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65
◈ 65화
이른 아침, 어둡던 3구역으로 광명이 깃들고 포악하게 빛나던 리자드맨의 눈동자가 조금은 진정됐을 즈음이었다.
오대수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뭘요?”
“만약 추측이 잘못된 거라면, 우린 인류를 멸망시키는 종범이 될 겁니다.”
강서준은 슬슬 소란스러워지는 주변의 소음을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이미 그의 계획은 시작됐다는 증거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진 못합니다. 그런 걸 고민할 시기는 지났어요.”
“하지만…….”
“두고 봅시다. 정말 우리가 인류를 멸망시키게 될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리자드맨의 괴성이었다. 보이는 거리로 족족 징그러운 도마뱀들이 창을 꼬나 쥐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을 구할 영웅이 될지.”
작전의 시작이었다.
***
그 시각.
벽 위의 군인들도 슬슬 경계를 낮추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버프가 사라지는 ‘해’가 떠올랐고, 지난날 그토록 소동을 부렸던 3구역의 사람들도 밤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개 숙소로 돌아가 지친 몸을 쉬고 싶을 뿐이었다.
실제로 지금 이 추세라면 조만간 경계 수위는 낮아질 것이다. 이미 리자드맨의 무리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첩보도 들었으니까.
경계의 군인, 병장 김호철은 중얼거렸다.
“날씨도 으슬으슬한 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어야 하지 않겠냐. 야, 오늘 배식 뭐야?”
“전투식량입니다.”
“지랄…… 또 전투식량이라고?”
“적어도 앞으로 한 달간은 전투식량 선지급이라고 중대장님께 들었습니다.”
김호철은 찌그러진 맥주 캔처럼 얼굴을 구기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경계 위로 올라갔다.
“김 병장님. 작전지에선 금연이지 말입니다.”
“시끄러. 먹는 낙이 없는데, 피우는 낙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냐.”
“하지만 간부님께 걸리면 진짜 큰일 납니다.”
“하, 진짜. 안 걸린다니까? 이 시간에 이런 구석까지 나오는 간부가 어디에 있…….”
김호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금 경계의 벽 위로 올라온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아크에서도 최고층에 있다고 알려진 남자였다.
박명석.
“……있네.”
김호철은 빠르게 담배를 비벼 끄며 바로 경례 자세를 취했다. 혹시 걸렸을까? 긴장한 얼굴을 한 그 앞으로 박명석이 다가왔다.
“필승. 근무 중 이상 무!”
경례를 받은 박명석은 다행히 대충 손을 휘저으며 경계의 벽 아래를 둘러보고 있었다.
슬슬 동이 터 올 무렵이라, 동문에 해당하는 G번 경계는 특히 햇살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박명석은 3구역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밤새 별일 없었습니까?”
김호철은 식은땀을 흘리며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담배 피우던 걸 걸린 건 아니었지만 당연히 긴장이 됐다. 말 한 번 잘못하면 영창 가리라.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없었던 것 같다?”
“아뇨. 없었습니다. 아무런 특이 사항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밤사이에 3구역의 생존자들이 은밀하게 어딘가로 이동하는 걸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여기긴 어려웠다.
이쪽으로 온 것도 아니니까.
김호철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박명석을 바라봤다. 어느덧 그는 김호철에게 시선조차 주질 않고 있었다.
오직 3구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요.”
김호철은 부동자세로 바로 답했다.
“네! 뿔이 세 개인 도깨비였습니다. 등장과 동시에 사라져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분명합니다.”
“……삼깨비라고요.”
박명석은 손으로 턱을 잡으면서 뭔가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 부동자세로 대기하던 김호철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준 건 그때였다.
“혹시 이렇게 생긴 고딩은 못 봤습니까?”
미간을 좁히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김호철. 그곳엔 기차에서 도깨비들의 호위를 받는 고등학생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높은 경계의 벽 위에 있던 그라도 얼굴을 못 볼 정도로 ‘탐색 스킬’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경계의 벽 근무를 서게 된 이유도 ‘참새의 눈’이라는 E급 스킬 덕이니까.
