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52
◈ 352화
한태성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별일 아닌 것처럼 흘려보내던 유니온에서의 분위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했다.
“전원 로그인부터 하고,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한다. 지금부터 서울병원은 봉쇄한다.”
“빨리 움직여! 시간이 생명이다!”
하얀 가운을 걸쳤던 의사들의 복장 위로는 다양한 갑옷이 생성되었다.
간호사들은 의료 차트가 아닌, 기다란 검이나 묵직한 메이스를 손에 쥐었다.
심지어 환자들도 힘겨운 와중에 전투 태세를 갖추어 만에 하나를 대비했다.
급변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한태성을 비롯한 플레이어 대학의 학생들뿐이다.
지진으로 인해 온갖 잡기가 바닥을 나뒹구는 가운데, 한태성은 황망한 눈으로 물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구태여 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한태성도 병원 창밖에서 일렁이는 어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카오스.”
단번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
빌런.
이 세상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악(惡)’이 존재한다.
그들은 타인의 것을 빼앗길 서슴지 않고, 해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며 쾌락을 느끼는 족속도 있고, 괴로운 비명에 환희를 느끼는 사이코패스도 존재한다.
그리고 현시대에 이르러, 지구의 가장 큰 해악이 되는 빌런은 바로 ‘컴퍼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퀴벌레 같은 놈들…….’
공교롭게도 드림 사이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기어코 부활하고 만 ‘컴퍼니’는, 이전처럼 플레이어의 ‘악’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악랄하지.’
그나마 게임 속에서는 ‘선택의 기로’로 올라간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집단이었다.
근데 오늘날의 컴퍼니는 어떤가?
누구는 신인류가 된 NPC야말로 지구의 진짜 주인이라면서 관리자를 향한 테러를 자행한다.
누구는 여전히 NPC를 배척하고, 그들을 가짜라 매도하면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다.
목적도, 방향도, 행동도 다르다.
막말로 죄다 컴퍼니의 이름을 쓰고 있을 뿐, 그 내용은 전부 다른 범죄 조직이다.
‘그중 가장 악질은 역시 그놈이지.’
컴퍼니의 근원과도 같으면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집단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배후로 ‘기록자’를 둔 곳.
드림 사이드의 복구 과정에서 되살아난 ‘기록자’는 여전히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임 속 모든 기억을 가진 그 괴물은 그 힘을 빌미로 현실로의 진출을 꿈꿨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록하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오직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움직이는 그 녀석은, 터무니없지만 그 행위를 위하여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을 기록하려면…… 그 모든 일을 데이터베이스에 담으려면.
지구를 다시 ‘게임’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카오스로 뒤덮인 지구를 차지하여 그 위에 시스템을 두고, 이전의 드림 사이드처럼 관리하려는 것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역시 이놈이 제일 까다롭고 골치 아프다.
“이참에 뿌리를 뽑아야지 원.”
강서준은 하늘에 수를 놓은 수많은 어둠을 의식했다.
숱한 작업 끝에 유니온의 근방을 침식하던 카오스를 어떻게 밀어냈는데…….
그새 하늘은 카오스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카오스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기엔 어려웠다.
서서히 일그러진 형태로 변하더니, 그 속에서부터 무수한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카오스 포탈이라…….”
말하자면 저건 기록자에 의해 재탄생된, 현실과 게임을 잇는 새로운 통로였다.
현재 링링이 가장 활달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고, 안전이 보장된다면 앞으로는 유리관을 통하지 않아도 NPC들을 현실로 데려오는 게 가능해진다.
키아아아악!
강서준은 쏟아져 나온 온갖 S급 몬스터의 향연에 나지막이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저것이다.
굳이 안전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꺼내 놓은 카오스 포탈은, 몬스터들이 현실로 빠져나오게 돕는 악질적인 도구가 된다.
이처럼 원한다면 유니온으로 온갖 S급 몬스터를 풀어 테러도 가능한 것이다.
“강서준 씨.”
완벽하게 전투 준비를 마친 최하나가 강서준의 곁으로 나란히 섰다.
