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80
◈ 80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앉아.”
“일어서.”
“손!”
“앞구르기.”
강서준의 말에 여지없이 복종하는 자이언트 혼 리자드.
공룡처럼 거대하던 녀석은 얼추 눈높이가 맞는 말처럼 작아진 상태였다. 크기는 딱 적당했다.
“잘했어.”
흡족한 미소를 띤 강서준이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놈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좋아했다.
누가 이놈을 보고 종전까지 마을을 전부 묵사발 내고, 사람들을 몰살시키려 했던 주범이라고 할까.
몬스터의 기색은 온데간데도 없었다.
‘극상성인 용과 본인이 죽였던 존재 앞에선 제아무리 놈이라도 기를 못 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영혼의 순응이 빨랐다. 거대한 굉음을 내면서 부활한 자이언트 혼 리자드는 대뜸 머리부터 숙이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름이라…….
이 부분은 여태 ‘도깨비의 부름’으로 부활한 영혼들의 행보와는 다른 시작이었다.
여태 그는 영혼들에게 이름을 붙여 준 적이 없었다.
‘피에로도 이런 건 없었어.’
또한 그에게 나타나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상위 몬스터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영혼을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 [특수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칭호, ‘도깨비의 왕’을 발동합니다.] [칭호 스킬, ‘백귀(S)’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칭호 스킬…….’
아이템의 설명란에도 적혀 있질 않던 스킬이었다. 이른바 ‘이스터에그’였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내용을 확인해 봤다.
+
* 백귀(S) : 이매망량은 수하에 100개의 영혼을 귀속시킬 수 있다.
현재 등록된 영혼 : 1
1. 자이언트 혼 리자드 : ???
+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 영혼이 근처에 있습니다.] [‘삼깨비 라이칸’이 당신의 ‘백귀’에 속하길 원합니다.]차례로 나타나는 메시지의 행렬에 강서준은 침음을 삼켰다.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대박이다!’
단순히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아쉬워서 한 짓이었다. 놈의 영혼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차후 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러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간 도깨비의 부름으로 실체화한 영혼은 소모되면 못 쓰는 일회용에 불과했어.’
영혼을 붙들어 두려면 생명이 존재하는 ‘그릇’이 필요했다.
로테월드 이후로 숱한 몬스터의 영혼을 추출해 봤지만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한 이유는, 영혼은 소모되면 그대로 소멸의 과정을 겪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로테월드처럼 던전의 마력이 유지되는 곳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 스킬은 달라.’
이매망량은 ‘백귀’를 거느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영혼을 ‘백귀’에 등록시킨다는 말은 단순히 영혼을 다루는 것과는 달랐다.
‘소멸하지 않아.’
실제로 영안으로 확인한 자이언트 혼 리자드의 영혼은 소모되기보단, 점차 충전되고 있었다.
그 근원이 어딘가 살펴보니.
‘나와 연결되어 있어.’
어쩌면 이매망량의 백귀는 스스로를 영혼의 그릇으로 내 줘서, 영혼을 직접 다스리는 스킬인 걸지도 모르겠다.
“역시 넌 영혼의 인도자였군.”
잠시 상념에 접어들던 강서준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 오가닉을 돌아봤다.
“……영혼의 인도자라고요?”
“오랜 문헌으로 본 적이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다스려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신비 종족에 대한 이야기.”
[‘도깨비들의 비사’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가만히 오가닉을 응시했다. 이 전개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도깨비? 비사?’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삼깨비’가 몬스터의 위치에서 NPC쪽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드림 사이드 1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강서준이 관심을 갖고 오가닉에게 말을 걸려는 타이밍이었다.
“강서준 님!!!”
다급한 음성과 함께 한쪽에서 플레이어들이 한데 모여 달려왔다. 그들의 손엔 들것이 있었고, 그곳엔 최하나가 누워 있었다.
“최하나 님이 회복되질 않아요!”
연신 HP포션을 들이붓고 상처를 치료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상처는 점점 더 벌어지기만 했다.
포션의 회복 속도가 죽어 가는 속도를 따라잡질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들것에 실려 온 최하나를 내려다보며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포션 사용이 불가능한 상대입니다.] [‘소생의 포션’이 필요합니다.]그녀의 현재 상태로는 ‘소생의 포션’이 아니고서야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
김강렬은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말했다.
“이상해요. 소생의 포션을 쓸 수 없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건 뭔가 이상해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최하나에게 통용될 수 없는 얘기였다.
“그녀는 HP포션에 내성이 있어요. 아직 보완하는 스킬을 얻질 못했으니까요.”
모든 건 그녀가 위험할 때마다 사용하던 ‘번 블러드’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 스킬은 피를 매개로 신체를 강화하는 스킬. HP포션을 과다 복용하면 본인의 한계 이상의 힘을 일시적으로 발휘할 수야 있겠지만.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점차 HP포션의 성능이 떨어지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 스킬을 얻기 전까지는 가능하면 HP포션을 활용한 스킬 연계는 자제시키고 싶었는데…….’
그녀의 힘이 필요한 순간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서울은 아직 많이 불안정했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련은 늘 목숨을 걸지 않으면 뚫고 나가기 어려웠으니까.
강서준은 최하나의 얼굴에 손을 대고 남아 있는 HP를 확인해 봤다.
줄줄이 매달려 있는 포션들로도 그녀의 체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자, 잠시만요……!”
그때 김훈이 달라붙어, 포션을 이용하여 독특한 치료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꽤 효과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유지하는 게 고작이에요. 이대로면 제 마력이 다 떨어지는 순간.”
다음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서준은 최하나를 내려다보면서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에겐 S급의 침착이 있음에도.
