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46
◈ 346화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거쳐 국토가 모조리 황폐화됐던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국력을 정상 궤도로 되돌린 전적이 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한국의 놀라운 능력을 만천하에 증명한 단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피는 어딜 가도 옅어지진 않는다는 거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런 도시를 만들어 냈으니까.”
무너졌던 폐허 위로 새롭게 세워진 도시. 신생 도시 ‘유니온’을 내려다보며 강서준이 중얼거렸다.
“대한민국은 실존했던 국가라고 하더라. 딱 지금 이 위치가 로테 타워가 있었던 자리라던데?”
드림 사이드의 기반은 모두 실존하는 지구를 대상으로 갖추어졌다.
종종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이나, SF 세계관도 등장하곤 했지만…….
116개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겹치는 설정은 ‘현대 지구’였다.
즉 0115 채널에서 기록되었던 4,000년을 넘는 역사는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세계.
즉 ‘한강의 기적’은 실존한다.
하지만 강서준의 감탄에도 링링은 별 대수롭지도 않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산더미야. 솔직히 말해서 답이 없어. 답이…….”
한강의 기적이 되풀이되듯 빠르게 도시가 세워졌다 해도 아직 할 일은 도처에 깔렸다.
지구는 멸망하는 과정에 놓였고, 카오스의 기세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0115 채널의 사람들이 하루 이틀 멸망을 겪어 본 세대가 아니라고 해도…… 암담한 현실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긴 어렵다.
링링은 나한석을 향해 말했다.
“태평양에 숨겨진 벙커는 무슨 소리야? 지도에도 나와 있질 않은 무인도라니?”
“……과거의 기록을 분석해 본 결과,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을 피해서 미군이 만든 벙커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해당 무인도를 기반으로 3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사용했던 흔적이 남았습니다.”
나한석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곳엔 약 200개가량의 유리관이 있다는군요.”
“200개라…….”
“네. 반드시 찾아야 해요.”
현재 그들은 100개의 유리관을 사용하여 도합 100명의 주민을 소환해 냈다.
유니온에서도 선별 인원으로 꼽히던 자들. 도시를 건축하거나 필수적인 요소로 나눈 인재들이다.
전투에 특화된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 기술의 달인과 지식인도 포함됐다.
링링은 잠시 턱을 쓸었다.
“200개로는 턱없이 모자라. 게임 속엔 아직 생존한 인물이 약 900명은 더 있어.”
“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번 기회에 안센 님과 함께 움직였으면 합니다.”
“흐음…….”
링링은 나한석이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바로 이해했다.
“가능하겠어?”
그는 지금 유리관을 찾는 걸로 만족하질 않고, 이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이다.
나한석은 난색을 표했다.
“쉽진 않을 겁니다. 리카온 제국 측에서도 송명 님이 따라갈 테지만 아무래도 유전자 배합은 아직 우리들이 모르는 기술입니다. 이를 성공시키려면 관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죠.”
“골치 아픈 얘기네.”
나한석과 링링의 한숨이 동시에 터졌다. 그들 앞으로 놓인 문제 중 가장 커다란 화두는 바로 이것일 터였다.
현대 지구인인 관리자와 신인류인 유니온의 불안한 관계.
“그들이 우리 뜻대로 움직일까?”
한 달 전.
시스템과 융합했던 몬스터 ‘카오스’를 무찌르고, 천외천은 메인 연구동을 장악했다.
이어서 뇌신의 전력을 활용하여 91개의 유리관을 모조리 사용했고, 동면 상태에 빠졌던 관리자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에 성공했다.
멸망하는 지구에선 인력은 항상 부족했고,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관리자들과의 공조는 필수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관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NPC 출신인 드림 사이드의 주민들을 영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크, 큰일입니다!”
그때였다.
바닥에서 마력이 응축되더니 솟아오른 물이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모습을 갖춘 정령은 이쪽을 다급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정령왕 아쿠아.
오늘날 진백호의 몸에 머물며 온전히 지구로의 현신을 마친 녀석이었다.