박명석은 사진을 한 장 넘겨 다른 걸 보여 줬다.
“이 사람은요?”
“……최하나 아닙니까?”
“네. 봤습니까?”
김호철을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하나를 보진 못한 것 같다. 그녀를 봤다면 당연히 기억했으리라.
대신 가장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한 사람을 상기해 냈다.
“경찰복을 입은 플레이어는 있었습니다. 섭종 보상 같은 창을 들고 있었죠.”
“……경찰?”
“네.”
박명석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넘겨 다른 사진을 보여 줬다.
“이 사람 맞죠?”
사진을 본 김호철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확 젖어 버렸다.
불현듯 그 경찰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케이 님과 아는 사이라고 했었는데……?’
의심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케이의 지인이라면 어째서 봉쇄령이 적용되도록 3구역에 남아 있었는가. 들어왔어도 진즉에 2구역으로 들어왔어야지.
그래서 거짓인 줄 알았다. 2구역으로 들어오기 위한 허세인 줄만 알았단 말이다.
‘진짜…… 지인이라고?’
이렇듯 사진을 보여 주며 신상을 캐묻는 박명석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가슴이 철렁였다.
만약 이 소식이 케이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동료들 사이로 떠도는 무시무시한 케이에 대한 소문은 절로 김호철의 목 언저리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박명석은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지금 어딨습니까?”
“……도깨비의 등장과 함께 그분은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어느새 존칭이 나왔다.
“어디로요?”
“우측의 도로로 들어가셨으니, 아마 H번 경계 방향으로 가신 건 아닌지…….”
“알겠어요.”
박명석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김호철이 재차 경례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우우웅!
돌연 경계 밖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이 터졌다.
순식간에 경계의 벽은 사이렌이 울렸고,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졌던 군인들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3구역 쪽을 바라봐야 했다.
곧,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돌아가려던 박명석도 다시 김호철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폭발이 난 곳을 바라보던 김호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람…… 사람입니다.”
폭연을 뚫고 달려오는 건 지난밤 이곳으로 몰려들었던 수많은 3구역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자세히 보니 그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그곳에서 시끄러운 EDM 사운드가 울리고 있었다.
김호철이 저들의 목적을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키이이잇!!!!!
“……미친?”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달려오는 건 수십의 리자드맨 무리였다.
야간 버프가 해제되면서, 전투력은 조금 떨어졌더라도 저만한 숫자가 붉은 눈을 부라리며 쫓는 모습은 가히 위압감이 들었다.
그리고 3구역 생존자들이 향하는 방향은 단연 경계의 벽이었다.
“설마 문을 안 열었다고 몬스터를 데려온 거야?”
이러한 일은 한곳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각 방향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은 아슬아슬하게 리자드맨에게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 속도는 절대 일반인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낼 수 없는 속도였으니까.
“이쪽이다!!”
키이이이이이이잇!!!
어그로에 끌린 리자드맨이 성난 울음을 토해 내며 사람들의 뒤를 쫓았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경계의 군인들이 한계선으로 정해 둔 곳까지 다다랐다.
경계의 군인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총구를 겨눴다.
그때 박명석이 빠르게 김호철의 무전기를 빼앗아 말했다.
“박명석입니다. 사격하지 마세요.”
“……네?”
“절대 대응 사격을 하면 안 됩니다.”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일련의 사람들은 한계선을 넘어선 뒤로는 점차 속도를 줄여 나갔다. 숨을 고르며 달려오던 리자드맨을 응시하는 그들.
이상하게도 리자드맨은 그들의 앞에 있는 3구역의 생존자들을 보고도 더는 공격하질 않았다.
방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건 당연했다.
이것이 2구역의 경계의 벽에 설치된 마법진. 몬스터에게만 적용되는 ‘암막 커튼’의 효과였으니까.
몬스터는 2구역 경계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엔 이른 시점이었다. 김호철은 한계선을 넘은 3구역 사람들이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드는 걸 발견했다.
……뭐지?
그들은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저길 보라고!”
“뭐?”
쿠구구구궁!!
종전부터 계속 들려오던 폭음이 더 가까워지더니 멀리 건물을 부수며 나타난 괴물이 있었다.