올려다본 하늘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며, 이쪽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비록 유니온의 방어 마법진이 제때 기동하여, 저들의 침입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최하나가 말했다.
“오래 버티진 못할 거예요.”
지독하게도 많은 숫자다.
제아무리 단단한 방벽도 수백,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를 상대로 버텨 낼 도리는 없다.
하지만 이내 빛살 같은 속도로 어둠을 가르고 새하얀 인영이 정면에 드리웠다.
리트리하와 마일리였다.
“빛이 있으라!”
웅장한 외침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 방패는 새하얀 신성력을 머금어 유니온을 감쌌다.
몬스터들의 흉포한 공격을 겨우 막아 내던 방어 마법진 위로 한 겹의 방어벽이 생겨났다.
한층 상황은 안정적으로 변했다.
리트리하는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그간 잘 지냈어요?”
“보다시피 썩 잘 지내진 못했네요.”
리트리하의 허름한 갑옷은 여기저기 부서졌고, 마일리의 상태도 썩 좋질 못했다.
지구를 떠돌며 생존자를 구출하고, 카오스를 조사하는 데에 전념했던 그들이다.
쉬운 나날은 없었을 것이다.
“같이…… 같이 가자니까요?”
한쪽에서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나타난 건, 던전 상인 잭. 그러니까 지상수다.
“너도 같이 있었냐?”
“어, 형? 누나? 언제 왔어요? 왔으면 왔다고 연락을 줄 것이지!”
지상수는 여전히 상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떼돈을 벌어들이…… 아니, 유니온을 되살리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가 최근에 해낸 업적 중 가장 큰 건은 ‘이동 던전’에 준하는 ‘안전한 전철’의 부활이다.
드림 사이드 2에서 어지간히도 돈맛을 봤는지, 녀석은 유니온의 지하에서 발견한 철로를 모조리 복구하는 데에 성공했다.
“……파파와아아앙!”
그리고 카오스 포탈의 한쪽에서부터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한 여자가 순식간에 강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니온의 거주권을 가지고 있는 한, 방어 마법진이 활성화된들 진입에 방해될 일은 없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듯 신비로운 머리카락. 하얀 모래사장처럼 뽀얀 피부의 그녀가 활짝 웃으며 강서준의 허리에 안겼다.
[‘고롱이’가 환하게 웃으며 꼬리를 좌우로 흔듭니다!]강서준은 그녀를 내려다봤다.
“파랑이?”
“보고 싶었어! 그간 어디 있었어?”
“어디 간 건…… 너였잖아.”
그 뒤로 카무쉬가 착잡한 얼굴로 걸어왔다. 강서준은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이 왜 카오스 포탈에서 나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어째서 이곳으로 연결된 거지?”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지구를 수색하던 중 우연히 컴퍼니의 잔당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뒤를 추적한 결과, 놈들의 본진을 털 수 있었고…… 그곳에 숨겨진 포탈을 통해 넘어오니 바로 이곳이었다는 이야기.
강서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카오스 포탈이 현실과 게임뿐만이 아니라, 현실과 현실도 잇는단 얘기인가…….”
현실 지구에서는 포탈을 열어 이동하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힘든 일이 되었다.
곳곳에 ‘카오스’가 산재했고, 오가는 동안 정보가 변질되어 버리면 온전한 신체를 보유하기 어렵다.
공간이동도 S급 스킬을 각성한 김훈 정도 되어야 해낼 법한 일. 어지간해선 불가능했다.
한데 이걸 ‘카오스’를 통해 열어 버린다면 어떨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카오스라면, 그간 고민했던 모든 것들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었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리고 한쪽에서 작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적합자. 지금, 게임에서도 난리가 아니라고!”
피로에 찌든 얼굴로 나선 이루리와, 그 곁에서 연신 콘솔을 조작하는 일행이 보였다.
샛별과 몰모트는 이루리와 함께 드림 사이드를 운영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강서준이 물었다.
“밀트는 어쩌고?”
