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5
◈ 35화
격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강서준은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의 눈으로 라이칸과 사칭범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물론, 아직 라이칸을 쓰러트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최하나가 ‘번 블러드’를 써서 합류한다고 해도 D급의 최강종인 보스 몬스터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삼깨비를 쓰러트려야 한다면 말이지.’
강서준은 바르게 짓쳐들어오는 방망이의 궤적을 피해서 크게 뛰었다. 그의 눈은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곧,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하나의 아이템이 보였다.
[아이템 ‘망령 벤시의 낫’을 습득했습니다.] [망령의 울음이 깃들었습니다.]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벤시의 낫은 직경 3M를 넘어, 강서준의 키보다 훨씬 커다란 무기였다.
단순히 들고 휘두르는 것조차 힘겨운 일.
사칭범이 피식 웃었다.
“고작 벤시의 무기를 얻었다고 이길 수 있을 줄 아느냐?!”
쿠우우우웅!
창졸간에 들이닥친 방망이를 피할 여유가 없었다. 애써 벤시의 낫으로 방망이에 부딪쳐 충격을 상쇄시켜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단번에 튕겨 나간 강서준은 벽에 부딪쳐야만 했다.
정말이지, 무식한 힘이었다.
단순히 D급 보스만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 전용 무기로 올라간 놈의 힘은 가히 괴물 같았다.
여타 다른 보스 몬스터보다 배는 강하지 않을까.
“크윽…….”
하지만 강서준은 입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다시 벤시의 낫을 쥐었다.
라이칸이 황소처럼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맞부딪친다면 더는 몸이 버텨 내진 못할 테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싸움은 단기 결전으로 끝난다. 규격을 벗어나는 괴물을 상대로 장기전을 펼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지금입니다!”
최하나의 권총이 불꽃을 내뿜으며 라이칸의 주변을 요란하게 자극했다. 폭죽처럼 터져 나간 그녀의 마탄은 라이칸의 시선을 이끄는 데엔 충분했다.
동시에 지상수가 뭐라고 중얼거리니, 사칭범이 멋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놈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 뭐야…… 내 몸이 왜!”
놈이 나타난 곳은 강서준과 라이칸의 사이. 휘둘러지던 방망이가 부득이하게 멈추고, 라이칸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기회였다.
악에 받친 사칭범이 으르렁댔다.
“뭐 하는 거냐! 쓸모없는 도깨비야! 얼른 놈을 죽여 버려!!”
그때 강서준은 빠르게 라이칸의 반경으로 파고들어 갔다. 잠시 놈이 보여 준 틈을 이용해서 최대한 접근한 강서준은 낫을 세로로 휘둘렀다.
빠르고, 정확하게.
후우웅!!
벤시의 낫은 허무하게도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사칭범은 비열한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딜 노리는 거냐! 멍청한 놈!”
하나 강서준은 미련 없이 벤시의 낫을 던져 버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칭범이 여전히 이죽거렸지만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계획은 성공했으니까.’
강서준은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그중 놈들의 영혼이 연결된 고리가 눈에 선하게 보였다.
방금 그가 공격한 허공엔 거의 부서질 듯이 금이 간 사슬이 걸려 있었다.
‘약해졌군.’
벤시와 전투를 벌인 라이칸은 몹시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벤시의 낫이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만큼, 관련된 모든 것들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도깨비감투까지 빼앗았어.’
예상외의 성적이었던 도깨비감투의 수확은 강서준의 계획을 더욱 견고하게 해 줬다. 더욱 거리낌 없이 놈들의 영혼을 잇는 고리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곧.
서서히 금이 가던 고리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라이칸과 사칭범을 잇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지고 있었다.
사칭범은 여전히 멍청한 소리를 냈다.
“뭐 해? 안 움직여? 쓸모없는 도깨비 새끼야!”
대답이 없었다.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축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로 굳어 있는 라이칸.
당연했다.
더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머저리 같은 도깨비 새끼!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구나!”
하지만 그 순간.
강서준은 알고 있었다.
보스방의 모든 도깨비가 ‘전율’하고 있다는 사실을.