눈동자 하나가 자동차만 한 크기.
놈은 화가 난 듯 뭔가를 찾아서 포효했다. 박명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이언트 혼 리자드…….”
실물로 보게 된 자이언트 혼 리자드는 무시무시한 박력과 함께 발돋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노려보는 방향에서는 누군가가 매서운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타아아앙!
“……최하나?”
박명석이 그녀를 발견한 순간.
키아아아아아앗!!!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2구역 경계를 향해 무식한 돌진을 감행하고 있었다.
***
한편 가까운 건물에서 모든 상황을 주시하던 강서준은 뒤편에 선 수많은 생존자들에게 말했다.
“곧 경계의 문이 열릴 겁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전력을 다해 뛰어요.”
“……네.”
결연한 얼굴을 한 그들을 뒤로하고 강서준은 다시 전장을 바라봤다. 거대한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됐는데…….”
돌진을 감행하던 자이언트 혼 리자드 앞으로 무수한 폭격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예상했던 대로 군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사방을 점하며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저 큰 놈이 몸을 들이박을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지.
강서준이 말했다.
“지금입니다!”
건너편 건물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도 신호에 맞추어 부리나케 도로를 벗어나 달렸다. 가까이 리자드맨의 무리가 있었지만 다행히 놈들의 관심은 새로 등장한 2구역의 군인들에게 닿아 있었다.
“슬슬 우리도 가 보자.”
강서준은 ‘도깨비 왕의 감투’를 꾹 눌러쓰며 ‘이매망량’을 발동시켰다. 라이칸의 크기가 커지면서 거구의 삼깨비로 변신해 가까이에서 생존자들을 노리던 리자드맨의 머리통을 통째로 터뜨렸다.
“라이칸을 도와 생존자들을 지켜라.”
또한 강서준의 명이 떨어지자 주변의 바닥에서 파란 영혼들이 순식간에 몬스터의 형체를 갖췄다.
가까이 죽어 버린 리자드맨의 영혼들.
놈들은 생존자들을 공격하려던 리자든맨을 물고 뜯어 댔다.
숫자는 10마리에 불과했다.
“아직 이 정도가 한계인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10마리 정도면 충분히 생존자들이 경계의 벽을 넘을 때까지 버티고도 남았다.
“라이칸, 부탁한다.”
“왕이시여! 영광입니다!”
영혼의 통제를 라이칸에게 모조리 넘긴 강서준은 고개를 돌려 문제의 한 몬스터를 올려다봤다.
금방이라도 구역 경계를 향해 달려갈 태세였던 자이언트 혼 리자드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플레이어를 보며 성난 콧김을 내뱉었다.
“산개하라!”
“끄아아악!!”
군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열심히 전투를 벌였다. 보아하니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시선을 끌어,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기색이 다분했다.
좋은 전략이었다.
그때, 강서준의 옆에서 가벼운 착지음이 생겨났다.
“당신이군요. 이런 미친 짓을 자행한 게.”
“……누구지?”
“전 박명석이라고 합니다. 아크의 참모를 맡고 있죠.”
강서준은 박명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면서 나지막이 미간을 구겼다.
“저런 괴물을 일부러 경계까지 끌고 오다니…… 대책 없이 이런 짓을 벌이진 않았겠죠? 방법은 뭐죠?”
“…….”
“뭡니까? 대답 안 해요?”
왜냐면 그는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꼬리를 귀까지 건 박명석은 계속해서 강서준을 향해 말을 걸었다.
“최하나 님이 나타난 순간 알았습니다. 그가 돌아왔다고. 당신…… 제가 아는 그라면 분명 방법이 있잖아요.”
“…….”
“안 그렇습니까? 뭐 해요? 이러다 다들 죽겠어요.”
강서준은 박명석을 향해 나지막이 시선을 던지다 고개를 돌려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노려봤다.
박명석의 행동은 다소 수상했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제압하는 것 말고 중요한 건 없었으니까.
“자! 얼른 보여 주시죠!”
강서준은 애써 그를 무시하며 바닥을 박차고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