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21
◈ 321화
쿠우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무언가가 어깨를 짓눌렀다.
지구가 몸을 잡아당긴 듯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드는 무거운 압력!
“그래비티는 질량에 따른 무게를 더하는 마법이야. 해제 방법은 간단해. 질량을 0으로 만들면 돼.”
지팡이를 휘두르며 내뱉은 링링의 말에 강서준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발동한 주체면서, 그 대책까지 마련해 주는 꼴이라니…….
“강서준 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반중력 장치를 전개하겠습니다!”
그나마 송명이 링링의 말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어서 송명이 꺼낸 ‘반중력 장치’는 질량을 0으로 만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비티를 대항할 정도로 몸을 가볍게 만든다고 했다.
강서준은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마법사가 아닌 그가 질량을 0으로 만드는 방법 따위 알 턱이 있을 리가 없겠지만.
이깟 중력이 그를 짓누른들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당신들부터 얼른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겁니다.”
중력 마법에 이어서 주변으로 공명하는 ‘새로운 마법’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기온이 낮아지고 서서히 공기에 서리가 끼는 게 보통 심상치 않았다.
‘블리자드겠지.’
일대를 통으로 얼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초고위 마법.
아예 적중당하지 않는 게 최선인 최악의 범위 마법 중 하나였다.
한편 강서준을 위협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케이 님! 조심하세요!”
강서준을 향해 휘둘러지는 대검.
창졸간에 접어든 리트리하의 공격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였다.
콰아아앙!
힘껏 내리친 리트리하가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형……!”
외마다 외침과 동시에 느껴지는 서슬 퍼런 기운에, 바로 ‘이기어검술’을 발동했다.
허공에서 균열이 일더니 이내 기다란 칼날이 그의 등짝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강서준은 류안으로 남몰래 숨어 있던 지상수도 발견해 냈다.
‘갈수록 태산이군.’
물론 전투 자체는 무난했다.
재앙의 탑을 올라 일취월장 성장한 강서준의 실력은 모두를 상대로도 하루 종일 싸울 수 있었다.
천외천이 하나든, 둘이든…… 그가 질 거란 생각은 추호도 떠올리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란 거야.’
강서준은 링링의 뒤편으로 뻥 뚫린 어두운 복도를 빠르게 살폈다.
‘시간이 없어. 이대로면 놈들이 위층으로 올라가고 말 거야.’
링링을 비롯한 천외천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고작 시간벌기야.’
놈들의 진짜 목적은 ‘상층부’에 있고, 이미 ‘진백호’를 납치한 놈들은 이스터 에그에 입장할 조건을 만족시켜 놓질 않았는가.
‘놓치면 끝이야.’
하지만 근접한 리트리하는 놔주질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달라붙었고, 지상수의 연계도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솔직히 지상수도 상인이라고 무시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괜히 랭킹이 9위일까.’
그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희귀한 아이템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진귀한 특징을 가졌다.
온갖 디버프를 주는 건 물론, 자동 에임핵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를 쫓아오는 총알도 마구잡이로 쏘아 낼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상수도 충분히 전투에서 활약을 할 조건은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수의 주변으로 수십 개나 되는 아이템이 두둥실 떠올랐다.
“설마…… 전부 마검이야?”
“형. 얘네 다 비싸거든요? 기왕이면 부수진 말아 줬으면…….”
투콰아아아앙!
하지만 강서준은 다가오는 마검을 전력으로 맞부딪치며,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지상수의 말마따나 상대를 봐주면서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천외천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그런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쪽이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법이지 않은가.
‘……뇌신을 쓰는 수밖에 없나.’
나지막이 떠올린 단 하나의 수단.
몸에 다소 무리가 가겠지만, 아끼다 똥 되는 것보단 백만 배는 나을 것이다.
여기서 제레브를 놓쳐 봐야 스킬을 사용할 기회조차 날리는 꼴이 될 테니까.
강서준은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하지만.
“아서라. 여기서 힘을 다 빼면 나중에 뭘 어쩌려고 그러냐?”
그때 옆면을 노리던 리트리하의 대검을 일격에 튕겨 낸 사내가 있었다.
