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50
◈ 350화
과연 유영석은 뭐라고 한 걸까.
‘……준?’
아쉽지만 생각을 이을 틈은 없었다.
그오오오옥!
정신이 없을 정도로 커져 가는 굉음 속에서, 한태성은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으니까.
살아생전 겪어 본 적이 없는 고통.
누군가가 온몸을 잡아 뜯었다가 재조립하는 것 같았으며, 뜨거운 불바다를 대책 없이 허우적대는 것도 같았다.
“끄으…… 끄으으으업!”
참지 못한 비명을 내지르던 찰나였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한태성의 입을 막았다.
한태성은 두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고 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었다.
한태성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카오스?.’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가. 닿는 즉시 수천, 수만 가지의 정보가 범람한다는 끔찍한 재앙.
그때 빛살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손의 감각만을 기억해.”
“흐에?”
“빨리!”
거친 손길이 한태성의 손을 잡아끌었다. 본능적으로 그것만을 의식한 채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모호해지는 시점…….
츠츠츠츳!
다시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흐어어억!”
막혔던 숨이 트이자 온몸의 감각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느껴졌다.
한태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땅에 손을 얹고 겨우 고개만을 위로 들었다.
첫 만남부터 대뜸 그의 머리를 바닥에 박아 버렸던, 최하나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던 의문의 사내.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는 한태성의 팀원이었던 친구들을 하나씩 두 손 꼬옥 잡고 어둠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가 한태성을 보더니 말했다.
“오, 벌써 정신을 차렸어?”
“……대체 이게.”
“쉬고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남자는 친구를 옆에 툭 던져 놓고 다시 어둠으로 들어갔다. 머지않아 최하나도 한 명을 데려왔지만 말없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머리 가득 채운 의문은 해소될 기미는 없었다. 또한 고민을 이을 여유조차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태성은 불현듯 소리를 들었다.
크르르륵!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부서진 어느 건물 위로 침을 흘리는 몬스터가 보였다.
무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
한태성은 놈을 바로 알아보았다.
“케, 켈베로스……?”
교과서에서 익히 봤었던 모습 그대로 입가엔 보랏빛을 띤 죽음의 불꽃이 흘렀다.
무려 A급 상당의 몬스터!
온몸이 쪼그라드는 기분 속에서 한태성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자 노력했다.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은, 플레이어 대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어떤 순간이 닥쳐도 침착해라.
하지만…….
‘뭐야, 왜 나 알몸이야?’
여태 힘겹게 돈을 벌어서 구비해 둔 그의 소중한 장비, 옷가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뿐이랴?
정신을 차린 한태성은 알게 모르게 그를 지켜 왔던 버프 스킬들이 모조리 해제됐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스킬 자체가 사라졌다.
‘……젠장, 어떡하지?’
크르르륵!
한편 켈베로스는 건물을 밟고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맹수는 사냥에 앞서 조급하지 않다.
한태성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의 동료와, 뒤편을 가로막은 새카만 어둠을 차례로 둘러봤다.
‘퇴로는…… 없어.’
새삼스럽지만 저 어둠의 정체가 ‘카오스’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뒤로 물러나 보아야 종전에 겪었던 그 무시무시한 통증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밖에 안 된다.
카오스는 본디 과다한 정보의 범람에 휘둘려, 자신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만드는 끔찍한 재앙.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스럽기만 할 것이다. 막말로 살아서 이곳에 있는 게 기적이다.
“후우…….”
한태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앞뒤가 꽉 막혀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그에겐 작게나마 희망이 남아 있었다.
‘하나 누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켈베로스 따위는 천외천인 그녀에겐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몬스터였다.
게다가 켈베로스 녀석이 바로 달려들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 신중을 기하는 성향이라는 뜻이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은 ‘카오스’를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급 몬스터의 지능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 이대로만 더…….’
문제는 그게 전부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커헉!”
켈베로스와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숨이 턱 막히면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A급 몬스터가 은연중에 흘린 살기.
