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84
◈ 84화
“축제를 열자.”
서울병원의 옥상이었다.
구역 경계가 아스라이 보이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대화할 곳을 찾아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한데 하는 말이라고는.
링링은 미간을 구기면서 답했다.
“……지금 뭐라고? 축…… 뭐?”
“축제. 못 알아들어? 아크에 축제를 열자고.”
링링은 짜증 섞인 얼굴로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녀가 내뱉은 한숨 속에는 여러 가지의 감정이 뒤엉켜, 복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 그게 정말 네 답이야?”
강서준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링링은 옥상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앰뷸런스와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고 번호표만 배부받은 3구역의 주민들을 가리켰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축제? 이 시국에 무슨 축제야. 그게 정말 해답이 될 거라고 생각해?”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누가 봐도 아크의 분위기는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신나게 술을 마셔 대며 웃고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강서준은 단호했다.
“그래서 열어야 한다는 거야.”
“……무슨 뜻이야?”
“아크는 이미 3구역의 신뢰를 잃었어. 사실 대한민국 정부는 유명무실하고. 아크는 플레이어만의 기관이니까.”
아크에 오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대한민국 정부’가 사실상 붕괴 직전에 놓였다는 점이었다.
아크의 중역엔 분명히 박명석이라는 ‘대한민국 정부 측 인물’이 존재했지만, 플레이어의 입김이 너무 강해서 전과 같은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현 세계는 ‘힘의 논리’로 규정지어지고 있었으니까.
약한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RPG 게임의 현실이었다.
강서준은 게슴츠레한 링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본인의 의사를 선명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링링은 잠시 말이 없더니 한숨을 섞어서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이유가 있는 거겠지. 내가 납득하진 못하겠지만, 네가 보기엔 당장 아크엔 이게 필요하단 거겠지.”
“맞아.”
“알겠어. 모든 전권은 너에게 위임할게, 케이. 너의 공략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까.”
“현명한 선택이야.”
강서준은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3구역 사람들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축제.
그것이 이번 아크의 신뢰를 되살릴 단 하나의 공략이었다.
***
이튿날, 아크 전역으로 하나의 공지 사항이 발표됐다.
+
* 돌아오는 일요일, 아크의 중앙광장에서 축제를 개최할 예정.
* 참여 대상 : 누구나.
* 축제 부지로 상점을 개설할 비전투 플레이어는 사이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할 것.
* 중앙 무대 STAFF 모집. 희망자는 사이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할 것.
* 자세한 내용은 사이트를 확인하시오.
+
특별히 마력폰으로 개조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문자를 통해서 해당 내용을 확인했고, 3구역 사람들은 직접 마이크로 방송을 하거나 전단지를 뿌려서 소식을 알렸다.
느닷없는 축제의 개최 소식.
아크의 주민들은 각가지 반응을 보여 줬다.
먼저 링링과 같은 반응인 이들.
“뭐? 축제라고?”
“이 시국에? 미친 거 아니야?”
아직 리자드맨의 습격으로부터 피해를 완전히 복구한 것도 아니었다. 최근엔 던전병 발발과 더불어 그리드의 출몰 소식으로 더욱 흉흉한 민심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아크의 고인물들마저 ‘리자드맨의 우물’을 공략하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우려를 표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축제라니…… 이건 기회다.”
“돈 냄새가 나는군!”
“드디어 아크가 비전투 플레이어도 신경을 쓰는 건가!”
비전투 플레이어, 다른 말로 ‘생산직 스킬’을 각성한 플레이어들은 축제 개최를 절대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안 그래도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며 내수 시장은 잔뜩 움츠러든 상태였다.
잘 팔리는 아이템은 전투와 관련된 부분에 한했고, 그 이외의 부문에서는 전혀 소비가 없는 편인 것이다.
하물며 건축가, 조각가, 요리사 등의 스킬을 각성한 플레이어들은 현재 아크에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전투에 하등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리사의 음식은 전투에 버프 효과를 줬기에 완전히 사장된 직업은 아닐지는 몰라도…… 다른 직업은 거들떠도 보질 않았다.
“하여간 링링 님은 종잡을 수 없다니까.”
“……들어 보니까 이번 축제는 케이 님이 기획했다던데.”
“뭐? 케이? 그분, 던전에 계신 거 아니었어?”
