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2
◈ 32화
“미리 말하지만 지금의 전 D급 던전의 보스를 이기지 못해요.”
이깨비를 쓰러트린 강서준이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일행은 말도 안 된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농담이시죠?”
“아뇨, 진짜입니다. 전 아직 D급 보스를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 않아요.”
D급 보스의 수준은 최소 레벨 120 언저리 수준이었다. 그리고 강서준의 현재 수준은 스텟을 최대한 끌어당겨도 겨우 120을 넘긴 상태.
하물며 상대는 아마도 ‘삼깨비’로 추정된다. 지금까지의 등장 패턴을 보면 확실할 것이다.
‘삼깨비는 강해.’
강서준이 조금 레벨이 높다고 해도 쉽게 이기기 어려운 난적이었다. 그런 상대를 두고 불리한 게임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대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지난번에 D급의 보스 몬스터인 본디시를 잡으셨잖아요.”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D급 보스 본디시. 그놈을 말하는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본디시는 숨 고르기로 들어간 상태였죠. D급으로 진화한 지 얼마 안 된 놈이라 진짜 D급 보스라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하지만 삼깨비는 진짜 D급의 보스 몬스터였다. 그 수준부터 차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전 여기서 팀을 나누고자 합니다.”
“팀요?”
“네. 두 개로 나눠서 움직이도록 하죠.”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우리가 이 던전을 안전하게 벗어나려면 삼깨비를 쓰러트려야만 할 겁니다.”
이 경매장의 흑막엔 ‘도깨비들의 왕’이란 놈이 있다. 그놈이 바로 잭의 사칭범이었고, 컴퍼니의 일원이었다.
“놈은 도깨비감투를 가졌어요. 도깨비들의 절대 충성을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이죠.”
사칭범을 상대하려면 이 던전의 도깨비를 상대로 싸워야만 한다. 그중 ‘삼깨비’는 당연히 포함된다.
즉, 이 던전을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건 필연적이었다.
해서 작전이 필요했다.
오대수는 불안한 미래를 상상했는지 눈썹을 자르르 떨면서 물었다.
“……그럼 어쩌죠?”
강서준은 몸을 풀면서 답했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
정비를 마친 일행은 두 팀으로 나눴다. 경매장 팀으로 낙점된 오대수는 함께 걸어가는 지상수를 보면서 말했다.
“강서준 씨는 정말 괜찮을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예요?”
“하지만 불가능이란 말은 처음 하시는 것 같아서. 사실 케이 님이라면 뭐든 가능한 줄 알았거든.”
“오해할 만해요. 저도 아까 서준이 형이 자이언트 스펙터를 쓰러트릴 때 소름 끼쳤으니까.”
지상수는 앞서 걸어 나가면서 말을 이었다. 그는 허공을 휘저으며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인벤토리라도 보는 걸까?
“근데 서준이 형도 신은 아니죠. 고작 플레이어고, 레벨, 장비, 스킬…… 뭐든 딸리면 지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죠.”
전투력이 부족하면 질 수밖에 없는 게 플레이어의 한계. 그건 케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서준이 형이 다른 점은 딱 하나죠. 대체 불가의 천상계 플레이어라는 것.”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지라도 천상계 플레이어가 마음먹고 공략을 시작하면 결과는 알 수 없게 된다.
처음엔 안 되는 게임이라도.
두 번째, 세 번째엔…….
강서준은 어떻게든 난공불락의 요새를 뚫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여건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는 파쇄법을 알아낼 것이다. 지상수는 지난 게임에서 케이가 보여 줬던 경이로운 플레이 기록을 믿었다.
오히려 어떤 창의적인 공략을 가져올지 기대가 됐다.
그는 오대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니 우리만 잘하면 돼요. 우리도 전장으로 들어가는 건 똑같으니까.”
오대수는 기다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바라봤다.
경매장으로 향하는 문.
강서준이 언급한 첫 번째 조건을 달성하려면, 이곳에서 두 사람이 해낼 임무가 무척 중요했다.
