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51
◈ 351화
오래전 인류는 오만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세상은 핵전쟁과 멸망으로 치달았다.
우주로 탐사선을 보내기까지 나름의 첨단 과학을 이룩해 낸 지구인들의 처참한 운명.
가히 ‘신들의 몰락’이라 할 법했다.
‘라그나로크(신들의 몰락).’
강서준은 자신의 손짓에 의해 완전히 짓이겨진 인천의 한 공간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스킬, 라그나로크.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이 스킬의 이름을 구태여 드림 사이드의 마지막 퀘스트인 ‘라그나로크’로 지은 이유는 간단했다.
‘잊어선 안 될 일이니까.’
게다가 이 스킬은 몬스터 ‘카오스’가 죽으면서 폭주시켰던 그 자폭 스킬과 닮았다.
온갖 정보를 함축시켜 일대를 초토화시킬 지경에 이르렀던 그 끔찍한 폭발력.
이를 마력으로 운용해 낸 결과였고, 이른바 한 지역을 절멸시킬 정도로 공포스러운 스킬이 되었다.
‘……그래 봐야 마력을 잔뜩 뭉쳐 던진 것에 불과하지만.’
강서준은 이쪽을 바라보는 심상치 않은 시선들도 느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떤 말도 꺼내질 못하는 플레이어 대학의 학생들과,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최하나.
약간 울상을 짓는 로켓도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합니까.”
“미안해. 수고 좀 해 줘.”
“뒤처리는 늘 제 몫이죠…….”
로켓은 터덜터덜 걸어 크레이터를 향해 나아갔다. 그곳으로 ‘땅의 마법’을 구사할 줄 아는 영혼들이 일제히 뒤따랐다.
그들은 강서준이 인천에 만들어 낸 거대한 크레이터를 복구할 예정이었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땅의 형태만을 평평하게 되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강서준은 여전히 어버버 대며 어떤 말도 꺼내질 못하는 사람들 틈으로 돌아갔다.
“그럼 돌아갈까요?”
인천은 그날로 유니온에 귀속됐다.
***
유니온.
지난날 드림 사이드를 공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냈던 0115 채널의 세계 정부.
이 단체는 현실 지구로의 출범 이후로는, 도시의 이름이 되었고 인류 최대의 가장 단단한 요새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누구나 원하는 꿈의 직장.’
유니온은 세계의 모든 재화가 모이는 구심점과도 같았다.
애초에 드림 사이드라는 게임 자체가 오직 유니온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림 사이드에서 레벨 업을 하고, 각종 아이템을 모으는 이유는 오직 현실 세계를 재건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이는 현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가장 많은 성과를 쥐여 주는 업무였다.
‘한마디로 유니온으로의 입성은 성공을 보장한다는 거야.’
물론 위기도 동반한다.
유니온, 그러니까 현실 지구에서는 부활 보너스 따위는 없다.
죽으면 그대로 끝인 세상.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하며, 실존하는 카오스에 대항하는 각종 훈련도 거듭해야 한다.
유니온에서의 삶은 낙원에서의 여유를 꿈꿀 정도로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드림 사이드에서의 삶이 아름답기만 한 것 또한 아니니…….’
0115 채널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곳은 강서준에 의해 무려 세이브 데이터의 복원까지 모두 완료된 세계.
일전에 드림 사이드 2가 오픈할 당시의 데이터를 찾아내어, 죽었던 모든 사람도 되살아났다.
그리고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 죽는 순간의 기억 또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은 완전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문제는 그거야.’
드림 사이드라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쉽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기억을 보존하는 게 유리하다.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다들 쉽게 수긍하고 게임 속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덕이니까.
하지만 그 기억이란 게, 사람과 사람 사이로 ‘계급’이라는 걸 만들어 버렸다.
‘플레이어로 살았던 이들과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갈라졌다.’
경험한 이들은 그만큼 빠른 성장이 가능했고,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은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 절망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거기서 시작된 격차는 0115 채널 간의 큰 불화를 만들었다. 현재 드림 사이드는 여러모로 불안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세계.’