나도석.
그가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넌 가 봐.”
“하지만 나도석 씨, 몸이…….”
“알아. 당장이라도 뒈질 것 같다.”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몸은 사실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것부터 엄청난 부담이 된다.
막말로 패러사이트의 명령으로 멋대로 움직이려는 몸을 의지로 붙들고 제어하는 셈이다.
“근데 어쩌겠냐.”
나도석의 기운이 점차 증폭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솟구친 ‘나도석의 형상’은 거인처럼 복도를 가득 채웠다.
혹시 패러사이트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괜찮아지기라도 한 걸까?
“너만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데.”
잠시 류안을 발동한 강서준은 나도석의 몸에서 두 개의 힘이 여전히 부딪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석을 여기에 남기고 간다면…… 그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긴 체력 회복도 안 되는 구간.
나도석 또한 최하나와 마찬가지로 아킬레스건을 짓밟힌 채로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믿고 맡깁니다.”
강서준은 리트리하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나도석을 일별하기로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설령 여기서 그가 죽더라도 강서준은 나아가야만 한다는 건 분명했다.
‘……죽긴 누가 죽어?’
강서준은 빠르게 달려 나가며 멀리 컴퍼니 놈들이 있을 곳을 바라봤다.
방법은 단순했다.
‘패러사이트만 제거하면 된다.’
원흉만 제때 없앴다면.
마일리만 되찾는다면…….
‘설령 죽더라도 살릴 수 있어.’
게임의 효과가 적용되는 이곳이라면, 분명 부활 대기 시간도 존재할 테니까.
[플레이어 ‘연희연’이 스킬, ‘신의 가호(S)’를 발동합니다.]나도석의 몸에 은은한 신성력이 감돌았다.
강서준은 먼지가 가득한 얼굴로 나도석에게 연신 힐을 퍼붓는 연희연도 보았다.
‘그래. 혼자도 아니야.’
링링의 중력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리카온 제국의 플레이어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쥬톤이 높이 뛰어올라 링링의 마법을 격추시켰고, 송명을 위시로 움직이는 부대가 마일리를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강서준은 연신 마탄을 쏘아 내는 최하나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금입니다. 가야 해요.”
모두의 노력 덕분에 실낱같은 틈이, 적진 사이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그 시각.
온몸을 포박당한 진백호는 뒤쪽에서 들려온 커다란 폭음에 몸을 떨었다.
‘이 소리는…….’
모르긴 몰라도 이곳으로 누군가가 쫓아왔다는 증거였다.
최하나? 나도석?
링링이나 리트리하가 이미 적들에게 종속당해,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저 소음은 그들이 격돌하면서 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옆을 걷던 가면을 쓴 놈이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어마어마하군. 여기까지 마력이 진동할 정도라니…….”
“괴물들이야. 괜히 천외천이 아니군.”
“적이었으면 끔찍했겠는데?”
잠시 몸을 떨던 그들이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봤자 이젠 꼭두각시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정말이지…… 제레브 님을 따르길 천만다행이야.”
그들의 시선은 선두를 천천히 걸어가는 한 악마에게 향해 있었다.
마왕 제레브.
진백호도 그쪽을 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가 이렇게 형편없이 묶여 있는 이유는 전부 저 괴물 같은 마왕 때문이다.
‘그토록 노력했는데…….’
A급 던전이 되어 버린 기계성마저 홀로 돌파할 만큼 강해진 그였다.
정령왕의 기운도 꽤 다스리고, 마력을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방법도 익혔다.
솔직히 이쯤이면 그의 적수라 할 만한 사람은 ‘강서준’을 제외하고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게 잠깐의 오만이었고, 방심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백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크윽. 이래선 안 돼.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질질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이전에 천안에서 무력하게 보내던 나날과 지금의 상태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변한 게 없는 현실.
진백호는 납득하기 싫었다.
‘탈출해야 해.’
적들의 목적을 알고 있는 한, 그는 이 무리에서 어떻게든 도망쳐야 할 의무가 있다.
지구를 지켜야 하지 않은가.
‘절대 상층부로 이들과 올라가선 안 되는 일이야.’
