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90
◈ 90화
도서관 사서.
선택의 미로에서 헬 난이도를 골라야만 전직할 수 있다는 극악의 조건을 가진 이 게임의 유일무이한 직업.
케이가 랭킹 1위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도서관 사서로 전직하지 못했다면 드림 사이드 1의 케이는 없었겠지.’
사실 이름만 봐서는 비전투직업에 불과한 이 직업은, 활용도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중 이 직업의 가장 큰 혜택이라 볼 수 있는 점은 아무래도 ‘어떤 스킬이든 제약 없이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법이면 마법. 검술이면 검술.’
다양한 스킬을 마음껏 습득하고, 그 스킬을 조합해서 ‘케이’만의 독특한 전투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역시 사기적인 직업이야.’
그래서 뭐 밸런스가 망가지지 않냐고?
모르는 소리였다.
이 직업의 조건 중 선택의 미로에서 헬 난이도를 고르는 건 고작 ‘첫 번째 조건’에 불과했다.
‘직업 전용 아이템도 구해야 해.’
그것도 어디 평범한 아이템인가. 무려 L급, 입수 난이도가 극악에 다다르는 장비였다.
일반 사냥에선 구할 수도 없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조차 없다.
오직 퀘스트를 통해서 장비를 구할 수 있으며, 그 퀘스트의 난이도는 두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헬 난이도 뺨친다.
‘이번엔 다행히 패스했지만.’
강서준은 인벤토리에 고이 간직된 그의 섭종 보상, ‘봉인된 책’을 떠올렸다. 그나마 이번 전직이 편했던 건 이 녀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섭종 보상에 넣길 천만다행이지.’
봉인된 책.
L급 직업 전용 장비로, 도서관 사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강서준이 각종 직업의 다양한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일종의 스킬북 같은 것이다.
‘원래 이 책을 가져온 이유도 안에 등록된 스킬들이 아까워서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직 후 펼쳐 본 봉인된 책엔 아무런 스킬도 기입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지워 버린 듯했다.
-그러니까 넌 책을 읽으면 그 책의 스킬을 네 몸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원래는 스킬북을 필요로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다르더라고. 혹시 몰라서 무협지를 읽어 봤더니 등록되던데.”
-미쳤네…….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링링의 말에 긍정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스킬을 얻게 되는 과정은 그가 생각해도 사기적이었다.
막말로 책을 읽기만 해도 관련된 스킬을 얻어 낸다니.
마음만 먹는다면 원하는 스킬을 마음껏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 되는 건 아니야. 조건이 꽤나 까다로워.”
일단 등록한 스킬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등급 업을 시킬 수 없는 단점도 있었다.
도서관 사서만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이었으니, 도서관 사서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등급 업을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 책의 두 번째 봉인을 풀기 전엔 어렵겠지.
-그래도 캐릭터의 방향을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잖아?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잡캐가 될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링링은 그 말에 절대 긍정하질 않았다.
-……네가?
“어쨌든. 무대는 어때? 최하나는?”
-아, 이제 시작했어. 왜? 너도 오려고?
강서준은 초상비를 발동시키며 나지막이 답했다.
“물론. 이래봬도 나 최하나 팬이야.”
축제의 본무대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
그녀가 무대에 등장한 건 아크의 하늘에 대단위로 수놓던 폭죽이 얼추 끝날 무렵이었다.
암전된 무대.
그 위로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면서, 전투복이 아닌 ‘무대 의상’을 입은 최하나가 한 떨기 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최하나의 입술이 열린 것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눈을 감아요. 기억나나요.”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피아노 반주가 나지막이 울렸다. 약간 물기 젖은 목소리는 청초하게 퍼졌다. 그 음색이 절로 심장을 자르르 자극했다.
“흩어져 버린 모래알처럼. 수놓은 별들처럼 희미해졌죠.”
무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옥상. 일련의 플레이어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컴퍼니로부터 아크를 지키기 위해서 무던히도 순찰을 돌았던 이들이었다.
