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8
◈ 8화
경찰과 가면인.
단순히 봤을 때 ‘선과 악’이 명확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서준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둘을 살펴봤다.
드림 사이드는 외관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이 아니니까.
겉으로는 천사를 연기하면서, 속에 악마를 품은 자들이 숱하도록 많은 세계였다.
‘경찰 제복을 입었다고 착하다는 건 고정관념이야.’
반대로 가면을 썼다고 전부 나쁜 놈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가면 속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어 가리기 위해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은가?
경찰도 그렇다.
우연히 저 옷만 훔쳐 입었다면 경찰도 악역이 될 수 있다.
드림 사이드는 그런 편견 없는 시야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네놈은 뭐지?”
“다, 당신…… 도망쳐요! 거긴 위험해요!”
가면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경찰이 손을 뻗으며 위기를 알려 오는 것까지 한순간에 벌어졌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겉과 속이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스킬, ‘위기 감지(B)’를 발동합니다.]참고로 폭발이 일어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분명 기습이었지만 강서준의 눈에는 애들 장난처럼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미로에 비해서 이 정도는 뭐…….’
수시로 용암이 솟구치고, 갑자기 땅이 꺼지고, 벽에서 화살이 쏘아지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거나 해일에 휩쓸리는 던전.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있어 이 정도 위기는 위협조차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선택의 미로’에서 활성화시킨 ‘위기 감지’는 앞서 그를 위협할 위기를 미리 포착해 주는 스킬.
그에게 기습은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
‘일단 저 가면이 모든 일의 원흉이겠지?’
강서준은 생각을 정리하며 장검을 뽑아 들었다. 손가락을 튕기면서 주변의 불꽃을 또다시 점화했지만, 가뿐한 몸놀림으로 폭발의 범위는 진즉에 피한 뒤였다.
“왜 그랬는지는 물어본다고 대답해 주진 않겠지?”
한편으로는 약간 긴장도 되었다.
상대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마도 첫 살인을 하게 되겠지.’
저 가면인은 이 던전을 공략하던 사람들을 잔혹하게 폭사(爆死)시킨 장본인일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봐 온 수많은 사체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폭발에 휘말려 죽은 게 태반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살인자’였다.
게임으로 치면 ‘PK 유발자’.
‘그건 게임에서나 할 짓이지.’
드림 사이드는 목숨이 세 개뿐이라서 더더욱 PK 자체를 악질로 여기는 인식이 강했다. 자칫 마을에서 PK를 벌일 경우, 각종 길드에 박제되며 현상금 수배까지 걸어 뒀다.
그들은 ‘레드 플레이어’라고 불렸다.
플레이어를 죽이는 플레이를 반복하는 위험한 사람들. 일반 플레이어에겐 공공의 적이자, 내부에서부터 플레이어의 입지를 좁히는 암적인 존재인 것이다.
강서준은 그들을 꽤나 많이 처단한 전적이 있었다.
‘놈들 때문에 공략을 몇 번이나 망칠 뻔했으니까.’
하물며 눈앞의 사내가 한 행동은 결코 정당화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슨 사연이 있든…… PK는 드림 사이드에선 반드시 배제되어야 할 행위.
특히 던전에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죄책감은 가질 필요가 없겠지.
‘저놈 때문에 이 던전은 공략을 실패할지도 몰라.’
뒤늦게 발견해서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더 늦었으면 던전 브레이크는 일어났을 것이다.
이 던전은 E급에서 D급으로 성장할 뻔했고, 이곳에 진입한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새끼 진짜 미친놈이네.
놈은 사납게 강서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신, 남의 일에 참견 말고 갈 길 가시죠?”
몇 번이나 능숙하게 폭발을 피한 탓일까. 놈의 제안에,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그냥 보내 줄 겁니까?”
“당신은 원래 계획에 없던 인물. 여기서 조용히 벗어나 던전을 나간다면 그냥 넘어가 드리도록 하죠.”
“호오…….”
강서준이 그 말에 혹하는 듯하자, 경찰이 대뜸 큰 목소리를 냈다.
“저자를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저놈은 6개월 전에 일곱 명이나 죽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고요!”
……이거 생각보다 거물이었네.
그것도 썩 죄질이 나쁜 쪽으로.
“그렇다는데요?”
가면인이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기어코 참견하실 겁니까?”
“참견이고 뭐고. 선빵은 네가 먼저 날렸잖아?”
강서준의 말이 짧아졌다.
“원래 그냥 갈 생각이 없기도 했고.”
막말로 저자가 과거 ‘연쇄살인마’라는 점과 ‘사이코패스’라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놈은 이미 이 던전에서 수많은 사람을 습격해 죽였다. 폭사한 이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또한 놈은 그 명단에 강서준의 이름도 기입하려고 했다. 면전에서 대뜸 폭발을 일으키는 놈을 그냥 놔두고 간다고?
누굴 호구로 아나.
“가면 쓴 중2병 아저씨야.”
“뭐?”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 알아?”
강서준은 영웅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를 좋아했다. 그중 꼭 빼놓을 수 없는 게 ‘거미인간’이 등장하는 히어로 무비.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이 했던 말을 상기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려는…….”
“이젠 너도 책임을 다할 때가 왔다는 거야.”
강서준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스킬, 위기 감지(B)를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정면에서 터지는 폭발 반경으로부터 벗어났다. 이미 알고 있던 예측이라 피하기는 쉬웠다.
[스킬, ‘류안(A)’를 발동합니다.]그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들면서 허공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윽고 실처럼 연결된 마력의 흔적을 쫓아 목표로 한 걸 찾아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스거걱!
