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89
◈ 89화
본무대가 시작하기 전.
강서준은 경계의 벽 위에서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밤을 새운 전투에 이어,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서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준비는 끝났어.’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경계의 벽 위에서 2구역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여기서 꽤 거리가 떨어진 중앙광장까지도 어렵지 않게 보일 정도로 시야가 넓었다.
‘생각보다 성능이 더 좋아.’
아무렴 S급으로 성장한 ‘류안’이었다.
이 정도 성능도 나오지 못한다면 S급이란 이름이 서럽다. 강서준은 들려오는 무전을 확인했다.
-해독은 끝났어. 나머진 네 몫이야.
“알겠어, 고마워.”
링링의 무전에 가볍게 답한 그는 드디어 축제의 곳곳에서 이상한 흐름을 흘리는 녀석들을 발견했다.
예상대로 컴퍼니는 이 축제를 노리고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에서 죽게 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문득 링링이 한 말이 떠올랐다.
‘무모하고 어리석은 계획…….’
박명석이야 이 전력이 최고라고 말했지만, 링링이 보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컸던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패하면 공든 탑은 모두 무너질 테니까. 아크는 여기서 붕괴하고 말 것이다.
“리스크는 늘 있었어.”
그럼에도 강서준은 축제를 강행했다. 단순히 컴퍼니를 처치하기 위해서?
호흡을 정돈하며 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를 부릅떴다. 포착된 놈들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그의 시야에 걸려 있었다.
‘아무리 단단한 벽이라도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결국 허물어지는 법이야.’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희생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경계의 벽에서 훌쩍 뛰어내린 강서준은 가뿐히 가까운 지붕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분명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착지음마저 음소거된 듯 조용했다.
스킬 덕분이었다.
‘풀을 밟아도 소리가 나질 않는 경공.’
소설에서 읽었던 그대로였다.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지붕 몇 개를 더 뛰어넘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적이 눈앞에 나타났다.
슬슬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놈.
하지만.
스거어억.
카카시의 가시 건틀렛에서 뽑아낸 가시는 정확하게 놈의 목을 베어 내고 지나갔다.
두부 잘리듯 뎅강 떨어져 나간 머리는 공중을 빙글 돌더니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태의 트리거 : 강동주’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보상으로 ‘나태한 자의 목걸이’를 습득했습니다.]그새 강서준은 다른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2구역 곳곳으로 흩어져 조사 중인 플레이어들이 시시각각 무전을 보내왔다. 강서준도 류안으로 쉽게 그 흐름을 쫓아서 움직였다.
‘다음은 2블럭 앞 건물 옥상!’
좁은 골목의 벽의 양쪽을 연달아 박차고 올라간다. 목표로 했던 건물 옥상까지 다다르는 건 금방이었다.
혓바닥을 길게 내민 한 마리의 트리거가 그를 발견하고 날카롭게 혀를 휘둘러 왔다.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공중의 한쪽으로 파이어볼을 발사시켜, 그 충격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대로 바닥에 착지한 그는 휘둘러지는 혓바닥을 유려한 몸놀림으로 피했다.
다시 공격까지는 한순간이었다.
[‘식욕의 트리거 : 양현주’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보상으로 ‘미식의 칼날’을 습득했습니다.]귓가로 무전이 또 들려왔다.
-……너무 요란하게 하지 마.
“고마워. 소리 차단해 줬지?”
-됐고, 앞으로 셋이야. 얼른 끝내.
“오케이.”
다시 옥상에 착지한 강서준은 무전과 류안으로 적을 쫓았다. 초상비를 극성으로 발휘하니, 건물과 건물을 오갈 수 있는 고속 주행도 가능했다.
물론, 그만큼 마나의 소모량이 많아졌지만 전처럼 금세 배터리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 [마나의 소모량을 50% 절약했습니다.]이 스킬은 필요한 마나만을 뽑아 쓰도록 고도의 정밀한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만큼 머리가 피곤해졌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무시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에겐 S급 침착 스킬도 있으니까.
스거걱!
스걱!
스거어억!
뒤이어 트리거를 모두 찾아내 단칼에 베어 버린 강서준은 호흡을 정돈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발견한 다섯 마리는 모두 처치했다.
하지만 아직 놈들의 ‘머리’를 잡은 게 아니니, 상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어디에 숨었냐.’
