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60
◈ 60화
깜빡이는 전등 위로 돌가루가 후두두둑 떨어졌다.
이곳은 지하.
단층을 드러내며 내려앉은 노출 콘크리트와 자꾸만 무너질 듯 흔들리는 벽을 둘러보며 사람들은 긴장한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지. 심각한 폭발의 연속이었다.
숨 가쁘게 복도를 내달리는 사람들의 음성도 들려왔다.
“어쩌다가 리자드맨이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거야?”
“미치겠군. 이러다 무너지겠!”
쿠구구궁!!
달려가던 군인은 무너져 내린 돌덩이에 깔려 버리고 말았다. 그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콘크리트 위로 나타난 건 터무니없지만 ‘버스’였다.
“벌써 여기까지 날아오잖아!”
“모두 피해!”
버스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더니, 불꽃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생겨났다. 미처 피하지 못한 군인들은 화마에 휩싸여 죽어 갔다.
겨우 자리를 잡은 탱커들이 방패를 두르고, 물을 다룰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방어진을 펼쳤다.
전직 소방관 출신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우선 버스에서 생겨난 폭발부터 잠재웠다.
소방관 플레이어가 뒤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러다 정말 죽습니다. 빨리 대피해야 해요.”
“알겠습…… 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이들은 매캐한 연기를 뚫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떠한 방.
하얀 가운을 입은 그들이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전선이 무너졌습니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다들 움직여요!”
이곳은 아크에서도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3구역 내에 만들어 둔 유일한 지하 병원. 사람들은 의사들의 말에도 당장 움직일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렇다.
전선이 무너졌다고?
사람들의 얼굴엔 금세 그늘이 내려앉았다. 솔직히 그들에겐 더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비롯한 보호자들은 문 너머로 넘실거리는 화마를 살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전선이 뚫렸습니까?”
“네.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해요. 지금 당장 여길 벗어날 겁니다.”
의사는 긴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터무니없지만 리자드맨 쪽에서 자동차나 버스 같은 거대한 물건들이 날아오고 있어요. 이 추세면 여기도…….”
쿠우우우웅!
의사의 말에 추임새라도 넣듯 천장이 흔들리면서 무수한 돌가루가 흩날렸다. 새카만 잿더미를 묻힌 군인이 복도에서 나타난 건 그때였다.
“아직 안 움직이고 뭐 합니까! 시간이 없어요!”
“지금 갑니다!”
“얼른 이동하십시오! 아크 전역에 봉쇄령이 떨어졌어요! 늦으면 들어갈 수도 없다고요!”
“……뭐라고요? 봉쇄령요?”
사람들은 부랴부랴 각자의 짐을 챙겨서 군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지하 통로는 마치 개미굴처럼 이어져 있어서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있으리라.
이곳은 서울의 지하철을 개조해서 만든 병원.
사람들은 가능한 봉쇄령이 발동되는 2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무던히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피난 행렬 속에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사내가 있었다.
‘……봉쇄령이라고.’
경찰 오대수.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공지원을 등에 업은 채로 따라 걷던 그는 문득, 멈춰 버린 행렬을 나지막이 바라봤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죠? 왜…….”
앞에서 안색이 하얗게 질린 남자가 답했다.
“길이 막혔어요. 지하가 무너져 내렸대요.”
생각보다 리자드맨의 진군은 빨랐고, 놈들이 던져 대는 자동차 따위의 거대한 파상 공세는 지하까지 무너뜨리고 있었다.
막혀 버린 길.
괴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애써 길을 뚫고자 했지만,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오대수는 상항을 파악하기 위해서 일단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곧, 사람들이 멈춘 원인인 무너진 통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군인들도 발견했다.
“시간이 없어요. 곧 2구역 문이 봉쇄됩니다. 지하는 무리예요.”
