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6
◈ 6화
똑, 또독.
또오옥.
어디선가 배관이 새는지 바닥으로 물이 떨어져 소리가 났다.
주먹 크기의 생쥐 한 마리가 약간 웅덩이 진 물을 마시려고 어두운 공간을 가로질렀는데.
갑자기 그곳으로 빛이 터져 나왔다.
찍! 찌직!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지하 주차장. 무너진 콘크리트 옆으로 파란색 빛이 일렁였다.
우우우웅.
깜짝 놀란 생쥐는 원래 있던 구멍으로 돌아갔고, 곧 파란 빛 덩어리에서 공간이 갈라지더니, 머리가 산발이 된 남자가 나타났다.
“음…… 여긴?”
강서준은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그를 환영하듯 반겨 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선택의 미로(헬)’을 클리어했습니다.]세 달 만의 귀환이었다.
***
그 시각.
일련의 사람들이 한곳에 뭉쳐 있었다.
굳은 얼굴의 사람들.
그중 피 묻은 제복의 경찰, 오대수는 반쯤은 무너진 학교를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더는 시간이 없어요.”
“…….”
“앞으로 이틀. 그 안에 이 던전을 공략해야만 합니다.”
장내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터무니없이 막막한 것이다.
오대수는 학교의 정문에 오롯이 솟아난 거대한 문을 바라봤다. 그 너머의 학교는 핏빛으로 물들어 여고괴담을 떠오르게 했다.
금방 귀신이 튀어나와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들 두려운 것 압니다.”
“…….”
“이해합니다. 저도 겁이 나니까. 하지만 우린 가야만 해요.”
오대수의 단호한 말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알고는 있겠지만,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대수의 눈빛이 침잠했다.
말했듯, 그는 사람들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학교.
여고괴담을 떠오르게 하는 이곳의 등급은 무려 E급.
하지만 오대수가 속한 그룹의 인원 중 하드 난이도 통과자는 겨우 한 사람에 불과했고.
그들이 힘을 모아 공략해 본 던전은 F급이 전부였다. 아직 E급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높은 벽인 것이다.
‘그뿐이면 다행이겠지.’
학교 앞에 웅장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문의 색깔은 무려 ‘붉은색’이었다. 그리고 드림 사이드에서 피처럼 붉은 문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기 직전이라는 거야.’
던전 브레이크.
몬스터가 과하게 증식되어, 던전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
즉, 던전 브레이크의 직전이라는 말은 곧 던전 내부는 몬스터로 꽉꽉 차 있다는 걸 뜻했다.
‘지금 저곳을 공략한다는 건 자살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잖아요. 이틀 안에 공략하지 못하면 놈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시가지로 뛰쳐나올 겁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면 던전의 등급은 올라간다.’
눈앞의 던전 ‘무너진 학교’는 던전화 당시 ‘F급’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한 차례 던전 브레이크를 겪으며 ‘E급’으로의 성장을 마친 것이다.
또한 더 빠른 속도로 ‘D급’으로의 성장을 목전에 뒀다. 이 속도면 더더욱 감당할 수 없는 골칫덩이가 될 터.
오대수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D급으로 성장하면 정말 끝입니다. 던전 공략도 공략이겠지만 만약 또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면…… 그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해서 그들은 이곳에 왔다.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기 직전이라 몬스터가 가득 들어차더라도, 아직 E급일 때는 가능성이라도 있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그때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대체 왜 저곳만 유난히 성장 속도가 빠른 겁니까? 이 주변은 전부 F급뿐인데.”
영업사원 공지원. 양복 위에 걸친 가죽 갑옷이 현대와 판타지가 오묘하게 겹친 복장이었다.
툴툴대는 말투였지만 그래도 어디 모난 곳 없이 맡은 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대수는 그를 향해 차분하게 설명해 줬다.
“저곳의 몬스터는 언데드 계열이라 그래요.”
“……언데드요?”
“흔히 말하는 좀비 같은 부류들요.”
공지원이 질색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
학교에서 흐르는 음산한 기운. 괜히 오한이 드는 게 아닐 것이다.
저 안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귀신’ 혹은 ‘유령’이란 것들이.
“근데 그게 저 던전이 E급인 것과 무슨 상관이죠?”
오대수는 시선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공지원 씨. 드림 사이드에서 언데드는 최약체로 통했어요. 방어력이 많이 부족했거든요. 하지만 아무도 언데드 계열 몬스터를 무시한 적이 없었죠. 왜인지 알아요?”
“……모르죠.”
“언데드는 번식력이 엄청나요. 영화를 떠올리면 쉬워요. 물리면 즉시 감염…… 죽은 시체조차 기회만 있다면 몬스터로 변해 버립니다.”
오대수는 말을 하면서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버젓이 떠오르는 불편한 현장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화가 벌어진 곳이 학교니까.’
새벽 6시 무렵에 등교한 학생은 그리 많진 않았겠지만, 문제는 이 학교가 기숙사형 학교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반항조차 못하고 당한 것이다.
오대수는 아스라이 떠오르는 상상을 억지로 밀어내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이미 사라진 것을 찾는 것보다 손에 쥔 무언가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법.
오대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간 우린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연인, 가족, 친구…… 셀 수 없겠죠.”
대충 사람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펜을 쥐던 학생은 칼을 쥐었고, 비즈니스를 위해 양복을 입던 회사원은 중세 시대에나 있을 법한 갑옷을 걸치고 있다.