한태성은 드림 사이드 2 오픈 당일에 죽었던 케이스였고, 부활한 이후로는 악착같이 노력하여 플레이어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능력도 없이 드림 사이드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았다.
“…….”
초토화된 인천을 뒤로하고 꽤 긴 시간을 걸었다. 한태성은 눈앞으로 드리운 휘황찬란한 도시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 내가 유니온에 입성했어.’
한태성은 앞서 걷는 강서준의 뒷모습도 보았다.
랭킹 1위, 케이…… 이 세상을 구원한 최강의 플레이어.
온갖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는 교과서를 통해 오랫동안 본 만큼 친숙했다.
너무나도 많은 일화와 그 내용들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를 의심한 적도 있었다.
전쟁영웅은 미화된다.
강서준 또한 실제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여태 그가 봐 왔던 랭커들이란 족속은 말만 번드르르하지, 실상 그리 대단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한태성은 새삼 확신했다.
‘역시 교과서는 조작됐어.’
미화하여 과장한 게 아니다. 오히려 강서준의 힘을 축소해 알려 주고 있다.
인천에서 보여 줬던 그 압도적인 실력…… 그 무시무시한 능력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강서준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하나 누나도 엄청났지.’
그런 두 사람의 위대한 일면을 봤기 때문일까.
막상 유니온으로 들어서는 한태성은 불안보다 설렘이 더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곳은 말 그대로 드림 사이드의 정점에 선 이들이 살아가는 ‘꿈의 도시’였다.
‘분명 다들 대단하겠지?’
꿈에 부푼 눈동자로 연신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런 한태성의 걸음을 멈추게 한 건 갑자기 터져 나온 폭발이었다.
콰아아앙!
“으, 으아앗!”
“뭐, 뭐야? 테러?”
한태성과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며 강서준의 근처로 뭉쳤다. 혹시 컴퍼니라도 나타난 건 아닐까? 두려움에 가득한 시선으로 폭발의 진원지를 살폈다.
최하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괜찮아. 흔한 일이야.”
“네? 흔한 일이라고요?”
폭발의 진원지로부터 엄청난 마력이 흡입되고 있었다. 그 마력은 폭발할 것처럼 솟구치더니 이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정말 괜찮은 걸까?
다행히 오래가진 않았다.
츠츠츠츳!
어디선가 나타난 구슬이 그대로 마력을 흡수하더니, 이내 도시의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강서준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또 실패인가 보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되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돌연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언제 돌아왔냐?
하지만 한태성은 주변을 둘러봐도 목소리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얘넨 누구고?
한참을 둘러보던 한태성은 기어코 목소리의 출처를 발견했다. 그녀는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 위에서 아주 작은 모습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서준이 말했다.
“사고 피해자들.”
-음?
“카오스 포탈이 열렸어. 링링, 너보다 컴퍼니 놈들이 더 빨리 성공한 모양이야.”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대화의 맥락을 읽으며 한태성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요정처럼 작디작은 꼬마가 바로 그 ‘링링’이란 얘기다.
일찍이 아크를 세워 세상을 지켰고, 대마법사란 칭호를 가진 위대한 플레이어.
링링은 짜증을 섞어 말했다.
-우리도 개발은 옛적에 끝냈어. 그저 최적화가 아직 덜 되어서…….
“그래. 그러시겠지.”
-진짜라고!
불같이 화를 냈지만 위압감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람의 외관이란 게 이래서 중요하다.
쿠우웅!
돌연 큰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거대한 형체가 묵직한 울림을 갖고 나타났다.
요정처럼 작았던 링링과 비교 자체가 불가할 정도로 거구의 사내는,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아니, 온몸이 무기였다.
그 각진 근육은 칼처럼 날카로워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태성이 기겁한 이유는, 그가 나타나 선 곳이 바로 링링이 있던 자리란 사실이다.
“리, 링링 님이……!”
한태성은 거구의 사내에게 깔려 버린 링링의 최후를 상기하며 몸을 떨었다.
