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51
◈ 51화
김강렬은 일단 회의적이었다.
“던전을 부숴 버리자고요?”
“네. 씨앗방으로 가서 던전 보스를 죽인다면 던전화는 자연히 멈춥니다.”
“알아요, 던전화를 멈추는 방법…….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지금도 성난 기생수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로 근처를 서성였다. 씨앗방으로 가려면 우선 기생수부터 처치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강렬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겠습니까. 자칫 전멸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
“일단 아크로 돌아가서 재정비합시다. 제아무리 케이 님이라고 해도 혼자서 이만한 규모의 던전화를 막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김강렬을 바라보는 강서준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의 생각처럼 돌아가서 정비하여 공략할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도 그러고 싶었다.
“컴퍼니가 가만히 있질 않을 겁니다. 던전화가 가속돼서 이대로 진짜 던전이 되면 답도 없어요.”
진짜 던전이 됐을 경우와 던전화가 진행 중인 공간은 난이도부터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진짜 던전이 됐을 때는 아마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다.
‘이만한 규모의 던전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어떤 등급일지…….’
강서준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렵겠죠. 목숨을 걸어야 할 거고요. 어쩌면 우린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훗날 우리는, 이 던전을 없애지 못한 오늘을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강서준의 말에 사람들은 침음을 삼켰다. 그들이라고 암담한 미래를 점쳐 보지 않은 건 아니니까.
당장 ‘리자드맨의 침공’으로 인해 기근을 겪는 게 아크였다.
여기에 이만한 크기의 던전이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아크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즉, 강서준의 말마따나 여기서 던전을 막는 게 서울이 살아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결국 그들도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서준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전에 여길 벗어날 방법도 모르잖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나마 그들에게 희망이 될 것은 이곳에 선 두 사람이 천외천인 ‘케이’와 ‘클라크’라는 점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은 이 둘에게 걸려 있었다.
강서준은 말했다.
“씨앗방까지 단숨에 달릴 겁니다. 뒤처지는 사람은 저도 어쩌지 못해요. 다들 이해했죠?”
“……네.”
“그러면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작전 속행합니다.”
강서준은 요동치는 기생수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서릿발에 잠시 위축됐던 기생수가 슬금슬금 재차 공격을 가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크콱…… 크콰카칵!
마치 전열을 가다듬듯 줄기들은 이쪽을 포위해 왔다. 시간을 주면 불리해지는 건 플레이어일 것이리라.
강서준은 검을 움켜쥐며 외쳤다.
“지금!”
일제히 달리기 시작한 일행. 기생수는 곧바로 그들을 위협하며 다가왔다.
“달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라고!”
이를 악문 김강렬의 외침과 함께 기생수의 공격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포위망을 좁혀 오자 사방이 기생수로 가득 들어차서 움직일 공간조차 보이질 않았다.
최하나가 총구를 겨누면서 말했다.
“다들 뒤처지지 마요!”
타아아앙!
마탄이 발사되고 뭉쳤던 줄기들이 터져 나갔다. 폭발의 범위에 있던 기생수가 움츠러들자, 강서준의 검이 예외 없이 휘둘러졌다.
길이 열렸다.
일행은 일제히 숨을 참고 작은 통로를 비집고 빠져나오기 위해 힘껏 뛰었다.
“달려! 달리라고!”
“으아아앗!”
이래봬도 플레이어들이다.
그들은 일심동체라도 되는 것처럼 기생수를 베고, 때리고, 밀어내면서 나아갔다. 이대로라면 무리 없이 씨앗방까지 향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살려 줘!”
“끄아아악!”
결국 뒤처지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선발대를 쫓을 수 없었고, 기생수 사이에 고립되고 말았다.
“젠장! 뒤돌아보지 마!”
김강렬이 냉정하게 지시했지만, 몇몇 플레이어는 이를 악물고 고립된 사람을 구하려 달려들었다.
“영석아!”
“현중아!”
하지만 고립된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새로운 피해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워낙 파죽지세로 다가오는 기생수의 공격이었다.