경찰인 그조차 그랬다.
그의 허리춤엔 분명히 권총이 있음에도 정작 손에는 푸른색의 창을 들고 있었으니까.
세상은 변했고.
그 변화의 시작은 ‘일상의 박탈’부터였다.
“고작 3달입니다.”
모든 것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덧없이 사라졌다. 이젠 잃은 것보다 가지고 있는 걸 세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오대수는 창으로 바닥을 쿵 내리찍으며 비장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삶의 터전을 뺏으려는 몬스터로부터…… 변해 버린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연설의 끝 무렵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엔 열기가 올랐고, 두려움에 젖어 가던 표정엔 작은 용기가 샘솟았다.
이젠 그들은 플레이어라고 불린다.
던전은 공략해야 할 ‘숙제’였고, 더는 그들의 일상을 잡아먹는 ‘재앙’ 따위가 아니었다.
레벨 업을 하고,
장비를 강화하고,
스킬을 단련하면 될 일이다.
오대수는 푸른 창을 높이 들었다.
창의 이름은 ‘파도잡이의 창’.
섭종 보상으로 오대수가 드림 사이드 1의 플레이어인 ‘경험자’라는 걸 나타내는 징표였다.
“준비하십시오. 10분 후…… 진입합니다!”
각자 무기를 점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대수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스스로도 이 작전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룹의 반 이상은 죽어 나갈지도 모를 일.
하지만 별수 있겠는가.
지금 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너지는데.
‘그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달랐을까.’
이따금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서울의 누구나 종종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할 것이다.
‘케이.’
드림 사이드의 천외천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던 자.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유일무이한 랭킹 1위.
오대수는 선택의 미로에서 ‘헬 난이도’를 선택했던 생존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단 한 명.
수많은 사람들이 탈락했지만, 단 한 명은 헬 난이도에서 여전히 도전 중이었다. 오대수가 ‘노말 난이도’를 클리어하고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클리어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진즉에 죽어 버렸을 수도 있겠지.
그날로부터 벌써 세 달이 지났는데에도 케이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오대수 형사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네.”
오대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한 시선을 의식했다. 학교 담장에 몸을 기대어 후드 집업을 푹 눌러쓴 여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특유의 분위기는 전혀 가려지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오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이다.
이 그룹엔 ‘랭킹 1위’는 없더라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가 있었으니까.
E급 던전?
두려워하지 말자.
“들어갑니다. 오늘 우린 E급 던전을 공략할 겁니다.”
***
아이포크의 103동 105호.
깨진 거울 앞에 선 강서준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덥수룩하게 자라난 머리카락, 너저분한 수염, 오랫동안 씻지 못해 먼지가 들러붙은 얼굴.
거지가 따로 없는 꼴이었다.
그는 부엌에서 대충 가위를 가져와 머리를 정돈하고, 면도기로 턱 주변을 깔끔하게 밀어 버렸다.
좀 씻고 싶었지만 물이 나오질 않아 그 과정은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구석에서 발견한 물티슈로 대충 먼지만 닦아 냈다.
“이제야 좀 살겠네.”
찬장을 뒤적여 음식도 찾아봤다. 이미 누군가가 털어 갔는지 제대로 된 음식은 거의 없었지만, 참치 통조림 하나 정도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뜯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맛있다…….’
선택의 미로에선 허기질 일이 없었다. 안전지대로 들어갈 때면 허기짐도 상태 이상으로 분류됐는지 말끔하게 사라졌던 것이다.
“그나저나 세 달이라…….”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결국 선택의 미로에서 그가 원하는 모든 걸 얻어 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돌아오고 나니 조금은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도 들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누가 살았고, 또 현재 상황은 어떨까.
적어도 이 모든 일은 누군가에겐 2회 차였다. 그가 미리 알고 ‘던전화’를 막아 냈듯, 누군가가 똑같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드림 사이드 1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겠지.
‘부디 그래야 할 텐데.’
강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베란다 너머를 바라봤다. 그가 떠올린 상상대로라면 이런 풍경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울이…….”
무너진 도시의 정경.
텁텁한 먼지 맛은 기본이요, 휑한 바람소리만 들리는 것이 유령도시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 흔한 경적조차 울리지 않는 세계.
강서준은 나지막이 탄식했다.
고작 세 달의 시간이었지만 세상은 이미 멸망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길.”
그는 대충 짐을 챙겨 아이포크를 벗어났다.
***
아파트를 벗어난 강서준이 빠르게 목적지로 설정한 곳은 가까운 학교였다.
‘붉은 문. 여기가 가장 위험해.’
문의 색깔은 던전의 상태를 보여 준다.
파란색은 0에 가깝고, 초록색은 평범한 수준.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으로 갈수록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졌다. 그리고 붉은색은 던전 브레이크의 징조라고 불렸다.
‘검은색이 되면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져.’
강서준이 던전의 문에 손을 대자 관련 정보도 간략하게 눈앞으로 나타났다.
+
던전 브레이크까지 24시간.
+
“무너진 학교라…….”
문득 학교 근처로 어지럽혀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누군가 이 근처에서 야영이라도 한 듯했다.
“선객이 있었네.”
반가운 소식이었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그에게 있어서 가장 목마른 건 아무래도 정보. 누구든 만나서 현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E급 던전이라…….’
그때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던전의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착각이 아니라면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까지 22시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강서준은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까지 21시간.]던전 브레이크가 1시간씩 가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