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49
◈ 349화
한태성은 납득할 수 없었다.
‘무, 무슨 힘이……?’
전혀 대응하지도 못한 속도로 그를 바닥에 처박은 건 물론이고,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압력은 황당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래 봬도 그는 탱커 속성의 플레이어였고, 힘 하나는 2학년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
‘그래. 나보다 빠른 건 이해한다 쳐도 이 힘은 대체…….’
이를 악물고 전력으로 머리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수백 킬로그램의 납덩어리를 머리에 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꽉 짓누른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가만히 있어. 위험하니까.”
“무슨……!”
대답을 이을 틈도 없이 눈앞으로 쾅! 하고 폭발이 터졌다.
그 순간 머리를 누르던 압력이 사라졌고, 한태성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용수철이 튕기듯 몸을 일으킨 그의 동료들도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그, 그놈은?”
“몰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긴장을 늦추지 마. 최소한 C급 이상의 플레이어야.”
한편 정신을 차린 그들은 주변의 분위기가 종전보다 훨씬 음산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우거진 늪지대는 시야가 흐려 불편한 편인데, 지금은 지독한 안개마저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탐색 계열 스킬이 모자란 그들에겐 몹시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유영석의 말에 한태성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렇게 꼴사납게 당하고 그냥 가겠다고?”
“어쩌겠어. 그 사람 고렙이잖아.”
“그건 내가 방심을…….”
“인정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대였어.”
한태성은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미련을 털어 냈다.
의문의 사내가 머리를 짓누를 때에, 아무것도 하질 못했던 건 사실이었다.
막말로 놈이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는 진즉에 불귀의 객이 되었어도 할 말이 없다.
옆에서 유영석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 그 사람이 컴퍼니면 어떡하려고?”
컴퍼니.
드림 사이드의 내외를 오가며 암암리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는 악성 테러 집단.
공교롭게도 드림 사이드의 세이브 데이터를 복구하는 과정에, 바이러스처럼 제멋대로 부활해 버린 가장 큰 골칫덩이였다.
“……설마 이런 곳에 그런 사람이 있겠어?”
“모르지. 부쩍 소란스럽잖아 요즘.”
유영석을 바라보던 한태성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화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고작 이런 일로 목숨을 내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데 우리 과제는?”
“그건…….”
혀를 차던 한태성은 돌연 주변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다들 내 뒤로 와.”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형상이 잡혔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이쪽을 다가오는 모습에 한태성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발소리가 안 들려.’
귀를 쫑긋 세워 봐도 상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거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스킬을 가졌기에 유령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며 눈을 부릅뜬 순간이었다.
“……!”
안개 속을 거닐던 희미한 인기척이 지워지고, 한태성은 자신의 머리를 겨눈 무언가를 확인했다.
‘……총?’
***
우거진 늪지대.
황금녘의 들판에서 깊숙이 이동해야만 찾을 수 있는 아주 은밀한 사냥터.
주로 C급의 몬스터가 나돌고, 종종 길을 잃은 D급의 몬스터가 떠돌아다니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플레이어 대학의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어떻게든 사냥할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인데…….
‘그래야 하는데.’
한태성은 눈앞으로 어지럽게 나타나는 수많은 몬스터의 행렬에 기함을 토했다.
‘대체 이게 다 뭐야?’
그들은 붉은 리자드맨의 꼬리를 찾기 위해 근방을 이 잡듯 쑤시고 다녔다.
그럼에도 몬스터의 흔적은 찾기조차 어려웠고, 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고민도 했었더랬다.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만?’
한태성의 눈앞으로 수십의 몬스터가 이를 벌리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D급이나 C급도 아니었다.
‘최소 B급…… A급도 있나?’
대체 C급 사냥터에 어떻게 B급 이상의 몬스터가 출몰하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대충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압도적인 레벨의 격차…….
대략 100에서 200 가까이 차이가 나는 괴물 틈에서, 한태성과 그 일행은 상상만으로 몇 번이나 생사고락을 넘나들어야 했다.
물론 진짜 죽을 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타아아아앙!
한순간에 쏘아진 총알은 몬스터의 미간을 꿰뚫었다.
안개 속을 사정없이 휩쓸고 다니더니 근방에 다가오던 모든 몬스터를 처치해 버린다.
한태성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천외천…….’
그의 시선 끝엔 권총 한 자루를 쥐고 A급 몬스터를 일격에 토벌해 나가는 한 여자에게 향했다.
천외천 클라크, 본명 최하나.
현직 가수인 그녀는 현존하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졌다.
한태성 또한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녀의 앨범은 인벤토리 한곳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최하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실습수업을 나온 학생들이라고?”
“네, 네! 저는 한태성이라고 합니다. 탱커고요! 레벨은 171! 하나 누나의 팬입니다! 지난번에 팬싸인회도 갔었는데 혹시 기억…….”
“……그래. 기억난다.”
“네? 정말요?”
“내가 네 방패에 싸인도 해 줬잖아.”
“헉!”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 한태성을 향해 최하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너희들 지금 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 알지?”
“……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는 몰라도, 여긴 현재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야.”
타아아앙!
부지불식간에 쏘아진 마탄이 근방의 안개 너머로 향했다.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순간에 벌어진 일.
한태성은 늪지대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몬스터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A급 몬스터인 롱 엘리게이터였다.
“문자 안 받았니?”
최하나의 말에 잠시 핸드폰을 조작해 본 한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자요?”
“대피령이 떨어졌을 거야. 근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대피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몇 번을 둘러봐도 핸드폰 수신 내역엔 비상 문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최하나는 턱을 매만졌다.
“전파가 차단된 건가……?”
잠시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한태성 무리를 향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따라와.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줄게.”
