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22
◈ 322화
앞서 들려오는 폭음에 강서준은 속력을 더욱 높였다.
먼 거리임에도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
누가 만들어 낸 흐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진백호.’
불과 물이 뒤엉켜 방대한 충격을 일으키고 있었다.
문제는, 그 힘이 일시에 사라졌다는 거겠지.
그게 무얼 뜻하겠는가?
“……최하나 씨. 속력을 높이죠.”
강서준의 의도를 파악한 최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체력으로 기꺼이 ‘번 블러드’를 발동했다.
그리고 파랑이는 오랜만에 ‘용’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날개를 활짝 펼쳤다.
“두 사람을 부탁해.”
-말 안 해도 알거든?
틱틱대며 파랑이가 안센과 유리나를 등에 태웠다. 동시에 강서준과 최하나의 속력에 맞추어 고속 비행을 시작했다.
강서준은 눈앞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흐름을 인식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점핑이 시작되고 있어.’
빠르게 휘몰아치는 기운을 쫓아 더더욱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강서준은 유난히 긴 복도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아직…… 늦진 않았어.’
그리고 다행히도 점핑이 완성되기도 전에 그곳으로 들어선 강서준은, 이내 모여든 컴퍼니원들을 쭉 살필 수 있었다.
포박된 진백호의 황망한 시선과 당황하는 적들의 동태.
그리고 이쪽을 오연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제레브까지.
“어딜 튀려고?”
그 순간 주변이 번쩍이며 ‘점핑’이 완전히 활성화되었고.
[특수 함정 ‘점핑’을 발동합니다.] [충격에 주의하십시오!]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범위에 선 모든 이들이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
점핑.
중층부터 등장하는 특수 함정.
이 함정의 본래 목적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플레이어를 그보다 위층으로 내몰아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장한 플레이어는 얘기가 달라.’
치명적인 ‘독’도 누군가에겐 ‘약’이 되듯.
점핑은 이미 완성된 플레이어에겐 지름길이 된다.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층간 보상을 무시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58층처럼 중층의 끝자락에 있다면, 점핑으로 도착할 한계는 분명했다.
60층.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승급의 층이다.
물론 현재의 강서준이라면 어떻게든 고대의 신수 정도는 쓰러트릴 힘은 있었다.
빠르게 층을 돌파하겠다고 애써 히든 퀘스트를 공략한 결과는 생각보다 대단했으니까.
점핑으로 놓쳐 버린 두 개의 층간 보상 따위는 큰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문제는…….’
강서준은 양손에 단검을 쥐며 가까이에 선 적들을 경계했다.
진백호를 중심으로 원형 진을 짠 컴퍼니가 이쪽을 향해 온갖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공략해야 할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야.’
그중 높이 솟은 산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진 제레브는 담담한 눈으로 말했다.
근데 원래 저렇게 근육질이었나?
일전에 봤던 것보다 두 배는 커다란 형체의 제레브가 강서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군.”
그리고 묵직한 기세를 쏟아 내는 제레브의 시선에,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강하다.’
지난 과거에 싸웠을 때는 비교조차 어려웠다.
아니, 막말로 무의식에서 봤던 모습보다도 훨씬 강한 느낌이다.
긴 세월을 지내며 더욱 강해지는 법이라도 익힌 걸까?
녀석은 이죽이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눈 깜빡할 사이에 강서준의 정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단검을 맞부딪쳤지만,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충격에 뒤로 튕겨 나갔다.
물론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스킬, ‘파이어볼(S)’을 발동합니다.]부딪친 그 즉시 놈의 면상으로 수십 개의 파이어볼을 날려 버렸으니까.
쿠콰카카캉!
그러나 녀석은 무식하게도 S급의 불덩어리를 맨몸으로 감내하며 공격을 이었다.
녀석의 검 위로 수십 미터나 될 법한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어 있었다.
“따라잡으면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강서준은 오러 블레이드에 맞서 ‘도깨비불’을 태웠고, 그랑의 어금니 단검으로 화력을 보충했다.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영역 선포’를 발동합니다.] [칭호, ‘도깨비의 왕’을 확인했습니다.] [‘핏빛 도깨비의 달’이 선언됩니다.]그것으로 족하지 않고 강서준은 가지고 있는 힘을 차례로 꺼내었다.
막상 부딪친 제레브의 전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패러사이트의 영향인지 솔직히 이놈만으로도 S급 보스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졌다.
‘착각은 아니겠지.’
류안으로 보면 녀석의 주변엔 한 점의 마력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즉, 놈은 가지고 있는 방대한 마력을 모조리 제 몸 안에 갈무리했다는 거다.
‘저 작은 체구로 말이지.’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거인처럼 큰 형태였지만, 몬스터의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개체.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슬슬 주변으로 안개가 조금씩 생겨난 건 그즈음이었다.
한쪽의 산이 갈라지고 그 너머로 승급 몬스터인 ‘고대의 신수(神獸)’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산(山)만 한 크기.
[60층 승급 몬스터 ‘고대의 신수 아르카나’가 등장했습니다!] [‘아르카나’가 ‘신수의 저주(S)’를 발동합니다!]설상가상으로 60층의 주인인 아르카나마저 나타나 전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딜 보는 거지?”
쿠우우웅!
제레브는 아르카나 따위는 신경조차 쓰질 않는지, 강서준을 향해 공격을 이었다.
강서준도 그 부분엔 공감했다.
아르카나를 견제하면서 제레브까지 상대한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속도는 내야겠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게임이다.’
지금도 나도석과 리카온 제국인들은 링링을 필두로 한 천외천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또한 최하나도 현재 컴퍼니를 견제하랴, 아르카나를 신경 쓰랴…… 몸이 두 개라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진백호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진백호의 주변의 마력은 마치 흐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죽은 건 아니겠지?