그리고 아쿠아의 입에선 정령왕의 음성이 아니라, 걸쭉한 진백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앳되지 않은 꽤 중후한 음성.
“습격이 있을 겁니다!”
***
콰아앙!
어두운 밤하늘 아래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지구에서의 생존은 늘 위기를 동반하고 몬스터들의 침입은 잦은 편이다.
해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습격은 하등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사람?”
외부의 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세워 둔 방벽 너머로는 수십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같은 전투복을 입고 다양한 현대 무기를 겨냥한 그들은 거침없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정체는 ‘관리자’들.
김강렬은 확성기의 전원을 올렸다.
“이만 멈추십시오! 더 다가오면 저희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밀고 들어오는 상대측에서는 도통 그 말을 들어먹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일언반구의 대꾸도 없이 무작정 스킬을 난사하고, 유니온으로 진군할 뿐이었다.
김강렬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관리자들이 NPC 출신인 그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익히 알았다.
이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벽을 세우고 늘 경계의 시선으로 이쪽을 본다는 것도.
콰광! 콰가가가강!
멀리 하늘에서 미사일이 솟구치더니 유니온으로 떨어지는 것도 보였다.
물론 원형의 방어 마법진은 어지간한 외부 공격을 막아 낸다.
안센과 링링, 그리고 기술자들의 노하우가 집적된 방벽은 라그나로크를 버틸 정도로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카오스조차 잠시 버티도록 단단한 방비를 갖춘 지상 최대의 요새. 미사일 따위로는 실금조차 나질 않는다.
저들의 스킬만으로는 뚫지 못할 거라는 건 익히 잘 알려져 있어 두려울 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누구보다 저들이 더 잘 알 텐데…….’
현대의 무기 정도로는 플레이어로 각성한 유니온의 주민들을 위협할 수 없다.
잠시 방벽 아래를 내려다보던 김강렬은 잠시 침음을 흘리다 나지막이 혀를 찼다.
되질 않는 공격인 줄 알면서도 강렬하게 공격을 반복하는 이유…….
특히 이 어두운 밤 중에서도 유난히 화려한 폭발 마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눈속임인가.”
그는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위기 경보를 격상한다. 현 상황부로 전시로 준하여 전원 로그인을 개시한다!”
김강렬의 빠른 대처는 유니온 전역으로 순조롭게 퍼져 나갔다.
***
잠시 후.
위이이이잉!
유니온 전역으로 사이렌이 울리면서 거리를 밝히는 전등이 환하게 켜졌다.
잠들었던 사람이나 야간 근무 중이던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로그인을 개시했다.
수차례 멸망을 겪었던 주민들.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날이 선 시선으로 정해진 위치로 향했다.
막말로 현 자리에 선 100명의 사람들은 지난 세계에서도 특별히 각광받던 자들이다.
어리숙한 사람은 없었다.
“……시발, 뭐 이리 반응이 빨라?”
“이러다 걸리는 거 아닙니까?”
“시끄러워. 여긴 제아무리 놈들이라 해도 알 턱이 없어. 우린 목적만 달성하고 조용히 빠져나가면 돼.”
그리고 어두운 통로를 귀신같이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종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바깥의 소란을 틈타 유니온으로 잠입한 각성자들.
그들의 리더 ‘이창식’은 작은 단말기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이쯤인가.”
손전등이 비추는 곳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슨 철로가 보였다. 이창식은 무전기를 꺼내어 말했다.
“여긴 두더지. 두더지. 목적지에 도달했다. 작전을 개시하도록 하겠다.”
치직!
잠시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무전은 없었다. 이창식은 괜히 무전기를 툭툭 쳐보다 이내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통신이 끊겼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여긴 유니온의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오랜 폐역의 철로였다. 통신 자체가 잘 터지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오존층을 뒤덮듯 카오스로 하늘을 장악당한 지구는 과거의 그날처럼 온전하게 무전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다.
카오스에 휩쓸린 건 그 무엇이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란 무리였다.