심장은 쿵쿵 뛰고, 물밀 듯이 불안감이 몸을 장악했다.
겨우 진정시키며 강서준은 오가닉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에 ‘소생의 포션’은 없습니까?”
“미안하다. 우리도 전설로만 들은 아이템이야.”
당연했다.
소생의 포션은 최소 B급 던전 이상에서 극히 드문 확률로 등장한다.
고작 C급 던전에 있을 리가 없지.
“강서준 님! 최하나 씨가……!”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는 한차례 HP감소량이 늘어났다. 또 한 번 내성이 강해진 것이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방법은 하나다.’
소생의 포션도 없다. 가지고 있는 HP포션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다. 최상급 HP포션이야 있지만, 그조차 살릴 만한 성능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말했으니까.
‘소생의 포션’이 필요하다고.
한마디로 게임 내의 아이템으로 그녀를 살리는 방법은 ‘소생의 포션’을 구하는 게 유일했다.
‘즉 아이템 이외의 방법을 써야 해.’
강서준은 최상급 HP포션을 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
“잠시 아크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대위님은 이곳의 뒷정리를 부탁드릴게요.”
강서준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말없이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플레이어들의 도움으로 그 위에 눕혀진 최하나와 특수 포션 치료를 감행하는 김훈까지.
모두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강서준은 오가닉을 돌아보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도울 건 없나?”
“부디 제 동료들을 지켜 주십시오.”
강서준과 최하나가 빠진 공략 팀은 가장 유능한 리더와 무기를 잃어버린 꼴이었다. 이래도 컴퍼니의 습격을 받는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그건 걱정 마라. 은인의 목숨은 내 것과 같으니.”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이언트 혼 리자드 등에 올라탔다. 발을 구르자, 달릴 태세를 갖춘 자이언트 혼 리자드였다.
문득 한 가지 이름이 떠올랐다.
“가자. 로켓배송.”
구팡 택배보다 더 빨리.
그녀를 아크로 이송해야 한다.
***
“오늘은 날이 영 좋질 않네.”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오대수는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가득한 게 심상치 않았다.
“으아아아!”
그때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공지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를 바라보며 오대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또 그 꿈입니까?”
“……네. 잊을 만하면 꾸네요.”
공지원은 반주역에서 겪었던 일을 수시로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그나마 아크에 와서 오대수의 케어를 받아, 심리적으로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주기적으로 악몽을 꾸면서 PTSD를 겪고 있었다.
“전 괜찮습니다.”
애써 대답하는 공지원을 보며 오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 악몽…… PTSD.
사실 그건 현대인의 고질병이었다. 누구나 겪을 법했다.
오대수조차 아직도 꿈에서 그날이 떠오른다.
이 세계가 게임이 된 그날.
눈앞에서 몬스터에게 사람들이 잡아먹히고, 건물은 무너지고, 그의 사랑하는 연인이 그곳에 깔리는 장면.
뇌리에 각인된 듯 선명했다.
“……장기용 씨는요?”
“어제 또 늦게까지 술을 먹다 들어온 것 같던데요. 자고 있을 겁니다.”
옆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살짝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장기용은 잠꼬대를 하며 자고 있었다.
“……미씁니다…… 믿어요. 케멘.”
공지원이 물었다.
“깨울까요?”
“……아뇨. 그냥 두죠.”
오대수는 공지원을 데리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향한 곳은 3구역의 거리였다.
오늘 그들에겐 일이 있었다.
“오늘 순찰을 돌 구역은 조금 위험해요. 2구역의 플레이어가 함께하기로 했어요.”
“……마인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했죠?”
오대수는 경찰이었던 전직을 살려, 3구역의 치안을 담당했다.
플레이어 레벨은 대단히 높진 않아도, 3구역 정도는 그에게 맡길 만했고. 무엇보다 경찰의 노하우는 구석구석 치안을 살피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해서 링링이 만들어 준 역할이었다.
오대수는 뒷골목 앞에 뭉쳐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2구역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오셨습니까, 형사님.”
“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죠.”
그들은 레벨이 낮다고 오대수를 무시하질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오대수를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형사님 덕분에 저희 누나가 살았습니다. 전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
3구역에서 고립됐던 수많은 사람들의 친인척이 바로 이들이었다. 오대수의 활약상을 전해 들은 그들이 손수 나서서 오대수를 돕기로 한 것이다.
“그럼…… 진입하죠.”
가타부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대수는 선두로 서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낀 날씨가 점점 어두워져서, 분위기만 갈수록 울적해지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마인은 이 교회에 숨어 산다는 소문이 있어요.”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진 흔적이 여실히 남은 교회. 거미줄이 쳐진 십자가와 그 아래에 여기저기 놓인 잡기를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군요.”
“네.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일순, 숨을 턱 참으며 어떤 소리를 인식한 건 그때였다.
뭔가가 있었다.
오대수는 빠르게 눈을 굴려 어두운 교회 내부를 둘러봤다.
당장 이곳엔 없었다.
하지만.
“……옵니다.”
놈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그곳에서부터 몸을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마인일까?
근데, 그 생김새가 요상했다.
“……저게 마인입니까?”
듣기로는 마인은 인육을 탐한 대가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이 흑색으로 물들며, 붉은 눈으로 침만 질질 흘리게 된다.
인간을 먹기 위해서만 살게 된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은 마인의 그 어떤 특징도 없었다. 아니, 그전에 저걸 사람이라 볼 수 있을까.
키아아앗!
다리며 팔, 목까지 쭈욱 길게 늘어난 모습이었다. 지하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온 녀석은 허우대가 상당히 길쭉한 게 요상한 생김새였다.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오대수나 공지원은 그 모습에 침음을 삼켜야만 했다.
“……그리드.”
PTSD에 불과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