고작 그것만으로 그는 죽음을 느꼈다.
‘이렇게 허무하게……?’
그가 살아온 나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포식자 앞에선 피식자는 죽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이젠 정말 모든 게 끝이다.
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것들은, 이토록 허무하게 지나가던 한 마리의 개를 당해 내질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암담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였다.
“쉬고 있으라니까.”
나지막이 소리가 들렸다.
***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뻐근한 어깨를 빙빙 돌렸다.
“카오스도 간만이라 그런가 뻐근하네. 야…… 괜찮냐?”
강서준이 나서 켈베로스의 시선을 차단하자,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꺽꺽대던 소년은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너 이름이 뭐야?”
“……네?”
“이름이 뭐냐고.”
소년은 겨우 대답했다.
“하, 한태성이요.”
“그래. 태성아.”
강서준은 잔뜩 겁에 질린 그를 뒤로하고 마저 입을 열었다.
“뒤에서 네 친구들 좀 챙겨 줄래? 금방 끝나.”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켈베로스에게 재앙의 유성검을 던져 버렸다.
공간을 가르고 날아간 단검은 일격에 놈의 몸통을 꿰뚫고, 놈은 단말마의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문제는 저게 끝이 아니란 거지.’
강서준은 어느덧 이 근방으로 모여든 수많은 시선을 의식했다.
고작 A급 몬스터가 끝이 아니다.
몇몇은 S급으로 분류될 법했고, 그보다 강한 개체도 몇몇 보이고 있었다.
강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여긴…….
‘인천이로군.’
지구에서도 아직 미개발 구역이었고, 그 안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수준이나 그 숫자가 상당하여 일단 보류하던 땅.
말 그대로 1급 재난 구역이다.
‘카오스에 사로잡힌 아이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겠어.’
하지만 강서준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마력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미개발 구역에, 아직 공략 계획조차 없는 땅이라고 해도 딱히 신경 쓸 건 없었다.
언젠가 정리할 생각이던 곳.
“이참에 해 버리지 뭐.”
강서준의 손짓에 의해 푸른 불꽃이 주변으로 확 번졌다.
그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수천의 영혼 부대!
선두로 나선 백귀들은 이쪽을 바라보며 맥락 없이 침을 흘리던 몬스터를 경계했다.
심연의 드래곤이나 본 드래곤처럼 상위 종족의 몬스터들이 곧바로 포효하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파랑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성장기를 넘어서 어느덧 훌쩍 커 버린 파랑이는 이젠 강서준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제멋대로 세상을 유랑하겠다며 지구 곳곳을 떠돌아다닌다는 것만은 알았다.
카무쉬와 함께 다녀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종종 생각은 나는 아이였다.
-왕이시여.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강서준은 자신을 향해 부복한 수천의 영혼을 내려다봤다.
그중 선두에 선 한 마리의 리자드킹은 강서준을 향해 끝을 모르는 존경의 시선을 보내왔다.
최근 호른 제국에서 사로잡은 녀석이다.
“쟤 저런 거 하지 말라고 안 가르쳤어?”
-……다시 교육하겠습니다.
“그래. 오가닉…… 너만 믿는다.”
-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강서준은 혀를 차며 영혼들의 시선을 일별했다.
라이칸에게 이상한 것만 배워서 쓸데없는 충성심을 표하는 녀석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부담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뭐, 초장에 라이칸부터 제대로 교육시키질 못한 그의 업보라 할 수도 있겠지.
“……됐다. 일단 여길 정리한다.”
-존명. 왕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쿠구구궁……!
수천의 영혼이 수천의 몬스터를 향해 내달리니 근방은 지진이 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불길이 사방을 뒤덮고, 폐허가 되었던 인천의 분위기는 시끄러운 전장이 되었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결국 현실로 돌아왔나.”
말했듯 여긴 인천이다.
그것도 0115 채널에 있던 도시가 아닌, 진짜 현실에 존재했었던 과거의 도시.