사내는 짐승 같은 눈을 했다.
“이 꼬마들은 뭐냐?”
“나도석 씨…….”
“신입이야? 오, 대흉근이 꽤 웅장한데? 마음에 들어. 근성이 좀 있겠어.”
“……그보다 링링을 밟았어요.”
“응?”
고개를 갸웃한 그의 발이 들썩였다. 점차 흉악하게 증폭한 마력은 그대로 나도석을 공중으로 내던져 버렸다.
로켓처럼 커다란 매직 미사일이 나도석의 면상으로 제대로 꽂혀 들어갔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 링링이 성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쓸모없는 근육덩어리가 감히!”
튕겨 나간 나도석도 지지 않았다.
“째끄만 한 게 무슨 짓이야!”
두 사람은 투닥대면서 서로를 향해 공격을 이었다. 급작스러운 전투는 근방의 마력을 더더욱 불안하게 흔들어 댔다.
강서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가자. 갈 곳이 많아.”
“네? 저, 저대로 두고 가도 돼요?”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자주 있는 일이야. 원래 저래.”
“그, 그래도…….”
“뭐, 부쩍 링링이 예민해진 것 같긴 하네. 원래 저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중얼거리던 강서준은 이내 관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갔다. 최하나까지 그 뒤를 따라 이동하니 한태성 무리도 뻘쭘하게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전히 뒤쪽에서 요란한 소음이 가득했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평화롭기만 했다.
당황하는 게 더 이상한 걸까?
“여기야. 이곳에서 일단 전반적으로 신체 상태를 체크해 볼 거야. 기다리고 있어.”
강서준이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유니온의 가장 큰 병원인 ‘서울병원’이었다.
0115 채널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주자들을 위해 일부러 익숙한 이름으로 지었다.
강서준은 준수한 외모의 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환자분들? 잠시 확인할게요.”
그렇게 잠시 한태성 일행을 둘러본 그는 짧게 한마디를 이었다.
“치료됐고요. 신체를 최적화하려면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러 주세요. 일곱 번이면 끝납니다.”
끝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영문도 모르겠고, 한태성은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볼 뿐이었다.
그때 의사 가운을 걸친 한 여자가 종전의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김훈 선생님. 급히 도와주셔야 하겠는데요?”
“연 쌤의 부탁이면 뭐든 들어드려야죠.”
그 말에 한태성은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김훈. 전쟁영웅 중 하나이자, 천외천에 속하는 이다.
현재는 의료계에서 가장 저명한 존재감을 보여 주어,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했다고도 들었다.
‘잠깐, 그럼 저 연 쌤이란 분은.’
김훈이 편하게 연 쌤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아마 서울병원에 단 한 명뿐일 것이다.
플레이어, 연희연.
제2의 성녀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이미 수차례 기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우상처럼 받들여지기도 했다.
한태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과연…… 유니온이란 건가.”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전설적인 존재들이 살아 숨 쉬는 땅.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책 속 내용들은 현실로 마주하니 더더욱 범상치 않았고 위대했다.
비록 나도석과 링링처럼 독특한 사람도 있었지만, 김훈이나 연희연처럼 마주한 것만으로도 감탄이 흘러나오는 자들도 많았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땅이 흔들리고 어디선가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갑자기 생겨난 지진에 사람들은 이리저리 넘어지고 주춤대다 이내 균형을 잡았다.
한태성도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이젠 그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매번 이런 일에 놀라선 곤란할 따름이다.
여긴 멸망하는 세계, 지구의 도시인 ‘유니온’이다.
아마 지진 또한 흔한 일일…….
“다들 내 뒤로 와.”
어라?
“한태성이라 했나?”
“네?”
“정신 차려. 여긴 현실이다. 나서지 말고 무조건 네 목숨부터 지키는 거야. 알았지?”
“네? 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강서준의 몸 위로 무언가가 덧씌워졌다.
그건 교과서나, 너튜브 영상 속에서만 보았던 강서준의 코스튬과 같았다.
‘도깨비?’
그는 도깨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