강서준이 익스텐더까지 잡아내면서,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를 봐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강서준의 옆으로 박명석이 다가오더니 대뜸 입을 열었다.
“이거였군요. 축제의 진짜 이유.”
“네?”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라 잃어버렸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네요. 우리한테 필요한 건 유능한 플레이어만이 아니었어요.”
박명석은 축제가 펼쳐지는 2구역의 중앙광장을 쭈욱 둘러봤다.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누구는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고, 누구는 뜨거운 불길 앞에서 프라이팬을 뒤집었다.
최하나의 무대를 보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앙광장 하나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박명석은 쓸쓸하게 말했다.
“우린 너무 많은 걸 잃었었군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우린 착각해선 안 됩니다.”
강서준이 생각하기에 아크에 당장 필요한 건 적으로부터 모두를 지켜 낼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었다.
컴퍼니가 없는 안전한 도시?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삶의 가치.’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째서 그렇게 노력하는가.
여태 그들이 살아온 이유가, 고작 레벨 업을 해서 몬스터를 죽이기 위함은 아닌 것이다.
‘게임도 그래. 오직 사냥만이 전부인 게임은 망겜 소리 듣기 마련이라고.’
아크는 그게 문제였다.
고작 레벨이 높다는 이유로 대단해지고,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쓸모가 없어졌다.
왜 2구역과 3구역 사이에 경계가 생겨났을까. 왜 그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매겨졌는가.
삶의 가치가 오직 ‘생존’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생존만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 이상의 것들도 봐야죠.”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면.
플레이어는 이 세계에서 그저 싸움에 좀 더 특화됐을 뿐이다. 그들만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강한 플레이어가 돼서 몬스터를 잘 때려잡는다고, 최하나처럼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각자 쓸모는 다른 법이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다르다.
‘나조차 세상이 멸망하기 전엔 그냥 백수였어.’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절정에 다다르는 최하나의 무대를 바라봤다. 그녀의 목소리가 고조됨에 따라 사람들의 감정선도 한껏 올라갔다.
박명석은 말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빌어먹을 이 세상도 살 만하다고요.”
울컥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서준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하나의 노래는 끝나 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여운은 길게 남아 사라질 것 같진 않았다.
***
다음 날, 강서준은 아침 일찍 채비를 꾸렸다. 딱히 가지고 온 짐은 없었기에 챙길 짐도 별로 없었다. 그저 배웅하는 사람들에게 마주 인사를 할 뿐이다.
오대수가 물었다.
“바로 떠나십니까?”
“네. C급 던전을 마저 공략해야죠. 놔두고 온 일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렇군요…….”
기존의 목적이던 최하나의 회복은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아크를 전복시키려던 컴퍼니의 음모도 철저히 부쉈다.
트리거 여섯 마리 제거부터 익스텐더 한 마리의 제거는 대단히 큰 업적이었다.
‘가장 이득인 건 내 전직이지.’
강서준은 예상외의 이득에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렇다고 그가 어느 웹소설의 주인공처럼 하루아침에 먼치킨이 된 건 아니지만, 좋은 건 좋은 것이다.
‘이 정도면 변수는 만들 수 있겠지.’
C급 던전을 통째로 뒤흔드는 태풍이 될 수는 없어도, 작은 돌풍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어제 무대 너무 좋았어요! 고마워요!”
“최하나! 최하나! 최하나!”
“음원 발매해 주세요!”
“최하나 님! 여기 좀 봐 주세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무수한 사람들이 큰 소리를 외치며 연신 최하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중 기자도 섞여 있었다.
서울에서도 겨우 살아남은 기자들이 한데 뭉쳐 만든, ‘아크일보’의 오늘자 메인타이틀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소문이 샌 건지.’
강서준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최하나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유명 연예인 출신은 다르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롭기 그지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강서준에게도 향했다.
