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76
◈ 76화
갈릴리오에서도 중앙광장이 훤히 보이는 기암괴석의 위.
거리만 1km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최하나의 마탄은 수시로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타아아아앙!
재차 신중하게 마탄을 발사한 그녀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지상수…… 하, 라이플만 있었어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무려 1km 거리에서 권총으로 저격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녀는 역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장기는 저격.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하려면 못해도 주 무기 중 하나였던 ‘마탄의 라이플’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라이플스코프도 안 바라. 라이플만 있었어도 저놈들 머리 맞히는 건 일도 아닌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총을 귀신같이 다루기로 유명한 ‘마탄의 사수’의 시초는 ‘저격’에서부터였으니까.
그녀는 수십 km 밖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미간을 꿰뚫을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선 막강한 권력가였던 왕국의 NPC조차 덜덜 떨었던 것이다.
당시 그녀의 아바타가 중절모를 쓴 냉혈한 중년 남성, 무척이나 살벌한 외형이었기에 그 무시무시함은 더더욱 잘 알려진 편이었다.
‘아, 불편해…….’
한데, 그런 그녀가 가진 게 고작 ‘마탄의 리볼버’였다.
그녀의 주 무기는 지상수에게 속아 강화 실패로 파괴됐고, 행방이 묘연한 녀석도 있어 되찾을 방법은 요원했다.
“……봐주기로 했으니 더 뭐라 할 수도 없고.”
최하나는 괜히 마탄의 개수를 늘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럴 때마다 중앙광장의 컴퍼니원들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며 여기저기 날뛰어야만 했다.
교란 작전은 성공이었다.
최하나는 어설프게 오가닉에게 접근하던 컴퍼니원의 어깨를 쾅 저격하며 생각했다.
‘명중률은 고작 30%…….’
역시 권총으로 저격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실제로 그녀의 공격에 의해 죽은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최하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존심 상하네?”
호흡을 정돈하자. 더욱 신중하게. 일격을 쉽게 낭비하지 말자.
장인은 무기 탓을 하질 않는다.
최하나는 숨을 멈추고 멀리 조준점을 확인했다. 타이밍을 맞추자 견착한 자세는 돌처럼 굳었고, 걸쇠에 걸린 손가락만 침착하게 움직였다.
타아아아앙!
명중이었다.
신중한 한 발은 미간을 꿰뚫었고, 고꾸라진 컴퍼니원은 다시는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이후로도 사격은 계속됐다.
좀 더 신중한 한 발 한 발이 적진을 유린했고, 권총으로 저격하는 것임에도 컴퍼니원들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강서준이 바랐던 것 이상의 성과였다.
모든 건 순조로웠다.
쿠구구구궁!!
땅이 크게 들썩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게 뭐야?”
터무니없지만 그녀는 갈릴리오의 근처에 있던 기암괴석이 통째로 무너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저곳은 세아를 구하기 위해 김강렬이 대원들을 이끌고 잠입한 감옥이 아닌가. 최하나는 침음을 삼키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스킬, ‘매의 눈(A)’을 발동합니다.]기암괴석의 돌 같던 표면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속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짓말이지?”
황망한 두 눈에 담긴 건 너무나도 익숙한 몬스터의 외형이었다. 몬스터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무시무시한 함성을 토해 냈다.
정체는 바로 알 수 있었다.
[C급 반룡 몬스터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일시적으로 민첩이 6 하락합니다.] [상태 이상 ‘혼란’에 빠집니다.l] [일시적으로 민첩이 4 하락합니다.] [상태 이상 ‘흥분’에 빠집니다.] [일시적으로 힘이 7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민첩이 10 하락합니다.]……(중략)……
무수한 상태 이상 메시지의 향연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최하나는 본능적으로 마을로 향하던 총구를 놈에게 겨눴다.
쿠오오오오!!
덩치만 해도 거대한 빌딩 같은 도마뱀은 성난 꼬리를 휘둘러 가까이에 있던 또 다른 기암괴석을 무너뜨렸다.
C급 반룡 몬스터의 어마어마한 위용!