하지만 녀석들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속박당한 그가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그의 몸을 조이는 줄은 이상하게도 마력 자체를 다루질 못하도록 그 흐름에 개입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몸에 종속되어 있는 정령왕이 기지개조차 켜질 못하는 중이었다.
‘방법을…… 방법을 찾아야!’
그렇게 진백호가 갖은 노력을 다하며 마력을 움직이려 했던 게 효과가 있었을까.
……우웅!
미약하지만 그의 의지에 따라 실낱같은 마력이 동조하는 게 느껴졌다.
아주 작은 흐름이었지만 진백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제발…… 움직여라!’
실낱같던 흐름은 이내 폭풍으로, 몸속에 아로새겨졌던 기운은 점차 증폭되었다.
여태 기지개조차 켜질 못하던 정령왕의 기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들어 보기만 했고…… 배운 적조차 없는 스킬의 그의 몸에 각인되었다.
[스킬, ‘정령화(L)’를 발동합니다.] [정령왕 ‘피닉스’가 응답합니다.] [정령왕 ‘아쿠아’가 응답합니다.]무려 두 개의 정령왕이 동시에 몸 위로 뒤덮이고, 어울릴 수 없는 ‘불’과 ‘물’이 뒤엉켜 주변에 영향을 주었다.
“……크으윽!”
“대체 어떻게 마력을!”
“코드 레드! 모두 이놈을 막아!”
“마력 제어구는 어딨어?”
컴퍼니 놈들이 재빠르게 대처하려 했지만 각성한 진백호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불처럼.
아예 형상을 갖추지 않은 것처럼 주변을 거센 물길로 휩쓸고 한쪽으로는 뜨거운 화마로 불태워 나갔다.
확실히 L급 스킬답게 그 위용이 대단했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만 같다.
‘이 힘이라면 제레브 그 녀석을 쓰러트리는 건 일도 아닐지도 몰라!’
1차 원정대가 그리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유는 전부 제레브가 원인이었다.
패러사이트라던가?
누구든 감염된 이로 하여금 조종해 대는 터무니없는 힘은, 상황을 이렇게 꼬아 버렸다.
‘근데 나에겐 통하지 않았어.’
정확히는 진백호를 감염시키지 않았다는 게 맞는 결론이었다.
주요 인물은 쉽게 건들 수도 없는 위치에 서 있었으니까.
그는 적들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고,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즉 나만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걸지도 몰라.’
생각을 오래 이어 갈 수는 없었다. 선두를 걷던 제레브가 어느새 그의 앞으로 현신했으니까.
“용케 움직이는군.”
“……마왕.”
“하지만 거기까지다. 갈 길이 바빠.”
그 말을 끝으로 진백호는 순간적으로 제레브의 형체가 거인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야.’
전능해진 감상마저 순식간에 지워졌다. 애써 반격하고자 불길을 일으키고 물살을 가공해도 소용이 없었다.
모두 제레브의 앞에선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았다.
‘말도 안 돼.’
L급 스킬로 각성했던 그의 전력은, 제레브라는 거대한 둑에 막혀 멈추어 서고 말았다.
제레브는 상식을 훨씬 초월하는 괴물이었다.
“시간이 지체됐군. 끌고 와라.”
“네, 네! 제레브 님!”
멀찍이 떨어져 있던 컴퍼니원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진백호에게 각종 마력 제어구를 착용시켰다.
이젠 말조차 꺼내질 못하도록 재갈까지 물려 둬,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됐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나.’
간신히 가동한 그의 전력마저 전혀 소용이 없는 막강한 상대.
지독한 무력감을 느끼며 진백호는 순순히 적들의 손아귀에 질질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하지만 그는 알았을까.
“점핑을 개시한다! 바로 아르카나와 싸워야 하니 준비해!”
“팀별로 자리를 유지해! 진형이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질 거야!”
잠시 그로 인해 벌어진 ‘잠깐의 소동’ 때문에 조금이나마 ‘늦어진 점핑’이.
그러니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 냈던 그 짧은 순간의 ‘멈춤’이.
[특수 함정 ‘점핑’을 활성화합니다.]“어딜 튀려고?”
기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