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36
◈ 336화
카무쉬의 레어를 빠져나오자마자 강서준을 반기는 건 곳곳이 불꽃으로 가득한 황무지였다.
강서준은 메마른 땅을 내려다봤다.
“여기 원래 바다 아니었나?”
던전으로 들어갈 적에 바다를 가로질렀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보이는 건 오직 불덩어리로 잠식된 불바다.
그 많던 물이 전부 증발이라도 해 버린 건가.
[스킬, ‘뇌신(L)’을 발동합니다.]그나마 뇌신을 발동해서 다가오던 위협들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용으로 현현하여 마력으로 몸을 코팅한 카무쉬는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라그나로크가 시작된 이상 더는 먼 곳으로의 공간이동은 불가능하다. 서울이란 곳까지 직접 날아가야 할 거다.
“……귀찮게 됐네.”
-그래서 제안할 게 있다.
녀석은 콧김으로 다가오는 불꽃을 꺼트리며 말했다.
-이 근방에도 카오스는 존재한다. 즉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는 없이 우린 여길 벗어날 수 있다는 거지.
“……뭐?”
-걱정할 것 없다. 카오스가 존재한다면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퀘스트는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말은 동료를 버리자는 거지?”
-현실적으로 생각하란 거다. 넌 아직도 그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나?
“…….”
-라그나로크가 시작한 지 벌써 1시간이 넘었다. 용조차도 살아 있을 리가 없다.
단정 짓는 카무쉬의 말에 강서준은 주변의 풍경을 쭈욱 둘러보았다.
태평양조차 쩍쩍 갈라질 정도로 메말랐고, 불바다 위로는 유독 가스만이 흘러 다녔다.
심지어 곳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들마저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림 사이드 1의 가장 먼 곳까지 공략했던 강서준조차 잘 알지 못하는 괴물들.
S급? 혹은 L급의 몬스터…….
그런 놈들이 득실거리는 지구에서, 과연 서울의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강서준은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야 확인해 보지 않으면 몰라.”
-……진심인가?
“물론.”
그는 이죽이며 말했다.
“혼자 살아남는 건 의미가 없어.”
아마 당장 카오스로 향한다면, 라그나로크는 더욱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몰모트의 안배도 찾았고, 라그나로크가 더 지속되지 않은 현시점이 공략 성공률은 더 높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원하는 건 여기에 없는데.”
그가 왜 N무 인생을 살았겠는가.
무언가를 잃는 대신에 얻는 보상은 싫다.
쉽지 않은 길이라도 원하는 걸 모두 찾아내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헬 난이도’의 퀘스트든.
‘지구 멸망’의 위기든…….
어쩌면 ‘헬조선’에서의 삶이라도.
“더럽게 어려워도 해내서 얻는 것이야말로 진짜 값진 거거든.”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다들 살아 있을걸?”
이 망할 난이도의 게임에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라면…….
충분히 베팅해 볼 만한 일이다.
카무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리석군.
“그래서…… 어쩔 건데?”
도발적인 눈으로 카무쉬를 바라보니, 놈에게서 서서히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내 입에서 쏘아진 브레스는 파멸의 기운을 듬뿍 표출하며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부숴 버리며 나아갈 길을 만들어 낸 용의 숨결.
흑염 브레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 얼른 돌아가자고.”
모두가 기다리는 서울로.
***
투콰아아앙!
부지불식간에 쏘아진 에너지 광선은 일거에 정면을 꿰뚫을 듯 날아갔다.
천벌!
마력을 한껏 응축해서 쏘아 내는 리카온 제국의 최신식 전략무기.
일전에 화성을 일격에 황무지로 만들어 버린 전적이 있는 마력포였다.
특히 이번엔 ‘진백호’와 ‘유리나’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그 파괴적인 위력은 강해졌는데…….
실제로 근처를 서성이던 온갖 비행 몬스터들이 찢어발겨 나갔다.
하지만.
“……1도 안 통하네.”
정면을 막은 카오스는 아예 금조차 가질 않았다.
혹시 공격 무효화 특성이라도 가진 걸까.
“아니…… 0.3CM 정도 밀려났어.”
