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41
◈ 41화
눈을 가늘게 뜬 강서준은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쟤도 살아 있었냐?”
“아, 이놈요?”
지상수의 옆에서 무거운 짐짝을 잔뜩 메고서 땀을 뻘뻘 흘리는 인간. 독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계속 째려보는 시선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지상수가 그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말했다.
“눈 안 깔아? 감히 누구 앞이라고.”
“……이익.”
이를 가는 소리가 여실히 들렸지만, 놈은 고개를 푹 숙였다.
본래 삼깨비의 주인이자, 도깨비감투를 쥐고 있던 컴퍼니의 조직원. 던전 상인 잭을 모방하던 놈이었다.
강서준은 놈이 지상수에게 극도로 저자세인 걸 보고 짐짓 눈치챌 수 있었다.
“도대체 저놈은 계약서로 너의 어디까지 가져갈 속셈이었던 거야?”
“전부요. 건방진 놈.”
“……쯧.”
가볍게 혀를 찬 강서준은 고개를 휘휘 젓는 것으로 놈을 일별했다.
자업자득이었다. 계약서로 장난치다 흥한 자, 똑같이 망하는 법이다.
‘괜히 잭의 거래가 깨끗한 게 아니지.’
던전 상인 잭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그의 거래는 더러울 수가 없는 조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사의 귀걸이’를 가졌고, 그 귀걸이를 가진 이상 ‘계약서’를 비롯한 모든 거래에서 거짓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누구든 거짓말을 하면 그 계약서의 불공정 조항을 모조리 본인이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눈앞의 가짜가 잭에게 계약서로 강제하려 했던 모든 내용이 업보처럼 그에게 덧씌워진 것처럼 말이다.
강서준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나한테 사기를 쳤어?”
“……네?”
“드림 사이드 1에서의 너. 나뿐만이 아니라 최하나 씨, 여러 랭커들의 뒤통수를 치고 다녔잖아?”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는 지상수.
“그야 어차피 섭종할 게임이었으니까요. 페널티를 받아도 무슨 상관인가 싶었어요.”
“흐음…….”
잭은 거래에 있어서 본인도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거짓을 간파해서 불이익을 주듯, 본인이 거짓말을 할 때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천사의 귀걸이’는 공정했고, 던전 상인 잭은 그걸 모토로 공정한 거래와 믿음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적어도 그와의 거래는 더럽지 않으니까.
“뭐, 던전 깊숙이 들어와서 가격을 바가지 씌우는 것만 빼면 아주 좋은 녀석이었지.”
하지만 그 바가지가 공정하다는 건 ‘천사의 귀걸이’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지상수가 위험한 던전까지 들어와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데엔 정당한 위험수당이었다.
해서 마을에선 1골드에 불과하던 물건도 던전에선 100골드에 팔아도 할 말이 없었다.
정작 구매하는 당사자는 조금, 아니 많이 배가 아팠지만.
“으으…….”
강서준은 여전히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짜를 내려다봤다.
이름은 ‘젝’이란다.
어찌 보면 잭과 모음 하나 차이여서 마땅히 사칭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녀석이었다.
“이놈에 대해선 얼마나 알아봤어?”
“컴퍼니요? 아쉽지만, 기억이 지워졌어요. 무슨 장치라도 해 놨나 봐요.”
놈에게 정보나 좀 얻을까 했더니만.
“진짜 쓸모없네.”
“그래도 짐은 잘 들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열불이 터졌는지 놈의 쌍심지는 더욱 활발하게 불탔지만, 둘은 아예 관심조차 주질 않았다.
“맞다. 형, 오대수 형사님의 전언이 있었어요.”
“응?”
“형사님은 아크에 좀 더 머문다고 하셨어요. 공지원이란 사람의 상태가 꽤 위중해서 좀 더 지켜봐야겠대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대수는 본래 반주역의 대표였다.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그는 홀로 살아남은 ‘공지원’을 두고 돌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주 미안해하시던데요.”
“괜찮다고 전해 드려.”
“네. 다음에 아크에 들르면 그렇게 전할게요.”
한편 강서준은 눈을 감았다 뜨며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해 봤다. 이틀의 휴식은 ‘이매망량’으로 인해 망가졌던 몸이 회복되기엔 충분했다.