***
이후로 최하나를 따라서 그들은 부지런히도 발을 놀렸다.
안개로 잔뜩 둘러싸여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듯했지만 최하나의 걸음엔 막힘이 없었다.
한태성이 알기론 최하나에겐 ‘S급의 매의 눈’이 있다.
그녀는 수십 킬로미터 밖에 있는 사람의 얼굴까지도 정확하게 인식한다고도 했다.
물론 그 풍문을 믿는 건 아니다.
막말로 지구에서 달을 올려다본들 그곳에 있는 형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일까.
‘어쩌면 과장된 게 아닌 걸지도.’
한태성은 최하나가 보여 주는 압도적인 무력에 온몸을 자르르 감도는 소름을 느꼈다.
총알은 무슨 자석이라도 붙여 놨는지 나타나는 몬스터의 급소를 족족 관통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일격필살!
A급 몬스터조차 단 한 방에 골로 가 버렸다.
‘하나 누나가 이 정도면 랭킹 1위라는 강서준은 대체…….’
강서준뿐만이 아니다.
천외천의 랭킹은 대략 12위부터 1위까지 존재했고, 최하나는 그중 12위였다.
물론 드림 사이드 2가 오픈한 이후로 정식으로 랭킹을 측정했는지는 모른다.
세간의 평가는 여전히 드림 사이드 1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측에 불과했다.
그중 강서준이나 나도석같이 ‘올림픽’에 참여했던 이들만이 더더욱 그 수준을 알아볼 뿐이다.
“……이거 귀찮아지겠는데.”
한편 앞서 걷던 최하나가 걸음을 멈추더니 바닥에 손을 짚어 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너희 쉽게 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
“네?”
“원래대로라면 이곳이 황금녘 들판이어야 해. 아무래도 던전이 변질된 것 같아.”
던전이 변질되다니?
듣도 보도 못한 얘기였지만 최하나는 이 상황이 꽤나 익숙한 눈치였다.
최하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유니온의 거주권을 가진 사람?”
“…….”
“너뿐이야?”
최하나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손을 든 유영석에게 향했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네. 사실 제가 지구 출신이거든요. 거주권이 있다기보다는 아예 거기에서 왔어요.”
“음…….”
한태성은 약간 놀란 눈으로 유영석을 살펴봤다. 지구 출신이라니? 괜히 그를 배척할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약간은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지구 출신의 플레이어.
그들은 본래 ‘관리자’라 불리는 게임 바깥의 주민들을 뜻하고 있었으니까.
드림 사이드에 뿌리를 두고 처음부터 NPC였던 한태성과는 별개의 인간이었다.
최하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 이참에 유니온으로 거주지를 옮겨야겠다. 불만이 있어도 별수 없으니까 그냥 따르고.”
유니온의 거주권은 드림 사이드 주민들 사이에서도 꽤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비록 게임 바깥의 세상은 드림 사이드 내부보다도 훨씬 위험하다고 해도, 그곳으로의 진출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이 되니까.’
카오스를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며, 게임과 다르게 부활 보너스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개의 목숨으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보상이 확실했다.
무엇보다 플레이어 대학의 졸업 이후의 목표도 ‘유니온’으로의 취업이기도 했다.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그때 유영석이 물었다.
“……불만이야 그렇다 쳐도 유니온의 거주권이 이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한태성도 그 점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안개 너머로부터 새로운 인기척이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뭐야, 너네 아직도 안 갔어?”
그리고 들려온 음성은 한태성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던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그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던 그놈.
한태성은 순식간에 그의 주변으로 나타난 놈을 향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결과였다.
“얼씨구?”
낮게 중얼거린 남자는 한태성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창졸간에 휘두른 일격은 공격한 당사자인 한태성 본인이 당황할 지경이었는데 남자는 여유롭기만 했다.
실제로 그럴 법한 일이었다.
투우우웅!
검에 닿은 곳은 마치 돌처럼 딱딱하여, 그 어떤 대미지도 남자에게 줄 수 없었으니까.
‘고렙…….’
새삼스럽지만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했다.
레벨 171의 플레이어인 그는 C급에선 중상위권이라 불려도 B급에선 최하위만도 못하다.
나아가 B급, A급으로 쭉쭉 올라간다면 감히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즐비하다.
그중 S급으로 분류될 사람들은 결코 D급의 플레이어가 내지른 공격에 당할 수 없다.
압도적인 레벨 차이로 인해 아예 대미지조차 박히지 않을 테니까.
“최하나 씨. 어떻게 된 일이죠?”
“그게요…….”
남자는 한태성을 대충 흘겨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갔다.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기분에 머리가 화끈해졌지만, 그가 뭘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나마 최하나와 아는 척을 하는 걸 보면, ‘컴퍼니’나 ‘적’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다.
유영석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 저 사람 알 것 같아.”
“응?”
“저 사람…… 그 사람이야.”
“뭔 소리야?”
한태성은 최하나의 앞에서 친근하게 대화를 잇는 남자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제아무리 고렙의 플레이어라 해도 초면인 상대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이런 개무시를 하다니?
이건 인성에 문제가 있질 않은가.
그런 자가 최하나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 자체가 팬이 된 입장으로 몹시 불쾌했다.
유영석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본 적이 있어. 저 사람은 분명…….”
그오오오오옥!
그때였다.
알 수 없는 괴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더니 유영석의 목소리를 완전히 파묻어 버렸다.
뒷얘기를 미처 듣지 못한 한태성은 유영석을 돌아봤다. 그는 긴장했는지 양손에 주먹을 꽈악 쥐더니 말했다.
그오오오옥!
“……준 님이라고!”
하지만 들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