확실히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벽은 쉽게 파낼 수준은 아니었다. 저들이 제아무리 초인 같은 힘을 다룬다고 해도 그게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오대수는 저들의 고민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길을 뚫는 건 무리라고?”
“네. 시간을 맞출 수 없어요.”
무리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소위는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지상으로 이동한다.”
“……네? 지상으로 간다고요?”
깜짝 놀라 되물은 건, 의사였다.
그는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환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금 저들을 전쟁터나 다름없는 지상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까? 미쳤어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면 이도 저도 못하고 고립될 거예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올라가면 반은 죽습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어찌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 환자들을 데려가요!”
소위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말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봉쇄 명령은 떨어졌어요. 정해진 시간 안에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린 죽은 목숨입니다!”
구역의 봉쇄 명령은 의사의 사망 선고나 다르지 않았다. 아크는 3구역을 버리고 2구역을 지키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여길 버리고, 나머지 거점을 살리는 ‘도마뱀 꼬리 자르는 식’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크에 남은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더는 반문은 받지 않아요. 이대로면 전부 죽습니다.”
명령을 내린 군인은 빠르게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다행히 가까이에 플랫폼이 있어 지상까지 금세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군인들의 도움 없인 이곳을 벗어나기는커녕 살아나기조차 힘든 병원 측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건, 모든 위험에서 노출된다는 뜻과 같았지만.
살아남으려면 방법이 없었다.
“얼른 움직여요!”
오대수도 긴장한 얼굴로 군인들의 뒤를 따랐다.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전장의 폭음이 점점 커지고, 뜨거운 공기가 피부를 찔러 왔다.
줄줄이 지상으로 올라선 환자들. 그들은 황망한 눈으로 사방에서 솟구치는 매캐한 검은 연기들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수상한 괴성도 들려왔다.
“다행히 2구역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대로를 가로지르겠습니다.”
“……네.”
사람들은 군말 없이 빠르게 이동을 개시했다. 그나마 지하보다 나은 점은 좁은 길을 따라서 빙빙 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로를 빠르게 달리던 그들은 곧, 멀리 모습을 드러낸 2구역의 경계를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리, 리자드맨이다!”
“벌써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다고?!”
키아아아앗!
창을 꼬나 쥔 채 뒤쪽에서 나타난 리자드맨이 달려들고 있었다. 몇몇은 들고 있는 창을 던져, 제대로 대항하질 못하는 후미의 환자들을 맞혔다.
“으아아악!”
“사, 살……!”
금세 아비규환이 된 현장.
군인들은 무너진 돌벽 등을 엄폐물 삼아 순식간에 진지를 구축했고, 환자들은 부랴부랴 달려서 이동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속출했다.
“우측 전방! 리자드맨 출몰!”
“좌측에도 옵니다!”
군인들의 총성이 울리고 갖가지 스킬들이 화려하게 전장을 가로질렀다. 수십의 리자드맨이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달려들었고, 상황이 난전으로 거듭나는 건 금방이었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달려요! 2구역…… 그 안에만 들어가면 살 수 있어요!”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상급 개체의 리자드맨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까?
“으아아악!”
“버텨! 뚫리면 나한테 죽는다!!”
군인들의 분투는 계속 이어졌고, 나빠지는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의 도주는 계속되었다.
하나 2구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결국 리자드맨이 나타나고 말았다.
쿠우우웅!
오대수는 공지원을 업고 달리던 중에 가까스로 멈춰 섰다. 정면에 나타난 한 마리의 거대한 도마뱀.
2구역과 시민들의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도마뱀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SUV 차량을 물고 있었다.
“……저건 대체.”
크롸라아아아아!!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앞에 선 거대한 도마뱀이 포효를 내지르자, 온몸이 구속된 듯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당황했다. 오대수도 눈앞에 어지럽게 펼쳐지는 메시지를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몬스터 ‘???? ? ???’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상태 이상 ‘마비’에 빠졌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휩쓸립니다.] [상태 이상 ‘절망’에 사로잡힙니다.]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치 족쇄가 되어 몸과 마음을 모조리 묶어 뒀다. 오대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몬스터를 올려다봤다.
