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81
◈ 81화
NPC들의 마을, 갈릴리오에서 던전 출구까지는 직선거리로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가는 길에 종종 낙오된 리자드맨 전사들이 방해했지만, 강서준은 단 한 번도 로켓배송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 ‘로켓배송’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그가 지어 준 이름이 영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도마뱀은 격렬하게 달리면서 계속 투레질을 해 댔다.
그렇게 싫은가…….
강서준은 정면에서 튀어나온 리자드맨 전사의 머리를 쥐어박아, 바닥에 내리 찍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로켓은 어때?”
[‘???’가 ‘로켓’이란 이름을 영 탐탁지 않아 합니다.]그러자 반발하는 건 강서준의 옆을 같이 달리고 있던 라이칸이었다.
“건방진 도마뱀 같으니라고…… 감히 왕께서 지어 주신 영광스러운 이름을 거절해?”
라이칸은 분개하면서 말했다.
“나라면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대대손손 물려줄 텐데!”
“……라이칸, 너도 새로 이름을 갖고 싶어?”
“왕이시여. 전 이름이 있습니다.”
“원한다면 지어 줄게.”
“왕께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
단호한 라이칸의 말에 강서준은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그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작명 센스가 없다는 걸.
오죽했으면 그의 닉네임도 단순히 이름의 이니셜인 ‘K’였겠는가.
강서준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달려드는 리자드맨 전사를 뭉개면서 말했다.
“됐어. 귀찮으니까. 둘 중 하나로 해.”
로켓, 아니면 로켓배송.
극단적인 이름 선택지에 자이언트 혼 리자드는 투레질을 하며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별수는 없었다.
이미 완전히 굴복한 영혼이었다. 백귀가 된 놈은 강서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 ‘로켓’으로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로켓’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도깨비의 왕’을 바라봅니다.]“……뭐. 불만 있냐?”
어쨌든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름 선정이 끝날 즈음엔 출구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내내 최하나에게 달라붙어 스킬을 연신 발동하며, 그녀의 목숨 줄을 겨우 붙들고 있던 김훈이 진땀을 흘리면서 물었다.
“……도착입니까?”
“네. 조금만 더 견뎌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출구를 벗어나서 재차 서울로 돌아간 강서준은, 던전 근처에 득실거리는 리자드맨의 행렬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이전에 던전에 들어갈 때 어느 정도 학살하면서 왔음에도 아직 광화문 일대를 장악한 리자드맨의 숫자는 대단했다.
강서준은 로켓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멈추지 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크로 돌아가야 해.”
“왕이시여. 저만 믿으십시오.”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라이칸은 방망이를 꽉 쥐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매망량을 쓰질 않아 꼬맹이 상태인데도 당당하기만 했다.
뭐, 전처럼 약하지만은 않으니 괜찮으려나.
[2. 백귀 : 삼깨비 라이칸]강서준의 백귀로 새로 등극한 라이칸은 레벨이나 그 수준이 단번에 수직상승했던 것이다.
괜히 라이칸이 그보다 높은 수준의 몬스터인 로켓에게 반말을 해 대며, 틱틱 댄 게 아니었다.
로켓은 수준에 비해 너프됐고, 라이칸은 수준에 비해 버프가 이뤄졌다.
백귀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왕과 영혼이 묶여, 왕이 성장할수록 그 군세도 비슷하게 성장하리라.
‘그래 봐야 내 레벨을 따라올 뿐이지만.’
강서준은 조금은 든든해진 라이칸과 달릴 준비를 마친 로켓을 돌아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김훈도 각오를 다지며 MP포션을 입에 물었다.
“아크로 돌아갑시다.”
물론 현재 아크는 유례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지금의 그는 알 길이 없었다.
***
플레이어들의 도시.
아크.
그곳에서도 유일한 병원인 2구역의 ‘서울병원’은 현재 몰려든 수많은 인파에 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로운 분위기였다.
