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68
◈ 68화
속담 중 이런 말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회의실에서 바라본 아크의 풍경이 딱 그 짝이었다.
통제 불능의 자유분방함.
목소리 큰 쪽이 이길 것만 같은 전반적인 분위기.
‘봉쇄령’과 같은 막중한 작전을, 어째서 고작 일주일 전에 나타났다는 케이의 말을 따라서 졸속 처리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삼켰다.
아크엔 지금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다.
‘중심을 잡아 줄 리더가 없군.’
그나마 박명석이 나서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플레이어들을 어떻게든 이끌려는 모양새였지만, 그조차 쉬워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박명석의 발언권은 다른 플레이어보다 대단히 높은 편은 아닌 듯했으니까.
‘……문제네.’
원인을 찾아본다면 아무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부터일 것이다.
세 달 전.
지구 전역으로 나타난 던전화 현상은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벌어졌으니까. 누구도 몬스터의 습격에 안전할 수 없었다.
똑똑하든,
돈이 많든,
권력이 대단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드림 사이드 2의 정식 오픈으로 인한 던전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1조건은 오직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조차 몬스터를 비롯한 던전에서의 생존력을 장담할 수 없다면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에서 가장 도드라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단 한 종류일 뿐이리라.
‘플레이어.’
여기서 고질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플레이어의 연령. 그들은 대개 10~20대로 고정됐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은 온라인 게임이 생소한 편이었으니까.
‘게임 경험은 풍부해도 인생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거야.’
실제로 회의실에 앉아 있는 플레이어의 연령대는 대개 젊은 층에 속했다. 기껏 많아 봐야 30대 후반이었다.
또한 대다수의 실력은 고만고만한 정도.
‘서로를 인정하지도 않는 거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위로 보고, 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제각각 강했고, 제각각 선택을 할 뿐.
그나마 여태 천외천 ‘링링’이 ‘박명석’과 손을 잡고 이곳을 어떻게든 잘 가꿔 온 것이다.
그조차 링링이 자리를 비우니 개판이 되는 게 현실이었지만.
‘오합지졸이야.’
이런 점에 있어서는 확실히 드림 사이드 1이 편했다.
그 세계는 왕과 귀족, 평민과 천민이 존재하는 ‘계급 사회’였다. 봉쇄령 같은 일이 졸속 처리될 만한 일은 없는 세계였다.
또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제거하는 건 또 요원한 일.
‘이곳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짝퉁 녀석이 더 쉽게 아크를 장악한 거야.’
제각각 힘은 강하고 능력은 출중해도 누구 하나 책임질 존재가 없다. 그것이 아크의 현 주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격이 없는 짝퉁이 왕 노릇을 하며 으스대고 있었다.
‘침몰 직전의 배에 탑승한 기분인데.’
어쨌든 최하나의 등장과 함께 온탕과 냉탕을 수시로 오가던 회의실은, 링링의 등장으로 또다시 새로운 상황을 직면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그녀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게임 속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본인 입으로 천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만…….’
키는 160cm 정도 될까. 총총걸음으로 강단에 선 그녀는 작은 키였지만 충분히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기세가 있었다.
천외천의 천재 마법사 링링.
그녀는 다소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둘 다 하면 안 돼?”
“……뭘요?”
“귀찮게 뭘 가려. 그냥 둘 다 케이 하라고.”
게임 속에서 봤던 터무니없는 엉뚱함마저 똑같은 그녀였다.
***
그 뒤로 진행된 링링의 설명은 과거에도 그랬듯, 엉뚱한 발상조차 납득하게 만드는 논리였다.
“……둘 다 케이로 인정하자는 겁니까?”
“응. 굳이 한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 진짜 케이라는 게 그리 중요해?”
“당연하죠. 케이 님은 랭킹 1위였습니다. 그 방대한 경험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뭐래.”
링링은 박명석의 말을 가볍게 잘라 먹으면서 말했다.
“요점은 케이는 게임을 잘한다잖아.”