***
삼깨비 라이칸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의 세계를 가둬 두는 철창.
몸을 묶고 있는 수십 개의 족쇄.
혼을 제압당한 도깨비가 그러했듯, 라이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을까. 그는 아주 오랫동안 단 하나만을 떠올릴 수만 있었다.
‘왕에게 충성을…….’
도깨비는 태어나서부터 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영혼 깊숙이 느끼는 종족이었다.
영혼을 다루는 몬스터라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도깨비들은 도깨비감투를 지닌 ‘왕’을 따라야만 하는 숙명에 얽매여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라이칸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어째서인지 괴로웠던 것이다.
그 당연한 행동들이 이토록 불쾌한 이유는 뭘까.
라이칸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일깨비일 때는 상상도 못 했고, 이깨비일 때도 전혀 짐작조차 못한 사실.
삼깨비라는 고위 도깨비가 되면서 깨달았다.
‘이자는 왕이 아니다.’
지금 그를 조종하는 왕은 도깨비감투를 지녔을 뿐, 왕이 아니었다. 반발심이 들 때마다 억지로 그의 영혼에 족쇄가 채워지는 걸 보면 더더욱 확실했다.
놈은 그저 도깨비감투를 가지고 도깨비들을 조종하는 테러리스트.
진정한 왕이 아니었다. 라이칸은 충성을 부정하고 싶었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하지만 불가능했다.
도깨비는 도깨비감투를 가진 자에게 충성을 해야만 하는 몬스터. 이미 영혼이 엮여서 항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라이칸은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동료를 죽이라면 죽인다.
동료의 몸속에 가증스러운 인간을 넣으라 해도 따라야 했다.
그것이 왕의 명령이니까.
가짜 왕이라고 할지라도!
쿠궁……!
실로 오랜만에 어둠 속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라이칸은 너무나도 눈부신 작은 빛을 응시했다. 두 눈이 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왕이시여…….”
그는 깨달았다.
그의 몸을 묶던 족쇄가 부서지고 철창에 금이 갔다. 어둠이 밀려가고 서서히 광명이 깃든 그곳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여태껏 억눌렸던 분노.
각종 감정들이 한꺼번에 불타오르면서 라이칸이 사납게 눈을 떴다.
“……나는 당신을 부정합니다.”
라이칸의 포효가 시작됐다.
***
“우어어어어어!!”
우렁차게 울리는 라이칸의 포효가 보스방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도깨비들이 덜덜 떨면서 무기를 떨어뜨리고 넙죽 절을 해 댔다.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외치는 D급 보스의 성난 분노.
이미 왕을 잃어버린 스펙터들은 저항조차 못 하고 바닥까지 납작하게 엎드려야만 했다.
그렇게 라이칸은 한참을 포효했고.
겁도 없이 라이칸의 포효를 끊은 건 뭣도 모르는 한 인간이었다.
“시끄럽게 뭐 하는 짓이야! 그 입 안 닥쳐?”
사칭범은 대뜸 라이칸의 다리를 뻥 차 버렸다. 단단한 돌덩이 같은 다리는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
“뭘 봐? 눈 안 깔아?”
“…….”
“너 이 새끼 감히 나한테 반항─”
콰직!
그때,
라이칸은 거침없이 사칭범의 머리를 움켜쥐어 위로 들었다. 사칭범은 괴로운 듯 바동거렸다.
“무, 무슨 짓…….”
라이칸은 용광로 속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처럼 사납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넌 왕이 아니다.”
라이칸이 손의 압력을 더할수록 사칭범의 얼굴은 터질 듯 조여들었다. 어딘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정말 죽겠다 싶을 때 즈음.
라이칸은 놈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콰아아앙!
뒤이어 라이칸의 분노가 쏟아져 내렸다.
연신 아래로 내리쳐지는 커다란 주먹.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사칭범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비명이 들리지 않을 즈음에야 라이칸이 주먹을 멈췄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내려다보던 라이칸은 형형한 눈으로 다시금 포효했다.
“우어어어어어!!”