모르긴 몰라도 컴퍼니 놈들이 진백호의 능력을 봉인하려고 무슨 수를 쓴 것이다.
‘단숨에 끝내자.’
[스킬, ‘뇌신(L)’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순간적으로 출력을 높이며 놈의 지근거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뇌신은 그가 가진 최고의 절예.
‘여기에 공절을 섞으면…….’
잠시 숨을 참은 강서준이 찰나의 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뇌신’으로 인해 강화되고, 빨라진 속도는 그대로 ‘공절’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현재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강하군.”
“……!”
“하지만.”
제레브는 ‘영역 선포’에 이어, ‘뇌신’까지 사용한 강서준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강서준은 제레브의 전신을 휘감은 미증유의 기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나태한 자의 말로(末路).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한순간에 불태워 적을 말살하는 제레브의 전유물.
녀석이 재앙의 탑에 오른 이후로 꾸준히 쌓아 뒀던 마기가, ‘검’이 아닌 놈의 ‘몸’에 담겨져 있었다.
마치 ‘뇌력’을 몸에 넣어 ‘뇌신’이 된 것처럼.
놈은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날 이기지 못한다.”
“…….”
“이만 사라져라!”
콰아아아앙!
받아치는 것조차 어려운 일격.
강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받아치지 않는다.’
강서준은 아예 파격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더더욱 상대를 몰아치며 공격하는 방식.
방어를 도외시한 육탄전!
‘뇌신이나 나태한 자의 말로는 길게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야.’
실제로 놈의 몸도 눈에 띄게 망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 싸움은 누가 먼저 지쳐 쓰러지는지를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스킬, ‘초재생(S++)’을 발동합니다.]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까지 오르면서 ‘초재생’을 강화해 뒀다는 것이다.
기반이 되는 스킬이 없어 L급으로의 승급은 어려워도 ‘S++’의 성능도 대단했다.
해서, 강서준은 부서지는 신체를 무시하고 상대에게 대미지를 주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한 대를 맞는다면, 두 대를.
두 대를 맞았다면, 네 대를.
“크윽……!”
결국 제레브 놈도 더는 오연한 시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인상을 한껏 구긴 녀석은 거친 숨을 내쉬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서준은 새삼스럽게도 녀석의 목적을 상기할 수 있었다.
놈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올라, 희생당한 그의 ‘동생’을 찾고자 한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수십 번을 전생했을지도 모르는 비운의 마왕.
“날…… 방해하지 마라!”
제레브가 발악하며 쏘아 낸 대대적인 마기가 강서준의 전신을 두드려 댔다.
잠시 버티질 못하고 튕겨 나간 강서준은 바닥을 구르고 바로 몸을 가누었다.
그 위로 제레브의 검이 내리찍히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강서준이 공격을 막아 내며 말했다.
“웃기지도 않아.”
“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라…… 정말 그걸 제이미가 원할 거라고 생각하냐?”
희생당한 과거의 주요 인물.
제레브의 동생 ‘제이미’.
그 이름에 반응했을까?
제레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서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원하지 않을 거다. 적어도 제이미는 그런 걸 원할 위인이 아니거든.”
“무슨 개소리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버린 아이야. 과연 너의 그 이기적인 생각이 그 아이가 원하는 길일까?”
제레브는 분개한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폭발할 듯 휘두른 마기는 금세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대느냐!”
콰카카카캉!
이어진 검격은 그의 감정에 동조했는지 거칠고 파괴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만큼 놈의 빈틈도 커져, 강서준은 놈의 허리를 베어 낼 수 있었다.
“모르지. 근데 그게 오답인 건 알겠더라.”
“…….”
“넌 정말 제이미가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라 지껄이는……!”
“난 불가능하다고 봐.”
강서준은 제레브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령 네 계획대로 제이미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 아이는 네가 알던 제이미는 아닐 테니까.”
“…….”
“기억은 지우기 가장 힘든 부분이고, 지워진다 해도 그 흔적은 남거든.”
관리자 ‘렉시’의 말대로라면 아마 주요 인물은 복사도 되질 않는 존재다.
즉 돌아온다면 아마도 꽤 많은 세월을 살았을 제이미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동생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고 그 선택은 잘 알겠지만…….”
제레브는 머리를 흔들더니 말했다.
“닥쳐라.”
제레브의 눈이 벌겋게 물들고 그 뒤편으로 마기가 대단하게 피어올랐다.
갈무리했던 힘이 오로지 그의 검으로 뭉치면서 세상이 진동하는 듯했다.
강서준은 아랑곳 않고 말했다.
“넌 방법이 틀렸어.”
“닥쳐…….”
“희생은 결코 정답이 되지 못해.”
“……닥치라고 했어!”
쿠콰카카카카카캉!
놈으로부터 발산된 기운이 바닥을 폭발시키면서, 강서준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강서준은 그 공격을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결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제레브. 넌 동생을 구하겠다고 전생을 반복해서는 안 됐어.”
말했듯 제레브는 오답을 내놨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미래의 제물이 될 새로운 주요 인물을 가져다 바치겠다고?
다시 생각해도 웃기지도 않는다.
“그때 네가 했어야 하는 건 고작 그런 게 아니었어.”
만약 그가 제레브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소중한 걸 지킬 수 있는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강서준은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나라면…….”
거기까지 입을 열었을 때였다.
돌연 제레브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마치 갑옷처럼 도포되기 시작했다.
“케이이이이이!”
[엘리트 몬스터 ‘마왕 제레브’로부터 ‘패러사이트’가 폭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