최하나는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짓씹으며 인벤토리에서 상급 HP포션을 꺼냈다. 그녀의 시선엔 무너진 기암괴석이 보였다.
“……이거 내성 생긴다고 했는데.”
하지만 별수 있을까.
그녀는 마개를 열고 심장에서부터 끌어 올린 핏덩이를 마탄에 집적시켰다. 펌핑된 혈액은 전신을 떠돌면서 활활 불타올랐고, 그녀의 주변으로 붉은 오라가 생성됐다.
[장비, ‘마탄의 리볼버’의 전용 스킬, ‘번 블러드’를 발동합니다.]그리고 포효하는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머리 위로 붉은 유성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
같은 시각.
-대위님, 도망─
김강렬은 찢어질 듯한 소음과 함께 끊어진 무전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어서 바닥이며 천장이 미친 듯이 흔들려 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진이다!!”
땅이 갈라지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낙석이 떨어졌다. 호른 부족의 전사 칼이 세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감쌌고,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앞뒤, 천장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지진은 점차 잠잠해졌다.
“모두 괜찮습니까!”
뚝 떨어진 바위를 밀어서 몸을 일으킨 김강렬은 눈가로 흘러내린 쓰라린 피를 닦아 냈다.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기, 김 대위님…….”
가까이에서 머리에 돌을 맞아 괴로워하는 대원이 보였다. ‘공간 이동’이라는 특수한 스킬을 가져 매우 유용했지만, 체력 쪽으로는 스텟 분배가 적어 대체로 내구력이 낮은 플레이어 김훈이었다.
“정신 차려! 김훈!”
김강렬은 그의 몸에 깔린 돌덩어리를 치워 다급하게 HP포션을 꺼내었다. 상처 위로 들이붓자 보글보글 기포가 끓었다.
다행히 상처는 금세 회복됐다. HP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자 혈색도 안정되어 갔다.
그때였다.
“칼? 정신 차려! 칼!!”
가까이에 호른 부족의 전사 칼이 돌덩이에 깔려 있었다. 보아하니 그는 세아를 지키기 위해서 무거운 낙석을 모조리 홀로 부담해 낸 것 같았다.
“……칼!!”
하지만 김강렬은 애타게 외치는 세아의 목소리에도, 그쪽으로는 시선도 던지질 않았다.
세아만 안전하면 됐다.
칼은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까.
“……세아 님, 전 괜찮습니다.”
후두두둑.
가뿐히 돌덩이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킨 칼은 낙석에 깔린 사람치고는 상태가 멀쩡했다.
당연했다.
칼의 레벨은 아크의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높았으니까. 그가 위태로울 정도라면 아크의 사람들은 전부 몰살당했을 것이다.
“정신이 든 녀석들은 위치를 보고해!”
점차 수색 범위를 넓혀 가니, 대원들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또한, 가지고 있는 HP포션으로도 전원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었다.
재차 모여든 일행은 어두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 주변을 비췄지만 보이는 건 무너진 낙석뿐이었다. 그들은 감옥을 감쌌던 기암괴석 안에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김강렬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상황이 어찌 됐든 우리가 임무가 성공했음을 밖에 알려야 해. 통신은…….”
하지만 너무 많은 돌덩이에 깔려 있기 때문일까. 개조된 스마트폰으로도 밖으로 통신이 연결되질 않았다.
우선 무너진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는 일에 주력한다. 김훈!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찾을 수 있겠어?”
“잠시만요!”
김훈은 공간 이동 스킬과 더불어, 특수한 스킬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3D 공간지각 스킬.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선택의 미로에서 ‘공간’과 관련된 A급 스킬을 얻었고, 지금처럼 건물이 붕괴된 상황에서도 스킬만으로 주변의 지형지물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마력이 곳곳에 닿아, 곧 빈 공간을 찾아냈다.
“이쪽입니다.”
이후로 감옥 탈출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플레이어들은 무너진 건물 따위에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았고, 칼의 근력 수치는 대단히 높아 어떤 무거운 벽도 쉽게 들어냈다.
바깥으로 빠져나가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출구입니다!”
