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59
◈ 59화
용은 큰 소리를 내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꽉 잡아요!”
쿠구구구궁!!
거친 풍랑을 항해하듯 힘겹게 곡예비행을 하던 카무쉬는 구멍을 통과한 직후, 어느 땅에 추락했다.
카무쉬의 갈기를 꽉 붙잡은 강서준은 거센 떨림이 끝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빠져나온 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화살표의 행렬, 막무가내로 허공을 잘라 내던 가위들…….
해일처럼 몰아치던 검은 물결도 없었다.
무너진 도시의 정경.
여긴 로테월드의 주변에 있는 도로였다. 강서준은 바닥에 구멍이 난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된 로테월드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성공이다.’
그들의 도박은 성공했고, 결국 시스템의 초기화 과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곧 눈앞의 크레이터 위로 빛이 번쩍였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곳엔 ‘로테월드’가 있었다.
롤백이 완성된 것이다.
“……사, 살았다!”
“와아아아!!”
사람들은 금세 환호성을 질렀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
그들 사이엔 ‘컴퍼니’고, ‘아크’고, 뭣도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친 생존자만이 보였다.
그저 살아남은 게 기쁠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헉……!”
카무쉬의 몸통의 반절 이상이 마치 잘려 나간 것처럼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휑하니 드러난 카무쉬의 뒤쪽은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었다. 잘려 나간 단면부엔 핏물조차 흐르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답은 쉽게 나왔다.
“설마 꼬리 쪽에 매달렸던 사람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아도 그 내용을 쉬이 알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의 허망한 시선은 카무쉬의 잘려 나간 빈자리를 바라봤다. 삭제된 부분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김강렬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리고, 일단 정비부터 하지.”
그 말에 사람들은 각자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잃어버린 사람, 다친 사람, 지친 몇몇은 인벤토리를 열어 필요한 물건을 꺼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강서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방금 동료가 희생됐음에도, 저들은 바로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게 꽤나 익숙해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겠지.’
세상이 드림 사이드 2에 의해 전복되면서 다치고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셀 수 없을 것이다. 어제의 생존자는 오늘의 희생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제 이 세상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사람들은 죽음이 흔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조금 허무하군.’
그에게 영안이 뜨이면서 전보다 많은 걸 볼 수 있게 된 탓일까. 죽은 자에 대한 상념이 평소보다 조금은 더 길게 이어졌다.
‘죽은 자는 누구든 영혼을 남겨.’
하지만 강서준이 보게 된 ‘죽은 영혼들’은 하나같이 ‘자아’가 섞인 게 없었다. 그것들은 그저 기억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노영수의 사념처럼.’
그들은 생전의 기억에 따라서 영혼의 종류, 행동 방향이 결정될 뿐이다. 피에로가 좀 더 인간의 영혼을 쉽게 조종했던 이유도 바로 조종석에 아무도 탑승하지 않은 ‘기억의 빈 껍데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조차 모조리 사라지면, 영혼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한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모를 일이었다.
사후 세계가 실존할까? 혹은 게임처럼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 부활을 할까.
당장 그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알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알 도리가 없는 사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쩌면 고작 백 스페이스로 한 공간을 지워 버린 것처럼 손쉽게 한 사람의 데이터는 진즉에 지워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럼, 우린 여기서 빠지기로 하지.”
컴퍼니는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조차 없는지 바쁘게 안녕을 고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그 숫자가 반절은 줄었음에도 그들은 재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졌다.
어차피 언약 때문에 공격도 못 할 놈들이었다. 강서준은 흔쾌히 손을 흔들어 줬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땐 서로 칼을 꽂을 테니까.
“후우…….”
강서준은 다시 한번, 생존자들을 돌아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잡념들을 밀어냈다.
결론을 내리자.
‘산 사람의 도리는 계속 살아가는 것밖에 없어.’
코인이 남았다면, 전진이다.
단순히 게임이었다면 그는 미련 없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겠지. 이런 부질없는 신파극은 스킵을 통해서 넘어갔을 테니,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의 눈이 이젠 홀로 남아 버린 카무쉬의 사체 앞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서 아무런 영혼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까지 그들을 데려다주느라 영혼을 전부 불태우고, 무저갱 저편으로 흩날린 것이다.