놈은 입에 물고 있던 SUV 차량을 툭, 뱉어 냈다.
마치 총알처럼 튕겨 나간 자동차가 한쪽 건물을 박살 내고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모두 도망ㅊ……!”
가까이에 있던 흰 가운의 의사가 장렬히 입을 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지상수가 로테월드에 도착한 건 슬슬 해가 질 무렵이었다.
“형! 타세요!!”
이동 던전에 탑승한 강서준은 너저분한 내부를 둘러보며, 일단 혀를 내둘렀다. 고작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지.
D-10칸.
보스방까지 넘치는 인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상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 돌아올 줄 알았다니까!”
“그래. 근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일단 이동하면서 설명할게요!”
지상수는 사람들이 모두 탑승한 걸 확인하자마자, 바쁘게 이동 던전을 출발시켰다. 강서준은 지상수를 향해 되물었다.
“아크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영상으로 보여 드릴게요.”
보스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앉아 있던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곳에 나타난 영상은 마치 개미 떼를 보는 듯했다.
장기용이 헛바람을 내면서 물었다.
“저게 다 리자드맨이라고?”
“아뇨, 저건 후발대예요. 선발대는 이미 전선을 넘었어요.”
영상에 스크래치가 생기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 와중에, 김강렬을 비롯한 아크 소속 플레이어들은 황망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전선이 뚫렸다고?”
“그럴 리가…….”
곧 영상으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던 전장이 나타났다. 리자드맨의 파도를 맞아 힘겹게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
지형과 첨단 과학의 무기, 플레이어 스킬을 고려하여 만든 요새 같은 방어 전략도 소용이 없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리자드맨의 공세에 아크는 물에 젖은 종이처럼 금세 찢어졌다.
강서준이 여기저기 다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이 사람들이 전부?”
“네. 아크의 피난민들입니다.”
과연 보스방까지 가득 들어찰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에 탑승한 걸까. D-5구역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그의 예상은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다.
지상수는 진땀을 닦으며 말했다.
“형,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것 좀 보세요.”
다음으로 드러난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지막이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흑룡 카무쉬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거대한 용.
아니, 도마뱀은 건물 하나를 꼬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손쉽게 반파시키고 있었다.
정체는 바로 알았다.
‘반룡 몬스터…… 자이언트 혼 리자드.’
덩치는 8M에 다다르는 거대한 괴물. 리자드맨이 출몰하는 던전에서도 C급 던전, 그것도 중간 보스로 등장하는 녀석이 바로 이놈이었다.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자이언트 혼 리자드’라고…….”
자이언트 혼 리자드는 반룡 몬스터답게 용의 특징을 반절은 갖고 있어, 개체값이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물론 ‘무적’은 아니었지만 무자비하게 건물을 휩쓸 정도로 강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강서준은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아크의 군세를 밀어 버리는 장면을 확인했다. 바닥에 떨어진 각종 자동차를 입에 물고 사방으로 던져 대는 것만으로도 무식하게 위협적이었다.
“저놈이 아크의 전선을 무너뜨린 장본인입니다.”
물론 아크엔 아직 2구역부터 1구역까지, 더 단단하게 구성된 요새가 갖추어져 있었다.
드림 사이드의 2회 차 유저들답게 빠르게 재료를 수급하고, 아크를 건축을 해냈다고 했으니까.
아마 자이언트 혼 리자드라고 해도 2구역까지 다다를 순 없을지도 모른다.
강서준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몬스터를 응시했다. 저놈이 지금 이곳에서 활개를 친다는 건 딱 하나를 뜻했다.
그래.
이 시점에서 저 정도나 되는 괴물이 지상을 제멋대로 활보한다는 건 한 가지 결론만을 말한다.
“……C급의 던전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