게임이 아닌 현실 속 지구에서, 강서준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최하나였다.
“기어코 컴퍼니 놈들이 현실과 게임을 잇는 통로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내고 말았네요.”
“네. 귀찮아졌어요.”
예상했던 문제였다.
카오스는 한계를 모르는 힘이었고,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드림 사이드 공략으로부터 벌써 3년.
오늘날, 유니온에서도 유리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NPC를 현실로 데려오는 방안을 마련한 상태였다.
아직 상용화는 멀었지만…….
곧 안센의 개발이 완료되면 안전하게 NPC들을 현실로 데리고 올 새로운 방법이 생겨난다.
그리고 눈앞의 현상을 보아 하면 컴퍼니 측의 개발 진척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기록자 녀석…… 걸어가다 넘어져 그냥 코나 깨졌으면 좋겠네.”
놈들에겐 얼티밋 스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낸 특수 NPC ‘기록자’가 있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드림 사이드의 부활을 조금 더 늦춰, 기술력의 차이부터 만들어 둘 걸 그랬다.
강서준은 애써 한숨을 삼켰다.
“깨질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잖아요?”
그리고 상념을 접고 다가선 최하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는 새카만 카오스의 주변, 그것도 폐허 위에 서 있더라도 홀로 찬란하게 빛을 냈다.
이게 연예인의 후광이란 걸까.
강서준은 멋쩍게 웃었다.
“어쨌든 대비를 해야겠어요. 현실과 게임을 잇는 통로를 만들 수 있다면…… 놈들의 다음 목적지는 빤하죠.”
“네. 준비할게요.”
고개를 주억거린 최하나는 기다란 총신을 가진 저격총을 꺼내었다.
그녀도 전장에 참여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강서준은 이내 손을 내저으며 최하나를 제지했다.
“아뇨. 제가 할게요.”
“네?”
“호른 제국으로 이어진 카오스를 가만히 놔둘 수야 없죠. 이참에 이 근방을 함께 정리해야겠어요.”
맥락을 이해한 최하나는 약간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설마, 그걸 할 생각인가요?”
“네. 아이들을 부탁해요.”
잠시 입술을 들썩이던 최하나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디 살살 부탁할게요.”
그 길로 최하나는 부득이하게 이번 사건에 휘말린 플레이어 대학의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종전까지만 해도 알몸이던 그들은, 지구 출신이라는 유영석의 도움으로 ‘플레이어’ 스킬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각자 장비를 갖춰 입고 저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겨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문득 강서준은 한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저 눈빛…… 표정.
‘익숙한데.’
가장 먼저 카오스로부터 정신을 차렸던 근성 있는 소년은 ‘한태성’이란 이름을 가졌다.
그리고 한태성은 현재 강서준을 향해 이글거리는 강력한 눈빛을 보내왔다.
익숙한 게, 상당히 낯이 익다.
‘……장기용?’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시선을 외면하기로 했다. 어째 또 하나의 광신도를 만들어 버린 것만 같아 황당한 기분이었지만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보다 강서준은 마력을 조율하며 등 뒤로 용아병의 날개를 활짝 펼쳐 올랐다.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멸망한 도시, 이젠 몬스터들의 땅이 되어 버린 인천의 모습이 보인다.
곳곳엔 카오스가 넘실거리고 이젠 그 어떤 사람도 살아갈 수 없는 불모지.
강서준은 바닥에서 마법진을 만들어 내어,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최하나를 보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한 방에 처리하자.”
강서준은 손끝으로 온갖 마력을 집적시켜 하나의 구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흡수, 집적, 폭발, 회전, 압축…….
마력을 다루는 수많은 잡기술이 하나로 뭉쳐져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켰다.
이 스킬은 일전에 직접 당해 본 적도 있는 무식할 정도로 무서운 공격.
“타겟 온…….”
강서준의 시선은 땅으로 향했고 그대로 한껏 뭉쳐진 마력 덩어리는 인천을 향해 떨어졌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라그나로크.”
쿠구구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