“커헉……!”
아무도 없던 허공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강서준의 일격이 깔끔하게 들어간 결과였다.
[당신의 공격으로 플레이어 ‘강오중’이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강오중’의 ‘허름한 상의’를 습득했습니다.]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아니다 다를까. 놈들은 이름이 붉게 물든 ‘레드 플레이어’였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가면인이 경악하며 강서준을 경계했지만,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기 쉬운 문제였다.
“이 구간에 폭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이 어딨냐?”
설령 ‘섭종 보상’으로 비슷한 능력을 받았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폭발’은 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스킬이니까.
“하지만 그 숫자가 둘이라면 얘기는 좀 다르겠지? ‘발화’와 ‘가스’를 섞는다라. 꽤 머리 좀 쓴 발상이었어.”
그리고 강서준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든 곳은 또 다른 허공이었다. 누군가가 급하게 도망쳤지만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신의 공격으로 플레이어 ‘지명상’이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지명상’의 아이템 ‘박달나무 지팡이’를 습득했습니다.]“거기에 ‘격리’ 스킬을 가진 놈도 더해진다면 더더욱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겠지. 안 그래?”
“…….”
“자, 이젠 네 차례야.”
강서준은 장검을 놈에게 겨누며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가면인이 뒷걸음질 쳤지만 강서준의 속도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은 발화 능력자.
따지고 보면 마법 계열인 것이다.
하지만 강서준은 망설임 없이 놈의 반경으로 짓쳐 들어갔다.
‘설령 근접 전투의 대가라도 상관없어.’
그가 괜히 헬 난이도를 골라서 선택의 미로를 돌파했을까. 그가 그곳에서 90일간 쌓아 온 나날은 고작 황동수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 자자, 잠깐……!!”
강서준이 달려들자 놈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넌 누가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 기다려 줬냐?”
“…….”
“책임이란 그런 거야.”
“이익! 죽어라!!”
가면인이 이를 갈면서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발화 능력이 발동하면서, 직경 1m를 불태우는 강력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뜨뜻하네.”
선택의 미로에서 용암에 쫓기던 강서준에겐 별 위협도 되지 않은 온도였다. 감자라도 있으면 구워 먹긴 편하겠네.
불꽃을 가뿐히 피해 낸 강서준이 순식간에 놈에게 접근했다.
스걱!
거두절미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가면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피가 울컥 쏟아지면서 가면인의 몸이 쉽게 허물어졌다.
놈은 자기 목을 움켜쥐면서 말했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한편 강서준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자신을 관조하고 있었다.
벌써 세 명째에 다다른 살인.
동요는 없었다.
악인을 벴다는 생각 때문일까. 도리어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느낌은 정확할지도 모른다.
보아라.
[레벨이 올랐습니다!]레벨이 올라간다는 건, 시스템도 이놈을 ‘몬스터’로 인정한다는 증거였다. 일반적인 PK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경험치를 올리려면 ‘레드 플레이어’가 ‘화이트 플레이어’를 죽이거나, ‘화이트 플레이어’가 ‘레드 플레이어’를 죽여야만 한다.
강서준은 싸늘한 주검이 된 가면인을 일별하며 몇 가지 남았던 감정의 잔재를 털어 냈다.
그래.
죄책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이자는 이미 수차례 사람을 죽여 온 레드 플레이어. 세상이 이 꼴이 나기도 전부터 ‘연쇄살인범’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이코패스였다.
죽어도 할 말은 없는 것이다.
[당신의 공격으로 플레이어 ‘황동수’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황동수’의 아이템 ‘던전초’를 습득했습니다.]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놈을 죽여 얻어 낸 보상,
‘던전초라…….’
왜 던전 브레이크가 가속하는지 궁금했는데.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
경찰은 본인을 오대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피에 젖어 붉게 물든 하얀 가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황동수는 제 누나를 죽인 놈입니다.”
단순히 형사와 범인의 관계가 끝은 아닌 모양이었다. 쓸쓸하게 내려다보는 오대수를 향해 무어라 위로를 전할까.
고민하던 강서준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은 대답을 듣고자 말한 게 아니었다.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나쁜 놈이 그냥 벌 받은 거죠.”
고개를 숙였던 오대수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소 고집이 셀 것 같은 인상의 그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저희 그룹이 황동수 같은 놈들의 기습을 당해 뿔뿔이 흩어진 상태예요.”
“놈들이라고요? 또 있는 겁니까?”
“제가 본 수만 10명을 넘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덤벼든 거군요.”
“네. 게다가 이놈들을 보니 더더욱 확신하는 게 있습니다.”
오대수는 황동수와 똑같이 명을 달리한 ‘강오준’과 ‘지명상’의 면면을 확인했다. 험상궂은 얼굴들을 내려다보며 오대수가 말했다.
“이놈들 전부 무기징역 떨어진 범죄자들입니다.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놈들이죠.”
“설마?”
“교도소의 범죄자들이 플레이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범죄자 집단이 던전에 숨어서 오대수의 그룹을 기습했다는 건가.
“무슨 수를 썼는지 놈들은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질 않았어요. 특별한 아이템을 가진 게 분명해요.”
그리고 꺼내는 말.
“……놈들의 목적은 최하나 님이라고 했어요.”
“최하나요?”
“네. 분명히 ‘마탄의 사수’를 노린다고 했으니까요. 어쩌면 최하나 님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거기까지 들은 강서준은 약간 벙 찐 얼굴로 되물었다.
방금 뭔가를 들은 것 같은데.
“잠깐만요. 누구요? 마탄의 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