지상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간만에 플렉스해 보자고요.”
곧, 문을 열고 경매장으로 진입한 오대수는 진득하게 느껴지는 술 냄새부터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식탁을 볼 수 있었다.
빠져나온 곳의 근처엔 가면무도회라도 열린 것처럼 가면을 쓴 사람들이 사방을 오가고 있었다.
서울에 이만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한데 뭉친 풍경이라.
‘……이들이 전부 경매장의 손님.’
물론 경매장의 손님이라고 모두 악인은 아닐 터였다. 인신매매는 경매장의 한 과정일 뿐. 희귀한 아이템을 구하러 온 돈 많은 플레이어도 단순히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뭐 해요? 안 가요?”
어느덧 지상수는 가까이에 있던 닭꼬치 하나를 들어 입에 물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듯 가면을 쓴 채로 사람들 사이를 활보했다.
오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쫓았다. 그나마 가면을 쓰고 있어서 긴장한 얼굴이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래. 다른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경매장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공지원을 비롯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오대수는 각오를 다지면서 경매장이 펼쳐지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경매는 연회장의 가운데에서 슬슬 시작하고 있었다. 동그란 무대 위에서 이깨비가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다들 주목해 주시죠? 오늘의 메인~~ 이벤트! 한정 경매를 시작~~ 하겠습니다!!”
환호와 함께 동그란 무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파에 섞인 오대수는 지상수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우선 각자 단말기를 확인해 주십시오. 경매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하는 상품이 나타났을 때, 단말기에 여러분이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오대수는 지나다니던 이깨비한테 받은 단말기를 내려다봤다. 고작 숫자와 엔터밖에 없는 조촐한 기계였지만, 경매를 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그럼 한정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깨비의 신호에 맞추어 동그란 무대에 장치된 폭죽이 펑 터졌다. 무대를 제외하고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이목이 집중됐고, 그 가운데로 리프트가 올라오면서 첫 번째 상품이 나타났다.
“이 아이템으로 말하자면 오래된 고블린의 사원에서 힘겹게 구한 물건으로 예스러운 멋을 가진 모자…….”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지상수가 단말기에 금액을 입력했다. 동시에 시작된 경매에 이깨비가 잠시 당황했지만 순발력 있게 넘어갔다.
“호오? 조금 성급한 고객님이 오셨군요. 좋습니다, 100골드 나왔습니다. 다음 없습니까?”
어느덧 리프트가 멈추고 아이템의 모습이 드러났다. 레벨 90제의 아이템인 ‘고블린의 환상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끌기 시작했다.
“200골드!”
“300골드!”
“500골드!”
순식간에 치솟는 금액.
이 시국에 경매장을 찾을 만큼 적당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침없이 금액을 적어 냈다.
그리고 슬슬 아이템의 가치가 금액보다 떨어질 즈음이었다.
“1,001골드.”
마지노선이던 1,000골드를 넘어서 지상수가 슬그머니 1,001골드를 제출했다. 사람들이 헛웃음을 짓는 사이, 1,000골드를 제시했던 이가 1,100골드를 입력했다.
“1,101골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상수의 베팅에 1,100골드를 입력한 이는 찌그러진 맥주 캔 같은 얼굴을 했다.
“1,500골드!”
이미 아이템의 가치는 훨씬 뛰어넘은 상태. 이대로 구매해도 손해가 클 테지만 상인은 오기로라도 가격을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1,501골드.”
여지없이 따라붙은 지상수는 결국 아이템을 낙찰받아 냈다.
“1,501골드 낙찰되었습니다!”
이후로 비슷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브레이크가 없는 열차처럼 지상수는 모든 아이템을 낙찰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1골드.”
“4,501골드.”
“3,071골드.”
수번이나 상황이 반복되자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오대수도 당황하며 지상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계획은 이게 아니잖아. 팔려 나가는 사람들만 구매하면 되는 거였는데…… 이러면 너무 시선을 끌지 않겠어?”