링링의 눈이 빛났다.
비록 0.3CM의 작은 오차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엄청난 마력을 응축시킨 공격이 만들어 낸 성과가 고작 이 정도라 해도.
상황은 긍정적이었다.
‘무적은 아니란 거니까.’
시스템에 의해 ‘파괴 불능’ 옵션을 가진 게 아니다. ‘절대 죽지 않는 불사’를 특징으로 가진 것 또한 아니다.
“공략할 수 있다는 얘기야.”
물론 수치로 따지자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에, 물로 바위를 자르려는 비상식적인 확률만이 남아 있었다.
하나 이 순간 링링은 그 과정을 숫자로만 판단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뚫지 못하면 죽는다.’
간단한 결론을 가진 문제로 골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 난해한 적을 어떻게 뚫어 버릴지 고민하는 게 낫지.
아마도…….
아마도 케이는 그리 생각했겠지?
“최하나.”
“왜요?”
“강서준은 돌아올 거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최하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링링은 동요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당연하죠.”
잔뜩 흔들리던 최하나의 몸이 눈에 띄게 잔잔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냉철한 ‘클라크의 눈’을 하고 있었다.
“가자.”
“……네.”
두 사람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시선을 교차하는 건 잠깐이면 충분했다.
또한 그보다 빠르게 행동에 나서는 한 남자가 갑판 위에서 큰 목소리를 내었다.
“저게 대빵이냐?”
코끼리의 앞에 선 개미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는 그는 씨익 웃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뒤로 나타나는 건 거대한 ‘나도석’의 형상.
“그럼 저걸 부수면 내가 대빵이겠네.”
그 뒤를 따라 대검을 움켜쥔 리트리하가 말했다.
“저도 있는데요.”
“……넌 근성이 모자라서 안 돼. 탑에서 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왜 자꾸 지난 얘기를 하십니까?”
한편 갑판 위에는 그들 말고도 수많은 랭커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고 있었다.
천외천은 물론, 서울의 3대 길드와 유니온에 소속된 최상위 랭커들.
아니, 랭커가 아닌 자들도 저마다 각오가 담긴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투콰아아앙! 투콰아앙!
그리고 연신 마력포를 쏘아 대도 흠집조차 나질 않던 카오스로부터 이변이 생긴 건 그즈음이다.
“링링 님! 뭔가가…… 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김훈이 외쳤고, 곧이어 아크의 저변으로 온갖 포탈이 열렸다.
대충 봐도 수백 개의 포탈.
그곳에서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흉악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크 전반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했다.
“실드가…….”
원형의 형태로 외부에서 다가오는 자외선과 마력 폭풍을 차단하던 아크의 실드.
이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의 습격까지 버텨 낼 정도로 견고하질 못했다.
“실드가 깨집니다!”
작은 균열은 급격하게 번져 유리 깨지듯 실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대비하지 못한 몇몇의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으로 자외선에 휩쓸려 불탔고.
몇몇의 상위 플레이어만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대비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들이 얼마나 죽어 나자빠졌는지는 일일이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마, 막아아아아!”
누군가의 비명이 신호탄이라도 되듯, 아크를 둘러싼 수천 마리의 정체 모를 몬스터가 우박처럼 쇄도하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그 정체는 안다.
‘드레그(Dreg).’
일부만 태워선 죽지도 않는 불멸에 가까운 특징을 가진 귀찮은 몬스터.
라그나로크가 시작되고 쏟아져 나온 ‘카오스의 찌꺼기’로, 삽시간에 서울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링링은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리트리하, 마력포를 부탁해도 될까?”
“네. 여긴 걱정 마요.”
“최하나. 넌…….”
명령을 잇던 링링은 이미 최하나가 적절한 자리에 서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다른 랭커들도 쭈욱 둘러볼 수 있었다.
“…….”
이곳에 선 이들은 드림 사이드 2의 엔드 콘텐츠까지 살아남은 베테랑 플레이어.
레벨이 낮다고 경력은 짧지 않다.
굳이 명령을 하달해 각자의 자리를 선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링링은 문득 나도석도 발견했다.
“넌 뭐 해?”
“추진력을 얻으려고.”