“케이 님! 들었습니다! 당신이 우릴 살렸다면서요?”
“우리에게 케이는 당신뿐이야!”
“외국산 케이는 싸가지만 없지!”
“케이! 케이! 케이!”
이쯤 되면 저들이 최하나의 팬인지 케이의 팬인지 모를 지경이다. 강서준은 괜히 낯간지러워 시선을 돌려 링링을 바라봤다.
“그럼 다녀올게.”
“응. 죽지 말고.”
강서준은 링링을 비롯하여 오대수를 일별했다. 이것으로 아크를 떠날 채비는 모두 마쳤다.
문득 옆에서 나도석이 말했다.
“C급 던전이라…… 흥미롭군!”
온몸이 무기 같은 근육질의 남자, 나도석. 그도 강서준을 따라서 C급 던전 공략행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유는 말했다시피 ‘흥미’였다.
“……수원으로 안 돌아가도 됩니까?”
“알아서 잘 살겠지.”
“당신이 없으면 많이 힘들 텐데요.”
“사서 걱정은. 나 하나 없다고 죽을 동네였으면 진즉에 전멸했겠지.”
“흐음…… 알겠습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강서준은 대충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이만한 플레이어가 함께해 준다면 강서준의 입장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출발은 네 명이 한다고 하질 않았나?”
“병원에서 일이 많다더군요. 아, 저기 옵니다.”
강서준은 서울병원에서 수많은 환자와 의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김훈을 확인했다.
“꼭 살아서 돌아와!”
“당신은 의료계의 희망이야! 죽으면 안 돼!”
“김훈!!!”
“…….”
요 며칠 동안 병원에서 뭘 하고 다닌 건지. 아이돌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며 돌아온 김훈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제 능력이 생각보다 치료에 효과적이더라고요. 남는 인력 좀 돕다 보니…….”
듣기론 그가 구해 낸 사람만 물경 30명이 넘었다. 그것도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환자만을 구한 숫자였다.
김훈의 특수 포션 치료.
원하는 구역으로 포션을 공간 이동 시켜서 직접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터무니없는 치료법은 현 의료계의 돌풍을 불러왔다고 평가됐다.
오죽했으면 ‘공간 이동’ 능력자를 모집하겠다고 직업코리아나 곳곳의 게시판에 구인 공고가 올라갔을까.
“그럼 슬슬 가 볼까요.”
아크를 벗어나 광화문까지 일직선.
가는 내내 리자드맨 따위가 덤벼들었지만, 나도석까지 포함된 강서준 일행을 상대로 뭘 어쩔 수 있을까.
강서준은 금세 리자드맨의 우물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김훈이 말했다.
“김강렬 대위님의 마지막 연락으로는 리자드맨 군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더군요. 시나리오 퀘스트도 거의 종반부에 도달했고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해 받은 시나리오 퀘스트 내용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용의 인장’을 차지하는 쪽이 던전의 주인이 되는 내용이었죠?”
던전의 주인.
이른바 보스 몬스터.
C급 던전부터는 NPC와 몬스터 중 누가 승리하는지에 따라서, 앞으로의 일들이 모두 결정 난다.
‘리자드맨의 승리로 끝나선 안 돼.’
마지막 전투에서 리자드왕이 용의 인장을 차지하기라도 한다면 끔찍했다. 서울은 C급의 리자드맨 전사들의 침공을 받게 될 테니까.
“큰 싸움이 있을 겁니다.”
규모는 못해도 전쟁이다.
그들의 적은 리자드맨의 군단이니까. 이전의 던전에서 펼쳐 왔던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할 것이다.
‘그뿐일까.’
개수작을 부리고 있을 컴퍼니도 찾아내 일벌백계를 내려야겠지. 가짜 케이의 실체를 밝혀낼 필요도 있다.
[C급 던전, ‘리자드맨의 우물’에 입장하였습니다.]다시 공략을 재개할 시간이었다.