다음으로 라이칸의 눈초리가 향한 곳은 강서준이었다. 놈은 증기같이 뜨거운 공기를 뱉어 내며 말했다.
“……인간!”
강서준은 바로 도깨비감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던 라이칸이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멈춰. 우린 싸울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그건…… 인간! 네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라이칸은 도깨비감투의 앞으로 서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는 시선이 사뭇 살벌했지만 결코 항거할 수 없었다.
도깨비는 그런 종족이기에.
“인간…… 인간!!”
억울한 듯 외치는 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강서준은 천천히 도깨비감투를 머리에 눌러썼다.
[아이템 ‘도깨비감투’를 착용했습니다.] [칭호, ‘감투의 왕’을 계승합니다.] [당신은 도깨비의 영혼을 엮을 수 있습니다.]“우어어어어!!”
포효하는 라이칸의 주변으로 바닥에서 영혼의 사슬이 솟아났다. 도깨비감투의 효력으로 놈의 영혼이 또 엮이고 있다는 증거.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너에게 악감정은 없어.”
“죽인다!! 인간!!”
“근데 널 이대로 풀어 줄 수도 없잖아.”
라이칸이 저항할수록 사슬은 더 굵어지고 족쇄의 개수는 늘어났다. 형형한 눈빛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깨비감투를 쓴 자는 ‘왕’이 된다. 아이템의 효력은 적어도 삼깨비까지는 완전히 묶을 수 있으리라.
“으어어어!!”
자유를 찾았던 영혼이 다시 사슬에 묶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강서준의 의지가 더더욱 강해지자 라이칸은 힘없이 속박당해야만 했다.
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아아아아아!!”
그때였다.
퓩!
라이칸의 목덜미로 뭔가가 딱 꽂혔다.
갑자기 놈으로부터 미증유의 힘이 깃들더니 근육이 점차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도깨비감투의 족쇄도 속절없이 풀리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대체!”
“강서준 씨!”
눈앞에서 라이칸의 거구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도깨비감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설마 이젠 도깨비감투로도 저놈을 제어할 수 없는 건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난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라이칸을 류안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무언가가…… 놈의 몸으로 퍼지고 있어.’
“우어어어어!!”
콰아앙!
고작 외침 한 번에 주변에 있던 도깨비를 비롯한 스펙터가 강력한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튕겨 나갔다.
강서준도 몸을 겨누질 못하고 비틀거렸으며, 일행은 저마다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미간을 좁힌 강서준의 눈으로 터무니없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제압할 수 있었던 라이칸의 몸이 두 배, 세 배…… 그 너머로 비대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콰득!
라이칸이 대뜸 주변에 있던 도깨비를 집어삼켰다. 스펙터도 예외는 없었다. 무자비하게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을 잡아먹어 대는 것이다.
놈은 이윽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사칭범까지 손에 쥐었다.
그때.
강서준은 볼 수 있었다.
라이칸에게 통째로 잡아먹히는 사칭범이 이쪽을 보면서 웃고 있는 것이다.
“……끅끅끅! 꼴좋다……! 너흰 여길 결코 벗어날 수 없.”
콰직!!
통째로 씹혀 먹힌 놈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칭범은 그 뒤로 무수한 뼛소리를 내며 라이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점차 라이칸의 몸이 천장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커졌다. 더는 보스방으로는 놈의 크기를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참 뒤로 물러난 강서준은 고개를 들고 놈을 확인했다.
수십, 아니 백 단위를 넘어가는 몬스터를 삼킨 놈은 형용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 [버그가 발생했습니다.] [시스템이 버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라이칸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번개를 맞고도 놈은 전혀 위축된 느낌이 아니었다.
도리어 성난 울음을 토해 내며 유령 열차에 있던 다른 영혼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D-4구역부터 D-1구역.
몬스터들이 놈에게 흡입될수록 놈은 더더욱 크기가 커져만 갔다.
강서준은 부르르 떨고 있는 도깨비감투를 확인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매망량.”
[보스 몬스터 ‘??? ???(C)’가 등장했습니다.]어쩌면 ‘진정한 도깨비들의 왕’이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