경매장에서 ‘사람들’을 낙찰받아 이면 계약서를 얻어 내는 것. 그게 강서준이 말한 첫 번째 계획이었다.
지상수는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플렉스하자고 했잖아요. 걱정 말아요, 계획은 그대로 진행할 겁니다. 다만 저만의 방식으로요.”
“너만의 방식?”
“전 상인입니다. 상인은 신뢰가 모든 것이죠. 감히 제 이름을 갖고 장난을 치는 놈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넌 랭커들 뒤통수를 쳐서 신뢰고 뭐고…….”
“어쨌든요.”
오대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무얼 하려는지는 몰라도 괜찮겠어? 지금 네가 지불해야 할 금액만 10만 골드가 넘을 텐데. 공수표가 들키면 그래도 쫓겨날 거야.”
10만 골드.
일개 상인이 가지기엔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하물며 오픈한 지 세 달밖에 안 된 게임에서 개인이 10만 골드를 소유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누가 공수표래요?”
지상수는 웃으면서 오대수를 안정시켰지만, 그는 도통 진정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람들이 지상수를 색출해 내려고 안달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계획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반발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자꾸 장난질을 하는 거냐고!”
“맞아! 어떤 새끼인지 얼굴 좀 보자!”
“이거 무효라고!”
원하는 아이템을 낙찰받지 못한 상인들이 담합하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는 메아리치듯 커졌다. 이깨비도 그대로 경매를 이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갔다.
“이거, 너무 일이 커졌군요. 잠시 해명이 필요하겠는데요?”
사실 이깨비도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매 물품이 나올 때마다 설명을 채 잇기도 전에 금액을 제시하는 누군가.
장난이라도 하듯 1씩 올려서 낙찰받는 누군가는 분명 순수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깨비는 입꼬리를 실실 올리며 관중을 둘러봤다. 일단 이럴 땐, 화살을 돌리는 게 좋았다.
“혹시 …… 해명 가능하겠습니까?”
이깨비의 진행에 따라 관중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294번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오대수가 지상수의 단말기에 적힌 294번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지상수는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어쩌려고?”
“해명해 달라잖아요.”
“그래서?”
“걱정 마요. 저 잭입니다.”
당당하게 오대수의 손을 뿌리치고 나아가는 지상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말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는 걸까?
오대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 믿자. 그는 잭이야.’
지상수가 말했듯, 그는 진짜 잭이다. 랭킹 9위에 다다르는 천외천 ‘던전 상인 잭’이 바로 그였다.
그렇다면 믿어야 한다.
강서준의 전장이 몬스터와 검을 나누는 피 튀기는 현장이라면, 지상수의 전장은 이처럼 상인들끼리 돈과 돈으로 맞부딪치는 거래의 현장.
이곳이 바로 지상수의 무대니까.
지상수는 가면을 고쳐 쓰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내가 294번이야.”
“호오…… 당신이.”
“뭐가 문제지?”
“문제랄 건 없습니다. 그저 불만 사항이 접수되면 풀어야 하는 게 제 일인지라.”
이깨비의 말에 지상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실수한 게 있나? 난 이 경매장의 룰대로 물건을 구입했을 뿐이야.”
이깨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죠. 하나 물건을 구매할 능력을 증명해야 할 겁니다. 우리 도깨비들은 돈을 갖고 장난을 치는 족속들을 혐오하거든요.”
“……그거 내가 좋아하는 마인드인데.”
지상수는 그를 노려보는 수많은 상인들을 돌아봤다. 의심의 눈초리 속에는 종종 살기도 숨겨져 있었다.
얕보이면 잡아먹을 셈인가.
“해명해 달라고?”
지상수는 인벤토리를 가시화하여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그가 강조해서 보여 주는 부분은 인벤토리에 명시된 현금의 액수.
[10,000,320G]오대수는 벙 찐 얼굴로 지상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뭘…… 어쩔 셈인데?’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지상수의 행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