‘레벨도 한 번에 10은 껑충 올랐네.’
D급 던전인 ‘달리는 유령열차’를 공략하면서 어느덧 그의 레벨은 60에 근접하고 있었다. 고작 며칠 만에 올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괴물 같은 속도였다.
그리고 그건 당연했다.
레벨 43의 플레이어가 최소 레벨만 80인 D급 던전에 들어섰고, D급의 몬스터를 공략하는 건 물론, C급과 맞먹는 몬스터마저 쓰러트렸다.
이 정도는 올라 줘야 마땅했다.
죽을 고생을 하면 뒤지게 멋진 보상을 주는 게 바로 드림 사이드의 룰이 아닌가. 어쩌면 이조차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매망량이 되지 않아도 본디시의 검 정도는 무리 없이 쓰겠네.’
카카시의 가시 건틀렛이 쓸모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격 거리가 짧고, 본래 검을 쓰던 플레이를 즐겨 하는 그였던지라 영 불편한 게 없잖아 있었다.
“어쨌든…… 형. 국정원의 요청을 받아들일까요?”
호기심으로 묻는 지상수를 보면서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받아들이고 말 게 없었다. 설령 정부의 요청이 없다고 해도 그는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도깨비보주라면 충분히 아이들의 영혼을 되돌릴 수 있겠지?”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도깨비의 뿔로 만들어졌다면 왕의 위엄은 더욱 돋보일 겁니다.”
왕의 위엄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 하나는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아이들의 영혼도 되돌리고, 새로운 장비로 더 강해질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라이칸의 확언까지 들은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봤다. 그때 장기용이 양동이에 물을 가득 길러 오는 게 보였다.
여태 어디에 있나 했더니, 물을 뜨러 갔었던 모양이었다.
“케, 케이 님!”
과거는 금세 잊고 이젠 완전히 그를 ‘케이’로만 바라보는 장기용을 보면서,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장기용은 대번에 활짝 웃으면서 다가왔다.
“일어나셨군요!”
하지만 달려오던 그는 라이칸의 제지에 멈춰 서야 했다. 왠지 아기자기한 경호원 하나를 영입한 기분인데.
강서준은 그 둘을 응시하다 다시 최하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의 생각은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강서준은 지상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딘데?”
지상수는 젝의 어깨에 메어 둔 가방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어 먹으면서 말했다.
“잠실로테타워요.”
“응?”
“버뮤다 구역은 로테타워 앞에 있는 놀이동산인 ‘로테월드’예요.”
***
“저는 전철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D-10의 숨겨진 패널을 조작한 지상수는 강서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10호선에서 환승역을 지나, 2호선으로 옮겨 탄 이동 던전은 재빠르게 잠실역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그래. 대신 애들을 잘 돌봐 줘.”
영혼이 빈 아이들의 몸속엔 아직 코볼트의 영혼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그 덕에 신체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지만, 가만히 놔둬서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몰랐다.
지상수는 설렁설렁 답했다.
“늬예, 늬예.”
“새겨들어. 이 던전은 내가 너에게 빌려주는 거야. 함부로 이상한 곳에 쓰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겠지?”
“걱정도 팔자야, 정말.”
강서준은 지상수의 어깨를 토닥인 뒤, 몸을 돌려 출구를 찾았다. 당연히 보스방인 D-10구역엔 던전 밖으로 나가는 직통 출구가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장기용이 넌지시 물었다.
“그를 믿습니까?”
“……뭘?”
“잭요. 그는 케이 님의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잖아요.”
강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기용을 바라봤다. 솔직히 믿음직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장기용보다는 지상수가 백만 배는 믿음직할 테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장기용은 이젠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보는 충실한 부하 같았으니까.
전처럼 나쁘게만 보기도 좀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그를 하대하며 내려다보던 녀석이, 계속 존대를 하면서 굽신대는 걸 보면 여전히 부담스러웠지만.
‘말 안 듣고 사고 치는 것보다는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상수를 믿는 게 아니야.”
“네?”
“그저 놈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뿐이지.”
제아무리 섭종 직전이라고 해도 한 번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는 놈이다. 웃으면서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놈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천부적인 상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지상수…… 아니, 그 ‘잭’이라면.