그의 류안이 문득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플레이어로 보였지만, 그 낌새가 다분히 수상했다.
그는 예상대로 컴퍼니의 조직원이었다.
강서준은 놈의 무전기를 강탈할 수 있었다.
“……내가 말했지? 내 눈에 띄지 말라고.”
-……무슨 짓을 한 거지?
“숨으라고 할 때 말 잘 듣고 숨었어야지. 안 그래?”
-이런다고 네놈이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강서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무전기에서 쏘아지는 신호를 읽어 들일 뿐이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찾았다.”
***
“너넨 기억력이 금붕어냐?”
놈은 가까운 지하에 숨어 있었다.
아크에서도 하수구는 필요했고, 사람의 발길이 닿을 리 없는 곳이었으니 숨기도 딱 적당했으리라.
“……케이!”
남아 있던 컴퍼니원이 그를 보면서 성난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서준은 살벌하게 말했다.
“내가 내 눈에 띄면 전부 죽여 버린다고 했잖아. 안 그래?”
“……이익!”
“쉿. 오늘 축제인 거 몰라? 조용히 해. 흥이 깨지잖아.”
컴퍼니원은 교회에서 봤던 놈과 마찬가지로 하얀 성복을 입고 있었다. 마인을 다루던 그놈과 같은 소속이라는 증거였다.
그리드와 마인이라…….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것에 있어서 공통점이니, 같은 소속이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대로 끝난 줄 알면 착각이다. 감히 네놈이라도…….”
“시끄럽고. 얼른 끝내자.”
“뭐?”
강서준은 초상비를 극성으로 발동하며 공간을 접듯 놈에게 접근했다. 움켜쥔 목울대가 긴장한 듯 떨어 댔다.
“무, 무슨!”
“나도 최하나의 무대는 보고 싶거든.”
콰직!
일격에 목울대를 부쉈다. 컴퍼니원은 허무하게도 바로 죽은 듯 보였지만,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분명히 죽어 버린 놈의 몸에선 기이하게 마력이 점차 그 힘을 늘려 가고 있었으니까.
“링링…… 보고 있어?”
-응.
“이놈이랑 나만 따로 공간을 격리시켜 줘. 가능하겠지?”
-말은 쉽게 하는구나.
“가능해? 아님 불가능해?”
-바깥으로 유인만 해 줘.
강서준은 일단 불길한 마력을 들끓던 놈의 시체를 던져 버렸다. 금세 놈의 시체는 점차 괴상한 형체로 변형되고 있었다.
머리에 뿔이 자라나고 어깨 너머로 날개가 솟아났다. 들소? 놈이 날카롭게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우어어어어!!”
울음소리 정도야 링링의 차단 마법으로 들리진 않겠지만, 이놈이 내지를 충격까지 모두 상쇄할 수는 없을 터.
강서준은 하수구를 뛰어 빠르게 밖으로 이동했다. 넓은 공터는 아니었지만 얼추 빈민가 사이에 있던 골목으로는 나올 수 있었다.
-격리시켰다.
일 처리도 빠르지.
후우웅!
강서준은 건물 외벽을 밟아 재차 공중에서 한 바퀴 빙 돌았다. 바깥으로 튀어나온 몬스터는 얼추 미노타우르스를 떠오르게 하는 외형이었다.
알 법했다.
트리거의 상위 개체. 욕망의 끝에 다다른 자.
“익스텐더…….”
강서준은 가시를 길게 뽑아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가 익스텐더라면 조금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케이…… 넌 죽을 곳을 골라서 찾아온 것이다!』
익스텐더답게, 괴물인 주제에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대뜸 소리를 빼액 지른 건 그때였다.
[‘성취욕의 익스텐더 : 김우현’이 ‘스피커 다운’을 발동했습니다.]“크윽…….”
무방비 상태로 들어 버린 놈의 괴성은 일격에 고막을 찢어 버렸다. 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익스텐더는 강서준을 향해 빠르게 쇄도해 왔다.
『아직도 네놈이 드림 사이드 1의 케이인 줄 아느냐!』
날개를 접으며 빠르게 머리의 뿔을 찌르는 익스텐더!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시끄럽다고 했잖아.”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 [스킬, ‘마력 집중(E)’을 발동합니다.]움켜쥔 주먹 속에는 터무니없지만 ‘파이어볼’이 들어 있었다. 강서준은 지척까지 다다랐던 익스텐더를 향해 움켜 쥔 파이어볼을 그대로 휘둘러 버렸다.
