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56
◈ 56화
강서준은 두 눈을 착각한 줄 알았다.
‘로그 기록.’
눈앞으로 떠오르는 무수한 시스템 메시지의 행렬 중에서 가장 최근의 내역을 확인해 봤다.
분명 피에로를 죽인 시점에 그에게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가 있었다.
거의 동시에 나타나, 소리조차 겹쳐 버린 메시지…….
[?급 보스 몬스터 ‘인형사 피에로’를 처치했습니다.] [숨겨진 엔딩을 발견했습니다.] [‘인형사 피에로의 테마파크’는 던전화에 실패했습니다.] [!] [‘인형사 피에로의 테마파크’가 완성되었습니다.] [‘던전화 저지’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봐도 황당한 내용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죽여 던전화에 실패했다는 메시지와, 던전화 저지엔 실패하여 이곳이 던전이 되어 버렸다는 메시지.
두 개의 상반된 메시지가 동시에 상황을 알려 주고 있었다.
강서준은 메시지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쪽이 정답이든 중요한 건 여전히 그에겐 ‘던전 입장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던전화를 막은 걸까?
모르겠다.
아직 무언가가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으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피에로의 죽음과 함께 이곳을 장악하던 피에로의 권역은 소멸한 탓일까. 주변에 가득하던 마기가 사라지니, 점차 마기에 중독됐던 플레이어들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성준이?”
“으아아앗!”
“이게 뭐야!”
그들의 손에는 뜨거운 피가 묻었고, 그들의 눈앞엔 싸늘하게 죽어 버린 동료의 주검이 있었다.
아마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마기에 중독된 자들은 말 그대로 뇌까지 마기에 오염된, 그저 피만을 갈구하는 ‘미치광이’가 될 뿐이니까.
동료의 등에 칼을 꽂고, 죽이고, 종종 먹기까지 했던 일련의 일들은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그러했다는 결과만이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 주입된 마기가 적어서 완전히 미쳐 버린 건 아니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어쨌든 기억은 못 해도,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 동료의 몸에 칼을 박고 있던 이들 같은 경우는 순식간에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기를 떨어뜨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정신 차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김강렬은 부대원을 한데 모으며 독려했다. 아직 제정신을 차리기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김강렬의 독려는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상황이 어떻든, 수습을 해야만 했다.
한숨으로 복잡한 심정을 밀어낸 김강렬은 강서준에게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혹시 보스 몬스터를 죽인 겁니까?”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으로 널브러진 피에로의 시체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놈은 죽었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경험치가 들어왔으니까.’
그뿐일까.
피에로를 사냥한 업적으로 칭호까지 받았다.
[칭호, ‘진실을 탐험하는 모험가’를 습득했습니다.] [미지의 지역에서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무려 세 달을 이어 온 던전화. 버뮤다 구역이라 불릴 정도로 무수한 사람들이 실종되던 이곳의 진실을 알아낸 결과였다.
이러니 보스 몬스터가 죽었다는 결론은 확실했다.
그때 최하나가 말했다.
“서준 씨…… 이쪽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뭔가 이상해요.”
언제 바깥에 다녀왔는지 최하나는 영화관의 문턱을 밟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서 이동한 강서준은 영화관 외부를 볼 수 있는 통창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침음을 삼켰다.
이건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는데.
“헉…… 서울이!”
뒤따라 다가온 김강렬이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로테타워의 주변을 보고자 했지만 결코 그가 원하는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사방은 이미 새카만 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어둡기만 했으니까.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그제야 강서준은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에 나타난 두 개의 상반된 메시지.
오류처럼 보이질 않는 서울의 정경.
덩그러니 남아버린 로테타워와 사람들.
통창 너머, 흑색으로 물들어 버린 무(無)의 공간을 바라보면서 강서준이 한숨을 삼켰다.
드림 사이드 1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 상황이 말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우린 고립된 겁니다.”
“……네?”
강서준은 로테타워 너머로 펼쳐진 새카만 어둠을 재차 노려봤다. 그저 어두운 게 아니라 저건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이었다.
최하나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뜻이죠?”
강서준은 그녀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참았던 한숨을 뱉으면서 대답했다.
“최하나 씨.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까? 만약 보스 몬스터가 죽는 순간…… 던전이 완성되어 버린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요.”
“…….”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타이밍에요.”
곰곰이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요? 던전의 보스가 죽는 즉시, 던전화는 멈추는데.”
강서준은 두통이 이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가능해요. 몇 안 되는 사례지만 분명 비슷한 일은 드림 사이드 1에서도 벌어졌으니까.”
옆에서 모든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김강렬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거 ‘1차 환불 사태’ 때를 말하는 겁니까?”
“네.”
“젠장. 그럼 정말 우린 여기 갇힌 겁니까?”
갇혔다.
그 말만큼 이 상황을 설명할 단어가 있을까. 강서준은 혀끝으로 느껴지는 쓴물을 삼키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로테월드를 비롯하여 기생수가 집어삼킨 부분까지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공간은 전부 암흑으로 뒤덮인 말 그대로 ‘무의 공간’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없는 던전.’
과거 실제로 드림 사이드 1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들이 있었다.
1차 환불 사태.
던전화 직전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순간, ‘던전화’가 완성되면서 우연찮게 버그가 발생한 일에 대해서.
당시의 결과는 하나였다.
‘출구가 없는 던전.’
버그 던전.