“몰라.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아크에 돌아오셨대.”
그렇게 아크 전역으로 퍼져 나간 특별한 공지 사항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누구는 걱정했고,
누구는 반겼으며,
누구는 관심조차 주질 않았다.
한편 어느 선술집에 들어선 한 플레이어는 무거운 가방을 쿵, 내려놓으며 간단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닭가슴살 샐러드 주쇼.”
“……여기 술집인데요.”
“닭가슴살 꼬치는?”
“치킨은 있습니다만.”
“밀가루는 안 먹어요. 혹시 튀김만 빼고 닭가슴살만 구워 줄 수 있습니까?”
“해,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선술집엔 방금 들어온 남자를 제외하고 일부 플레이어 집단이 술을 진탕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한창 전투를 마치고 온 뒤였는지 장비 곳곳에 핏덩이가 묻은 상태였다.
“준혁아, 그게 무슨 소리야? 축제라니?”
“창수, 네 폰 또 무음 모드냐?”
“왜?”
“네 폰에 온 문자부터 봐 봐.”
임준혁은 김창수의 말에 부랴부랴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재난 문자처럼 공지 사항으로 발송된 메시지가 한 건 있었다.
“……와씨, 이건 언제 왔대. 근데 진짜 축제를 한다는 거야?”
“그래. 웃기지 않냐.”
임준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아크의 전역에 감도는 분위기는 장송곡이 밤낮없이 울려 퍼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런 곳에서 축제라니.
“……장례식에서 디스코를 추는 꼴인데. 도대체 어떤 머저리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이 나온 거야?”
미간을 구긴 임준혁의 말에 김창수는 나지막이 답했다.
“케이 님의 기획이래.”
“……내가 아는 그 케이?”
“아, 네가 생각하는 그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야?”
“네가 던전에 다녀오는 동안, 이곳 아크엔 꽤 많은 일이 있었거든.”
김창수와 임준혁의 대화는 무르익고, 점차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툭 터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할 참이었다.
대뜸 일행 중 한 명이 테이블을 쾅 내리치면서 말했다.
탱커 고민준이었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해?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지. 어? 축제 당일엔 그 누구도 사냥을 나가질 못하게 한다는 개 같은 규칙은 대체 뭐냐고!”
“……그런 규칙이 있어?”
“몰라! 플레이어는 축제에 참여하거나, 경비를 서래. 아크에서 공식으로 내려온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젠장!”
임준혁은 미간을 구기면서 물었다.
“그게 말이 돼? 던전 공략을 하질 못하는 날이라니. 그럼 우린 뭘 하라고?”
“하, 손해만 보게 생겼어.”
“아…… 이날 E급 던전 돌기로 파티원 예약까지 걸어 놨는데.”
나날이 늘어나는 던전과 매일 강해지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게 플레이어였다.
하루의 사냥을 쉰다는 건, 그만한 레벨 업과 경험치, 아이템 수급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해서 한창 렙업에 열을 올리고 있던 아크의 플레이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게 이번 공지였다.
“……이거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라는 거잖아. 쯧, 이거 들고 일어서도 되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몇몇 플레이어들이 뭉쳤다더라. ‘타케플집’을 소집한대.”
“타케플집?”
“타도 케이 플레이어 집단. 간단한 줄임말.”
“아하.”
한데, 한창 분개하며 말을 잇던 플레이어들은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전구가 나갔나?
뭐지?
고개를 돌린 그들은 곰처럼 커다란 사내가 조명을 가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뭡니까?”
“반갑습니다. 잠시 합석할 수 있습니까.”
“걸리적거리지 말고 꺼지쇼. 오늘 기분 안 좋으니까.”
“미안합니다.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네?”
결코 물러서지 않는 남자의 말에 그렇잖아도 싱숭생숭한 기분에, 복잡한 심정이던 고민준은 짜증 섞인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한 번 처 말을 했으면 알아들어요. 네?”
“……어렵지 않아요. 몇 가지 질문만 답해 주면 끝날 일입니다.”
“지금 내가 걸리적거리지 말라고 한 말 안 들었냐? 근육돼지 새끼가 뒈질라고…….”
그때였다.
“……말이 심하군.”
남자의 분위기가 변했다.