“……그렇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국 ‘드림 사이드 1의 랭킹 1위’가 아니야. ‘던전 공략을 더 잘하는 플레이어’지.”
“그…… 렇죠?”
저도 모르게 말려들고 있음을 알면서도 박명석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링링은 한심하다는 듯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진짜 케이가 누구냐는 것보다, 어떤 놈이 더 도움이 되냐는 게 중요한 거야.”
링링은 잠시 강서준과 짝퉁을 차례로 둘러봤다. 그녀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런 면에서 둘은 제각각 쓸 만하지. 두 사람 전투 실력은 비슷하다며?”
강서준과 짝퉁이 복도에서 펼친 짧은 전투는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꽤나 대등했던 싸움.
회의실의 사람들이 설령 강서준을 케이로 인정하진 않더라도, 그를 대놓고 무시하질 못하는 이유였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강한 플레이어였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둘 다 케이라고 치자는 거야. 대충 ‘국산 케이’랑 ‘외국산 케이’라고 하면 되겠네.”
“구, 국산 케이…….”
“이제 됐지?”
하지만 대충 말을 정리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속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링링은 미간을 구기면서 말했다.
“……꼭 정해야 돼?”
“네. 실리적으로 보자면 틀린 말도 아니지만, 케이 님의 위치는 꽤 중요하거든요. 머리가 둘일 수는 없으니까.”
케이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제아무리 망나니 같은 외국산 케이조차 케이라는 이유로 우대받았으니까.
랭킹 1위의 존재감. 그와 함께라면 허무하게는 죽진 않을 거란 확신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링링과 다른 플레이어가 케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링링에겐 케이가 대단히 중요하진 않았다.
“아, 귀찮은데…….”
링링은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 말하다 문득 손가락을 튕겼다.
“둘 중 진짜만 알아내면 되지?”
“방법이 있습니까?”
“응.”
“오오…….”
링링의 확언에 사람들의 얼굴색이 밝아졌다. 어린 나이에도 이렇듯 당당히 제 의견을 말하고 사람들이 그걸 따르는 이유는 단순히 천외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강서준은 링링의 총명한 눈을 보면서 내심 무슨 말을 할지 기대했다.
‘링링은 진짜 천재니까.’
게임에서도 가볍게 말했던 그녀의 화려한 전적이 떠올랐다. 9살에 서울대학교를 입학하고, 10살에 박사 과정 통과. 나사(NASA)에서도 그녀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들었다.
링링은 사실 최하나만큼이나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인재였다.
“외국산 케이는 ‘재앙의 유성검’이 있고, 국산 케이는 ‘클라크의 증언’이 있어. 둘 다 유력하지. 그치?”
“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애매합니다. ……혹시 케이 님을 구분할 다른 정보가 있는 겁니까?”
“없는데.”
“네?”
“하지만 방법은 있어.”
링링은 본인의 스마트폰을 조작해 스크린 위로 영상을 띄웠다.
그곳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문이 나란히 나타났다. 둘 다 붉은색의 던전 브레이크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갑자기 왜…….”
“케이를 골라 달라며.”
“네.”
“이번에 내가 발견한 던전이야. 이거면 케이를 골라낼 수 있을 거야.”
쌍둥이 던전.
두 개의 던전이 마치 거울처럼 동시에 생성된 경우였다. 아마 내부의 구조나 몬스터의 형태까지 모조리 똑같을 것이다.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실력도 비슷해, 증거도 만만해. 그렇다면 케이의 가장 유능한 점을 증명하면 될 일이야.”
“설마.”
“두 케이가 동시에 던전을 공략해. 그러면 누가 더 던전 공략을 잘 해내는지 판가름 나겠지?”
이른바 ‘던전 공략’을 두고 내기를 하자는 말이었다. 그녀는 차차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가장 케이다운 공략을 해내는 자가 진짜 케이가 아니겠어?”
“……누가 더 빨리 던전을 공략하는지에 따라서요?”
“그것도 평가에 반영되겠지.”
문득 박명석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혹시 두 개 다 돌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죠?”