“100줄 차지! 물러서…… 샷!”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200줄 차지!!”
쿠웅!
누군가의 가슴이 위에서 아래로 들썩였다. 그 옆으로 황망한 눈을 뜬 사람들이 있었다.
소란은 그곳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살려 주세요……!”
“끄아악!”
“선생님! 여기!!”
“인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힐러! 힐러를 데려와!!”
복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흰 가운의 의사들은 다치고 쓰러진 사람들을 살피고 다녔다. 병원 내부는 도통 진정되질 못하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친 사람보다 의사의 수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여기 응급 환자입니다!”
“수술방 열어! 이 환자 지금 수술하지 못하면 죽는다!”
“환자분! 의식을 잃으면 안 됩니다! 환자분!”
그리고,
때 아닌 환자들로 미어터지는 서울병원으로 들어선 강서준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병원 내부를 둘러보며 침음을 삼켰다.
‘……이게 다 뭐야.’
대관절 그들이 ‘리자드맨의 우물’에 다녀온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걸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잠시 멍을 때리던 강서준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지나가던 의사를 붙잡았다.
소맷자락이 피로 물든 의사는 강서준을 돌아보며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정확히는 그의 뒤편을 보고 놀란 것이다.
“……모, 몬스터!”
“어떻게 여기까지 몬스터가!”
“경비! 플레이어! 아무나 여기로!!”
“으아아앗!!!”
삽시간에 병원 입구를 중심으로 물결이 휘몰아친 것처럼 사람들이 거리를 벌려 댔다. 멀리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부랴부랴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순식간에 포위를 마친 플레이어들이 긴장감에 떨면서 칼을 겨눴다.
“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다지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병원에 취직한 용병 정도려나.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고렙 플레이어는 전부 C급 던전 공략에 참여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두 팀으로 나눠진 인원들이었다. 현 아크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있다고 봐도 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강서준은 인파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의외로 그는 아는 사람이었다.
“……강서준 씨?”
“형사님.”
“어떻게 지금 여기에?”
오대수의 시선이 강서준의 뒤에 선 로켓에게 향했고, 그는 그 등에 업혀 있는 최하나를 발견했다.
“저런…… 최하나 씨!”
최하나는 지금도 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처럼 김훈의 특수 포션 치료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대수가 다 죽어 가는 최하나의 안색을 살피면서 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초지종은 나중에 얘기하고 진찰부터 받아야 해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니까.”
“알겠습니다!”
그나마 오대수는 이곳에서 꽤 얼굴이 알려진 듯했다. 그랑 대화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강서준을 경계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졌다.
몇몇은 강서준의 정체도 간략히 파악하고 있었다.
현재 C급 던전을 공략하러 나선 ‘두 명의 케이’에 대한 소문은, 아크의 플레이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소식이었으니까.
그리고 급하게 달라붙은 의료진은 최하나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얼른 들것에 옮겨야 해. 상태가 심각해!”
하지만 의료진은 로켓을 보며 움찔거렸다. 겁을 먹었는지 섣불리 최하나를 그 등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로켓과 라이칸에게 명을 내렸다.
“일단 들어가 있어.”
[‘로켓’이 고개를 끄덕이며 누울 곳을 찾습니다.] [‘라이칸’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곧 두 몬스터는 강서준의 머리맡으로 쏘옥 빨려 들어갔다. ‘백귀’가 된 그들은 언제든 도깨비감투에 보관할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그때, 고롱이가 옷깃을 물어뜯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왜, 너도 도깨비감투에 들어가려고?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그냥 가만히 있어.”
[‘고롱이’가 꼬리를 축 늘어뜨립니다.]한편 몬스터가 전부 사라지자, 의료진은 겨우 안심한 기색으로 최하나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어레스트야?”
“아뇨. 하지만 맥박이 너무 약해요.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일단 CT부터 찍자.”
“……지금 CT실 꽉 찼는데요?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지!”