강서준은 쓸쓸하게 카무쉬의 콧등을 쓰다듬다, 문득 놀라운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사체…….”
여기서 카무쉬의 존재는 특별했다.
본래라면 등장할 수 없었던 ‘용족’이자, 도깨비보주와 피에로의 힘에 의해서 새로 태어난 형체.
영혼 속에 담긴 ‘공포의 기억’이 자아낸 특수한 형태의 몬스터였다.
이놈의 내구도나 여러 스텟 수치는 고작 100레벨짜리로 연약한 수준이었지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무려 용의 사체였다.
만약 이 사체에 용족의 특성이 남아 있으면 대박일 것이다. 이것으로 용의 무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강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재료의 성질을 확인하고자 했다.
+
eocnd qjrmfh qjaqjrdl ehoTeksms Emt
+
예상대로 품명은 ‘흑룡 카무쉬’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내용은 버그로 인해 큰 손상을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제 기능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역시 쓸모가 없는 걸까.
강서준은 잠시 고민했다.
‘괜히 이거 가져갔다가 백 스페이스가 따라오진 않겠지?’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버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그때는 공간 자체가 격리될 정도로 큰 규모도 아니어서 그런지 ‘백 스페이스’를 비롯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 게임에서도 자잘한 버그까지 모두 수정하진 않으니까.’
이번에도 이 버그는 시스템 복구 대상에 속하진 않을 것이다. 강서준은 어림짐작하면서 얼추 카무쉬의 전신을 훑어봤다.
두 번째 문제다.
인벤토리에 들어갈까.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됐다. 괜히 시한폭탄을 끌고 갈 필요는 없어.’
나중에 탈이 된다면 그건 보약이 아니었다. 강서준이 그렇게 미련을 모두 털어 버릴 즈음이었다.
[‘고롱이’가 눈앞의 간식에 침을 질질 흘립니다.]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말릴 틈도 없이 주머니로부터 엄청난 흡입력이 생겨나더니, 대뜸 흑룡 카무쉬의 사체가 빨려 들어간 것이다.
“……!”
어느덧 그 커다란 사체는 작은 다람쥐의 트림 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고롱이’가 ‘흑룡 카무쉬의 사체’를 섭식했습니다.] [‘고롱이’의 포만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고롱이’에게 ‘특성 : 용족’이 추가됩니다.]***
잠시 후, 강서준은 털색이 흑갈색으로 변하고 어느덧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한 마리의 다람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식의 마수, 고롱이.
강서준의 잘못이라면 이 녀석을 오랫동안 굶주리게 놔둔 것이다. 딱히 음식을 챙겨 줄 겨를이 없던 ‘유령열차’부터, 던전인지 애매했던 ‘로테월드’까지.
고롱이도 나름 오랫동안 참아 왔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그래.
그런 건 다 이해해.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내가 허락도 없이 재료 먹지 말라고 한 건 잊었냐?”
고롱이는 나름의 AI를 갖춘 마수였다. 그리고 강서준은 드림 사이드 1에서부터 줄곧 고롱이에게 함부로 재료를 먹어선 안 된다고 교육해 왔다.
그런 커맨드를 입력해 둔 펫이었다.
‘물론 드림 사이드 1의 커맨드가 여기까지 이어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여태 강서준의 명이 있기 전에는 먹은 적이 없기에, 당연히 이어지고 있는 줄만 알았다.
‘골치 아프네.’
그래. 먹은 것까지 다 좋다 이거야.
근데 하필 ‘버그템’을 먹으면 어쩌잔 말인가. 자칫 탈이라도 난다면……?
고롱이는 강서준의 소중한 섭종 보상이었다. 지금 당장은 그 성능을 다 보여 주진 못하고 있지만, 이쁘게 성장시켜 놓으면 ‘열 카무쉬’ 안 부러웠다.
“……아까워서 이러는 거 아니야. 전부 다 널 위한 거니까. 고롱아. 벌 달게 받아.”