동료를 구하면서, 자신까지 지켜 내기엔 그들의 수준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약했다.
그건 강서준조차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다. 이만한 공격을 뚫고 나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어려운 일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뒤처진 사람들이 기생수에게 잡아먹히며 비명을 질러도.
누군가가 간곡하게 울면서 살려 달라고 이름을 불러도.
그들은 묵묵히 달려 나갔다.
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오직 가능한 행동은 하나였다.
목적지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서준 씨!”
강서준은 가까이 솟아난 기생수를 능숙한 나무꾼처럼 잘라 내며 지근거리에 다다른 블랙홀을 확인했다.
강서준과 최하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타아아앙!
“여기입니다! 여기까지만 도착하면 됩니다!”
최하나의 총성을 시작으로 강서준은 달려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이곳까지 다다른 사람은 어떻게든 구하리라.
그의 의지가 검에 닿은 듯, 기생수를 썰어 대는 그의 검속은 점차 빨라졌다.
“가, 감사합니다!”
가까스로 기생수를 뿌리친 생존자들이 힘겹게 블랙홀로 몸을 던졌다. 잘 넘어갔을까. 포탈을 넘듯 그 너머로 건너간 사람들은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너머는 던전처럼 별개의 공간으로 꾸며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다.
“서준 씨!”
“먼저 들어가세요!”
최하나를 마지막으로 블랙홀에 밀어 넣은 강서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요동치는 기생수 너머로 몇몇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발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기생수들로 둘러싸인 공간.
슬슬 기생충이 바닥을 잠식하면서 설 공간을 없애고 있었다.
“…….”
[‘인형사 피에로의 비밀스러운 씨앗방’을 발견했습니다.] [!] [‘도깨비감투’를 소유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흐름이 당신을 이끕니다.]***
[‘인형사 피에로의 비밀스러운 씨앗방’을 발견했습니다.] [알 수 없는 흐름이 당신을 이끕니다.]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건너편에 다다른 최하나는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보이는 건 어두운 사무실.
예상하지 못한 풍경을 둘러보며 최하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기저기 사무기기가 널브러지고 부서진 벽들이 보였다. 깨진 유리창 너머를 확인하니 이곳은 꽤 고층인 듯했다.
조심스레 창가로 다가간 그녀는 로테월드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여긴 로테타워 안인가?’
그렇다면 왜 그녀 혼자 떨어졌냐는 건데.
아무래도 씨앗방으로 들어오면서 랜덤으로 타워 곳곳으로 이동되는 특징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번거롭게 됐어.’
최하나는 숨을 죽이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오랫동안 아무도 방문하지 않은 로테타워의 복도는 그저 음산한 기운만 넘실거렸다.
부서진 채 덜렁거리는 형광등이 종종 불빛이 껌뻑이는 걸 보면 신기하게도 전기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
“……!”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하나는 권총을 겨누며 어둠을 가만히 응시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일정한 발걸음이 점차 다가왔다.
사람? 몬스터?
일단 이곳으로 컴퍼니도 들어왔으니, 적일 확률도 높았다.
탁, 탁, 탁.
하지만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등장한 것은 작은 체구의 몬스터였다.
“와, 왕을 본 적이 없는가!”
“……라이칸?”
“대답하거라! 왕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최하나는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서준 씨도 이곳 어딘가로 이동됐을 거야. 너무 걱정하진 마. 별일 없을 거야.”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이곳에서 강서준을 위협할 존재가 있다면, 아마 오늘 이곳에서 살아 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하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는가?”
“왕 찾으러.”
“나, 나도 가겠다!”
부들부들 떨던 라이칸이 쫄래쫄래 최하나의 뒤편에 따라붙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최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너 혹시 겁먹은 건 아니지?”
“……무엇이! 나는 위대한 도깨비! 무, 무서운 것 따위 없다!”
“근데 왜 떨어?”
“…….”
체구가 작아지더니 간도 작아진 걸까. D급 던전에서 그들을 위협하던 보스 몬스터가 맞나 싶었다.