플레이어들은 일종의 ‘로스트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에 갇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
로테월드의 근처.
가까운 상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한석 대위는 두 눈을 비벼 봤다. 바뀌는 건 없었다.
그전에 지금 보는 게 현실일까.
크콰카카칵!
기생수의 폭주 때문에 접근조차 불허하는 현장이었다. 그나마 안전한 통로를 찾고자 로테월드를 중심으로 빙빙 돌았지만 들어갈 구멍은 없었다.
해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자 가까운 상가에 자리를 잡았다.
‘지원 팀이라곤 해도 이들은 전부 플레이어 경력이 짧은 신입뿐이야. 무작정 진입하는 건 위험해.’
이곳에 그들이 파견된 이유는 김강렬의 경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대규모 던전화가 벌어질 줄 알았다면 대대적으로 플레이어를 소집했어야 했다.
‘골치 아프군.’
지금 이 팀이라면 기생수를 상대로 1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싸움 자체가 안 되는 데에 무리해서 들어갔다간 전멸을 피할 수 없으니.
진퇴양난이었다.
쿠구구궁!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용’이 로테타워로 머리를 처박을 즈음이었다. 점차 로테월드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기생수의 활동이 잠잠해졌다.
안정화 상태로 들어선다는 증거였다.
“대위님, 진입하려면 지금입니다.”
“그래. 다들 준비해!”
부랴부랴 상가를 벗어난 그들은 빠르게 로테월드로 향했다. 어느새 요새처럼 둘러싼 기생수는 두터운 성벽처럼 진입을 막는 듯했다.
“여기 입구입니다!”
용케 기생수에게 덜 휘말린 입구를 발견한 그들은 조금씩 진입을 개시했다. 당장 기생수는 얌전해 보였지만 언제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안심할 수 없었다.
이처럼 기생수가 잠잠해졌다는 건 단 하나를 뜻했다.
“시간이 없어. 던전화가 완료되기 직전에 생존자부터 수색한다.”
“네!”
그들이 끼어든다고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혹시 안쪽의 사람들이 전멸 직전이라면 어떻게든 데리고 나와야만 했다.
게다가 그들에겐 ‘많은 물자’가 있다.
가방엔 며칠을 굶었을 김강렬의 부대원들이 먹을 만한 식량이 있었고, 물약을 비롯해서 많은 보급품을 챙겨 왔다.
사실상 그들의 가장 큰 임무는 이 보급품을 전달하는 데에 있었다.
“얼른 움직여! 만약 클라크 님과 케이 님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분들이라도 구해 내야 하니까! 그들을 잃으면 아크는 희망이 없어!”
하지만 세상일은 으레 그렇듯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질 않는다. 기생수가 잠잠해지고 그나마 접근이 가능해진 로테월드…….
이젠 그곳에서 더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대위님!”
땅이 덜덜 떨리더니 순식간에 지진이 일어나 갈라지기 시작했다. 진입을 명했던 나한석과 이미 진입한 부대원 사이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빠져나와!”
“네?”
“뛰라고!”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저쪽에서 말하는 소리도 음소거된 것처럼 들리지 않았으니, 소통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곧 눈앞이 번쩍였다.
순식간이었다.
“…….”
나한석을 비롯한 잔류 인원은 황망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종전까지만 해도 웅장하게 펼쳐져 있던 로테월드의 전경은 이젠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대위님.”
나한석은 침음을 삼키며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 보니 로테월드가 있던 곳은 포크레인으로 파낸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성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싱크홀 같은 구멍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연락은? 무전은 닿나?”
“안 됩니다. 전혀 답이 없어요.”
몇 번이고 다른 팀원에게 무전을 넣어 봤다. 서로 업그레이드된 핸드폰이었으니 던전 내부였어도 연락은 닿았어야 정상이었다.
팀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한석은 조심스레 주변을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싱크홀 내부로 던져 봤다.
퉁!
“……?”
허공에서 튕겨 나온 돌멩이.
그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돌멩이를 던져 봤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막혀서 튕겨 나왔다.
이번엔 그가 직접 그곳으로 다가갔다.
“대위님! 위험합니다!”
팀원들이 말리기도 전에 나한석의 손은 허공에 닿았다. 투명하기만 한 허공은 무언가에 막혀서 그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나한석이 말했다.
“……이 안에 있는 거냐?”
돌아온 대답은 시스템 메시지였다.
[버그가 발생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스템 복구 중입니다.]“……뭐?”
미간을 구긴 나한석은 구멍 내부를 들여다보고,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읽어 봤다.
‘버그라고?’
제아무리 드림 사이드가 게임 출신이었다곤 해도 엄연히 현실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버그’라는 게 존재한단 말인가.
그보다 시스템 복구 중이라는 메시지는 또 뭐고.
나한석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가 아무리 드림 사이드의 랜선이 짧았다고 해도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정보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특수부대원 출신이었다.
상황 판단은 빨랐다.
“지금 당장 아크에 연락을 해야겠어.”
“네?”
“드림 사이드 1의 사례 중 던전화 당시 버그를 만드는 경우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나한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멸한 로테월드를 쭉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직 그의 팀원이 안에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이 없다. 얼른!”
시스템을 복구 중이라고 했다. 과연 그게 이 안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이득이 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
하지만 이조차 전부 드림 사이드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비슷한 일이 드림 사이드 1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다면…….
‘방법은 있을 거다. 아니, 있어야만 해.’
나한석은 그렇게 한참을 허공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