“맞는데.”
“이걸 빌미로 던전을 떠넘기게요?”
“뭐, 어때. 둘 다 강하잖아.”
뻔뻔한 말투에 박명석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링링은 당당하게 설명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이 던전은 24시간 후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켜. 제아무리 내가 천재라고 해도 두 개의 던전을 동시에 공략하는 건 무리거든.”
그래서 링링은 던전 공략을 미뤄 두고 일단 아크로 돌아왔다. 팀원을 더 늘려서 동시에 던전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그사이 아크는 리자드맨의 침공을 당했고, 봉쇄령이 떨어졌었으며, 지금은 케이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상황인 것이다.
“귀찮은 던전도 처리하고, 유능한 케이도 뽑고.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개이득 내기인데?”
링링의 말에 어느덧 다른 플레이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조금은 흥미가 동했는지도 몰랐다.
실력만으로는 이중 그 누구도 감당하질 못하는 ‘외국산 케이’와, 정면에서 맞부딪치고도 밀리질 않았다는 ‘국산 케이’였다.
둘이 내기를 한다면 누가 이길까.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선 ‘케이의 던전 공략’이 몹시 궁금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랭킹 1위’가 된 걸까.
막연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엔 기대감이 자라났다.
한편 불쾌감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외국산 케이를 지지하는 장석구가 그러했다.
“어찌 케이 님을 두고 내기를 벌인답니까. 오직 케이 님은 이분뿐인데!”
하지만 링링은 장석구의 말에 대꾸조차 하질 않았다. 그저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스크린에 문장을 띄웠다.
* 팀 대항전.
* 랭커 참여 불가.
“이게 조건. 양쪽 케이는 랭커를 제외한 플레이어를 위주로 던전을 공략하고 와.”
세세한 설명도 첨언했다.
“쌍둥이 던전이 D급 던전이긴 하지만, 언데드 던전이야. 어렵진 않겠지. 기왕이면 저렙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가면 플러스 점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강서준과 짝퉁을 노려보며 말했다.
“각자 조원은 잘 짜고.”
“……이미 하는 걸로 결정된 겁니까?”
“그럼 쟤네 의사도 물어야 하니?”
박명석을 향해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던 링링이 하는 수 없이 다가왔다.
“혹시 쫄려?”
그 말에 짝퉁 녀석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약간 사나운 눈초리를 한 그가 말한다.
“진짜 케이가 누군지 보여 주지.”
“그럼 외국산은 결정됐고. 국산은 어때?”
강서준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링링의 진행에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까지 판이 깔린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짝퉁 녀석과 케이라는 이름을 걸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면, 그도 거짓말일 것이다.
던전을 두고 내기라…….
“할게요.”
팀원의 경우는 링링의 선택에 의해서 그 후보가 결정됐다. 대개 ‘저렙 플레이어’로 구성된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햇병아리들. 그중 10명씩 뽑아가기로 했다.
얼추 서로의 팀이 구성됐다.
외국산 케이는 자신의 팀원을 향해 서늘하게 말했다.
“방해하면 죽인다.”
“…….”
“대신 내 뒤만 쫓아라. 진정한 케이의 공략이 뭔질 보여 주지.”
거침없는 언사였지만 의외로 팀원들은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복장에서부터 드러나는 존재감.
고렙의 번쩍거리는 아이템부터 ‘재앙의 유성검’이라는 특유의 분위기가, 케이의 강함을 대변했다.
반면 강서준의 팀원은 다소 걱정스러운 안색이 다분했다.
그도 그럴 게, 복장이 비교되는 것이다. 그들은 강서준의 허름한 복장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로테월드 이후로 적당한 장비를 갖추질 못한 그는 대충 가까이에 있는 옷 가게에서 찾아낸 일상복에 불과했으니까.
“저…… 케이 님?”
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조현호.
레벨은 97로, D급 던전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 수준의 실력자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레벨은 어떻게 되시는지…….”
숨길 것도 없었다.
강서준은 가볍게 말했다.
“73요.”
팀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