그런데 이놈은 뭘 무서워하는 거지?
영혼을 다스리는 몬스터가 일개 유령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고.
‘이건 뭐…… 어린아이 같네.’
놀이동산에서 미아가 된 것처럼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겁에 질린 라이칸. 최하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라이칸의 짧은 다리에 보조를 맞춰 줬다.
“라이칸. 그러고 보면 너랑 얘기를 길게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런가?”
“넌 처음부터 몬스터가 아니라고 했었지? 갑자기 기억이 돌아왔고?”
“그렇다. 난 자랑스러운 도깨비 일족의 후예였다.”
“그럼 어쩌다 몬스터가 된 거야?”
여태 닳고 닳은 경험을 많이 쌓아 왔던 최하나조차 몬스터가 NPC로 돌아선 경우는 처음이었다.
인간에서 몬스터가 된 그리드조차 인간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으니까.
“……모른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라이칸의 당당한 대답에 최하나는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삼깨비 라이칸’은 일종의 가이드 NPC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서준 씨에게 가장 먼저 제안한 게, 왕의 위엄을 찾으라는 거였지?’
그건 아마도 ‘키워드’일 것이다.
도깨비감투를 차지한 강서준에게 세트 아이템인 ‘도깨비보주’를 비롯한 무언가를 찾으라는 것.
아마 그 아이템을 얻으면 뭔가 새로운 정보가 라이칸의 기억에서 해금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거기부터 도깨비에 대한 비밀도 차츰 공개되겠지.
‘히든 퀘스트일 거야.’
그것도 드림 사이드 1에서는 공개된 적이 없는 유형이었다.
최하나는 그의 옆에서 짧은 다리로 잘도 따라붙은 라이칸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로테타워가 무너질 듯이 크게 흔들렸다. 최하나는 라이칸을 붙잡고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지진일까?
잠시 후, 진동은 사라졌다.
다시 씻은 듯이 조용해진 실내.
최하나는 라이칸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가자.”
“그, 그래.”
하지만 오래 걷지 못하고 둘은 멈춰 서야만 했다. 그들이 향하던 방향의 한쪽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살짝 그쪽을 확인한 최하나는 침을 삼키며 경계심을 극도로 올렸다.
‘……카무쉬.’
건물 내부로 혓바닥을 내두른 채로 머리를 박은 용이 기절해 있었다. 점차 몸이 뒤로 밀리는 걸로 보아 무게를 못 이겨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방금 전의 지진은 카무쉬가 로테타워에 들이박으면서 생긴 것인가.
최하나는 긴장을 삼키며 카무쉬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콧구멍 근처를 바라보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죽고 있어.’
미약하지만 생명의 기운이 점차 사그라드는 게 보였다.
그건 또 다른 의문을 불러왔다.
대관절 ‘용’을 어떻게 죽였냐는 것이다. 설마 ‘불살의 특징’은 이 용에게 적용되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대체 이놈을 이렇게 만든 존재는…….
나지막이 추리를 이어 나가던 최하나는 라이칸이 한쪽을 보면서 손을 흔드는 걸 볼 수 있었다.
“……왕이시여.”
미간을 좁혀 그쪽을 확인한 최하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라이칸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끌었다.
“무, 무슨 짓……!”
콰지지직!
종전까지 라이칸이 선 자리에 뭔가가 빠르게 도달했다. 최하나는 시선을 낮추며 다가오는 무언가를 권총으로 막아 냈다.
채애애앵!
날카로운 공명음과 함께 최하나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 와중에도 바로 조준점을 잡고 사격을 가했다.
타아아앙!
아깝게 빗나간 총알.
최하나는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라이칸도 군말 없이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
복도 끝까지 달려간 그녀는 낮게 호흡을 정돈하며 눈을 부릅떴다.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내가 보였다.
“……카무쉬가 이길 거라면서요.”
무미건조한 얼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존재.
‘케이’는 고개를 옆으로 팍 꺾으면서 씨익 웃었다.
“끼이이이익…….”
인간 같지 않은 울음을 흘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