무릎을 웅크렸던 그는 바로 높이 솟구치며 그대로 몬스터의 머리를 짓밟았다.
동시에 앞으로 가로막는 카오스를 향해 수차례 도약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대충은 예상했던 일인지라 링링은 애써 그쪽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녀도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전장에서 마법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적들의 숫자가 우세한 시점엔.
[플레이어 ‘링링’이 스킬, ‘블리자드(S)’를 발동합니다.]링링과도 같은 대마법사의 역할이 아주 지대하다 할 수 있으리라.
쩌저저저적!
그녀의 일격은 한 공간을 통째로 얼려 드레그 수십 마리를 소멸시키고야 말았다.
가히 대마법사라 부르는 위력!
하지만 뒤이어 수백 마리의 드레그를 소멸시킨다 해도 링링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 방이 부족해. 한 방이…….”
노련한 플레이어들은 저마다의 위치를 고수하며 최적의 효율을 내고, 그만한 성과를 만들었다.
어쩌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꽤나 고무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란 거야.’
그들의 목적은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 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카오스 안에 숨겨진 ESC를 찾아 이 세계를 탈출해야만 한다.
‘카오스를 공략해야 해.’
링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카오스는 그 어떤 공격에도 뚫리질 않는 거대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오직 ‘천벌’을 비롯한 나도석의 공격뿐.
과연 이 방식으로 카오스를 뚫고 나갈 수 있을까?
0.3CM씩 밀어내는 일격으로 두텁게 쌓인 어둠을 헤치고, 탈출구인 ESC를 찾을 수 있을까.
링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케이…… 너라면 어떡할 거냐?”
똑똑한 걸로 치면 링링의 머리가 케이보다 수십 배는 뛰어날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천재로 유명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능으로 대마법사가 되었으니까.
다만 ‘게임’에 한해서…… 그러니까 ‘공략’에 한해서는 강서준에게 한 수 밀린다.
막말로 케이는 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게임을 공략해 내는 독특한 플레이어였으니까.
그 창의력은 지능이 뛰어나다고 따라잡을 수 없다.
“케이…… 케이 너라면.”
해서 링링은 이 순간 케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에 도달했고.
“……미친 짓이겠는데?”
단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냈다.
“박명석.”
함장실에서 아크의 전반적인 기동을 운용하던 박명석은 그녀의 말에 바로 응답했다.
-말하십시오.
“들이박자.”
-……네?
“이대로 들이박자고.”
링링의 말이 터무니없이 들렸는지 잠시 침묵하던 박명석은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설마 자폭하자는 건 아니죠?
“뭔 개소리야?”
-…….
“천벌에 가동하던 마력을 모조리 선체로 집중시켜. 그러면 버틸 수 있을 거야.”
현 상황을 유지한들 카오스를 밀어내기란 무리고, 아주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미사일이 되는 거야.”
강행돌파.
가능한 한 최고의 일격을 끌어낼 수 있을 때에 모든 공격을 한 점에 집중한다.
그렇게 만든 ‘한 방’은 기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박명석은 우려의 말을 전했다.
-실패하면 모두 죽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살아?”
-…….
“뭐라도 해야 할 때야. 이대로면 전멸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기대를 처참하게 저버린 답변이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링링 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뭐?”
-링링 님이 왜 그런 감정적인 판단을 했는지 몰라도…… 인류의 운명을 도박에 걸 수는 없어요.
“아니, 이건 이성적으로……!”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명석의 말에 링링은 필사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미친 짓’에 가까웠고, 실패할 확률이 너무나도 높은 도박이다.
카오스를 돌파하고 저 어둠 속으로 진입한들…… 탈출구인 ESC를 찾아낸다는 장담은 못 한다.
그 작은 가능성에 인류의 운명을 걸기엔, 그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러면 선체의 일부를 포기하는 건 어때. 운용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면 천벌에 집중시킬 마력도.”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찮은데?
불현듯 무전 사이로 잡음이 흘러 들어왔고,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재차 목소리가 이어졌다.
-난 찬성이야.
익숙한 음성.
-링링의 말대로 하자.
제멋대로 무전에 난입한 목소리에 링링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강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