴퍼니원들도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문득 리트리하가 외쳤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이건 목적을 달성했다는 신호예요!”
그들이 달성한 목적이 무엇일까?
답은 빤했다.
‘점핑…….’
기어코 놈들이 58층을 벗어날 준비를 모조리 끝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뒤를 쫓아가면.’
“가, 강서준 님! 최하나 님이!”
그때 가까이에서 연희연의 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최하나가 온몸을 뒤틀면서 꺽꺽대고 있었다.
눈에는 피가 흘렀고, 입이나 귀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연희연이 계속해서 힐을 불어 넣었지만 그녀는 회복될 기미도 보이질 않았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최하나의 몸에 박힌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패러사이트!’
언제 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최하나의 몸으로 패러사이트가 파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