멸망 직전의 서울에서 이동 던전이 가지는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컴퍼니가 했던 것 그 이상으로 그 던전으로 어떤 장사를 해야 좋을지도 이미 머릿속으로 잔뜩 그려 놨겠지.
강서준은 지상수가 가진 그런 상인의 감을 믿었다.
‘이동 던전의 보스는 아직 삼깨비인 것 같으니까. 라이칸이 내 수족에 있는 한, 이동 던전의 권한도 결국 내 것이야.’
지상수가 이동 던전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무조건 강서준의 재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라면, 강서준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은 안 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뭐…… 그것 말고도 내 뒤통수를 치는 미친 짓은 하진 않겠지.’
이젠 섭종이, 지구의 멸망이니까.
강서준은 던전을 벗어나는 출구를 넘어섰다. 그 뒤를 따라 최하나, 장기용 그리고 삼깨비 ‘라이칸’이 보무도 당당하게 따라왔다.
라이칸은 이젠 완전히 플레이어 취급이라도 받는지, 던전 브레이크가 없어도 아무런 제약 없이 던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손을 방방 흔들면서 인사하는 지상수를 일별한 강서준은, 서늘한 잠실역의 지하 플랫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따뜻하던 유령열차와는 다르게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를 차갑게 찔렀다.
폐허가 된 지하의 풍경.
2호선 잠실역은 인기척은커녕 누군가가 살았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한 줄기 빛조차 없어서 어두웠다.
최하나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손전등을 켰다.
다행히 그녀의 스마트폰은 아크에서 한 차례 개조를 겪어, 전력 대신 마력으로 구동하니 배터리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최하나는 음산한 잠실역 플랫폼을 넘어 상가를 둘러봤다. 여전히 몬스터의 흔적조차 없어서 그저 그날 이후로 방치된 것만 같았다.
그들은 곧, 로테월드의 입구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로테월드라,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어요.”
“네?”
“이렇게 로테월드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추며 고요한 로테월드의 입구를 살핀 최하나는 쓰게 웃었다. 그녀를 보던 강서준이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여기 처음이신가요?”
“네. 제가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해서 ‘로테월드’는 꿈도 못 꿨거든요. 공교롭게도 이곳에선 행사도 안 잡혔던지라.”
“아…….”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했다. 지금은 한국이 무너져 이 모양이었지만, 최하나의 본래 직업은 대한민국에서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캐스팅돼서 아이돌이 된 그녀는 로테월드는커녕 놀이동산 자체에 처음 방문하는 거라고 했다.
최하나는 아쉽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언젠가 한 번쯤은 회전목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한편 강서준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어느덧 입구를 지나, 로테월드의 메인이라 할 만한 회전목마의 앞에 섰지만 아직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폐장한 놀이동산처럼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만 풍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해.’
너무나도 깔끔했다. 정말 그날 이후로 이 큰 곳에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나?
이곳만 멀쩡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기예요. 저쪽이 메인 포토존입니다.”
SNS에 꽤나 자주 올라오는 장소였다. 최하나도 여타 다른 일반인처럼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데이트를 하고, 조금은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쓸쓸하게 말문을 닫았다.
“뭐…… 이젠 아예 일상이란 것도 없어졌지만요.”
하지만 그때였다.
뎅! 뎅! 뎅! 뎅!
어디선가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하면서, 주변으로 뭔가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일행이 긴장하며 한곳으로 뭉쳐 각자의 무기를 꺼내 쥐었다.
어떤 이상한 낌새조차 없었던 이곳.
[스킬, ‘류안(A)’을 발동합니다.]약속이라도 한 듯 로테월드 전역으로 휘몰아치는 어떤 에너지가 있었다. 그것은 무섭게 치솟아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장기용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큰 빛이 터졌다. 그리고 곧 주변의 각종 놀이기구에 빛이 들어오더니, 회전목마가 거짓말같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오늘도 로테월드를 찾아 주신 고객님들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꿈과 낭만이 가득한 행복한 동화나라, 로테월드입니다!]째깍!
“……말도 안 돼.”
그들의 주변으로 수많은 인파가 나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