저도 모르게 움찔했던 고민준은 남자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다시 기세등등한 태도로 바꿨다.
겁 먹을 건 없었다.
고작 흰 티에, 청바지가 아닌가.
장비 같지도 않은 장비였다.
플레이어라면 저렙일 것이고, 그조차 아니라면 무능력자에 운동 좀 했을 체육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고민준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플레이어와 일반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컸고, 그 갭을 좁히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고민준은 남자의 두툼한 가슴 근육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서 말했다.
“왜? 치게? 목숨 여러 개냐? 너 내 레벨이 몇인 줄 알고 까불어?”
고민준은 겁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손가락에 힘을 줬다. 탱커 플레이어였던 그는 무거운 중장비를 걸쳐야 했던 만큼 그 힘의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예상은 맞아떨어진 걸까.
쿡쿡 가슴을 찔러 대니 상대는 크게 반응하질 않았다. 아니, 반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겁을 먹었을 테니까.
“감히 무능력자 주제에 어딜 기어들어. 쯧, 쓸모도 없는 근육덩어리가 뭘.”
콰아아앙!
커다란 충격, 큰 소음.
고민준의 몸이 공중을 두어 바퀴 돌다 옆으로 나자빠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선술점 내로 적막이 감돌았다.
고작 유흥거리로만 바라보던 김창수는 나지막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고렙.’
몸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탱커 플레이어인 고민준을 일격에 날려 버렸다. 어떤 장비도 걸치지 않은 일상복인 채로 말이다.
대체 근력과 체력 수치가 몇이기에, 저 정도가 될 수 있을까.
남자는 가볍게 손을 털면서 말했다.
“미학도 모르는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군.”
하지만 그 경고가 다른 플레이어에겐 들리지 않았던 걸까. 여전히 굳어 있던 김창수를 제외한 이들이 분개하며 일어났다. 임준혁도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감히 민준이를!”
“덮쳐! 그냥 죽여 버리자고!”
후우우웅!
한 남자는 살벌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묵직한 기세로 어깨를 잘라 버릴 속셈인 듯했다.
하지만.
콰직!
남자의 손에 잡힌 검은 허무하게 바스라졌다.
“……무, 무슨?”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단검을 찌르면 검날이 파괴됐고, 주먹을 휘두르면 그 주먹이 부서졌다.
정작 공격은 그들이 해 놓고, 피해는 가해자에게만 누적되는 기이한 상황이 반복됐다.
남자는 서늘하게 말했다.
“고작 질문 몇 개 대답하는 게 그리 어려워?”
그는 가까이에 있던 사내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복부는 걷어차서 날렸고, 마지막은 사나운 볼 따귀였다.
더는 그를 향해 달려들 플레이어는 없었다. 김창수는 재빠르게 말했다.
“무, 무, 물어보세요. 뭐든요.”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여기서 축제가 벌어진다고?”
“……네, 네. 3일 후요.”
“케이가 벌인 짓이고?”
“네, 네.”
“그럼 케이가 여기에 있단 거네?”
남자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뒤늦게 음식을 내온 점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앞으로 구운 닭가슴살을 대령했다.
그는 크게 한 입을 삼키며 말했다.
“나도석이오. 수원에서 왔지.”
“저, 저는 김창수…….”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합시다.”
“네? 무슨 얘기요?”
“케이, 그 썩을 양반이 여기에 있다면서요. 정보는 확실한 거겠죠.”
“……소, 소문으로는요.”
남자는 재차 물었다.
“소문이라……. 듣고 보니 케이가 아주 악랄한 인간이던데.”
“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눈깔을 파 버린다더군. 손톱을 뽑는 건 예삿일이 아니라지?”
“그…… 렇죠? 그런 소문이 있긴 하죠?”
“최근엔 봉쇄령으로 3구역 주민들을 몰살시키려 했다며.”
“그것도 맞지만…… 그건 다른 케이.”
대뜸 나도석은 손가락 마디뼈를 구부려 우드득 소리를 냈다. 살벌한 기세였다. 김창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놈 강합니까?”
“네?”
“그 새끼 나보다 강하냐고요.”
어떤 말이 정답일까. 당장 그곳에서 김창수가 내뱉을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였다.
“……아, 아닐걸요?”
그 칼 같은 대답이 불러올 일은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