공격을 가했던 익스텐더는 오히려 카운터를 맞고 바닥으로 널브러져야 했다.
겨우 몸을 일으킨 놈은 강서준을 올려다봤다.
“어, 어떻게…….”
그때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이거 더럽게 아프네.”
불타올랐던 그의 손은 크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방금 파이어볼을 움켜쥐어 휘두른 대가였다.
하지만 곧, 손의 화상은 치료됐다.
또한 먹먹해졌던 소리가 점차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로 보아, 고막도 완전히 치료된 모양이었다.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그러자 놈이 더욱 놀란 얼굴로 말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어떻게 마법과 힐을 동시에!”
“글쎄. 말해 줄 이유가 있나?”
강서준은 으스대며 재차 파이어볼을 가공했다. 움켜쥔 파이어볼이 규모가 커질수록 피부를 녹이고 데미지를 주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더 강력한 힘을 낼 터.
“그러고 보니 드림 사이드 1의 케이랑 같은 줄 아냐고 물었었지?”
녹아내렸던 피부는 재생되고, 또한 녹길 반복했다. 그럴수록 강서준의 손에 쥐어진 파이어볼은 그 규모가 커졌다.
“당연히 다르지.”
“뭐?”
“그때보다 더 강해질 것 같거든.”
놈이 다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다. 최후의 일격이라도 가하려는 걸까. 가공할 만한 기세로 놈의 마력이 솟구쳤다.
“오만한 노오오옴! 반드시 네놈을 꺾고 말 것이……!!”
“몇 번을 말하냐.”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F)을 발동합니다!]놈의 말을 잘라먹은 강서준은 그의 주먹보다 훨씬 커진 파이어볼을 손에 두른 채로, 놈의 정면으로 휘둘렀다.
일시에 터져 나간 폭발!
단 일격에 익스텐더의 상체가 소멸해 버렸다.
“……시끄럽다고.”
[‘성취욕의 익스텐더 : 김우현’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한 번에 두 개의 레벨이 올랐다. 익스텐더의 최소 레벨이 150대인 걸 감안한다면 당연한 경험치였다.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1. 스텟 +5
2. 성장하고 싶은 머리띠
+
[전부 획득하시겠습니까?]강서준은 대충 시스템 메시지를 옆으로 밀어내며 한숨을 덜어냈다. 그의 손은 파이어볼의 파괴력에 의해 아작이 났지만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씨익 웃었다. 역시 드림 사이드의 진짜 시작은 ‘전직부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스킬.
더 강력해진 힘!
이러니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의 난이도가 거지같았어도 섭종까지 무려 5년을 즐긴 것이다.
이쯤이면 그의 가장 부족했던 부분인 ‘공격력’은 물론, ‘스킬’도 보완해 낸 셈이다.
퍼엉! 퍼어어엉!
전투가 끝나자, 곧 격리가 해제되면서 멀리 폭죽이 터지는 게 보였다. 강서준은 밤하늘에 수를 놓는 불꽃을 올려다봤다.
“불꽃놀이는 마지막 순서였잖아.”
-네가 워낙 요란했어야지.
“상대가 워낙 얌전했어야지.”
무전기 너머로 링링의 한숨이 바로 들려왔다. 그녀는 나지막이 되물었다.
-근데 너…… 대체 직업이 뭐야?
“응?”
-전직을 했다고는 들었지만, 도통 감을 못 잡겠어. 마법, 힐, 체술…… 이러니 더더욱 1의 케이 같아졌지만. 솔직히 갑자기 너무 괴물 같아졌잖아.
링링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대답해 주기 어려워?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불꽃놀이를 올려다봤다.
직업이라……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이젠 단순히 게임은 아니니까.
아크의 사령탑인 링링이라면, 그의 직업을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앞으로의 던전 공략에서 전략을 짤 때 더욱 유용할 것이다.
‘……안다고 바뀔 것도 없으니까.’
어차피 이 직업은 한정판이다.
강서준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도서관 사서.”
-……뭐?
“내 직업은 ‘도서관 사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