“됐어. 다들 일 시작해!”
해서 이창식은 대수롭지 않게 명을 내렸다. 그의 부하들도 각자 맡았던 작업을 개시했다.
그들의 가방에서 나온 건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의 폭탄!
하지만 그 위력은 유니온 따위는 가뿐히 소멸시킬 정도로 무서운 전략무기였다.
“조심해서 다뤄. 그거 터지면 우리도 다 뒈지는 거야.”
“……뭔 겁을 주고 그래요? 뇌관만 안 건드리면 괜찮잖아요.”
작업은 순조로웠다.
폭탄을 정해진 위치까지 운반하는 게 어려웠지, 이를 설치하는 건 별게 없다.
대충 벽면에 붙이고 정해진 코드만 입력하면 된다.
그런 간단한 조치로 도시 하나를 무너뜨릴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게 무서울 따름이다.
뭐, 버튼 하나면 그대로 발사되어 폭발해 버리는 ‘핵’보다는 번거롭겠지만.
치지직……!
한창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이었다.
치칙!
무전기에서 소음이 들렸고, 이창식은 미간을 구기며 일단 무전기를 꺼내었다.
볼륨을 올리자, 뚝뚝 끊기는 기계음과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칫…… 깨! 치치직!
“뭐라는 거야?”
“치치칫…… 망쳐!”
이창식은 이내 음소거가 되어 버린 무전기를 내려다보다 신경질적으로 흔들어도 봤다.
다급하게 건너편에서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동료에게 물었다.
“너넨 알겠냐?”
“……글쎄요. 전혀 모르겠는데.”
서로 시선을 교차하면서 의문은 가중되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이창식의 질문에 대답을 해 왔다.
“도깨비야. 도망쳐. 라고 했어.”
“……그래? 도깨비야 도망쳐라. 그게 무슨. 어?”
중얼거리던 이창식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했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걸렸던 권총을 꺼냈고, 그 반응에 부하들도 무기를 쥐었다.
이창식은 총알을 장전했다.
“누구냐?”
그리고 돌아온 답은.
“누구인지가 중요해?”
앞이 아닌, 뒤에서 들려왔다.
“너희들이 뭘 하려 했는지가 중요하지.”
소름이 끼쳤다.
분명 앞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뒤로 이동했단 말인가?
이창식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방아쇠부터 당겼다.
타아아앙!
하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창식이 쏘아 낸 방향엔 아무것도 없었고, 두려움에 호흡을 거칠게 내뱉던 그는 새로운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었다.
“……시발.”
그의 동료들.
잠시 방아쇠를 당긴 찰나에 부하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렸다.
총알보다 빠르고,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심어 주는 존재…….
어둠 속에서 홀로 금빛 눈동자를 밝히는 한 남자의 정체를 얼핏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연출할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다.
“……가, 강서준.”
바들바들 떨리는 이창식의 총구는 아래로 내려갔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케이에 대한 소문은 관리자들 그 누구도 모를 수 없다.
또한 드림 사이드를 유일하게 돌파해 낸 강서준이란 플레이어는 전설과도 같았다.
이창식은 관리자들 중에서도 각성을 해내지 못한 ‘실패한 관리자’였고, 게임을 공략한 강서준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창식이 전투 의사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혹은 절대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건지…….
강서준은 이쪽을 전혀 신경 쓰질 않고 차분하게 그들이 설치해 둔 폭탄을 제거해 나갔다.
그렇게 한참 조용하던 찰나.
“뭐라고?”
돌연 강서준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창식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들은 통신 하나를 연결하려면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하는데. 저렇게 쉽게 통화를 할 수 있다니…….’
새삼스러운 기술적인 격차도 느껴졌다.
듣자 하니 저쪽 사람들 중엔 SF 세계관의 등장인물이 있다던데? 과연…….
“그게 사실이야?”
한편 강서준은 약간 살벌한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그것들이 여기에 핵을 쏘려 한다고?”
이창식의 얼굴이 사색으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