분주하게 최하나를 하얀 시트 위로 옮긴다. 그들은 침대를 끌어 병원 내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홍해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사람들이 비켜섰다.
“비켜요! 응급 환자입니다!”
“잠시만 비켜 주세요!”
하지만 몰려든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병원이었다. 이윽고 발걸음은 멈췄다. 무엇보다 CT실은 여타 다른 환자들이 많아서 최하나의 순번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최하나를 치료하던 김훈이 툭 옆으로 쓰러졌다.
“어, 어어?”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리자드맨의 우물, 갈릴리오에서부터 연신 쉬지 않고 스킬을 사용해 온 김훈이었다. 쓰러진 그를 내려다본 강서준은 류안으로 그 상태를 확인해 봤다.
‘마나가 모조리 소진됐군.’
한 줌의 마력까지 쥐어짜 낸 김훈은 과열된 기계처럼 축 늘어져 의식을 잃어버렸다.
‘……고생했습니다.’
다른 의사들에게 실려 가는 김훈을 일별하며 강서준은 최하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김훈의 상태는 그저 마나가 소진됐을 뿐이었다.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당장 중요한 건 최하나지.’
이젠 김훈의 특수 포션 치료는 포기해야 한다.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는 더더욱 시간 싸움이었다.
“아잇! 뭐 하는 거야? 아무리 CT실에 사람이 많아도 그렇지, 왜 이리 오래 걸리냐고!”
“그게…… 싸움이 난 것 같습니다.”
“뭐?”
“어째서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치료를 받냐고, 어떤 플레이어가 난동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하, 진짜 미치겠네!”
하지만 일개 의사로서는 플레이어의 난동을 제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엔 레벨도 높은 플레이어였는지, 병원에 소속된 이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강서준은 서늘한 눈초리로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하등한 무능력자들 주제에…… 네까짓 놈들이 뭐가 그리 급하다는 것이냐.”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얼른 안 비켜? 싹 다 죽고 싶어?”
보아하니 다친 사람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의 호위였다.
강서준은 휠체어에 앉은 누군가와 그 앞에 서서 살벌하게 날붙이를 흔드는 플레이어를 노려봤다.
꼴에 섭종 보상이었다.
리자드맨 우물 공략전에 참여하질 않은 걸로 보아 어디 숨어 있었던 모양인데.
‘가지가지 하는군.’
강서준은 짜증을 억누르며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재빠르게 인파를 헤치고 나온 사람이 있었다.
“가지가지 하네.”
강서준과 의견을 일치시키며 나선 사람은 낯익은 얼굴의 소녀였다. 그녀의 등장에 난동꾼은 헛웃음을 지으며 위협적으로 칼을 흔들었다.
“꼬맹아,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지랄.”
“……뭐?”
거친 언사에 플레이어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소녀를 덮칠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강서준은 더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뭔가를 하려는 듯 나섰다가 금방 돌아온 강서준을 보며, 오대수는 의문을 품고 물었다.
“……벌써 끝낸 겁니까?”
“아뇨. 하지만 금방 끝날 겁니다.”
“네?”
“그녀가 왔으니까요.”
그 말과 동시에 앞에서 마력이 흔들렸다. 큰 소음도 없이 순식간에 사그라든 마력을 보면 그 플레이어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이 말했다.
“갑시다.”
“아, 네…….”
곧, 난동을 부리던 플레이어가 있던 자리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시끄럽던 분위기는 살얼음이 낀 것처럼 차가웠다.
아니, 실제로 얼어 있었다.
난동을 부리던 플레이어. 그 뒤에서 휠체어를 끌고 앉아 있던 이름 모를 누군가.
그들은 ‘얼어붙은 상태’였다.
근처에 다가가니 그 둘을 처참하게 만든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못 볼 꼴을 보였네.”
“……링링.”
“얼른 이송해, 수술실은 내가 만들어 줄 테니. 밀린 이야기는 클라크부터 살리고 시작하자.”
“그래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최하나는 겨우 수술실로 입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