하지만 빛이 새어 들어오던 출구로 발을 디딘 그들은, 붕괴되어 고립됐던 그때보다 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다.
[C급 반룡 몬스터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빠졌습니다.] [일시적으로 민첩이 15 하락합니다.]……(중략)……
시야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디버프의 향연에 순식간에 그들의 어깨는 천근이라도 매달렸는지 무거워졌다.
실제로 가슴은 쪼그라들고 점차 온몸이 위축되면서 숨은 턱 막혔다.
김강렬은 황망한 눈으로 근거리에서 포효하는 몬스터를 올려다봤다.
“……자이언트 혼 리자드.”
이곳 ‘리자드맨의 우물’에서도 보스 몬스터의 바로 아래 격에 있는 괴물.
반룡 몬스터라는 위엄에 걸맞게 놈을 직면한 순간, 머릿속엔 무수한 경종만이 울리고 있었다.
아크에서 본 놈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그놈이야.’
괴물이란 표현도 부족하리라.
지근거리에서 거대한 도마뱀은 살벌한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리고 그 살기의 끝에 닿은 존재가 누군지도 얼추 알아볼 수 있었다.
붉은 무언가.
콰아아앙!
그때.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꼬리가 크게 휘둘러지며 붉은 무언가를 쳐 냈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떨어진 장소는 김강렬이 있는 위치에서 가까웠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최하나 님?”
바닥에 피로 샤워를 한 채로 쓰러진 최하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의 마탄이 피처럼 붉은빛을 쏘아 내면서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압박했지만, 데미지는 없었다.
그녀의 마탄은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두꺼운 외피를 뚫지 못했다.
“……최하나 님!!!”
김강렬의 외침이 신호였을까.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일사분란하게 각종 스킬을 쏘아 냈다.
총알과 화살이 일제히 허공을 가르고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가격했지만, 놈은 전혀 아랑곳하질 않았다.
아무렴 당연했다.
최하나의 마탄조차 소용이 없는 놈에게 그들의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선 정도는 분산시킬 수 있었다.
김훈이 재빠르게 최하나의 앞으로 공간 이동을 하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빠르게 돌아오는 정도는 됐다.
“얼른 HP포션을……!”
가까이에서 본 최하나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사색이 짙은 상태였다. 실제로 HP바도 실낱같이 남아 있었다.
“……회복되지 않습니다!”
[포션 사용이 불가능한 상대입니다.] [‘소생의 포션’이 필요합니다.]이른바 그녀는 HP포션으로는 되살릴 수 없는 경지까지 떨어진 것이다.
“안 돼. 여기서 최하나 님을 잃을 수는…….”
김강렬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가 단순히 연예인이나 아이돌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인류의 희망이었다.
천외천(天外天).
마탄의 사수라는 고인물은 지구에도 몇 없는 최상위 플레이어였고, 그런 유능한 인재를 잃는다는 건 범지구적인 손해였다.
‘무엇보다 최하나잖아!’
김강렬은 최하나와 함께 움직였던 나날을 떠올렸다.
로테월드에서부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의지가 됐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야아아아아아!!”
멀리 자이언트 혼 리자드를 향해 접근하는 대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오직 최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저곳까지 달려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NPC 칼도 같았다.
모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칼을 뽑았고,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걸 알면서도 전장을 가로질렀다.
의지만큼은 위대했다.
하지만.
쿠우우웅!
그 모든 염원은 고작 거대 도마뱀의 [발 구르기] 한 번에 뒤집어졌다. 땅이 갈라지고 균형을 잃은 플레이어는 삽시간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위에서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입을 쩌억 벌려 공기를 빨아들였다.
[C급 반룡 몬스터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산성 브레스’를 준비합니다.]사람들은 본래 너무 깜짝 놀라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교통사고 직전, 모든 사고가 멈춰 굳은 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김강렬은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입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이어 나갈 수조차 없었다.
심령이 제압당한 느낌이었다.
그의 영혼이,
그의 생각이,
그의 마음이.
모조리 멈춰 있었다.
“……아아.”
그렇게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머리 위로 푸른 불꽃이 수직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