“걔 지금 뭐 빠지게 작업 중이야. 말했잖아? 게임도 지금 난리가 아니라고.”
밀트 또한 기록자였던 전직을 살려, 드림 사이드의 운영자로의 행보를 잇고 있었다.
정확히는 강제적으로 이루리에게 종속되어서 노예처럼 부려 먹히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루리는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드림 사이드로도 카오스 포탈이 열렸어. 현실의 몬스터와 카오스가 몰려들고 있다고.”
“……뭐?”
“당장은 백신으로 어떻게든 대처하고 있긴 한데……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어.”
컴퍼니 녀석들이 아주 대대적으로 준비한 모양이었다.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하지만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우리도 가만히 있진 않아.”
이에 맞장구치며 나타난 건 링링이다.
“맞아. 게임 속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거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어.”
컴퍼니의 수상한 행적을 조사한 지는 오래되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한 방법도 이미 구비해 둔 것이다.
유니온이나 게임 속으로 카오스 포탈을 동시에 열어 습격할 줄은…… 솔직히 예상하진 못했지만.
‘잠시 당황했을 뿐이지.’
이루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저거 부서질 것 같은데?”
“응. 앞으로 42초 후면 부서져.”
카오스의 압력마저 더해져 방어 마법진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유니온은 최소 S급 이상으로 구성된 몬스터 웨이브를 맞이할 예정이었다.
최하나가 중얼거렸다.
“라그나로크 때 같네요.”
0115 채널의 마지막 퀘스트에서 펼쳤던 처절한 전쟁은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당시에 죽었던 사람들도 전부 되살아났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로 미쳐 버린 사람도 꽤 있었다.
막말로 수천만이 죽고, 고작 천 명이 살아남았던 극악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이젠 죽어도 더는 부활할 방법 따위는 없다. 현실의 지구는 ‘세이브 데이터’ 따위 없으니까.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아뇨. 달라요.”
“네?”
“지금은 제가 있잖아요.”
강서준의 의지에 화답하며 유니온의 곳곳으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생성된 수많은 영혼 부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백귀들도 각자의 자리를 잡고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라이칸, 오가닉, 로켓, 알리…… 최근에 구한 리자드킹까지.
정령화를 마친 켈이 말했다.
“빨리빨리 안 다녀?”
“……아까부터 있었거든요?”
꽤 중후한 얼굴이었지만 익숙함이 남은 진백호와, 그보다 어리지만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리나.
곁으로 안센마저 망치를 쥐고 섰다.
그리고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김훈이 합류하는 것까지 확인한 강서준은 다시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쩌저저적!
유리에 금이 가듯 깨짓 방벽 너머로 무수한 몬스터의 울음이 들려왔다. 그 너머로 처음 보는 녀석이지만 낯설지 않은 인간의 형상도 보이고 있었다.
강서준은 바로 알아봤다.
‘기록자.’
이번 일의 원흉이다.
“세상은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
마력을 담았는지 묵직하게 울린 목소리는 유니온의 전역으로 흩어졌다. 강서준은 이에 짧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떠오른 말이 있었다.
‘분명 끝이 아니라고 했지.’
시스템과 결합된 몬스터 ‘카오스’는 소멸 직전, 강서준을 향해 저주처럼 그런 말을 퍼부었다.
「어리석은 플레이어여.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혼돈은 끝나지 않아.’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이다.
무언가를 희생하고, 또 무언가를 지킨다.
누구는 선택을 위해 포기하고,
누구는 선택을 위해 집착한다.
그래서 지구 멸망이라는 극단적인 오답을 만들어 낸 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오늘처럼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빌어먹을 악당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카오스는 돌아온다.
‘근데 그게 뭐…….’
엔딩을 봤다고 게임이 끝날까.
드림 사이드 3, 4, 5…….
계속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산다는 건 원래 그렇다.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된다.
쿠구구궁!
강서준은 별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몬스터 떼를 올려다보면서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새삼스러운 위기였지만 괜찮았다.
“공략을 시작하죠.”
우린 늘 정답을 찾아낼 테니까.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