해서 강서준은 고롱이에게 체벌을 주기로 했다.
함부로 재료 템에 손을 댄 죄.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 규칙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
고롱이는 양팔을 귀에 붙이고 위로 번쩍 들었다.
의외로 라이칸이 나서서 관리감독을 해 주기로 했다.
라이칸은 강서준 모르게 은근히 다가가서 말한다.
“1에선 당신이 선배였는지는 몰라도, 여기선 내가 선배요. 말 잘 듣는 게 좋아. 안 그럼…… 칵!”
다 들리는데.
라이칸…… 쟤는 고롱이의 레벨을 알고 저러는 건가?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일단 둘을 일별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인 장소로 이동했다.
그들은 아크에 연락을 해 보려고 무던히도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강서준은 그중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배경화면 바꿨네요.”
최하나.
그녀의 스마트폰은 이젠 다시 찾아볼 수 없는 ‘회전목마’가 배경이었다. 슬픈 미소를 지은 그녀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강서준.
불과 며칠이 흘렀을 뿐인데도, 몇 년은 지난 것만 같았다.
“추억이니까요.”
“……추억이라.”
강서준은 문득 다시 복원된 로테월드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느낌만 풍겨 내는 그곳은 그녀의 스마트폰 배경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분위기였다.
오히려 스마트폰 배경이 현실 같고, 저곳이 전부 환상 같지 않은가.
꿈이라면 얼른 깨고 싶을 정도의 악몽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결국 피에로의 함정에 불과했던 걸까요?”
최하나의 시선이 군데군데 망가진 로테월드를 둘러봤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닐 겁니다. 고작 피에로의 의도만 있는 곳은 아니니까요.”
“네?”
“너무 따뜻했어요.”
피에로의 의도는 ‘낮의 로테월드’에서 ‘밤의 로테월드’로 넘어갈 때, 괴로운 플레이어들의 비명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였다면 그토록 ‘인형 탈’들이 낮의 로테월드를 지키려고 노력을 했을까.
정해진 시간 이외에 ‘밤의 로테월드’가 되지 않도록, 인형 탈들이 나서서 소란을 막으려 한 이유는 피에로의 의도와 상반된 것이었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반지를 내려다봤다.
“누군가의 바람이 담겼을 겁니다.”
신입 사원 노영수.
그는 로테월드에서 죽었고, 피에로에 의해 부활했으며, 우연한 기회로 사념체가 본인의 기억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낮의 로테월드…… 어쩌면 그곳은 노영수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일상일지도 몰랐다.
평범하고, 행복한 어느 주말의 한때.
그가 만들고 싶었던 놀이공원.
그래서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요?”
최하나의 질문에 강서준은 헛헛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모르죠. 그냥 그랬으면 한다고요.”
다시 말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이미 초기화된 던전을 연구할 방법은 따로 없다.
그렇다면 제멋대로 해석해도 되겠지.
띠리리링.
그때였다.
최하나의 핸드폰이 활달하게 벨소리를 울려 댔다. 아크에 통신을 연결하려던 김강렬의 부대원이 전부 이쪽을 바라봤다.
최하나가 말했다.
“지상수네요.”
최하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곧, 수화기 너머로 긴박한 지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할렐…… 야! 진짜 연결이 닿았잖아!
“뭐야. 무슨 일이야? 왜 이리 시끄러워?”
-잠시…… 기다려 주……!
스피커폰 너머는 마치 박격포라도 떨어진 듯 요란한 사운드가 가득했다. 잠시 한참을 울리던 폭음은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다시 지상수가 말했다.
-누나! 서준이 형은요?
“옆에 있어.”
-다행이다! 진짜…… GPS 뜨자마자 알아봤다니까요!
지상수는 유난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어디세요? 데리러 갑니다.
“아직 로테월드야.”
-거기 완전 소멸했다던데…… 뭐, 누나랑 형이 있으니 어떻게든 했겠죠. 결국 이 콤비는 떡상할 수밖에 없다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지상수.
강서준은 나지막이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방금 폭음은 뭐고.”
지상수는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아참, 큰일이에요. 지금…… 아크가 침공당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